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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막걸리만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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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0년대 우리들의 공감시대 15 - 우리는 막걸리 심부름을 자주했다. 마을 구판장이나 자그마한 점방 한쪽에는 주로 간장 담글 때 사용하는 대형 옹기 항아리가 놓여 있었다. 막걸리를 담아 놓은 술독이다. 주로 한개가 보통이지만 농사철이나 가구수가 많고 술꾼이 많은 마을은 술독이 두개가 놓여 있는 곳도 있었다. 뚜껑은 널판지로 만들었고 손잡이가 있어서 쉽게 뚜껑을 여닫았다. 막걸리는 면 소재지 마을에 있는 막걸리 도가(개)집에서 만들어 아침 일찍 배달해 준다. 그때는 면단위마다 술도가가 있었다. 식량이 부족할 때는 밀가루와 옥수수가루로 막걸리를 만들었다. 그래서 세무서에서 밀주단속을 했다. 도가에서 술이 평소보다 덜 팔리면 세무서에 밀주단속을 의뢰했다고한다. 밀주를 담가서 집안이 아니고 담장넘어 대나무밭에 묻어도 여시같이 찾아서 벌금을 매겼다. 집안에 대소사가 있을 때는 커다란 항아리에 막걸리릍 빚어서 손님들께 대접을 했다. 할머니 회갑연을 할 때 제가 중학교 2학년 때였는데 2개의 큰 항아리에 막걸리를 빚었다. 멋모르고 벌컥벌컥 들어마시다가 크게 배앓이를 한 적도 있었다. 그뒤로 볍씨가 종자가 개량되고 수확량이 늘어나면서 식량이 자급자족이 되고나서부터 쌀로 막걸리를 빚었다. 배고플 때 술도가를 지날 때면 고두밥을 쪄서 멍석에 널어 누룩과 버무릴 때 누룩이 묻지않은 고두밥 한주먹은 꿀맛이었다. 당시에는 시골에 자가용은 물론이고 소형 화물차도 전혀 없던 때라 막걸리를 짐발 자전거를 이용하여 직원으로 고용된 배달부가 배달해 주었다. 그때 막걸리통은 나무판자로 엮어서 만들어서 무게 또한 대단했다. 시골에서 오줌장군이랑 막거리통은 판자를 가운데가 볼록하게 엮고 대나무로 테두리를 묶어서 만들었다. 막걸리통은 마개도 아가들 주먹만하게 통나무로 만들어서 주둥이를 막았다. 요즘 와인으로 유명한 외국에서 볼 수 있는 와인통과 같았다. 그 무거운 막걸리통을 여러개 짐발 자전거에 매달고 비포장도로를 달리면서 배달하는 배달부 아저씨 종아리 근육은 요즘 보디빌딩하는 사람처럼 힘줄이 뭉쳐있었다. 술이 가득 채워진 막거리통은 마을 서너곳에 짐발 자전거에 가득 싣고 비포장 자갈길 신작로를 달려서  배달했다. 막걸리 배달부가 도착할 때쯤이면 구판장 앞에는 찌그러진 양은 주전자나 파르스름한 빛깔이 도는 한 되짜리 유리 됫병을 든 아이들과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기다린다. 술을 좋아하는 남편이나 아버지 술 심부름을 나왔거나 그날 농사일 하러 온 놉(일꾼)들 새참과 점심 반주용 막걸리를 받아 사가기 위해서다. 아침에 바로 배달된 막걸리 맛은 좋았지만 냉장고가 없던 시대라 하루 전 팔다 남은 막걸리나 배달된 지 몇 시간 지난 특히 여름철에 막걸리는 신맛이 나기 때문에 모두들 그날 쓸 막걸리는 대부분 아침 일찍 사간다.     밀가루에 막걸리를 붓고 발효시겨서 쩌낸 술빵이 그때는 최고의 간식이었다. 막걸리 배달부 아저씨가 주문한 막걸리 통을 내려놓으면 알싸한 막걸리 냄새를 가게 안에 피어 올리면서 콸콸 소리를 내며 쏟아 부었다.  술을 다 붓고 나면 주인은 항아리 속에 있는 바가지로 휘휘 저은 뒤 조금 떠서 맛을 본 다음 순서대로 주문한 양만큼 퍼서 들고 온 주전자에 담아 주거나 유리병에 양철 깔대기를 꽂아서 부어준다. 막걸리 값은 곧바로 현금으로 돈을 내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외상이 많았다. 외상인 경우에는 나무기둥에 끈을 꿰어 매달아 놓은 공책과 연필로 치부책 외상장부에 택호별로 적어 놓았다가 보리타작이 끝나거나 쌀방아를 찧고 나면 현물이나 돈으로 받았다. 시대가 변하면서 막걸리통도 나무통에서 프라스틱 말통으로 다시 한되짜리 비닐병으로 바뀌었고 뒤를 이어 맥주와 소주에게 바통을 넘겨 줬지만 오랜 시간 애주가들은 구판장 나무의자에 걸터 앉아서 안주로 풋고추에 된장을 찍어 먹었던 술잔과 긴 호흡을 했다. 요즘 전주에 막걸리촌이 등장해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전국에서 생산 된 막걸리가 판매되고 있다.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막걸리보다 곁들여 나온 가지수가 많은 안주에 놀랍기도 하단다. 전라도 음식은 특히 전주음식은 맛있기로 유명하다. 예로부터 음식문화가 특히 발달한 곳이 전주라는 표현으로 전주에는 사불여(四不如)라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관리는 아전만 못하고, 아전은 기생만 못하고, 기생은 소리만 못하고, 소리는 음식만 못하다"라는 뜻이다. 알콜농도도 높지 않고 쌀로 만든 막걸리는 요기를 때우는데도 좋을 듯 하다. 어제 흡족하진 않지만 비가 내렸다. 당근에서 불루베리를 주당 판매한다고해서 주문했는데 진안군 마령면에 있어서 캐가야한다고한다. 오후 늦게 바람도 쐴겸 아내랑 아무 준비없이 농장으로 찾아갔다. 부직포에 심어졌는데 오래전에 불루베리 농사를 하다가 수년간 관리를 하지 않아서 풀밭이었다. 가랑비까지 내려서 심란했는데 여기까지와서 그냥 돌아가기도 뭐해서 5그루를 어거지로 뽑아서 실고왔다. 나무는 7년정도 키웠는데 그 동안 관리를 안해서 키만 컸고 불루베리가 작은 재래종이었다. 밤이라 텃밭에 내려놓고 감자와 옥수수를 수확한 자리에 심을려고 오늘 아침에 임시로 심었다. 전지를 해주면 어린 나무보다 나을 것도 같았다. 오이를 4개를 첫 수확했다. 이틀전에 그리 크지않았는데 어제 하루만에 많이컸다. 완두콩에 매주었던 줄을 걷어서 고추를 세번째 줄을 매주었다. 며칠사이에 완두콩이 완전 시들었다. 완두콩 뽑은 곳에 참깨를 심어볼까 한다. 밭 언덕에 하얀접시꽃이 많이 있었는데 하얀접시꽃이 약이 된다고해서인지 지난 겨울에 많이 뽑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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