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 복숭아 모임 작업 알림🔔
1️⃣ 지면과 가까운 원줄기는
온도 변화가 심해 동해를 입기 쉬워요.
겨울철엔 80~100cm 부위까지
볏짚이나 부직포로 피복해 보온 처리하세요.
유목에서는 주간부에 백색 페인트를 바르세요.
동해는 겨울철 찬바람에 의해 조장되기 때문에
상습적으로 동해를 받는 지역에서는
방풍림 또는 방풍망을 설치하세요.
2️⃣ 가납암백도, 오도로끼, 일천백봉 품종은
동해에 특히 약하기 때문에, 중•북부 지역에서는
품종 선택 시 유의하세요.
3️⃣ 주간부 동해를 심하게 받은 나무는
빠른 시간 내에 수피가 터진 부분을
노끈이나 고무밴드로 묶어
건조해지지 않도록 관리하세요.
4️⃣ 동해 피해를 받은 나무는
강전정을 실시해 결실량을 줄이고,
봄철 건조 시에 관수를 철저히 해
수세 회복에 노력하세요.
동해로 수세가 떨어졌을 땐,
기계유제 살포는 피하고
발아 직전 석회유황합제를 살포하세요.
[🌞 날씨]
다음 주는 찬 대륙 고기압의 영향으로
기온의 변동 폭이 크겠고, 추울 때가 있을 예정입니다.
기온은 평년(1.0~3.0℃)과 비슷하거나 낮을 전망입니다.
강수량은 평년(3.1~11.0㎜)과 비슷하거나 적을 것으로 예상돼
관수 관리에 신경 쓰셔야 할 것 같습니다.
- 저수율: 66.8% (평년 69.7%의 95.8% / 11.28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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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12월 2일
6
32
Farmmorning
퇴근 후에 정신없이
바빴습니다.
자동차 검사소에 잠시 들렸는데 브레이크 휠실린더
오일누유로 수리시간이 반나절
소요된다고 해서 낼
점심시간에 다시 차 수리하도록 맡겨놓고
퇴근길에 인도하기로 약속하고 돌아오는데
집사람 전화 왈 참깨논에 물이 고여서 참깨놈이
물에 취해 큰놈들은
넘어져 노끈으로 열심히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하우스에서 지줏대
챙겨서 삽 괭이등등
챙겨서 놓고 허기진
배를 막걸리를 단숨에 세 잔 마시고
후다닥 참깨논에 가서 참깨 지줏대
세우고 고인물 배수로 작업해서
응급처치 했는데
어제 마신 고랑주가
원망스럽기도 하네요
막걸리만 마시면 무탈한데 마을 동생이 쟁반짜장에
고랑주가 정신을 못
차리게 해 어제 오후에 땡처리 일 못한게
오늘 과부하로 쌩긋
웃으며 되돌아 오네요.~~~
막걸리는 뒷탈이 없는데 고랑주는
앞으로 노노노~~~
또 잠잠하던 순간이
소나기가 비웃듯
내리치네요.
다들 비 피해없도록
잘 하세용
23년 6월 26일
6
11
Farmmorning
다음 주 복숭아 모임 작업 알림 🔔
[🌞 날씨]
다음 주는 찬 대륙 고기압의 영향으로
기온의 변동 폭이 크겠고, 추울 때가 있을 예정입니다.
기온은 평년(-0.3~1.7℃)과 비슷할 전망입니다.
강수량은 평년(2.3~3.8㎜)과 비슷하거나 적을 것으로 예상돼
관수 관리에 신경 쓰셔야 할 것 같습니다.
- 저수율: 67.9% (평년 70.2%의 96.7% / 12.05 기준)
<동해 피해 경감 대책, 이렇게 세우세요!>
1️⃣ 안전 지대를 선정하세요!
품종에 따라 내한성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동해 위험 피해 빈도를 고려해
최근 10년간 최저기온 조사 후 적지를 선정해요.
2️⃣ 주간부를 피복해요.
지면과 가까운 원줄기는 온도 변화가 심해 동해를 받기 쉬워요.
80~100cm 부위까지 볏짚이나 부직포로 피복해 보온 처리하세요.
- 유목에서는 주간부에 백색 페인트를 발라줘요.
- 동해는 겨울철 찬바람에 의해 조장되므로,
상습적 동해를 받는 지역에서는 방풍림 또는 방풍망을 설치하세요.
3️⃣ 품종 선택에 유의하세요.
가납암백도, 오도로끼, 일천백봉 등의 품종은 특히 동해에 약해요.
중·북부 지역에서는 품종 선택 시 유의하는 게 좋아요.
4️⃣ 사후 관리 이렇게 하세요!
주간부 동해를 심하게 받은 나무는
빠른 시간 내 수피가 터진 부분을 노끈이나 고무밴드로 묶어
건조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해요.
동해 피해를 받은 나무는 강전정을 실시해
결실량을 줄이고, 봄철 건조 시 관수에 신경 써 수세 회복에 노력하세요.
동해로 수세가 떨어졌을 땐, 기계유제 살포는 피하고
발아 직전 석회유황합제를 살포하는 게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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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12월 8일
10
49
Farmmorning
- 6-70년대 우리들의 공감시대 19 -
우리는 겨울에 따뜻한 구들방에서 할 수 있는 실뜨기를 하면서 놀았다.
실의 두 끝을 매어서 양쪽 손가락에 얼기설기 얽어서 두 사람이 주고받으며 여러가지 모양을 만드는 놀이로서 주로 여자아이들이 하는 놀이였다.
얼마전에 큰 손주가 다이소에서 실뜨기를 사왔다고 같이 하자고 한다.
실뜨기 실도 형형색색이다.
실로 오랫만에 해보는 실뜨기 놀이였다.
길이가 약 한발 쯤 되는 실이나 노끈의 양쪽 끝을 연결해서 실테가 되게 한 다음 두 아이가 마주 앉아서 실태를 서로 번갈아가면서 손가락으로 걸어 떠서 여러 가지 형태로 변형시킨다.
실태를 양손에 1번 감아서 걸고 다시 양손 가운데 손가락으로 감은 실을 집어떼서 상대편 아이 앞에 내놓는다.
이것을 가장기본인 날틀이라고 한다.
그 다음에 아이가 날틀의 양쪽 가위처럼 벌어진 각을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으로 걸어쥐고 아랫줄을 밖으로 둘러 밑으로부터 위로 향해 가운데로 올려 뜨면 바둑판 모양이 된다.
이렇게 실을 잡아 당기면서 갖가지 모양을 만든다.
쟁반모양, 젓가락, 배틀, 소눈, 가위질, 톱질 등을 만들고 기술이 모자라거나 주의가 부족하면 도중에 손가락을 잘못 걸거나 움직여서 실뜨기놀이에 지게 된다.
요즘 치매를 예방하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고하여 노인유치원에서도 놀이기구로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또한 양지바른 따뜻한 마당이나 공터에서는 비석치기도 했다.
비석치기는 전통 놀이중의 하나이다. 
손바닥만한 정도의 넓적한 돌이나 깨진 기왓장 조각을 가지고 말을 만든다.
먼저 상대편 말을 목표 지점에 세워 놓는다. 자기 말로 출발선에서 던지거나 신체 일부분에 의해 옮겨 쓰러뜨린다.
상대편 말을 쓰러뜨리지 못하거나 옮기는 도중 말을 빠뜨리면 공격이 바뀌게 된다.
편을 갈라서 할 때에는 성공하지 못한 사람을 대신하여 통과한 사람이 맞추어야만 다음 차례로 넘어간다.
발로 건드리거나 말을 떨어뜨리면 실격이 된다.
모든 과정을 통과한 사람이나 편이 이기게 된다.
말을 무릎사이에 끼고 뒷짐을 지고 가서 상대편 말을 맞추고 넘어뜨려야 이겼다.
배위에, 가슴위에, 목에 끼고, 등이나 이마에 말을 얹고 가서 상대편 말을 맞춰서 넘어뜨려야 한다.
놀이가 끝나면 내가 썼던 납작한 돌멩이나 기왓장은 한쪽 다무락사이에 감추었다가 다음에 꺼내서 놀곤했다.
옛날에는 흙으로 만든 기와를 장작가마로 구워서 만든 기왓장으로 아주 단단하고 묵직했으며 흔한 것은 아니었다.
불로 구운 기왓장은 두드리면 쇳소리가 나면서 겉이 매끈하고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작은 시골집은 매년마다 가을에 추수를 마친 짚으로 이엉을 했고 두칸이상 접집이라야 억새로 지붕을 이었다.
동네 기왓집은 그 마을의 메인이였다.
그래서 "기왓집 아들" "어느 마을 기왓집"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또 마당이 넓은 집에서 방울치기가 있었다.
오늘날 야구와 비슷한 규칙이 있어서 모인 아이들을 두편으로 갈라 순서를 정해서 주먹으로 공을 쳐서 공격을하고 다른 한편은 수비를 하는 놀이였다.
규칙은 야구와 같았다.
주먹으로 친 공은 받으면 아웃이되고, 땅에 떨어진 공을 얼른 주어서 1루에서 수비가 공격하는 사람보다 공을 먼저 받으면 아웃이 된다.
이렇게 세꼭지점을 돌아서 처음 자리로 돌아오면 점수를 내는 놀이였다.
힘이 쎈 아이들이 담장너머로 공을 날려보내면 세지점을 돌아오면 점수를 낸다.
홈런을 친 셈이다.
3명이 아웃되면 공수 교대가 이루어진다.
땅바닥에 나온 점수를 숫자로 표시하면서 대부분 20점을 먼저내는 팀이 이겼다.
지금 생각하면 야구와 똑 같은 규칙이어서 야구의 원조였다.
드넓은 운동장도 아니고 다른집보다 조금 넓은 마당이 한집 있었다.
설 명절때부터 보름때까지 동네 아이들이 모여서 놀았던 방울치기 놀이였다.
그집 마당은 눈이나 비가 내리면 엄청 질퍽거렸다.
주인집 어르신께서 얼마나 귀찮으셨을까?
그때는 생각지도 못했다.
장마가 시작되었습니다.
고작 이틀 내린비에 끈적거리고 집안도 끕끕하네요.
오늘 하루 소강상태였다가 내일 다시 폭우가 있을 예정이라는 예보입니다.
혹시나해서 텃밭에 들렀더니 고추도 참깨도 반가운 비를 맞아 생기가 넘친 것 같았습니다.
일년중 절반이 어느 덧 지나갔습니다.
이만큼 또 지나면 한해가 또 가겠구나!생각하니 아쉬움이 많네요.
일년중 절반을 수고 많으셨습니다.
올해 남은 절반도 좋은 일만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7월 1일
9
낫, 호미, 전지가위, 분무기, 삽, 괭이, 장갑, 노끈, 톱, 제초기, 사다리, 멀칭비닐, 제초매트, 매트고정핀, 망치 등 등
23년 8월 17일
- 6-70년대 우리들의 공감시대 10 -
우리는 야간통행금지와 장발단속 그리고 미니스커트 단속을 당했다.
통행금지령(通行禁止令) 또는 통금(通禁)은 일정 시간에 일반인의 통행을 금지하는 제도로 주로 야간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원칙적으로 분쟁이나 재난이 있을 때에 치안 유지를 위해 오직 제한적으로만 시행되었다.
어린이나 청소년의 보호를 위해 시행되기도 했다.
야간통행금지는 밤에 허락받지 않는 사람은 돌아다니지 못하게 하는 제도다.
지금도 밤에 치안이 좋지 않는 곳이 있고 과거에는 더 심했을 것이다.
이에 따라 범죄율을 낮추고자 과거에 많이 사용했던 규범이다.
그 당시에는 어차피 횃불이나 호롱불외에는 별다른 조명이 없고 해가지면 일반인들이 할만한 야외활동이 없어 그다지 불만이 없었다.
1945년 시행되었다가 전방 휴전선부근과 해안 일부 군사시설이 있는 지역을 제외하고 1982년1월5일 전면 해제되었다.
밤 10시에서 다음날 4시까지는 일반인들이 시내를 다니지 못했다.
그 후 밤 12시부터 다음날 4시까지로 변경되었다.
12시가되면 싸이렌이 울리고 야간통행증이 없으면 즉결심판을 받고 경찰서 보호실에서 밤을 보내야했다.
신정연휴기간, 광복절, 크리스마스, 재야의 밤 등 특별한 날은 해제되었다.
1970년대 초중반의 장발 단속 정책은 1960년대 이후 서구에서 6.8혁명의 영향을 받은 문화가 한국에 수입되자 당시 정권에서 청년들의 문화를 막음으로써 통제 분위기를 활용하여 젊은이들의 자유로운 활동을 막으려 한 의도가 있었다.
6.8혁명이란 1968년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거대한 변혁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미니스커트와 장발은 주류 문화에 저항하면서 새로운 문화 새로운 시대를 바라는 젊은이들의 열망이 함축돼 있었다.
1971년 9월 24일 정부는 퇴폐 미풍양속을 해치는 행위를 10월 1일부터 단속한다는 방침을 발표했고,
미니스커트와 장발도 포함돼 있었다.
단속 첫 날인 10월 1일 전국적으로 2,600명이 적발되었다고 한다.
장발단속에 걸렸는데 머리깍기를 거부하면 경범죄로 즉결심판에 넘겨졌고 장발인 상태로 예비군훈련에 참가하면 불참처리됐다.
장발단속은 한국에 입국하는 외국인에게도 적용되었는데 1970년 홍콩 배우 성룡이 당시 우리나라에 입국하면서 단속에 걸린 적이 있었다.
한 때는 바가지를 엎어 놓은 바가지 모양의 머리가 유행하기도 했다.
장발단속은 80년대 들어서면서 없어졌지만 이를 단속하는 근거 법안의 장발에 관한 내용이 없어진 것은 1989년입니다.
한국에서는 가수 윤복희가 입은 것이 최초로 알려져 있지만 미니스커트는 당시 적령기 미혼 여성의 정장이 되어버렸다.
유신정권이 들어서면서 장발과 함께 미니스커트를 단속하기 시작했다.
당시 경찰들은 풍기단속 등의 이유로 대나무로 만든 30cm자를 가지고 다니며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여성들의 치마 길이를 단속하기도 했다.
당시 단속 기준은 무릎 위 20cm에 걸리면 경범죄처벌법에 의해 처벌을 받았다
"호황기에 미니스커트를 입는다"는 치마의 길이로 경제 상황을 알 수 있다는 말이 떠돌기도 했다.
길거리에서는 보행법규를 위반한 사람을 단속하여 한쪽에 노끈으로 선을 만들고 그 선안에 세워두기도 했다.
횡단보도에서 한쪽발만 내려가면 괜찮았고 두발이 다 내려가면 교통단속반이 멀리서 지켜보다가 쫒아와서 적발되었다.
사회 분위기와 물가상승도 차갑게 느껴집니다.
웃픈 이야기도 있습니다.
90년대까지만해도 자동차를 운전하시다보면 이런 일을 몇번은 격었을겁니다.
도로변에 화이바를 쓰고 멎진 오토바이를 타고 교통단속을 하는 교통순경이 많이 있었습니다.
저의 경우는 전주시내를 벗어나면 완주경찰서 소속의 교통경찰이 있었고,
완주군을 벗어나면 임실경찰서 소속의 교통순경이 있습니다.
임실군 경계를 지나면 남원경찰서 소속의 교통경찰이 나와있습니다.
남원 시내를 벗어나면 지리산으로 들어가는 삼거리에 요천 검문소가 있습니다.
70k의 거리에 꼭 3-4차례는 교통단속을 거쳐야했습니다.
운전을 하다보면 기준속도를 웃도는 속도로 운행하기도 하지요.
어김없이 한쪽에 살짝 숨어있다가 수신호로 차를 세웁니다.
그 시절에는 면허증 밑에다 5,000원권 지폐를 끼워놓고 다녔습니다.
접어진 5,000원권 지폐랑 같이 면허증을 제시하면 5,000원권 지폐만 꺼내고 면허증을 돌려주면서 "안전운전 하십시요"하면서 거수경례를 하였습니다.
다 그런것은 아니었습니다.
심지어는 "동료들이랑 차한잔하게 해주십시요"하면서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했습니다.
어느 날은 요천 검문소에서 안전띠를 안맸던가?해서 검문을 당했는데 호주머니에 현금이 없어서 면허증을 맏겨놓고 시내에서 현금을 인출해서 5,000원을주고 면허증을 찾기도 했습니다.
성실하게 교통업무를 보았던 교통경찰분들한테는 죄송합니다.
그 때는 국도지만 2차선이라 중앙분리대가 없어서 건너편에 교통경찰이 있으면 상대방 차에다 비상등을 깜박이면서 교통경찰이 단속을 하고 있다고 알려주는 미덕아닌 미덕도 있었습니다.
날씨가 더워지고 있습니다.
건강관리를 잘 하셔야겠습니다.
5월 23일
12
10
일년살이 (고추)
만물이 소생하는 봄에태어나
유아기에 접어들면 비바람에
쓰러지지 않기위해 지지대 와
노끈줄에 지탱에 삶을 영위하다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성장으로 인한 자식들은 마트나 시장 식당으로 팔려가고 이내몸은
병마 와 싸우기위해 (총채 응애 진딧물 나방 등) 몸부림을 치면서 훌륭하게 키워 냈지만 자식들은 스스로
큰걸로 착각하여 가출을 시작한다 가출하자마자 물고문 (물세척) 당하고 전기고문(전기건조기) 을 당하면서까지 버터내지만
어디론가 사라져 전통시장 한귀퉁이 가마니자루에서 모델아닌 모델 행세을 한다
난 암덩어리 같은 역병 탄저병을 이겨내기 위해 항암투병을 했지만 탄저병 의
고개을 넘지 못한체 요단강을
건너가야 할 신세가 되니 서글퍼 진다 죽어서도 이내몸은 어느들녁 골짜기 잡초에 묻혀썩어 바람에 날릴것이고 아니면 어느농부손에 의해 화형에처해 휠휠 바람에 날려 정처없이 떠돌이 신세가 될것을 생각하니 무상함이
느껴진다
23년 10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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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mmorn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