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초등학교 선생님 이야기
K라는 초등학교 女선생님이 있었다.
개학 날 담임을 맡은 5학년 3반
아이들 앞에 선 그女는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했다.
아이들을 둘러보고 모두를 똑같이 사랑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러나,
바로 첫 줄에 구부정하니 앉아 있는 작은 남자 아이 철수가 있는 이상 그것은 불가능했다.
K 선생은,
그 전부터 철수를 지켜보며 철수가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옷도 단정치 못하며,잘 씻지도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때로는 철수를 보면 기분이 불쾌할 때도 있었다.
끝내는,
철수가 낸 시험지에 큰 X표시를 하고 위에 커다란 빵점을 써 넣는 것이 즐겁기 까지 한 지경에 이르렀다.
K 선생님이 있던 학교에서는,
담임 선생님이 아이들의 지난 생활기록부를 다 보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녀는 철수 것을 마지막으로 미뤄 두었다.
그러다 철수의 생활기록부를 보고는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철수의 1학년 담임선생님은 이렇게 썼다.
“잘 웃고 밝은 아이임.일을 깔끔하게 잘 마무리하고 예절이 바름.함께 있으면 즐거운 아이임.
”2학년 담임선생님은 이렇게 썼다.
“반 친구들이 좋아하는 훌륭한 학생임.어머니가 불치병을
앓고 있음. 가정생활이 어려울 것으로 보임."
3학년 담임선생님은 이렇게 썼다.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마음 고생을 많이 함.최선을 다하지만
아버지가 별로 관심이 없음.어떤 조치가 없으면 곧 가정생활이 학교 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임."
철수의 4학년 담임 선생님은 이렇게 썼다.
"내성적이고 학교에 관심이 없음.
친구가 많지 않고 수업시간에 잠을 자기도 함."
여기까지 읽은 K-선생은,
비로소 문제를 깨달았고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반 아이들이 화려한 종이와 예쁜 리본으로 포장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가져 왔는데, 철수의 선물만
식료품 봉투의 두꺼운 갈색 종이로 어설프게 포장되어
있는 것을 보고는 더욱 부끄러워졌다.
K선생은,
애써 다른 선물을 제쳐두고 철수의 선물부터 포장을 뜯었다.
알이 몇 개 빠진 <가짜 다이아몬드> 팔찌와 사분의 일만 차 있는
<향수병>이 나오자, 아이들 몇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그녀가 팔찌를 차면서 정말 예쁘다며 감탄하고, 향수를 손목에 조금 뿌리자 아이들의 웃음이 잦아 들었다
철수는 그 날 방과 후에 남아서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오늘 꼭 우리 엄마에게서 나던 향기가 났어요"
그 녀는아이들이 돌아간 후 한 시간을 울었다.
바로 그 날 그녀는 읽기, 쓰기, 국어, 산수 가르치기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아이들을 진정으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K선생은 철수를 특별히 대했다.
철수에게.공부를 가르쳐 줄 때면 철수의 눈빛이 살아 나는 듯했다. 그 녀가 격려하면 할수록 더 빨리 반응했다.
그 해 말이 되자.
철수는 반에서 가장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되었고
모두를 똑같이 사랑하겠다는 거짓말에도 불구하고 가장 귀여워
하는 학생이 되었다.
1년 후에 그 녀는,
교무실 문 아래에서 철수가 쓴 쪽지를 발견 했다.
거기에는,
그녀가 자기 평생 최고의 교사였다고 쓰여 있었다.
6년이 흘러 그 녀는 철수에게서 또 쪽지를 받았다.
고교를 반2등으로 졸업했다고 쓰여 있었고,
아직도 그 녀가 자기 평생 최고의 선생님인 것은 변함이 없다고
쓰여 있었다.
4년이 더 흘러 또 한 통의 편지가 왔다.
이번에는,
대학 졸업 후에 공부를 더 하기로 마음 먹었다고 쓰여 있었다.
이 번에도,
그 녀가 평생 최고의 선생님이었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이라 쓰여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름이 조금 더 길었다.
편지에는
‘Dr. 박철수 박사’ 라고 사인되어 있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 해 봄에 또 한 통의 편지가 왔다.
철수는 여자를 만나 결혼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몇 년 전에 돌아가셨으며, K선생님에게
신랑의 어머니가 앉는 자리에 앉아 줄 수 있는 지를 물었다.
그 녀는기꺼이 좋다고 화답했다.
그런 다음 어찌 되었을까?
그 녀는 가짜 다이아몬드가 몇 개 빠진 그 팔찌를 차고,
어머니와 함께 보낸 마지막 크리스마스에 어머니가 뿌렸었다는 그 향수를 뿌렸다.
이들이 서로 포옹하고 난 뒤,
이제 어엿한 의사가 된 박철수는 K선생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선생님,절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스스로가 중요한 사람
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해 주셔서,그리고 제가 훌륭한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걸 알게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K 선생은 또 눈물을 흘리며 속삭였다.
“철수 너는 완전히 잘못 알고 있구나. 내가 훌륭한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걸 알려준 사람이 바로 너란다. 널 만나기전 까지는 가르치는 법을 전혀 몰랐거든."
꼭 아이들에게 해당되는 말만은 아닐 것입니다.
누군가를 믿어주고 칭찬해 준다면 어른일지라도 분명 큰 일을 해내리라 믿습니다. 내 입술이라고 상대방을 내 잣대로 판단해
주변의 사람들을 함부로 비난하지 않았는지 K선생님을 보며 다시 한번 나를 점검 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다른 사람의 장점을 찾아 칭찬 하는 오늘이 됩시다!
남의 그릇된 헛소문을 耳로 듣지 말 것이며,
남의 허물어진 모습을 目으로 보지 말 것이며 남의 잘못을 험담으로 口에 담지 말 것이며
남의 곪아빠진 상처를 鼻로 냄새 맡지 말 것이며
남의 나쁜 버릇을 手으로 고치려 하지 말 것이며
남의 자그마한 실수를 心 으로 즐기지 말지어다...
내가 존경받고 싶으면 남을 업신여기지 말 것이며
내가 인정받고 싶으면 남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하며
내 가 행복하고 싶으면 남의 불행을 반기지 말 것이며
내가 잘 되고 싶으면
남의 발전을 도와줄 것이며 내가 기쁘고 싶으면 남의 슬픔을 함께 할 것이며
내가 즐기고 싶으면.
남의 고통을 어루만져 줄 것이니라..
작은 꽃잎이 모여서 아름다운 꽃밭을 만들고
작은 미소가 어우러져 행복한 웃음꽃이 피어나고 한 방울의 낙수가 합쳐져 크나 큰 강물을 만들어 내고
크고 작은 나무들이 모여서 울창한 밀림의 숲을 이루고
한 점의 조각구름이 모여서 하얀 뭉게구름을 만들며
한 줄기 바람이 일어 세찬 폭풍우를 몰고 왔듯이
하나가 모여서 둘이 되고 둘이 합쳐서 우리가 될 것이며
'나'라는 하나의 단수보다는'우리'라는 복수가 어우려져서
모두가 함께 하는 공생공존의 아름다운 꽃이 피어오르리라..
또한,
처음 만남은"하늘" 이 만들어 주는 인연이고,
그 다음부터는"인간"이 만들어가는 인연이라 하지요.
"만남과 관계가 잘 조화된 사람"의 인생은 아름답습니다.
만남에 대한 책임은 "하늘"에 있고,
관계에 대한 책임은 "사람"에게 있습니다.
좋은 관계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서로 노력하고 애쓰면서 좋은 관계를 맺으려고 해야 결과적으로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습니다.
"오늘도 당신을 믿습니다."
많이 넘어지는 사람만이 쉽게 일어나는 법을 배웁니다.
살다 보면,
지금보다 더 많이 넘어질 일이 생길 지도 모릅니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축 처진 어깨로 앉아 있지 마세요.
일어 나세요.
넘어 진 자리가 끝이 아닙니다.
자신을 아는 것은 眞 이며,
자신과 싸우는 것은 善 이며,
자신을 이기는 것은 美 이다.
🧅정보
01)
https://youtu.be/9wk5j2R9BRk
02)
https://youtu.be/EVqs0JRiTUc
03)
https://youtu.be/8qCkNqomT64
04)
https://youtu.be/DyTYNlOaX7s
05)
https://youtu.be/3DVBH-2-yfU
06)
https://vt.tiktok.com/ZSLbKyhJ4/
07)
https://youtu.be/TZCgjTEKrPQ
08)
https://youtu.be/1ofAxNqyCxE
09)
https://youtu.be/Y7kIW9atQww
10)
https://youtu.be/RaJwbiRpk30
11)
https://youtu.be/3_zO8UR7yq8
12)
https://youtu.be/jPCM2YJ5nrE
13)
https://youtu.be/-dBk9dRb9Y4
14)
https://youtu.be/F5THt11umhM
15)
https://youtu.be/BDRnyLASZvM
16)
https://youtu.be/GqgfYxWMwG4
17)
https://youtu.be/n_k41Flip6U
18)
https://youtu.be/tVpaMVGL3xQ
19)
https://youtu.be/IoLAosZjTSE
20)
https://vt.tiktok.com/ZSLgjW7cS/
21)
https://youtube.com/shorts/s2Ip7bW-Kt4?feature=share
🍄
世月이 차암 빠르네요~
버얼써 8月도 하순으로 고고하면서 귀뚜라미가 '친구하자'하네요.모쪼록 건강 잘 챙기세요☺
23년 8월 18일
14
21
Farmmorning
안녕하세요 장유경네집입니다.어제 친정식구중 사랑하는 가족이 와서 어제 저녁에 바베큐 파티하고 즐건시간 보냈답니다. 어제 벼수확은 생각보다 잘했는데 벼 나락이 크지 않아요. 오늘은 아침 해서 먹이고 반찬 몇가지 보내려고요.아침 맞이 합니다.신랑은 오늘도 일찍 나가네요.
22년 10월 22일
2
단호박 호박파리 방제약은 어떻게 하는지요?
21년 6월 25일
1
확실히 농작물은 관심과 사랑으로 키우는것 같아요
저도주말텃말을하지만 힘들고 애가타지만 ~~
힘을 내시고 파~~이팅하세요
23년 7월 23일
1
사과냉해예방 방제약은 언제쯤 실시하면 좋은지요
22년 4월 8일
1
오이노균병예방ㆍ방제약
21년 7월 16일
1
팜모닝회원 금년 추석은 사랑도 행복 도 풍성하고 보름달 처럼
모든 소원이 꼭이루지고 매일 매일 풍요롭고 건강하시길 기원드립니다
♥ 지금까지 경기에 13,400점을 더했어요!
23년 9월 29일
1
감자.고구마밭에 복합비료2.2KG판매합니다.
👉감자.고구마 복합비료(밑거름,웃거름 동시사용가능)입니다.
👉2.2kg (한포)당 대략 150~200평 시비할 수 있습니다.
👉질소10, 인산3, 가리5 및 미량요소(마그네슘,황,아연,망간,붕소),아인산, 유기물80%가 함유된 고품질 복합비료입니다.
👉2.2KG 한포가격: 10,000원(택배비 별도3,000원)
(※제주,도서산간 지역은 추가요금 붙습니다.)
👉밑거름으로 사용 가능하며, 가스발생이 없어 생육중간 웃거름으로 동시 사용가능합니다.
※사용방법:
1.감자,고구마 본밭 준비 시기에 퇴비,토양살충제 등과 함께 본제품을 시비한다.
2. 로타리작업 혹은 수작업으로 토양과 잘 섞이도록 경운한다.
3. 재배할 작물을 파종한다.
4. 재배기간동안 중간중간 웃거름용도로 시비한다.(심겨진 작물의 포기와 포기사이에 조금씩 시비)
🤳더 궁금하신 사항은 언제든지 문의부탁드립니다.
항상 저희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3년 3월 7일
6
Farmmorning
강한 태풍이 온다고하니 걱정입니다
다들 피해를 최소화 할수있도록
최선을 다해봅시다. 사랑해유~~^^~~
22년 9월 3일
시설하우스 부추녹병 방제 대책
장마시 방제방벞
21년 7월 6일
2
방제전출석합니다
22년 9월 15일
제가 교직생활을 35여년을 하던 중 가장 가슴아프고 힘들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1989년 4윌1일 만우절이었습니다.
교복과 두발 자율화 바람이 불어 학생들이 교복대신에 편한 복장과 바가지모양의 단발머리에서 퍼머를 제외한 자연스런 머리모양으로 학교생활을 하기 시작할 때입니다.
대부분이 청바지에 남방이나 티셔츠를 입고 학교생활을 했습니다.
1학년 신입생을 담임으로 배정받았습니다.
고등학교를 진학하는 학생들은 부푼 꿈을 안고 입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민주주의를 부르짖을 때라 자기소개를 마치고 학급실장을 직접선거의 방법에 따라서 실장선거를 했습니다.
그때는 학번이 키큰 순서대로 정했습니다.
복도에 한줄로 세워놓고 키순대로 학번을 정했습니다.
이런 방법이 키가 작은 학생들이 불이익을 당하며 인권문제다해서 성씨를 따라서 번호를 정했습니다.
그래서 김氏 성을 가진 학생들이 제일 앞번호가 됩니다.
진안여중을 졸업한 32번 김은경이라는 아이가 저희반 실장에 선출됐습니다.
실장을 하고 싶은 학생을 거수를 했고,
또 친구들의 추천을 통해서 실장후보들이 자기소개와 소견발표도 하였습니다.
쪽지에 뽑고 싶은 실장이름을 쓰게하고 걷어서 칠판에 후보들 이름에 바를정(正)자로 표기하면서 제일 많은 표를 얻는 아이가 실장이되고 차점자가 부실장이 되었습니다.
그 때만해도 반학생 정원이 60명이었습니다.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청바지와 단발머리에 무지개색 티셔츠를 즐겨 입었던 학생이었습니다.
진안여중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했습니다.
저희학교에 입학한 학생중에 상위권에 해당하는 연합고사 성적을 받은 학생이었습니다.
신입생이라 상담을 했습니다.
어머니께서 일찍 돌아가셔서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께서 언니와 은경이를 키우셨더군요.
아버지께서는 서울로 올라가셔서 새엄마랑 살고 계시다고 했습니다.
은경이가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곱게 한복을 입고 졸업생 대표로 졸업장을 받았더군요.
중학교 졸업식을 마치고,
"할머니께 앞으로 3년만 도와주시면 고등학교 졸업하고 꼭 은행에 입사해서 할머니를 평생 모시겠다"고 큰절을 올렸다고 은경이 이모님한테 들었습니다.
진안여중 선생님들께서도 은경이는 인문학교를 진학해서 대학에서 공부를 했으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었을텐데 하면서 많이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래서 중학교 담임선생님의 추천을 받아서 장학금을 받기로하고 제가 근무하던 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가정형편을 잘 아는 은경이는 실업학교를 택했고 저와 인연이 맺어졌습니다.
할머니께서 혼자 감당하기에 벅차서 은경이 이모님들과 같이 힘을 모아 남노송동에 골목안쪽에 있는 자그만 골방을 월세로 얻어서 친구랑 자취를 했습니다.
방문 앞 뚤방에 연탄 아궁이가 있었습니다.
은경이 언니는 군청에서 일하면서 전주여고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에 토요일에 수업을 받으러 나온다고 합니다.
언니는 지금같으면 업무보조라고 하는데 그때는 학교에 일하시는 소사아저씨같이 잡다한 심부름과 청소를 하면서 용돈을 벌어서 전주에 있는 방송통신고등학교에 매주 토요일에 수업을 받으러 진안에서 다니고 있었습니다.
토요일 종례시간에 모두들 조심해서 시골집에 잘 다녀오라고 당부를 했습니다.
그 때만해도 시골에서 전주로 나와서 자취를 하는 학생들이 절반이 넘었으니까요.
"은경이는 진안 할머니한테 안가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언니가 이번주는 방송통신고등학교 수업을 받으러 나오면서 김치를 가지고 온다고 모래내 시외버스 정류장에 가서 받으면 된다고 하더군요.
입학한지 한달밖에 안 되었지만 실장이기에 다를 아이들보다 많은 대화를 했습니다.
처음 한달은 신입생이라 준비하고 정리 할 일이 참 많았습니다.
어린아이답지 않게 조용하고 조금은 과묵한 성격이었습니다.
어릴적에 엄마를 잃어서인지 밝고 명랑한 그런 소녀는 아니었습니다.
늘 제일 먼저 등교해서 담임인 제자리를 청소도하고 공부도 열심히하는 학생이었습니다.
그 해 1989년 만우절은 일요일이었습니다.
일요일이라 일찍 아들을 데리고 목욕을 다녀왔습니다.
아침을 먹고 있는데 집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휴일 이른 아침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가 조금 의아했기도했고 시골에 부모님께서 계셔서 불안하기도 했습니다.
수화기 넘어로 어느 여자아이가 울먹이면서
"선생님 은경이가 죽었어요" 라고 은경이 중학교 선배가 전화를 한겁니다.
오늘이 만우절이라 장난치지 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이었습니다.
어제 저녁 밤 10시까지 같이 놀다가 헤어졌는데 아침에 주인 아주머니한테 연락을 받았답니다.
달려갔습니다.
방문을 여는 순간 퀘퀘한 냄새가 났습니다.
은경이가 하늘색 체육복을 입은 상태로 엎드려 있는데 이미 몸둥이가 싸늘하게 굳어있었습니다.
옆에 또다른 아이가 한명 더 있었습니다.
같은 중학교 친구인데 다른 곳에서 자취를 하면서 다른학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자취방에 언니가 와서 방이 좁아 은경이한테 놀러와서 자다가 변을 당한겁니다.
신고를 해서 경찰이 왔습니다.
경찰이 여러가지 창문이며 주변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타살 흔적은 발결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주인아주머니께서는 거의 실신한 상태로 지금까지 많은 학생들이 우리집에서 살았는데 연탄까스중독은 절대 아니라고 난리더군요.
어제 저녁 10시까지 놀다가 연탄불을 갈고 잤다고 했습니다.
그날 이후 몇일 동안 중앙뉴스와 지방뉴스에 연일 메인뉴스로 보도가 되었습니다.
대학병원 영안실로 옮겼습니다.
서울에 있는 은경이 아버지께서도 내려오시고,
할머니께서는 워낙 연로하셔서 장례식장에 오시지 못했습니다.
그 상황은 복잡하고 힘들었던 일이라 뭐라 글로 표현을 더 이상 못하겠습니다.
한줌 재로 변한 은경이를 한달밖에 다니지 못했지만 교정을 한바뀌 돌고 진안에 있는 엄마 옆에다 잘 보냈습니다.
몸도 불편하시면서 키운 손녀를 먼저 보낸 할머니댁에 위로를 드릴려고 목사님과 친한 친구들 몇명이서 함께 들렀습니다.
자식을 잃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하잖습니까?
진안까지 1시간 가까이 걸리는 차속에서 "큰 슬픔에 계실 은경이 할머니께 어떻게 무슨 말씀을 드려야할까?" 도저히 정답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마을 언덕위에 둥구나무 있는 쪽에 자그마한 함석으로 지붕을 이은 두칸짜리 홑집이 은경이네 집이었습니다.
방안에 몸이 많이 불편하셔서 힘드시게 앉아계시는 할머니께서 두손으로 저를 감싸주셨습니다.
언뜻 방문앞에 자그마한 상위에 전화기와 그 옆에 성경책과 찬송가가 놓여 있었습니다.
"우리 은경이는요? 하느님께서 더 좋은 곳으로 데려갔을 겁니다" 하시면서 도리어 저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아!
종교의 힘이 이런거구나!했습니다.
할머니께서 신앙의 믿음으로 버티셨던 것이었습니다.
사고가 난 3일후에 학교에 출근을 했는데 교무실 전화가 계속 울렸습니다.
저는 항상 출근이 제일 빨랐습니다.
아마 거의 1등으로 출근을 했지않나?싶습니다.
그래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 때만해도 시내 전학이 정말 어려웠습니다.
전주시내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지 못한 많은 학생들이 임실, 진안, 김제, 고창, 정읍, 멀리는 남원 인월고등학교까지 왕복 너댓시간을 버스를 몇 차례나 갈아타고 다니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그 학부모님들께서는 시내로 얼마나 전학을 시키고 싶었겠어요.
학부모 입장에서는 얼마나 애타셨겠어요!
수 많은 사람들이 멀리 통학을 하는 자식들을 시내로 전학을 시키고자 모든 인맥을 동원시키곤 했습니다.
전화를 받는 순간 "그 학교에 전학을 하고 싶다" 라는 문의 전화였습니다.
제가 답변을 했습니다.
"지금은 자리가 없습니다" 라고 말씀 드렸더니 학부형께서 "뉴스에 그 학교 학생 한명이 죽었다는데 왜 자리가 없느냐고 하느냐" 하면서 성질을 내는 겁니다.
왜 하필 제가 전화를 받았을까요?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아직 은경이 제적처리도 안했거든요.
그후로 수 많은 전화문의가 있었습니다.
학교측에서도 은경이 자리는 담임인 저한테 일임을 했습니다.
은경이를 잃은 슬픈 마음이 정말 컸으니까요.
다른 선생님들께서 지인들한테 부탁을 왜 안 받았겠어요?
그러나 선생님들께서 많이 슬퍼하는 제마음을 알고 계시기에 전학을 받으라고 선뜻 말씀을 못하셨습니다.
은경이만한 아이를 저는 저희반 아이로 채우고 싶었습니다.
제적처리를 하고난 어느 토요일 하교길에 시내 기전여고 뺏지를 목에 건 학생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저한테 인사를 하더니 대학을 진학할려고 인문학교로 입학했는데,
아버지께서 돌아가셔서 가정형편이 어려워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잡아서 엄마를 도와드리고 싶다면서 저희학교로 전학을 오고싶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제 나름대로 아직 정리를 못해서 대답을 못해주었습니다.
기회를 주시면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되겠다고 하면서 인사를 하고 돌아갔습니다.
그 학생을 돌려보내고 생각을 했습니다.
참 대단한 아이구나?싶었습니다.
어린 학생이 진로를 바꾸면서 직접 학교로 찾아온 용기와 그 마음이 대단했습니다.
바로 다음주 월요일에 그 아이 출신 중학교에 전화를 했습니다.
김제군에 있는 금산중학교를 졸업했다고 했거든요.
중학교 3학년 때 그 아이 담임선생님한테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고 아이에 대한 몇가지를 물어 보았습니다.
연합고사도 200점 만점에 170점 정도을 받은 우수한 학생이고 반듯한 학생이라고 칭찬을 하시더군요.
기전여고 그 아이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대학을 진학해서 신문방송학과를 선택해 공부해서 언론인이 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는 학생이라고 저한테 전학을 받아주시면 감사하겠다고 하시더군요.
그리하여 새로운 아이를 전학받아서 처음은 힘들었지만 나머지 학기를 행복하게 보낸 것 같았습니다.
전학한 첫날 반아이들한테 인사를 시키고 자기소개를 시켰는데,
얼마나 똘망지게 자기소개를 하는지?
다를 아이들이 꼼짝도 못하더군요.
기득권이라 할까요?
그래도 반아이들이 전학온 아이한테 지기싫어하는 오기? 그런 뭐가 있잖아요?
전학온 미정이는 활발하고 명랑한 아이었습니다.
인문학교를 다녔던 아이라 기능과목이 부족했습니다.
기능과목을 운영하는 학원에 수강을 부탁해서 빠른 시간에 실업학교 학과에 잘 적응하면서 반 아이들과 학교생활을 잘 하고 있었습니다.
1학년을 종업식날 저희반으로 전학을 온 아이가 까만 비닐봉지로 싸맨 소주병을 한병 들고 교무실로 찾아왔습니다.
어머니께서 농사지으신 거라고 선생님 갔다드리라고 주셨다면서 들기름을 한병 보내주셨습니다.
병뚜껑을 열고 고소한 들기름 냄새를 선생님들 코에 대면서 자랑을 했습니다.
참으로 슬픈 이야기였습니다.
남의 일이라 어느덧 잊혀져가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연탄까스 사고로 목숨을 잃은 일이 가끔씩 일어나곤 했습니다.
처음 연탄을 갈고나면 매캐한 냄새와 연탄까스냄새가 많이 올라옵니다.
골목에 함석으로 된 연탄 아궁이 굴뚝에서 나온 연탄까스 냄새를 맏아보신 적 있으시죠?
하루 두번씩 갈아야 따뜻하게 난방을했고,
그 아궁이에 양은솥으로 밥을 짖고 국도 끓여먹었죠.
연탄을 갈때는 공기구멍을 전부 열었다가 새파랗게 불이 붙으면 공기구멍을 조금만 열어놓곤 했습니다.
연탄에 불이 붙어 파란 불빛이나고 연소가되면 가스피해는 없답니다.
오늘이 만우절이라 더 생각이 납니다.
신학기라 학생들 얼굴을 익히지 못할때라 아이들이 서로 교실을 바꿔가면서 선생님들을 놀리기도 했습니다.
35년이 지난 일이지만 불현듯 생각나서 그때 슬픔을 되새겨봅니다.
지금 그아이가 살았다면 50대 중년의 나눔의 봉사를 하는 훌륭한 여인이 되었을거라고 생각됩니다.
4월 첫날 슬픈 이야기라 많이 망설여집니다.
농부님들은 땅살리기를 하셔야 할 때입니다.
옛날에는 두엄간에 쌓아 놓았던 퇴비를 논밭에 뿌렸습니다.
겨우내 부엌에서 긁어낸 재도 밭에 짊어지고 가서 땅에 뿌리고,
돼지막이나 소막에 깔아준 짚을 마구간을 치면서 나온 퇴비와 썩여서 논밭에 뿌리고 갈아엎어 땅을 살렸습니다.
요즘 화학비료를 주고 기른 작물보다 생산량은 못미치겠지만 모든면에서 우수한 작물이었겠다!싶습니다.
올 봄엔 잦은 비와 낮은 기온으로 과수농가에 착과가 즐어드는 피해가 염려스럽습니다.
또 벛꽃없는 축제가 곳곳에서 열리는 해프닝이 일어나네요.
우리나라 벚꽃축제의 대표인 진해군항제가 축제가 끌날 때쯤 일주일 늦게 벚꽃이 만개했다고 합니다.
벛꽃 꽃망울도 탐스럽지않고 숫없는 머리모냥처럼 헤성헤성하네요.
밭을 갈고 1년 내 먹거리를 심고 씨앗을 뿌려야하는데 땅이 질퍽거려서 밭갈이도 못하고 있습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이번 4월도 솟아나는 나무들 새순처럼 늘 기쁨이 솟아나는 달 되시기를 바랍니다.
3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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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mmorning
고추농사 만평을 짓고있는 부자농부입니다
올해는 고추의 수난시대네요
그래도 영차영차 화이팅을 해봅니다
모든 농부님들도 힘내셔요
사랑합니다~♡
22년 8월 25일
탄저병방제약은. 어떤약이제일 좋은지요?
21년 9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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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모닝 지원금을 받게되면, 이번 비로 인해 고추. 들깨. 참깨. 토마토 등이
병충해가 극심해서 방제약을 구해서
작년수준의 수확을 달성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22년 8월 12일
하우스 청양고추입니다 보일러를 가동하니 따뜻해서인지 점점 퍼지는중입니다ㆍ약을 2두번 3일간격 치고 기다려봅니다ㆍ개선되지 않을시 좋은 방제약 추천바랍니다
21년 12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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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과 배려~
작년한해는 가믐과 무더위와 비홍수로 눈으로 바쁘게 갔다.
대자연의 웅장함에 우리가 흘린땀은 하늘이 주신 선물일까?
세모 사각형 타원형 반달 초승달 상현달처럼 생긴 대지위에 씨앗을 뿌리고 풀매고 물주고 노심초사 가꾸웠는데 남는것은 허리아프고 다리아프다
하지만 또 희망을 갖고 계획한다 올해는 하늘로 솓구치는 용띠해다고 하니 나도 하늘높이 날아보자
감자 고추 옥수수 참깨 들깨 잘가꾸워 보자고 내심 약속한다 ~아버님께서는 눈처럼 게으는게 없다 하셨다
눈으로 보고 언제 저걸 다할까 한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지혜는 끈기를 대동한다 하면된다 이루워진다
오늘도 들깨를 심을때 온갖 산새들이 노래하고 춤추고 떠들면서 심고가면 뒤에서 주워먹어서 그큰 밭에 단 세포가 올라왔다
올해도 그새들과 또 새끼 친구들 데리고 오겠지 내가 참깨 들깨 심기을 바라고 ~~~올해는 지혜를 모아서
내가 속여 보자 이 새머리들을~~처참하게 부서져 버린 작년 희망과 감사와 사랑의 올해가 될것입니다
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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