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쇠죽끓이는 구수한 냄새와 함께 잠을깨곤 했습니다. 겨울철 얼음이 꽁꽁언 냇가에서 썰매타고 죙일 놀다보면 손등이 터서 갈라지고 딱지가 생기기도 하는데 꾀죄죄한 손과 발을 적당히 식은 쇠죽에 담그라고 하시곤 했죠.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쇠죽통에 그냥 벅벅 문지르고 나서 우물물에 씻고나면 뽀얗게 되었답니다. 갈라진 손등엔 안티푸라민 바르면 최고의 처방 이었습니다. 겨울이면 김장김치와 구수한 된장찌게에 들어간 호박고지와 고들빼기 김치만 있어도 어린식성에 꿀맛 이었습니다.
쌀이 귀할때 촌에서 돈 만들려면 쌀을 방아찡어 장날가져 가서 팔아야 겨우 돈을 만들고 밥할때 미리 쌂아논 보리쌀 밑에 깔고 그 위에 쌀 조끔놓고 밥하여 쌀이 조금섞인 밥은 아버지 드리고 우리 들 밥은 그저그른 밥 이고 어머니는 깡보리 밥 드셨지요 그래도 허연 슝늉 맛은 달고 맛있게 먹어습니다
그랬죠! 할머니밥은 맨위에서 쌀밥으로 푸셨고, 그래서 아버지와 같이 겸상을 하면서 할어니께서 남기신 밥을 먹을려고 천천히 밥을 먹었습니다. 학독에 보리쌀을 갈아서 소쿠리에 담아놓고 밥을할 때 보리쌀을 더 많이 넣고 밥을 지으셨죠. 지금은 가끔씩 시내에서 옛날맛으로 보리밥을 먹기도하는데 저는 절대 안먹습니다. 질퍽하게 지은 무밥도 싫었습니다. 숭늉을 마실 때는 무가 안들어오게 이빨을 다물고 숭늉을 마시곤 했습니다.
손등이 갈라지고 머리엔 쇠똥이 있다고 어르신들께서 말씀하셨지요. 이와 써캐, 나무기둥에 빈대는 왜 그리 많았는지요? 73년에 논산훈련소에서 내복에 겨드랑이에 주머니를 달고 주머니속에 아마도 DDT를 넣은 것 같았습니다. 주말에 모포를 밖에 널었다가 오후에 털면 추위에 언 이가 굴러다니기도 했습니다. 첮휴가를 받아서 전날 하얀런닝으로 갈아입었는데 하도 아침에 등이 하도 가려워서 상의를 벗었더니 하얀 런닝구에 새까맣게 이가 있어 벗어서 난로에 집어넣었답니다. 참 웃픈 이야기지요.
옛날 어르신들 손맛은 분명하게 있었습니다. 저희 어머니께서 끓여주신 시래기국은 흉내도 못냅니다. 요즘 육수를 내고 온갖 양념을 다해도 그 맛은 없습니다. 제 큰애가 남원에서 돼지찌개를 조금 갖고 왔는데 한숱갈 먹더니 "할머니가 끓인 국"이라고 하더군요. 거칠한 김치에 비게가 있는 돼지고기 몇점 넣고 끓이셨는데 어찌 그리 깊은 맛이 날까요? 어머니 손맛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