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0년대 우리들의 공감시대 3 -
우리세대는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를 다녔습니다. 
제가 다녔던 국민학교는 자갈길을 십리를 걸어서 다녔습니다.
비포장된 자갈밭 십리길을 고무신을 신고 등하교를 했습니다.
그래서 체구가 약하거나 여자아이들은 국민학교 입학 년령인 9살에 입학을 하지않고 2-3년 후에 입학을해서 국민학교 동창이 친구의 형과 누나뻘이 있습니다.
국민학교 화단에는 어느 학교나 똑같이 수군장군인 이순신장군 동상과 한글을 창조하신 세종대왕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친 반공소년 이승복어린이 동상이 있었습니다. 
또 책 읽은 소녀상의 석고상과 유관순열사의 동상도 있었다.
학교에서 대변을 성냥갑에 담아오기(회충 검사용), 나락모가지 주워오기, 쥐꼬리 잘라오기, 못자리 나방 잡아서 성냥갑에 넣어오기, 솔방울 가져오기도 했고, 겨울철 난로에 땔깜으로 쓸 장작도 가져오기, 여름방학 마치고 등교할 때 퇴비 가져오기, 자그마한 손으로 봄 식목일엔 나무를 심고, 여름에는 신작로에 동네마다 구역을 정해 코스모스를 심어 가을에는 길가에 자동차가 지나가면 뿌연 먼지속에 한들한들 이쁜 코스모스꽃을 보았으며 학교내에서는 통일동산을 꾸몄습니다. 
우리는 돌멩이 같이 입에서 깨지지않고 녹지않아 단맛을 오랫동안 맛볼 수 있어 이름 붙여진 독사탕, 말랑말랑한 젤리와 유과, 라면땅, 아폴로, 크라운산도 등과 같은 과자와 쫀드기, 달고나, 띠기 같은 불량식품을 먹고 자랐으며 동네마다 울려 퍼졌던 새마을노래를 기억합니다. 
우리는 새마을운동이란 것에 익숙해서 어김없이 아침 동틀 무렵 동네 가운데 있는 높은 정기나무에 매달린 주둥이가 커다란 나팔모양의 확성기에서 울려퍼지는 새마을 노래를 듣고 자랐습니다. 
근면, 자조, 협동의 새마을 정신을 바탕으로 생활환경 개선과 소득증대를 목적으로 한한 범국민적인 지역사회개발 운동을 시작하면서 1972년 6월 20일 박정희대통령이 직접 작사한 새마을 노래가 대도레코드회사가 음반을 만들었다.
1절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 마을을 가꾸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2절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
푸른 동산 만들어 알뜰살뜰 다듬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3절
서로서로 도와서 땀 흘려서 일하고
소득증대 힘써서 부자마을 만드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4절
우리 모두 굳세게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워서 새 조국을 만드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이 새마을 노래는 전국적으로 군대에서 기상나팔같이 새벽이면 울려 퍼졌습니다.
나무울타리 담장과 흙담장을 없애고 초가지붕을 기와로 이양하고 울통불통한 골목길을 자동차가 다닐 수 있도록 반듯하게 넓혔다.
파란색 새마을 모자는 필수품이었다.
지금도 베트남 등 동남아 신흥국가에서는 우리나라 새마을운동을 모델로 우리나라 지도자들을 초청해서 교육을 시키고 있습니다.
제 친구가 농촌지도소를 퇴직하고 베트남에서 연수원장을 맡아서 베트남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새마을교육을 시키고 있어서 국위를 선양하고 있습니다.
새벽 6시에 기상하고 아침체조와 구보를 시작으로 새마을교육을 모델로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교복을 입고 초, 중, 고등학교를 다녔고 고등학교 때는 학과목에 교련과목이 있어서 교련복으로 갈아입고 목검으로 제식훈련과 총검술 및 구급법을 익혔고 운동장에서 열병식을 했습니다.
교련복은 군복과 같았습니다.
교련모와 요대랑 각반도 찼습니다.
연대장, 대대장, 중대장, 소대장, 향도라는 완장을 찼다.
국민학교때도 교복을 입었고,
모자에 학교를 표시하는 교포를 달았으며 웃도리에도 학교를 표시하는 단추를 달았습니다.
바지는 딱 달라붙는 쫄바지에서 일자바지로 다시 나팔바지로 유행을 탔고 중.고등학교 때는 학생주임 선생님께서 등교길에 복장지도를 하면서 나팔바지를 입은 학생들을 혼내키기도 했다.
카라 한쪽에는 교포를 한쪽에는 학년을 표시하는 아라비아숫자의 뺏지를 달았습니다.
시내에는 머리가 긴 장발단속도 있었고,
무릎위로 너무 짧은 미니스커트단속도 있었다.
밤 12시가되면 싸이렌이 울리고 이 때부터 야간통행금지 시간이어서 순찰중인 경찰에 붙잡히면 파출소로 연행되어 통행금지가 해제되는 4시까지 보내야했다.
아마 치안유지를 목적으로 통행금지라는 제도가 있었던 것 같다.
야간에 통행이 필요한 사람은 경찰서에서 야간통행증이라는 증명서를 발급받아야했다.
그러다 1982년에 해제되었다.
또 우리는 운동회 때 "다우다"라는 나이론천으로 만든 백군은 하얀 체육복으로 청군은 파란 체육복을 만들어 입었고 곤봉, 마스게임, 단체무용, 줄달리기, 방울치기, 박터트리기 등 수없이 연습해서 시원한 가을에 접어든 10월 초에 지역잔치인 운동회를 기억합니다. 
체육복은 집에서 어머니께서 재봉틀로 박음질하시고 고무줄을 넣어서 만들어 주셨다.
달리기 계주는 키순대로 7명씩 조를 짜서 키가 작은아이들부터 달리기를했다.
저는 늘 맨 마지막조로 편성되었다.
맨손달리기, 장애물을 통과하는 달리기, 쪽지를 주어서 쪽지에 적힌대로 사람을 찾아서 하는 달리기 등 세가지 달리기가 있었다.
쪽지에 "안경쓴 사람"이라고 적혀 있으면 안경쓴 사람을 찾아 손잡고 달리기를 했다.
"교장 선생님"이라고 적혀있으면 교장선생님을 모시고 달리기를 하면 된다.
그런데 교장선생님께서는 꼭 넼타이를 매시고 구두를 신고 양복을 입고계셨다.
그래서 빨리 뛰시지를 못했다.
그야말로 복불복이었다.
운동회의 하일라이트는 청백계주였다.
마을단위로 계주도 있었다.
우리는 하교길에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왼쪽가슴에 손을 얹고 가던 길을 멈춰서서 태극기가 다 내려질 때까지 엄숙한 자세로 있어야하는 국기 하강식을 했습니다.
어느날 박정희대통령이 지나가는데 군인 한명이 국기하강식을 그냥 지나친 것을 보고 그 부대에 보고하여 영창을 보냈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걱정을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을 하지 않는다.
태어나서 부모한테 빚지고
살면서 은행에 빚지고
죽을 때는 자식한테 빚지고
평생 빚만지고 사는게 인생인 것 같습니다.
4월 14일
13
7
첫 사 랑
(신춘문예 최우수작)
첫사랑이 그리운 아침이다. 밤새 내리는 빗소리에 잠을 설쳤는지 주방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리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다소 이른 시간인데도 아내는 벌써 일어나 아침밥을 짓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는지 오늘따라 밥 짓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애들 둘이 결혼을 해 다 나가고 우리 부부만 살다보니 나는 안방에서 자고 아내는 거실에서 잔다. 각자의 곳에서 좋아하는 텔레비전 프로를 누워서 보다가 따로따로 잠들고 깨는 시간도 다르다.
우리 부부는 밥을 먹는데도 식탁을 마다하고 거실에서 가부좌를 틀고 텔레비전을 보면서 먹는다. 아내도 나도 말 없이 밥만 먹다가 가끔씩 고개를 들어 텔레비전에 나온 사람들의 얼굴을 본다. 늘그막이니 아내와 별로 할 말도 없기에 방송을 봐가면서 밥을 먹으니 서먹하지 않아 좋다.
마침 방송에서 노인들을 상대로 하는 ‘늘 푸른 인생’이란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었다.
키가 작은 유명한 사회자가 나와 시골에 사는 칠 십 된 노인 부부에게 물었다.
“다시 태어나면 지금의 아내와 또 결혼 할 거예요?”
남편이 잠깐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래야지. 다른 여자라고 별수 있겠어. 그래도 살아본 여자가 좋지.”
사회자가 반대로 아내에게 물었다.
“다시 태어나면 지금의 남편과 다시 결혼할 거예요?”
그러자 아내는 사회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 손을 내저으며 경악을 한다. 절대로 지금의 남편과는 결혼을 안 한단다.
사회자가 왜 그러냐고 묻자 대답이 걸작이다. 어디 가서 어떤 놈을 만나도 지금의 남편보다는 나을 것 같다는 것이다. 방청객 모두가 배꼽을 쥐고 웃었다.
나는 밥을 먹는 아내를 슬쩍 곁눈질로 보다가 이내 물었다.
“당신은 어때?”
“나도 저 할머니와 똑 같아.”
아내는 주저하지도 않고 단숨에 대답했다.
혹시나 했던 나는 아내의 말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먹던 수저를 놓으며 언성을 높였다.
“내가 살아가며 뭘 그리 잘못을 했다고? 저 할머니처럼 다시 태어나면 나를 개비한다고?바꿔봤자 별수 없어. 고르고 고르다 뉘 고르고 말테니까.”
벌떡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가자 아내가 뒤에 대고 구시렁거렸다.
“그깟 농담도 못 받아들이고 꼭 밴댕이 소갈딱지 같으니라고....! "
농담이라는 말이 살짝 들렸으나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안방에서 아내의 진심이 뭔지를 생각하다 출근 준비를 마치고 나오면서 힐끗 아내를 쳐다봤다. 눈이 마주치자 아내는 예전과 별 다름이 없이 우산을 챙겨주었다.
오늘이 아내 생일이라는 걸 미리부터 알고는 있었다. 그런데 그 놈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다 망쳐놓은 것이다. 저녁에 외식을 하자고 하려다 아까 한 말이 괘씸해 그냥 나왔다
학교에서 수업이 끝난 후 애들을 돌려보내고 책상에 혼자 앉아 있자니 하루 종일 내리는 비에 몸이 선득거렸다. 이제 올해만 지나면 평생을 다니던 직장에서 정년을 맞는다. 서글픈 마음에 커피 한 잔을 타 마시며 빗줄기를 바라보고 있자니 옛 추억이 활동사진마냥 펼쳐졌다.
진한 커피향이 코끝에 와 앉으니 마음까지 차분해졌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아내 말고 다른 여자는 알 틈도 없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한마디로 첫사랑과 평생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아내와 나는 똑같이 교육도시라 불리는 공주 금강 가에서 살았으나 서로의 동네는 좀 떨어져 있었다. 우리가 만날 당시 나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고 아내는 중학교 3학년이었지만 처음부터 서로 아는 사이는 아니었다.
72년 6월 6일 현충일 날이었다. 공휴일이기에 집에서 예비고사 공부를 하다가 심난한 마음에 금강가를 걷고 있었다.
그 때만해도 공주의 금강은 이름 그대로 비단을 펼쳐놓은 듯 물이 맑고 아름다운 강이었다. 그 해에는 날이 가물었기에 물이 강 전체로 퍼져 흐르는 것이 아니라 강가 한쪽으로 몰려 흐르고 있었다. 그러니 강 가운데는 넓게 모래톱이 생겼고 강가로 흐르는 물은 깊어 사람이 건너 모래톱에 갈 수는 없었다.
‘공부하기 지겨운데 저 백사장에 발자국이라도 찍으며 걸어봤으면 좋겠다.’
예나 지금이나 고 3은 공부에 지쳐 있었다. 그래서 잠시 아름다운 마음을 먹으며 강가를 걷고 있을 때였다.
“누구 없어요? 사람 좀 살려주세요.”
강가 바위에서 빨래를 하던 아주머니가 목이 터져라 외치고 있었다. 내가 언덕 밑으로 달려 내려가 보니 물속에 사람 하나가 빠져 몇 번인가를 솟구치더니 다시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여자의 산발된 머리가 맑은 물속에서 훤히 보였다.
순간 두려움과 함께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물에 빠진 사람 건지려고 들어갔다가는 둘이 같이 죽는다.’
금강이라는 물가에 살았기에 어려서부터 엄마가 주의를 주려고 늘 하던 말이었다. 그렇다고 수영을 할 줄 아는 내가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망설일 수는 없었다.
더구나 옆에서 애타는 엄마의 절규에 못 이겨 나는 엉겁결에 물 속으로 뛰어들었지만 이내 후회하고 말았다.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더니, 나를 붙잡고 늘어지는 여자애의 힘을 도저히 이겨낼 수가 없었다.
이제는 여자애를 살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살아야 했다. 내가 살기 위해 여자애를 떼어내야 했는데 도저히 떼어낼 수가 없었다. 하는 수없이 그녀를 끌고 헤엄쳐간 곳이 바로 강 가운데에 드러난 모래톱이었다.
뛰어 들어간 쪽으로는 물살이 너무 세 도저히 나올 수가 없었다. 모래톱으로 나간 나는 너무 지쳤기에 한참을 백사장에 누워 있었다.
그러나 반대편에서 지르는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옆을 보니 여자애가 누워있었다. 하얀 블라우스는 물에 젖어 속살이 훤히 비쳤으나 여자애는 정신을 잃고 있었다.
“학생, 가슴을 누르고 안 되면 입을 맞춰 인공호흡이라도 좀 시켜 봐.”
건너편에서 외치는 어른들의 질책에 못 이겨 여자애의 봉긋한 가슴에 손을 대보니 왠지 내 가슴이 먼저 뛰었다. 가슴을 몇 번 누르다 이번엔 입을 맞추고 숨을 몰아넣었다.
처음 시작할 때만 묘한 기분이 들었지, 여러 번 가슴을 누르고 입을 맞추다보니 처음의 기분은 온데 간데 없고 오직 사람을 살려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한참만에 여자애가 눈을 떴다. 그리고는 창피한지 본능적으로 풀어진 블라우스를 여미며 수줍어했다.
나는 그녀를 데리고 건너편으로 가기 위해서는 강 가운데 백사장을 걸어 아래쪽으로 한참을 내려와야 했다. 아래쪽은 강물이 넓게 흘러 정강이에 닿을 정도였으니까 쉽게 건널 수 있었다.
조금 전 생각대로 하얀 백사장에 둘만의 발자국이 찍혔다.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닌 듯했다.
하늘에는 하얀 백로 한 쌍이 날며 내릴 곳을 찾고 있었다. 주변에는 사람소리 하나 없이 고요했다. 여자애는 말없이 내 뒤를 따랐다.
“너 몇 학년이니?”
“중 3이에요.”
고 3이었던 내가 그날 중 3이었던 그 애와 한 말은 그것이 전부였다.
다만 강 한가운데 드러난 모래톱에 둘만의 발자국을 찍으며 힐끔힐끔 그 애를 보니 조금 전 죽음을 눈앞에 두었던 때와는 딴판으로 예뻤다.
그런 일이 있은 후 학교에 갈 때면 누군가 나를 지켜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이 여러 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와 나는 눈이 마주쳤다.
“너는 그 때 금강에서?”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이 예비고사날이잖아요. 시험 잘 보세요.”
그녀는 찹쌀떡을 건네주고 총총히 사라졌다. 그녀의 응원 덕분이었는지 예비고사에 합격해 나는 대학생이 되었고 그녀는 고 1이 되어 있었다.
그녀의 고등학교와 우리 대학은 같은 동네에 있었으니 우리는 오고가면서 가끔씩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중 3일 때보다 많이 성숙해 있었고 더 예뻐진 것 같았다.
그렇게 오다가다 한 번씩 만나다보니 언젠가부터 그녀가 내 마음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한번 만나자고 해볼까? 그래도 대학생이 어찌 고등학생을…….’
대학생이 고등학생과 어울린다는 건 어쩐지 격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망설이다가 시간만 지나고 말았다. 나는 그렇게 소망과 현실의 괴리를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리고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충남의 시골로 발령이 나 3년의 세월이 흘렀다.
3월의 첫 출근날 신임교사의 인사가 있었다.
이제 겨우 교사 3년차인 나는 신규 발령을 받아 온 여선생님의 예쁜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공식적인 인사가 끝나고 오후에 그녀가 우리 교실을 찾았다.
“선생님 댁이 공주시지요?”
“그걸 어떻게 알아요?”
“저 모르시겠어요? 미선인데요.”
나는 처음 본 여자이고 처음 들어본 이름인데 그녀는 나를 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자신을 모른다고 하자 여간 실망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자 그녀는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었다. 중학교 3학년 때 금강에서 빨래를 하다 물에 빠진 자신을 건져준 남학생이 있었다고 했다.
소녀는 자신을 살려준 그 남학생이 그리 믿음직스러울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 후 그녀는 그 남학생을 한 번이라도 보고싶어 학교 가는 길목에서 기다린 적이 수도 없이 많았다고 했다.
어쩌다 그 남학생을 멀리서라도 보는 날이면 마치 자신의 몸이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지금이야 10살이 넘어도 부부가 되지만 당시 중 3과 고 3의 간격은 너무나 컸다고 했다. 그러니 자신은 감히 그 남학생 앞에 얼씬거릴 수가 없었다고 했다.
한 해가 지나자 차이는 더 벌어져 남학생은 공주교육대학의 대학생이 되었고 자신은 겨우 고 1이라서 그냥 애만 태우며 남학생을 지켜볼 뿐이었다고 했다.
친구들이 다른 고등학교 남학생 이야기를 하며 수다를 떨어도 자신의 귀에는 한마디도 들리지 않았단다. 오직 자신을 살려준 그 남학생 생각뿐이었단다.
그렇게 혼자 짝사랑으로 애를 태우며 남학생을 지켜본 지 얼마 후 남학생은 훌쩍 공주를 떠났다고 했다.
2년제였던 공주교육대학을 졸업한 후 발령을 받아 서산의 어느 초등학교에 선생님으로 근무한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 남학생을 만나려면 자신도 공주교대에 입학을 해야 했다고 생각했단다. 그래서 죽어라고 공부를 했단다.
결과 공주교대에 입학했고 주위의 친구들이 미팅이다, 연애다 희희낙락해도 자신의 마음은 오로지 한 곳에 꽂혀 있었다고 했다.
비록 짝사랑을 하는 처지였으나 사랑하는 남자를 두고 다른 남자를 만난다는 것은 불결하다고 생각한 것이 바로 자신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운명이란 참 묘한 것이라고 했다.
자신이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초임으로 발령을 받아 부임한 곳이 바로 여기이고 그곳에는 첫사랑인 내가 있었다는 것이다.
“아니 그럼 그 때 중 3이었던 학생이 바로 선생님?”
풋풋한 중학교 때 얼굴과 성인이 되어 화장품으로 덧칠해 놓은 얼굴은 딴판이었으니 알아 볼 수 없었다.
예전에 이름을 묻지도 않았으니 당연히 이름도 몰랐었다. 또 대학 1학년과 고 1의 간격이 자랄 때는 무척 컸었다. 그러나 어른이 되자 3년의 간격은 그깟 것이었다.
‘물에 빠진 사람 건지려고 물에 들어가면 같이 죽는다.’
엄마 말씀 또한 맞는 말이었다.
나는 물에 빠져 죽기 살기로 매달리던 그녀에 코가 꿰어 40여 년째 같이 죽고(?) 있으니 어른들 말씀 새겨들어야 하겠다.
추억의 실타래를 다 걷고 나자 결혼 당시 아름답던 미선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수화기를 들었다.
“오늘이 당신 생일이잖아. 어디 분위기 있는 곳에 가서 둘이 저녁이나 먹자고!”
식당에 나타난 아내의 블라우스 한쪽이 다 젖어 속살이 비쳤다.
“예전 물에 빠졌을 때처럼 섹시한데?”
그러자 아내가 눈을 하얗게 흘기며 환갑이 넘어 주책을 떤다고 핀잔을 했다.
“애들이 올 때마다 우산을 다 가져가서 우산살이 2개나 부러진 것을 쓰고 와서 그래요.”
우리는 저녁을 맛있게 먹고 밖으로 나와 우산을 찾았다.
“누가 내 우산을 바꿔갔네.”
아내가 식당 주인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자, 손님도 다 가고 없는데 그냥 남은 것을 쓰고 가라고 했다.
그러자 아내는 뛰면서 좋아했다.
“앗싸. 새 우산으로 바꾸겠구나.”
식당을 나온 아내가 우산을 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아내가 바꿔온 우산은 살이 거의 다 부러져 한쪽으로 완전히 처지는 것이었다.
도저히 쓸 수가 없었다. 아내는 화를 내며 우산을 땅바닥에 내 팽개쳤다.
“조금 전 내 우산은 그래도 살이 2개밖에 안 부러졌는데...”
아내는 발을 동동 굴렀다.
“아니, 더 좋은 우산으로 바꿨다고 입이 찢어지더니, 그것 봐! 바꾸면 더 좋을 줄 알았지? 결국에는 뉘를 고르잖아. 그러니까 첫사랑을 믿고 내세에도 그냥 나랑 결혼해. 텔레비전에 출연했던 할아버지 말처럼. 그래도 살아본 놈이 더 낫지 않을까?”
나의 끊임없는 잔소리에 머쓱해진 아내는 하는 수 없이 내 우산 속으로 기어들어오더니 나를 꽉 잡았다.
예전 물속에서 나를 놓으면 죽는다는 듯 붙잡고 매달리듯이...
나는 소녀를 안고 백사장으로 기어오르듯 아내를 꼭 껴안았다.
몇번을 읽어도 가슴 따뜻한 얘기입니다.
잘 익은 인생을 표현하여 독자 모두가 소소한 행복을 공유하기를 바라는 문학작품으로 널리 소개드립니다...♡
2월 17일
21
13
농사나 짓고 살지!
농촌 출신들이 도시생활이 힘들 때마다 무심코 내뱉은 말이죠!
고향에 내려와 10년간 농협인으로 사명을 다한 후 부모님께서 남기신 농지와 새로구입한 농지에 벼농사와 여름드릅 그리고 스마트팜시설에 송화버섯을 재배하면서 이 말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첫째, 농사에 빠지면 남는 시간이 없다.
둘째, 눈만 뜨면 일이 생기고 일이 보인다.
셋째, 농업경영비(원가)에 대한 부담이 크다.
넷째, 자연에 의존해야만 하는 노지농사에 대한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
다섯째, 농산물 판로개척과 제값 받기가 어렵다.
기타 등등의 내용을 열거하려면 끝이 없을 것 같지만 현재 느끼고 있는 것은 이렇습니다.
요즘 日常을 적어 봅니다.
폭염을 피해 논 일을 하다가 저녁밥을 먹고나면 9시에서 9시반이 됩니다.
피로에 지친 몸이 편안함을 찾습니다. 휴대폰도 뒤로하고 무료하게 거실쇼파에 앉자 TV를 보면서 간단한 운동을 합니다.
그리고 1시경에 잠자리에...
평일 아침에는 서울에서 직장다니는 아들과 딸 모닝콜을 5시반과 6시 10분에, 이를 시작으로 꺼꾸리에 메달려 짧은 시간 스트레칭을 하고 스마트팜시설에서 송화버섯 솎기작업과 수확을, 7시 50분 아내가 출근하고 나면 버섯된장국에 밥 한술 말아먹고 벼와 드릅밭을 둘러보러 갑니다.
농촌현장에는 늘 새로운 일거리가 보입니다.
오후에 다시 송화버섯 핀솎기와 수확 그리고 판로를 찾기 위해 고민하는데
정성을 다해 관리하고 수확한 좋은 버섯을 제때에 판매하지 못하면 애가 탑니다.
오후 6시경 햇빛이 덜할 때 다시 논을 둘러보고
생수가 터진 곳에 또 삽질로 보수를 합니다.
이런 일상이 농촌에서의 삶!
그래서 농사는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님을 새삼 느끼고 선배 농업인들의 고단한 삶에 경의를 표합니다.
23년 8월 7일
20
13
Farmmorning
오늘은 세종시국립수목원 에서 지역상생사업의 일환으로 수목원 식재식물 납품업체 대상으로 2023년 사업설명회가 있어 참여하고 왔습니다.
100여 농가에서 참여하여 성황리에 마치고 왔네요.
2023년 세종시 정원가든쇼 개최 일정과 사업. 행사에관한 설명회도 동시에 이루어 졌습니다
나날이 정원산업이 국민들 생활속으로 깊히 파고드는 현실이 다가옴 으로 농가 입장에서는 사전 준비하여 미래산업에 대비 해야할듯 합니다
교육 수강생 모집
모집분야:
#종자육묘전문관리사
#약용작물재배관리사
#정원설계사
#도시농업전문인력양성과정 2기 3월4일(토) 개강
23년 1월 30일
3
Farmmorning
임실에서 땅두릅 전문
재배합니다ㆍ
뿌리는 한약재 독활로 판매 ㆍ
두릅순 판매가능ㆍ
5만여평ㆍ
척박한땅 휴경지 임야 그늘진곳 잘자람
물을 안줌ㆍ
동 물 피해 없음ㆍ
풀을 이김ㆍ
농약 안함ㆍ병충해 없음
농업 경영체 등록 가능
장기간 재배 이용 가능ㆍ
추위에 아주 강한 내한성 작물
재배문의
010 7668 3929
종자업등록
생산판매 신고 ㆍ
23년 3월 4일
4
5
Farmmorning
🌶️ “고추건조” 온도, 방법에 따라 품질이 달라져요.
팜이웃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고추 건조 방법의 정석과 주의해야할 점을 가져왔어요.
고추는 말리는 온도와 시간에 따라 품질이 크게 좌우되는 까다로운 작물인데요, 🌡️🕛
아래 글과 그림을 확인하고 팜이웃님들이 애용하는 건조방법과, 나만의 노하우를 댓글로 남겨주세요!
1️⃣열풍건조
- 건조기의 열풍을 이용하여 단시간동안 많은 양의 고추를 건조할 수 있는 방법
- 태양초 건조에비해 온도와 시간조절이 까다롭지만, 희나리(퇴색)와 썩는 고추가 적다는 것이 장점
- 고추의 붉은 색소인 캡산틴 함량이 천일건조 고추보다 높으므로, 고춧가루를를 목적으로 건조할 때는 반으로 잘라 60℃에서 건조하는 것이 좋음
⚠️주의사항 - 60℃ 이상에서 지속적으로 건조하면 캡산틴이 파괴되어 검은색을 띨 수 있음
2️⃣하우스건조
- 하우스 내부에서 햇볕으로 고추를 말리는 방법
- 햇볕을 이용한 건조법이고 천일건조에 비해 오염 위험이 적다는 것이 장점이지만, 실내 건조인만큼 습도 조절이 중요
⚠️주의사항 - 건조장 출입시 흙 등이 내부로 들어오지 않게 주의하고, 필요시 제습하여 내부를 건조하게 유지
3️⃣천일건조
- 농촌에서 가마니나 멍석 또는 지붕 위에 널어 햇볕에 직접 건조하는 방법
- 햇볕을 이용한 태양초 건조법이지만, 고추가 고르게 햇볕을 받도록 수시로 뒤집어주는 등 잔손질 필요
⚠️주의사항 - 건조과정에서 오염되기 쉬운 방법이므로 위생에 각별히 신경써야 함
📺 태양초 고추 말리는 법은 “행주마을”님의 영상을 참고해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eZu5s6uYf8Q
📺 건조기로 고추 말리는 법은 “블루베리 레드향 솔림농원”님의 영상을 참고해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rzPYX-6Z7fs
※본 콘텐츠는 농촌진흥청의 [고추-농업기술길잡이] 내용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9월 29일
12
83
Farmmorning
지난 2023년
팜모닝에 들락 거리다
보니 조금씩 친근감도
생기고 새로운것도
알게되고 여러
상품성도 엿보고 농자재정보 농산물판매
중계 역할 팜모닝님께
감사드리며 더 가까이
해서 새해 더 새롭게
열심히 출석 하고 농업의 선배님들의 글들 열심히 익히고 배우럽니다
농부님들 2024년 새해 건강하게 무탈하시고 풍년으로 약속해요
1월 1일
6
6







❤️💙🖤💚
지난해
암으로 세상을 떠난
엄마를 그리워 하며 당시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쓴 한 편의 시가
뒤늦게 알려져
잔잔한 울림을 주고 있다. 
주인공은 올해 전북 부안여중 신입생인 이슬 (13) 양. 이양은 지난 해 2학기 연필로 쓴 시 로 
전북도교육청이 주최한 2016년 글쓰기
너도나도 공모 전에서 동시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 
전북교육청이
가정의 달을 맞아
지난 4일 도교육청 블로그에 
이 시를 소개하면서 알려졌다.
당시 심사위원을 맡았던 임미성
익산성당초등교 교감은
“동시를 처음 읽었을 때 정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심사위원 세 명이 작품을 고를 때
만장일치로
가장 좋은 작품 으로 뽑았다. 
무엇보다도 일기처럼 써내려간 
아이의 글씨와,
지웠다 썼다가 한 
종이 원본이 정말 마음에 깊이 남았다”고 말했다. 
🔹️[가장 받고 싶은 상]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짜증 섞인 투정에도
어김없이 차려지는
당연하게 생각되는
그런 상

하루에 세 번이나
받을 수 있는 상
아침상 점심상 저녁상

 받아도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안 해도
되는 그런 상
그때는 왜 몰랐을까?
그때는 왜 못 보았을까?
그 상을 내시던
주름진 엄마의 손을 
그때는 왜 잡아주지 못했을까?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꺼내지 못했을까?

그동안 숨겨놨던 말
이제는 받지 못할 상
앞에 앉아 홀로
되뇌어 봅니다.
 “엄마, 사랑해요”
 “엄마, 고마웠어요”
 “엄마, 편히 쉬세요”

세상에서 가장 받고 싶은 엄마상
이제 받을 수 없어요

이제 제가 엄마에게 상을 차려 드릴게요
엄마가 좋아했던
반찬들로만 
한가득 담을게요

하지만 아직도 그리운
엄마의 밥상
이제 다시 못 받을
세상에서 가장 받고 싶은
 울 엄마 얼굴 ” 
🔹️이슬 양의 시,
"가장받고 싶은 상"
23년 5월 8일
14
8
다음 주 벼 모임 작업 알림🔔
1️⃣ 2023년 사용할 볍씨 신청 다 하셨나요?
지역 적응품종 중 수매 품종과 품종 특성을 고려하여
재배 안정성이 우수한 고품질 품종을 확보해야 해요.
✅ 신품종으로 바꿔 재배하거나,
시범포에서 생산된 종자를 재배할 농가는
품종 적응지역, 시비량, 병해충 등
재배 특성에 유의해 품종을 선정하세요.
✅ 보급종 외에 특수미 품종이나
신품종 재배를 원하는 농가는
한국농업기술진흥원을 통해 신청하시면 돼요.
<벼 보급종 신청기간>
✅ 시도단위(읍면동) 신청기간
👉🏻 22. 12. 20. 까지!
✅ 전국단위 신청기간
👉🏻 23. 1. 3. ~ 1. 28.
✅ 공급시기
👉🏻 23. 1. 10. ~ 3. 31.
[🌞 날씨]
다음 주는 찬 대륙 고기압의 영향으로
기온이 큰 폭으로 떨어져 추운 날이 있을 예정입니다.
기온은 평년(0.0~2.0℃)과 비슷하거나 낮겠습니다.
강수량은 평년(1.4~4.2㎜)과 비슷하거나 적을 것으로 예상돼
관수 관리에 신경 쓰셔야 할 것 같습니다.
- 저수율: 68.0% (평년 70.6%의 96.3% / 12.12 기준)
🔔 주간 작업 알림을 놓치지 않고 받아 보고 싶다면?
댓글로 “알림 신청”이라고 달아주세요.
22년 12월 15일
11
14
Farmmorning
[2024년 공익직불금, ‘이것’ 모르면 10%나 감액?!👩‍🌾💰]
지난 2024년 소농직불금에 이어 새로워진 직불금 감액 기준부터 올해 공익직불금 신청에 대한 내용을 담아왔어요!
그중, 올해 공익직불금 감액 기준이 확대되었는데요.
모르거나 놓치면 직불금이 10%나 감액될 수 있으니 팜모닝과 함께 확인해 소중한 직불금을 지켜봐요.🤓
1. <직불금 감액기준 변경💰>
올해부터는 '영농폐기물 처리', '마을 공동체 활동', '영농기록 작성' 3가지를 이행하지 않을 시 공익직불금이 10% 감액돼요.
2. <기본형 공익직불제 전용 콜센터 운영📞>
공익직불금 비대면 간편신청부터 관련 문의까지!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공익직불제 통합콜센터 1334’를 통해 더욱 편리하게 공익직불금을 이용해 보세요.
3. <전략작물 대상 품목 확대 및 직불금 인상🌽>
24년도에는 전략작물 예산과 대상면적, 지급대상 품목이 더욱 많아졌어요.
4. <24년 공익직불금 신청 안내🔊>
비대면 간편신청은 2월 1일부터 29일까지, 방문신청은 3월 4일부터 4월 30일까지!
각 신청마다 기간이 다르니 대상 확인 후 자신이 해당하는 신청 기간에 꼭 신청하세요.
🔽<2024년 소농직불금>에 대해 알고싶다면? 아래 초록 글씨를 눌러보세요.💚
https://app.farmmorning.com/communities/Y29tbXVuaXR5OjQx/posts/Y29tbXVuaXR5LXBvc3Q6MTY2NTMy
------------------------------------------
이외에도 무엇이 달라졌는지 궁금하시다면?
→ 댓글에 '알림 신청'을 적어주세요.🔔
알림 신청을 해주신 팜이웃에게 새롭게 바뀐 24년 농업소식을 팜모닝이 정리해 알려 드릴게요!
1월 23일
56
430
12
Farmmorning
팜모닝 에서 수많은 농부님들의 각기다른 농작물, 채소 이든 나무, 이든 어떤 작물이라도 작물마다 성격이 다른 재배법을 오랜기간 이론이나 경험이나 또는 진짜 고수들의 교수급 들의 강의나 영상을 공유할수 있게 할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팜모닝의 미래가 한층 밝아져서 한국농업의 먹거리를 책임질수 있게 하면 좋겠읍니다 젊은이나 나이먹은 사람들이 재미있게 농사 지을수있게 했으면합니다 초보자도 경험자의 조언이나전문가의 전문 지식이나 경험을 모두 공유해서 희망을볼수 있게 팜모닝에서 선도적 역활을 해주셨으면 좋겠읍니다
1월 3일
8
오늘은 농업인의 날 오늘을 계기로 농업인의 삶이 나아지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 입니다 농업인 여러분들 건강하고 행복한 나날되세요
22년 11월 10일
2
1
- 사용한 작물: 하늘마, 고추, 참깨 등
- 유기농자재 이름: 모두싹, 농업혁신 등
- 솔직한 후기: 텃밭농사!
농약최소화, 조석으로 충잡아주고, 유기농자재 투여!
농사초보라 기본작물외 매년 시험적으로 두종류작물을 심어 경험해본다. 농사관련 여러 유튜브 채널을 시청하고 좋은정보와 내 생각을 덧붙여 시험재배 중!
대농아니고 텃밭농사라 좀 잘못되어도 문제가 되지 않고 좋은경험으로 삼아 농사지면서 실력향상중...
23년 7월 28일
7
8
Farmmorning
팜모닝 은 우리농만들에게많은
도움이되고있다 앞으로는농사에
대한정보에국한하지말고축산업도함께했으면더욱좋겠습니다
더욱더좋은농업정보로귀농한분이나귀존농민에게희망을주시길바랍니다 팜모닝 화이팅
1월 2일
1
✍️ [매일매일 농사공부 3탄 119편 - 올바른 농약 선택하는 방법]
👋 안녕하세요 팜이웃 여러분! 오늘 공부해 볼 내용은 <올바른 농약 선택하는 방법>입니다.
💚 아무 농약이나 쓰다보면 농약의 효과가 없을 수 있습니다. 오늘 공부를 통해서 상황에 맞는 농약 선택하세요.
🔻농약의 종류 (살균제, 살충제 동일)
• 보호 살균제(예방 살균제)
- 병이 오기전에 예방하는 것
• 치료 살균제
- 병이 이미 침투했을 때 사용하는 농약
🔻쉽게 구별할 수 있는 특징
• 작용기작
- 농약의 최종적인 효과를 가져오게 하는 생화학적 생물을 말합니다.
- 농약에 작용기작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 작용기작은 가, 나, 다, 라, 마, 바, 사, 아, 자, 차, 카로 구별합니다.
🔻작용기작에 따른 농약의 효과
• 카
- 병을 예방할 때 사용하는 농약의 작용기작은 “카”입니다.
• 사
- 병이 결린 후 병을 치료할 때 사용하는 농약의 작용기작은 “사”입니다.
• 다
- 농약으로 병을 예방과 치료를 동시에 진행하는 작용기작은 “다”입니다.
📺 "채수일 농업TV"님의 농약의 작용기작에 대한 영상도 참고해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n0r8qP7HkbU
🎓 공부자료를 확인하신 분은 "공부완료" 댓글을 남겨주세요.
내일 또 공부자료와 함께 찾아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2월 24일
35
389
5
Farmmorning
[농지연금 새 소식안내👩‍🌾]
매월 최대 300만원, 2만명 넘는 농부님들이 가입한 농지연금의 승계 연령이 55세로 낮아졌어요!
⚫ 농지연금이란?
만 60세 이상 농업인이 소유한 농지를 담보로 노후생활 안정자금을 매월 연금형식으로 받을 수 있는 제도예요.
⚫ 어떤 게 바뀌었나요?
승계형 상품에 가입할 수 있는 배우자 연령이 60세에서 55세로 낮아졌어요!
⚫ 농지연금을 받으면?
✔️ 연금을 받던 분이 돌아가셔도 배우자가 승계하여 받을 수 있어요.
✔️ 담보 농지는 직접 경작하거나 임대할 수 있어요.
✔️ 정부에서 시행하니까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어요.
✔️ 담보 농지를 처분해 연금 채무를 상환할 수 있는데요, 남은 금액은 상속인에게 돌려주고 부족하더라도 더이상 청구하지 않아요.
✔️ 재산세 감면과 압류 위험으로부터 연금 보호도 할 수 있어요.
🤔농지연금 장점만 있을까요? 이웃 농부님의 글도 함께 읽어보세요🔽
농지연금의 장단점: https://farm.fmorning.com/uzzmrd
⚫ 누가 신청할 수 있을까요?
만 60세 이상부터, 5년 이상의 영농경력이 있으면 가입할 수 있어요!
🔽자세한 내용은 아래 홈페이지와 문의 번호를 참고하세요🔽
☎️ 농지연금 문의
1577-7770
⚫ 농지은행 홈페이지
https://www.fbo.or.kr/index.do
⚫ 내가 받을 수 있는 연금은 얼마일까?
https://www.fbo.or.kr/pesn/my/IqireForm.do?menuId=040020
23년 9월 2일
9
40
콩탈곡기 사용방법 농기계 임대, 고장이 아닙니다.
■ 출처
남원시농업기술센터
■ 농기계임대문의
남원시 농기계임대사업소
이백 : 063)620-8024,8023
금지 : 063)620-5554,5556
인월 : 063)620-5557,5559
사매 : 063)620-5551,5552
https://www.youtube.com/watch?v=qXbtYVMPq9c
22년 12월 13일
8
단감재배 농가입니다
요즘 선녀벌레 2령기로 방제 적기입니다
작년 교육시 알게된 내용 으로
6월3일 살충제 팬덤 사용했는데
지금은 한마리도 보이지않고 없네요
2령기때 꼭 방제하세요
효과 만점이네요
23년 6월 6일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