자유주제

자유주제 · 자유게시판
인천중구Happy100w
귀국 돌농3년차·
어쩌다 가끔 일있어 서울와 부동산하는 친구의 차타고 내가 있던 서래마을인데 그전에는 바글바글 했는데 한적하다. 공사꺼리 보고 용산에서 밥먹고 친구는 그곳 손님과 건물 보기로해서 만났는데 뜻밖에 아는 사람이다. 술한잔 하고 놀다 내일 가라는데 이그 내일 배추에 달팽이 약해야 한다고 다음으로 미루고 반갑게 차 한잔했고 돌아가는중입니다.
용산이 좋은 기운으로 바뀌어 흐르는 느낌이든다. 궁 주변에 사복 경비원들이 많이 배치된거같다. 잠시 친구들과 모임도 있었고 놀기 좋아하는 친구도 있고 아직 관직에 있는 실세 친구도 있다. 공사는 작지만 하기로 했다. 농사는 벌이가 안되지만 배추 달팽이가 더 신경쓰입니다. ㅎㅎ~
Farmmorning
공유하기
댓글을 남기려면 앱을 설치해주세요

자유주제모임의 연관글

최순님의 처칠경우 예기를 읽고 그와 유사한 실제로 있었던 사실을 예기 하고자 합니다 지금 으로부터 약62년전 포항에서 있었던 사실입니다 두친구가 있었습니다 고3이 되어서 대학을 가야하는데 일이라는 친구는 그아버님이 무척 부자여서 경제적으로 전혀 어려움이 없는 사람이었고 이라는 친구는 너무 집이 가난해 사실 고등학교도 겨우다닌 처지였습니다 둘다 공부를 잘 하였지만 이라는 친구는 이미 마음 속에서 진학을 포기하고 가사를 도와 동생들이나 공부를 시켜야지 생각 했읍니다 집이 부자인 일은 부모님의 넉넉한 지원으로 일찍 서울로 가서 모자란 영어 보충을 위해서 서울의 영어학원도 들러보고 한다며 넉넉한 일정을 잡고 상경하게 되었읍니다 항상 이란 친구를 아쉽게 생각하던 친구일이 서울 구경도 할겸 같이 가자고 졸라 이는 서울이 궁금하고 거기학생 들은 어떻게들 공부를 할까 등 궁금하고 또 그계절에 포항에 있어봐야 할일도 없고 해서 친구를 따라가게 되엇습니다 막상 원서를 사러간 자리에서 일은 이의 원서도 같이사서 접수를 했습니다 아 둘은 시험을 치른뒤 포항으로 내려왔습니다 아 그런데 합격 통지서가 이는 합격이고 일은 떨어진 것입니다 자초지종을 다들은 일의아버지가 이의 등록금 일체를 대납 해 주었습니다 물론 힘들고 어려운 공부를 이는 고생 고생 끝내고 우수한 성적으로 의사면허를 따고 대학에 남으라는 교수님의 말씀을 뒤로하고 고향 포항에 내려와 이**산부인과 의원을 개업해서 (중간에 선린종합 병원에 잠시 근무한 적도 있습니다) 오늘날까지 개원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업적?이랄까 지방 의원으로썬 국내 처음으로 시험관 아기를 성공한 분입니다 인품이 휼륭하고 포항 북부교회 장로님으로 오래 계셔서 저는 같이 성가대 테너파트 대원으로 같이 활동했습니다 그 일이라는 친구분이 그렇게 돕지 않았다면 그런 휼륭한 의사 한분은 생겨나지 않으셨겠지요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좋아요6·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