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 동구 버섯재배농장보유
60평2동 ㅡ재배농장가능
60평1동ㅡ보관창고 진공포장시설
실링기 압축포장기
온라인컴퓨터 판매사무실
60평1동ㅡ포장자제창고
건물240평ㆍ텃밭 250평
지금껏견과 호두농장 영동
시골농장에서 소포장유통
하고있는데 버섯 재배
관심이나 가르쳐주시고 같이
하실분 문의하실분
연락주시고 판로는
영업망과 온라인 기존진행하는
판매 방식으로 할수있어요
온라인ㆍ오픈마켓ㆍb2b소싱
폐쇄몰ㆍ명절특판
22년 1월 30일
1
고추 폭망, 모종값, 농약,영양제,고추에 들어간 각종 농자재 1/5도 회수하지 못하고 고생만해서 농사하기 싫다.
22년 8월 31일
요즘 호박넝쿨이 쭉쭉 뻗어나가네요 호박도 주렁주렁열리네요
22년 8월 3일
종묘사에서종자씨를잘못보내올해농사를망쳬는데어떻게하며좋을까요의견부탁합니다
22년 5월 1일
2
Farmmorning
매번 여러가지 정보감사드립니다.
아주고약한 도깨비 넝쿨 또는도깨비풀
이라고하는 넝쿨은 어떠한제초제를 써야하는지요.? ? 지금막 싹이 두이팔정도달고올라오는데요..'아주환장합니다..커서뽑으면 할퀴고 피부알러지로 고생합니다
꼭좀부탁합니다..감사합니다
22년 3월 31일
1
□작물명:서리태콩
♧생애 처음 내가 직접 파종에서 수확까지 전과정♧
2023.5.19(금)서리태 심을 곳 돌 골라 내고 괭이 삽으로 밭파기
2023.5.31(수)서리태,메주콩 3판 모종 심기(파종)
2023.6.6(화)~6.7(수)
서리태콩 고라니가 들어와 콩잎 3줄 싹둑 뜯어먹음
너무 속상해 곧바로 해태망 주문해 고루 둘러침
2023.6.12(월)~6.18(일)서리태 포토 모종 길러 땜빵 옮겨심기(2포)
2023.6.19(월)~6.25(일)서리태 3회 적심
2023.7.3(월)~7.9(일)서리태 북주기, 천연살충제 뿌리기,잡초제거
2023.7.12(수)서리태 지주세우고 줄치기
2023.8.20(일)~8.26(토)서리태 고랑에 복합뿌리기 추비
2023.8.27(일)~9.02(토)꽃피기 시작~꼬투리 생길무렵까지 2회 살포
(노린재, 나방 예방 방재)
2023.9.3(일)~9.9(토)너무 우거진 서리태 고랑 줄치기 및 나방 방재
2023.10.30(월)서리태 잎뜻기
2023.11.6(월)
○서리태콩 뽑아 원형으로 콩 건조 동아리 치기
-쓰러짐방지 줄걷기
-지주대 뽑기
-서리태 뿌리째 뽑기
-콩동은 들쥐가 물어가고, 쪼아대고를 방지하기 위해 고무통을 엎어 놓고 그 위에 원형으로 돌아가며 콩동을 잘 건조될 수 있도록 거꾸로 쌓아 올렸다. ㅎㅎㅎ
제법 모양이 나온다. 네귀퉁이에 지주대를 엇비슷이 세우고 콩동에 비닐씌우고 끈으로 동여 메기로 일단은 끝.
○향후 해야할 일
-콩이 잘 건조되면 콩 타작
-많지는 않지만 타작한 콩은 잘 보관하며, 밥에도 놓아 먹고, 방앗간에가 미숫가루도 내고, 티밥도 틔어 먹고, 형제간에 나눠먹고, 내년에 종자로도 쓸 예정이다.
○금년에 잘한 점
포토에 심어 파종, 순치기 3회, 지주대 세워 줄치기 3회
꽃필때 살충제 2회 살포(노린재,나방 방지)
○내년도 참고사항
-2포기씩 심었는데 1포기는 도태되고 있어 처음부터 1포기를 심어 순치기 3회
해주면 더욱 튼실하고 알찬 수확이 기대
-고라니가 적당이만 뜾어먹고 살아나기만 하면 적심효과도 나타난다.
※아직 콩 타작은 남았지만 알찬 수확의 기쁨을 안겨준 서리태야 고마워!
11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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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mmorning
콩과 팥의생장! (태풍과 장마비 대비 지주대박아 줄메어 키움)
한줄로 심은 콩(서리태, 백태), 팥이 적심후 잘 자라고 있는데 노린재는 개체수를 늘리고 있다.
깨에 찾아오는 노린재는 쉽게 날지않아 손으로 잡기 편한데 톱다리개미허리노린재는 날렵하여 빠르게 날아가 버린다.
기피제도 조제하여 패트병에 담아 메달어 놓고, 트랩도 메달아놓고, 아침일찍 저녁으로 눈에보이는대로 잡고, 농약도 살포하는데 개미허리 톱다리개미허리노린재는 발걸음소리에도 빠르게 날아가는 날렵성을 보여 인간하고 지능싸움을 하고 있다.(TIP: 이슬맞은 이른아침은 날지 못함, 트랩설치는 작물로 부터 멀리설치)
지인이 준 의문의 콩씨심어 핀꽃! 구글 렌즈앱으로 검색하니 동부콩!
난생처음 관심가져본 동부콩꽃 마치 나비가 앉자 미동도 하지 않는것처럼 보여지는 콩꽃이 철재 휀스울타리망을 타고 잘자라는 것은 비맞으면서 심은 주인장 부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보답하려는 것일까?
저절로 난 호박모종을 돌봐주었더니 굵은 줄기와 잎을 늘려가며 길쭉한모양의 단호박 만차랑(만차처럼?)도 제 구실을한다.
23년 8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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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mmorning
모두가 소망 하시는데로 이루어 지시사
윷 던지며 기원 하나이다!
♥ 지금까지 경남에 900점을 더했어요!
9월 28일
Farmmorning
요즘 딸기 망 작업 하느라 자주 못 들어왔네요
22년 8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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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
내가 영리하고 똑똑하다는
우리 어머니!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6•25전쟁이 났다.
아버지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어머니 말씀 잘 듣고 집 지키고 있어."하시고는 한강을 건너
남쪽으로 가셨다.

그 당시 내 여동생은 다섯 살이었고 남동생은 젖먹이였다.

인민군 치하에서 한 달이 넘게 고생하며 살아도 국군은 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견디다 못해서 아버지를
따라 남쪽으로 가자고 하셨다.

우리 삼 형제와 어머니는~보따리를 들고 아무도 아는 이가 없는
남쪽으로 향해 길을 떠났다.
1주일 걸려 겨우 걸어서 닿은 곳이
평택 옆 어느 바닷가 조그마한 마을이었다.

인심이 사나워서 헛간에도
재워주지 않았다.
우리는 어느 집 흙담 옆 골목길에 가마니 두 장을 주워 펴놓고 잤다.
어머니는 밤이면 가마니 위에 누운 우리들 얼굴에 이슬이 내릴까봐 보자기를 씌워주셨다.
먹을 것이 없었던 우리는 개천에 가서 작은 새우를 잡아 담장에 넝쿨을 뻗은 호박잎을 따서 죽처럼 끓여서 먹었다.

3일 째 되는 날, 담장 안집 여주인이 나와서~ "(우리가) 호박잎을
너무 따서 호박이 열리지 않는다.
다른 데 가서 자라!"고 하였다.
그날 밤 어머니는 우리를 껴안고 슬피 우시더니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남쪽으로 내려갈 수 없으니 다시 서울로 돌아가서 아버지를 기다리자고 하셨다.

다음 날 새벽 어머니는 우리들이 신주처럼 소중하게 아끼던 재봉틀을 들고 나가서 쌀로 바꾸어 오셨다.
쌀자루에는 끈을 매어서 나에게 지우시고, 어머니는 어린 동생과 보따리를 들고 서울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평택에서 수원으로 오는 산길로 접어들어 한참을 가고 있을 때였다.
30살 쯤 되어 보이는 젊은 청년이
내 곁에 붙으면서
"무겁지. 내가 좀 져 줄게~!" 하였다.
나는 고마워서 "아저씨, 감사해요."
하고 쌀자루를 맡겼다.
쌀자루를 짊어진 청년의 발길이 빨랐다.

뒤에 따라 오는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으나, 외길이라서 그냥
그를 따라 갔다.
한참을 가다가 갈라지는 길이 나왔다.
나는 어머니를 놓칠까봐 "아저씨, 여기 내려주세요! 어머니를
기다려야 해요."하였다.

그러나,청년은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그냥 따라와~!"하고는 가 버렸다.

나는 갈라지는 길목에 서서 망설였다.
청년을 따라 가면~
어머니를 잃을 것 같고
그냥 앉아 있으면~
쌀을 잃을 것 같았다.
당황해서 큰 소리로 몇 번이나 "아저씨~!" 하고 불렀지만,
청년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그냥 주저앉아 있었다.
어머니를 놓칠 수는 없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 즈음 어머니가 동생들을 데리고 오셨다.
길가에서 울고 있는 나를 보시더니 첫 마디가 "쌀자루는 어디 갔니?"
하고 물으셨다.
나는 청년이 져 준다면서 쌀자루를 지고 저 길로 갔는데, 어머니를 놓칠까봐 그냥 앉아 있었다고 했다.
순간 어머니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리고, 한참 있더니 내 머리를 껴안고, "내 아들이 영리하고 똑똑해서 에미를 잃지 않았네~!."하시며 우셨다.
그 날 밤 우리는 조금 더 걸어가
어느 농가 마루에서 자게 되었다.

어머니는 어디에 가셔서
새끼 손가락만한 삶은 고구마 두 개를 얻어 오셔서 내 입에 넣어 주시고는,
"내 아들이 영리하고 똑똑해서 아버지를 볼 낯이 있지~!"
하시면서 우셨다.
그 위기에 생명줄 같았던 쌀을 바보같이 다 잃고 누워 있는 나를, '영리하고 똑똑한 아들'이라고 칭찬해 주시다니~!

그 후 어머니에게 영리하고 똑똑한 아이가 되는 것이 내 소원이었다.

내가 공부를 하게 된 것도 결국은 어머니에게 기쁨을 드리고자 하는 소박한 욕망이 그 토양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때는 남들에게 바보처럼 보일 수도 있었지만, 어머니의 (바보처럼 보이는 나를~) 똑똑한 아이로 인정해 주시던 칭찬의 말 한 마디가 지금까지 내 삶을 지배하고 있는 정신적 지주였던 것이다.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신 박동규님의 글입니다.
이 글 속의 “어머니”는 시인 박목월님의 아내십니다.

절박하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야단이 아니라 칭찬을 해 줄 수 있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칭찬 한 마디가 우리 아이들의 인생을 아름답게 변화시켜 주리라 믿습니다. <좋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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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5일
28
14
2
Farmmorning
농장자랑ᆢ
대도시에서 조그마한 의류업 하던것을 접고
고즈넉하고 엄마품같은
포근한 시골이 좋아서..
아늑함을 만끽하고자~~
귀촌햇으나 그것도 잠시 ,
귀농으로 뉴턴한지 4년차
우리 남편ᆢ
사과 농장 갖는게 소원이라네요
그래서 짠~~~
그다지 크지도 않고 아담한 임야 섞인 땅에다가
다축묘 신품종 묘목을 심을 겁니다
포도 넝쿨처럼 옆으로 유인해서 가지가 뻗어나가게 하는 거랍니다
예전 묵은땅을 고르기 한후
사과 지주대 작업마친
저희 농장 풍경이랍니다
와이어 설치후
사과심기 돌입 !!
저희남편 ..
작업 비용 절감하느라
4m터나 되는 무거운
지주대 두개씩 어깨 메고
수백개 일일이 다 나르고
혼자서 사다리 타고
클램프를 위에서 조이고 또다시
내려와서 조이기를 반복
요즘 힘들고 온몸이 멍 투성이라도
꿈을 이뤗다는 행복감에
미소가 절로 흘러 넘쳐요
낚시가 완전 취미인 남편
요즘 민물 붕어 산란철이라
손맛이 많이 그리울텐데
꾹 참고
과수원에 온갖 정성을
쏟고 있는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지금은 과수원 준비중이라
황량하고
어슬프지만
몇년후면 시간이 흘러
가지마다 울긋불긋한
색들의 향연이겠지요
나무마다 주렁주렁
탐스럽게 열린
빠알간 사과 열매
상상해보면서 ~~
잠시 홀린듯 취해봅니다
우리남편 사과딸 준비태세가 대단해요
전지가위도 튼실한걸로
여러개나 싸 놧네요ㅎㅎ
농부님ㆍ선배님들
저희부부 초보농부
많은 응원 부탁드려요
여러가지 조언도
넘치도록 가득 해주시고요
전국에 계신 농부님들
대단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존경합니다
항상 건강하셔야 합니다
농사가 하면 할수록
더욱더 힘들고
녹록치. 않은것 같습니다
그럴수록 힘들 내시고
가내가내
화수분처럼 넘치도록
행복한 나날들 되시고요
하시는 작물마다
농사 대박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화이팅 하세요 !!!
23년 3월 25일
8
8
Farmmorning
- 6-70년대 우리들의 공감시대 12 -
우리는 밖에서 놀다가 해질 무렵이면 집으로 돌아와서 쇠죽을 끓였다.
겨울철에는 오후 4시 반경인 것 같습니다.
커다란 가마솥에 여물을 넣고 부엌에서 나온 구정물을 붓고 마른나무를 불쏘시개로 불을 붙인다.
사랑방에 동네 일꾼들이 모여서 새끼도 꼬고, 멍석도 만들고, 심심할 때는 두부내기 화투도 쳤다.
그래서 사랑방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서 생솔가지랑 통나무를 아궁이 깊숙하게 밀어 넣고 불을 지폈다.
그래야 다음날 새벽에 쇠죽을 끓일 때까지 구들이 따뜻했다.
사랑방 이불은 청색 이불 홋청이었고,
베개는 나무 토막이었다.
나무토막 베개는 기름이 쩌들어서 빤질빤질했다.
겨울철은 기압이 낮아서 둥네 골목마다 연기가 자욱하게 깔렸다.
시골에서만 볼 수 있는 산수화같은 풍경이었다.
요즘 소들은 영양이 골고르게 만든 사료를 먹고 자라는데 옛날 소는 오로지 여물밖에 없었다.
여름철에 논두렁에서 풀을 베서 말린 건초와 지푸라기를 작두로 썰고 섞어서 가마솥에 넣고 호박이나 씨래기, 콩깍지도 넣고 죽겨를 같이 넣어서 끓인다.
이렇게 끓인 쇠죽은 걸쭉했다.
기껏해야 여물에 호박이나 시래기 죽겨가 전부였다.
소 외양간에는 나무로 된 구시가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나는 쇠죽을 커다란 나무바가지로 퍼서 구시에 넣어주면 머리를 흔들면서 쇠죽을 먹을 때 워낭소리가 평화롭게 들리면서 어미소는 뜨거운 소죽을 잘도 먹는다.
쇠죽이 다 끓고 뒤죽일 때는 구수한 냄새가 온 집안에 퍼진다.
이렇게 하루 아침 저녁으로 쇠죽을 끓여서 소에게 먹였다.
그 때는 목욕탕에 가는 것은 시내에 나가야했기에 쇠죽을 끓인 솥에 발을 담가 굳은살을 벗겨내기도 했다.
암소는 새끼를 낳으면 송아지를 팔아서 살림에 보탰고, 숫소는 빠르게 크기 때문에 한해 키워서 팔았다.
물론 봄부터 농사철에는 논밭을 쟁기로 갈고 소없이는 농사를 하지 못했다.
겨울에는 소마구간을 자주 치우지 못했다.
오랫만에 마구간을 나온 황소는 엄청 날뛰었다.
소 코뚜레를 잡고 소를 진정시킬려면 등에 땀이 나기도했다.
마구간에 지푸라기를 자주 넣어주었다.
겨울철에 소를 따뜻하게도 하지만 소 배설물과 지푸라기가 퇴비를 만들기 때문에 자주 바닥에 깔아준다.
무게가 엄청난 어미소가 지푸라기를 차곡차곡 밟고 다져서 쇠스랑으로 한참을 긁어내야했다.
이것을 마당에서 썪히면 훌륭한 퇴비가 되었다.
마구간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지푸라기로 새로 깔아주면 소들도 좋아했던 것 같았다.
고향에서 소를 팔거나 살려면 남원장날 우시장에 가야했다.
오십리길을 다녀와야 했는데 뭐하러 걸어서 따라 다녔나!싶다.
이번이 12번째 이야기입니다.
그 동안 앞뒤도 없이 써내려간 저의 이야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냥 저만의 이야기일 수 있었기도 합니다.
어느 때는 너무 이른 시간이라 짜증나실 때도 있었을 것이고 컨디션이 좋지 않으실 때도 메세지 알림소리가 짜증스러웠겠죠.
또 한편으로는 귀찮을 때도 있으셨겠죠?
제가 핸드폰에 제 이야기를 주로 새볔녘에 써내려갑니다.
그러다보면 환하게 날이 밝습니다.
그래도 한참을 기다렸다 메세지를 보내곤 했습니다.
옛날에 어쩌면 어른들께서는 새볔에 저렇게 잠이 없을까?했는데 이제는 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제 메세지가 어쩔 때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아닐까?저도 그럴 때가 있습니다.
젊은 세대들한테는 공감되지 않은 이야기가 있으니까요?
사계절 중에 봄이 지나고 여름에 접어 들었습니다.
올 여름은 굉장히 무더운 날씨가 있을거라는 기상청 예보가 있습니다.
어떤이는 올해 60년만에 폭염과 45도의 날씨가 있을거라는 경고도 있습니다.
많이 염려스럽습니다.
며칠 전에 흡족하진 않지만 밭 작물에 보약같은 비가 내렸습니다.
그 동안 날씨가 쌀쌀해서 움추렸던 고추랑 오이, 호박 등이 훌쩍 자랐습니다.
고추는 추비도 하고 곁순도 땄습니다.
주말 쯤 두번째 줄을 매도 되겠더군요.
이제사 땅속에 거름을 빨아들이기 시작해서 우리말로 고추순이 느클느클하더군요.
오이는 매일 물주기를 했더니 폭풍성장을 하네요.
매일 오이집게를 하나씩 오이망에 집어주고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하고 있는 직업에 자부심을 갖는 것이 성공을 좌우하는 것 같습니다.
어느 음식점에 주인장께서 이런 글귀를 서각을해서 걸어 놓으셨더군요.
"맛 있으면 이웃에게 알리고
맛 없으면 주인에게 알려주세요."
괜히 맛있겠구나!하는 마음이 들더군요.
어떤 일을 하던 자긍심을 갖어야 하겠습니다.
5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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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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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mmorning
1. 고추대 고추줄 튼튼지지대 세우기 물흐름 물고트기
2. 가지 오이 토마토 채소작물등 지지대막 설치 넝쿨 묶어두기
3. 집주변 떫은감산 작업로 물길 수로 만들기
4. 주택뒤편 샛강 위험지역 산사태 위험지역 예방 주변살피기
5. 농로 세면포장길 물길 터주기
농촌생활 적응 방법 찾아보기
검토
23년 6월 27일
우리들 이야기 =54
뇌출혈 엄지발가락
감기에 걸리셨는데, 이 문제가 되어 비뇨기과에 가서 약을 지어 복용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을 잘 자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하지가 완전히 마비되어서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었답니다.
그 병원에서 그렇게 된 사유를 잘 모르겠다고 하면서,
물리치료를 좀 받고 더 이상의 호전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받고선 퇴원하여 지금 집안에 누워 계신답니다.
문제는 동창들과 대화를 하면서 서울대 약대 김양배 명예 교수님이 그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 전립선 약과 감기약 (카페인 함유) 또는 전립선 약과 카페인 이 함유된 커피나 차를 같이 복용 할때는 반드시 하지 마비가 온다는 말씀입니다.
* 뇌출혈로 쓰러진 경우 엄지 발가 락을 만지면 기적을 일으킨다.
뇌출혈로 쓰러져 긴 시간 수술을 합니다.
수술이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수술하여도 많은 사람이 불구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질문]
대구에 있는 언니가 뇌출혈로 쓰러져 긴 시간 수술을 했어요.
저는 지금 내려가는 중인데 회복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자세한 건 내려가서 이야기를 들어봐야 해요.
의사는 합병증이 없어야 한다고 하고 폐도 좀 걱정된다고 해요.
다시 연락드릴게요.
[답변]
엄지발가락을 강하게 만져야 합니다.
그걸로 끝입니다.
* 뇌출혈은 왜 일어나는가?
뇌를 강하게 하는 비결은 엄지발가락인데 뇌가 망가지면 뇌를 수술합니다.
뇌출혈로 쓰러져도 엄지발가락
을 만지면 그만입니다.
물론 그 전에 미리 엄지발가락을 잘 만져서 뇌를 튼튼하게 만들면 그런 일이 평생 일어나지 않겠지요.
그럼 엄지발가락도 약하고 새벽에 오줌을 잘 참고 옆으로 자면 당연히 뇌출혈이 발생합 니다.
뇌출혈이라는 것은 코피와 같은 것으로 차라리 코피가 터지면 뇌출혈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코피가 그나마 좋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오줌을 잘 참으면 그 요산은 혈관을 타고 그 사람의 가장 약한 곳을 무작정 파고 들어갑니다.
어떤 사람은 위암이 걸리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무좀이 걸리고,
어떤 사람은 심장병이 걸리고,
어떤 사람은 백내장이 걸리고,
어떤 사람은 구완와사가 오고,
어떤 사람은 유방암이 오기도 하지요.
* 뇌출혈은 왜 일어나는가?
정답은 새벽에 오줌을 참고 한쪽으로 잠을 자는 습관이 오래되어서 그러는 것입니다.
* 박한서 원장의 제안과 의견.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엄지발가락을 잘 만져서 녹이 슨 뇌의 센서를 수리하게 되면 언제 오줌을 퍼내야 하는지를 뇌에서 알려드립니다.
알람이 울려 퍼지는 것처럼.
‘얼른 일어나 소변보세요.’라는 메시지가 도착하지요.
지구별을 긴 지렛대를 이용하여 들을 수 있는 것처럼.
뇌에서 가장 먼 지렛대인 엄지발가락을 이용하여 얼마든지 뇌를 건강하게 할수가 있는 것입니다.
뇌를 다스리는 스위치는 뇌의 가장 멀리 있는 반대편 엄지 발가락입니다.
이것저것 딴것 만지고 뇌를 수술해 봐야 별 볼일 없습니다.
보통은 우리가 잘 모르기에 그냥 뇌를 만지작거리는 것이고요.
엄지발가락 관리는 수술에도 기적을 일으킵니다.
뇌수술은 절망을 가져옵니다.
평생 후회하는 삶을 살면서 일생을 마치게 되지요.
박한서원장이 항상 강조하는 말이 있습니다.
영화 같은 삶을 살지 말자고요. 반전에 반전 같은 기적 같은 삶.미리 예방하여 편안하게 사는 인생 행복을 만지작거리면서 항상 웃음이 끊이지 않는 삶,
정말 간단한 엄지발가락 관리인데 가르쳐 주어도 못 하면 바보가 되지요.
자연과학 참 쓸 만한 물건입니다.
다른 것 망가져도 어떻게 살아갈 수가 있지만 뇌는 모든 것을 상실하는 중추신경입니다.
다 같이 참지 말고, 엄지발가락 관리 잘하세요.
병원을 방문한 고객님 면회 시간에 조용하게 지내야 하는데 수술이 막 끝난 언니 발가락을 만져주었다.
언니가 아프다 하면서 꿈틀거리는 그 느낌,
뭔가 살아 있다는 증거 그리고 회복이 빨리 될 수 있다는 자신감 이었습니다,
[결론]
수술이 끝난 후 운동을 하면서 회복해야 하는데 누워 있는 사람이 어떻게 운동을 할 수 있나요?
바로 엄지발가락을 만져서 뇌에서 얼굴에서 반응이 일어나게 하면 그만입니다.
엄지 발가락을 만지는 순간
모든 혈관이 요동을 칩니다.
결국 기적을 만들어냅니다.
어느 순간 어느 상황에서도 당신의 생각이 기적을 일으키고 당신의 생각이 절망을 만들기도 하지요.
엄지 손가락은 뇌에서 그 거리가 분명 엄지 발가락보다 훨씬 짧습니다.
엄지 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은 엄연히 차원이 다른 것이지요.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엄지 발가락을 사랑하세요.
제발 부탁입니다.

1) 전립선 약과 감기약 카페인이 함유된 커피나 차를 같이 먹으면 큰일이 나겠지요?
2) 뇌출혈은 새벽에 오줌을 참고 한쪽으로 잠을 자는 습관이 오래되어서 그러는 것입니다.
얼른 일어나 소변을보세요.
귀찮다고 누워서 소변 참으면
큰일납니다.
소변을 보고 난 후 바로 따뜻한 물
한잔 보충하세요.
3) 뇌출혈에 쓰러지지 않으려면
평상시에 엄지발가락 엄지손 가락을 강하게 마사지 해주세요.
쓰러진 환자도 꼭 해주세요.
돈 들어가는 일이 아니니 평소 잘 숙지 하셨다가 실천하시고, 지인들에게도 널리 공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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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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