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처음으로 글 작성하네요
상주에서 떪은감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감나무 병해 병충으로 고생하시는 분들에게 떪은 감 기준으로 알려 드릴려고 작성합니다.
저는 떪은 감기준으로 알려드리 때문에 단감이나 기타감은 다를 수 있습니다.
농약 살포
2-3월 석회유황 또는 기계유 석회유황 추천 단 발아 전
5월 꽃피기전 탄저 낙엽 선택
6월 탄저 낙엽
7월 탄저 낙엽
8월 탄저 낙엽
9월 탄저 낙엽
월별로 해충은 다릅니다
장마기점을 잘 보시고 6월에서 8월사이에 추가방제 하셔야됩니다.
단감은 더 많이 살포하셔야되구요
살포하실때마다 농약 군을 바꿔서 살포해야 효력있습니다.
자세한건 농약사에 물어보시는게 빠릅니다.
낙엽은 6월 부터 9월까지 진행되며
크게 2가지로 구분됩니다
만성으로 진행되는 경우 6월
급성으로 진행되는 경우 9월
진단키트는 있으나 이미 진단키트에서 확인되면 늦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또한 탄저는 진행되기 시작하면 결국 죽게되는 병 입니다 묘목일때부터 관리하셔야 건강한 나무로 키울 수 있습니다.
뿌리혹은 묘목식재전에 방제가 가능하나 식재후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충해피해는 워낙 많아서 딱 구분짓기는 그렇습니다.
그리고 방제시기가 달라서 확인하는 방법 외에는 없습니다
1. 깍지벌레
2. 노린재 ㅡㅡㅡ
여기까지는 꼭 방제를 해주셔야됩니다
3.미국선녀벌레
4.꽃매미
5.기타 나방류, 쇄기류
추가내용 병충시기
병충 피해 출처 (출처 상주 감연구소)
2월 감꼭지나방, 깍지벌레
4월 애무늬고라장님노린재
5월 감관총채벌레, 잎말이나방,볼록총채벌레 미국선녀벌레
6월 감꼭지나방, 주머니•식나무깍지벌레, 미국선여벌레, 뿔밑깍지벌레
7월 쐐기나방, 미국선녀벌레
8월 감꼭지나방, 주머니깍지벌레
9월 식나무깍지벌레, 쐐기나방
추가내용 병해시기
병해 (출처 상주감연구소)
4월 검은별무늬병, 탄저병
5월 흰가루병, 탄저병
6월 모무늬낙엽졍, 탄저병
7월 둥근무늬낙엽병, 탄저병☆
8월 탄저병☆
9월 탄저병
추가의견 별표된 탄저병은 우기에 집중적으로 발생되어 따로 표시해 드렸습니다.
위와같이 되어 있지만 과원이 다 틀리기 때문에 본인 과원특성 및 관찰이 요구 됩니다.
최근에는 9월에 노린재 피해가 집중되고 있어 코레졸을 이용한 노린재 기피재를 쓰시기도 합니다.
제가 곶감을 생산하는데 깍지 노린재 발생할경우 공판장에서 가격이 많이 하락됩니다.
그리고 병충 병해 발생시 꼭 사진을 찍어 근처 농약서에 물어보시는걸 추천 드립니다.
2-3월에 석회유황을 추천드리는건 병충방제에서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합니다
병은 예방이 답이며 발병시에는 확산을 늦출순 있어도 치료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미리 방제하여 건실한 과원을 기원합니다
추가내용 냉해
특정 품종에서 발생되는 냉해피해는 지대가 높을 수록 많이 발생합니다.
배나무 같은 경우 냉해가 예상되는경우 히터를 틀기도 합니다
본인의 과원특성을 꼭 확인하시는걸 추천드립니다
추가내용 2 박피
단감나무는 박피를 꾸준하게 하시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떪은 감은 잘 하지 않으나 하시는걸 추천 드립니다
이유는 껍질안에서 겨울을 보내고 나오기 때문에 추천드립니다.
방법은
낫으로 하는 방법
고압세척기로 하는 방법 (감연구소 추천)
감나무 밭 구성 조건
감나무는 물에 민감합니다
물이 많아도 죽게 되고 물이 없어도 죽게 됩니다
고지대의경우 관수가
저지대의 경우 배수가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인 농지의 특성을 잘 확인해서 꼭 맞게 식재하셔야 됩니다.
묘목식재
처음 식재 후에는 따로 거름은 피하셔야됩니다 . 보통 1-3년까지는 전지 및 전정으로 가지를 유인하시는게 보통입니다 이는 과원마다 다르기 때문에 본인이 선택하셔야됩니다.
식재 후 물관리는 필수입니다.
성목의 경우 옮겨심으실 경우 활착률이 30-50프로정도 만 됩니다. 이식시 최대한 많이 전정하여 심어야 겨우 살아나갑니다.
차라리 모묙을 심으시는것을 추천 드립니다.
전지전정
1-3월까지 전지 전정도 요즘에는 필수 입니다. 대봉감의경우 너무 커지기도 하지만 둥시 반시의 경우 과실이 커지면 더 값을 받기도 합니다 주의사항은 너무 커지면 꼭지벌림 현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5-6 도장지 정리 해주셔야됩니다
겨울철 전지 전정해주었으면 도장지는 많이 발생됩니다. 6월에까지는 손으로 건드려도 잘 제거 되기때문에 추천드립니다.
전지 및 전정의 경우 유튜브나 어플에 보시면 찾아 보실 수 있습니다.
성목의 경우 수고 낮추실때는 몇년에 걸쳐 천천히 내리시는걸 추천드립니다.
너무 많이 내리면 그해는 과실이 제대로 열리지 않거나 심하면 나무가 죽을 수 있습니다
다들 좋은감 그리고 건강챙기시면서 즐거운 농사되세요.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기타 내용은 생각나는데로 추가해서 작성하겠습니다.
23년 3월 23일
15
10
'생강'이 사람에게 '보약'인 이유가 책자인 동의보감에 나와 있습니다
몇글자 올립니다
1. 몸을 따뜻하게 해 여성 질환을 예방한다. 
각종 여성 질병은 몸에 냉기가 흐를 때 발생한다.
요즘같이  선선해진 가을날씨에 자칫 체온이 
떨어질 수 있는데 이때, 생강은 '부신수질'이라는
호르몬을 자극해 아드레날린의 분비를 촉진하고
혈관을 확장시켜 혈액순환을 도와
몸을 따뜻하게 합니다. 
2. 면역력을 강화시켜 잔병치레를 막는다.
생강은 체온을 높일 뿐 아니라
몸속의 백혈구 수를 늘리고
혈액의 활동을 촉진하며 
면역력을 강화시킨다. 
3. 수분 조절로 부기를 제거한다.
생강은 몸 안의 각종 기관을 자극해
땀을 내고 소변을 잘 보게 해
부기를 빼는 효과가 있다. 
4. 가래,기침을 없애는 데 효과적이다.
생강의 매운맛을 내는 성분은
'진저롤'과 '쇼가올'이다.
이 두 성분은 몸의 찬 기운을 밖으로 내보내
감기를 예방하는 역할을 한다.
 
5. 좋은 열은 올리고 나쁜 열은 낮춘다.
몸을 따뜻하게 만드는 음식이긴 하지만
생강에는 아스피린의 80% 정도 해열
효과도 있다. 감기에 걸렸을 때 열을 발생하는
'프로스타글란딘'의 생성을 억제하는 기능이
있어 해열 작용을 하는 것이다. 
6. 살균 기능으로 몸 속 세균을 내쫓는다.
생강은 감기 바이러스나
폐렴을 일으키는 세균뿐만 아니라
무좀의 원인인 진균에 대한
항균 능력도 뛰어나다. 
7. 혈중 콜레스테롤을 없앤다.
생강의 '진저롤'은 담즙 분비를 촉진해
피 속의 콜레스테롤을 없애는 효능이 있다. 
8. 여자들의 꿈, 노화 방지 효과가 있다.
생강은 항산화 작용이 뛰어나 노화를 예방한다. 
활성산소가 억제돼 노화 예방은 물론
잔병치레도 적어지니 중년 여성들에게 필수다. 
9. 진통제보다 생강이 낫다.
여성의 경우 생리통으로 인한 진통제 사용이
많은데 생강은 아스피린이나 인도메타신 등의
소염•진통제와 거의 비슷한 효과를 내며, 
화학약제와 달리 위벽을 보호한다. 
10. 혈액 응고를 억제한다.
혈관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도
생강이 효과적이다. 
생강이 혈소판의 응집을 억제해
혈전을 막아 뇌경색과 심근경색,
고혈압을 예방 및 개선한다. 
11. 생강을 먹으면 2개의 심장 부럽지 않다.
생강은 심장을 강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음식이다. 
심근을 자극해 수축력을 높이지만
맥박을 천천히 떨어뜨려서
혈압을 10~15mmHg 정도로 낮춰 
일정하게 유지시키기 때문이다. 
12. 소화 흡수 능력을 강화한다.
오랫동안 소화가 잘 안 될 때
생강을 먹으면 도움이 된다. 
생강은 위장 내벽의 혈액순환을 도와
위장 활동을 촉진, 소화 흡수력을 높인다. 
13. 식중독을 미리 예방할 수 있다.
생강은 위궤양의 원인균과
식중독균을 모두 없애준다.
생강만 있다면 식중독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14. 입덧, 생강만 있으면 해결된다.
생강의 매운맛 성분인 '진저롤'은
매스꺼움을 억제하는 효능이 있어 
임신부에게도 좋다. 속이 안 좋거나
멀미, 입덧을 할 경우 생강을 잊지 말자. 
15. '여자' 그리고 '엄마'를 건강하게 만든다.
생식기능을 높이고 싶다면 생강이 특효다.
남자의 경우 정자를 더 빨리 움직이게 하며,
여자의 경우 생리불순을 치료하고
임신 가능성을 높이는 등
특히 여자의 생식 기능에 좋다. 
16. 어지러움과 현기증을 예방한다.
생강은 귀 속의 혈액순환을 촉진해
현기증과 귀 울림을 예방하므로
어지러움이 느껴질 때마다
생강차를 마시는 것이 좋다. 
17. 우울증을 치료한다.
생강에는 기를 열고 
우울한 기분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어 
한방에서는 '반하후박탕'에 생강을 넣어
우울증 치료에 사용하고 있다. 
18. 몸 안을 깨끗하게 정화한다.
이럴 때 생강을 이용하면
혈액을 순환시켜 발한, 배뇨,
배변을 촉진, 독소를 몰아내
몸 안을 깨끗하게 정화시킬 수 있다.
이렇게 좋은 생강! 
특히 여성분들에게 정말 좋다고 하니
주위에 공유 많이 하셔서 함께 
건강한 삶 누리시길 바랍니다!
23년 8월 26일
6
6
가을걷이를 할 때입니다.
저한테도 가을걷이는 참 바쁘고,
힘들기도 했습니다.
저희집에는 76년까지 일하시는 분들이 두분 있었습니다.
그땐 시골에 농사좀 지으신 가정에서는 머슴이라고 하죠.
그분들을 한명을 두시고 농사를 하시는 농가도 있고요.
조금 많은 농사를 지으신 가정에서는 두명을 두시고 농사를 지으셨거든요.
저희집 사랑방에 한겨울이면 동네 머슴살이 하시는 아저씨들이 12명정도 와서 매일 같이 보내곤 했습니다.
겨울철이면 기나긴밤을 지내면서 새끼도 꼬고,
가마니도 짜고,
멍석도 만들곤 했습니다.
가끔씩 나이롱뽕이나 민화투를 치시기도 했습니다.
두부내기 화투죠.
조금 얻어먹는 재미로 졸린눈을 참으면서 시원한 두부한쪽에 김치걸쳐서 먹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가끔씩은 지붕에 닭가리에 감을 담아서 올려놓기도 했습니다.
익은 감홍시만 골라서 꺼내 먹기도 했습니다.
그 시절에 상머슴은 백미 90k15가마니를 작은 머슴은 10가마니를 새경으로 받았습니다.
담배는 매일 1갑씩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동네 담배를 갔다가 파시는 댁에 담배 나오는 날이면 매번가서 담배를 미리 사오기도 했습니다.
새경이란 1년동안 머슴살이 한댓가로 받은 임금이죠.
설과 추석에는 옷부터 신발까지 쪽 빼입혔고요.
어머니께서 광목으로 손수 한복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동네 미싱이 없어서 바느질을 해주시면 품앗시로 저희집 일을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1년 내내 머슴들 식사 준비하고,
새참 준비하고,
남의 식구 끼니 챙기는 것이 얼마나 힘드셨겠습니까?
제가 군에서 76년에 전역을 했습니다.
그 다음해부터 머슴들이 없어졌는데 어머니께서 그 많은 일을 도맡아서 하셨습니다.
몸은 피곤해도 마음이 편하다 하시네요.
남의 식구 삼시세끼  따뜻한 국물에 끼니 챙기시기가 많이 힘드셨나봐요.
머슴들 있을 때도 들일이며,
밭일을 많이 하셨는데,
끼니때 식구들만 있으니까 마음이 편하셨나 봅니다.
아버지께서는 교직에 계셔서 식사하시고 출근하시면 그만이시죠.
물론 근무 마치시고 일손을 돕기는 하셨죠.
그렇다고 저희집 논이 그리 많은것도 아니었습니다.
저희마을은 논1마지가 150평입니다.
그때는 경지정리도 안되었죠.
산밑에 다랑다랑 논도 있고요.
장구뱀이라는 장구를 닮았다해서 붙여진 논빼미 이름이죠.
천수답이 있어서 비가 내리지 않으면 모를 심지 못한 논도 있었습니다.
수렁논도 있어서 소로 쟁기질할 때 수렁을 돌아서 다니는것을 보았답니다.
수렁논에는 정강이까지 빠져서 모를 심지 못했습니다.
그 수렁논에서는 가을 추수가 끝나면 배가 누런 미꾸라지를 얻을수 있었습니다.
제일 큰 논이 두마지기 크기였으니까  300평쯤 되는 큰논이었죠.
모두 28마지기 정도로 기억됩니다.
작은 논빼미가 띄엄띄엄 논이 있었습니다.
논 갯수로는 20개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그때부터 저한테는 할일이 많이 생겼습니다.
제가 대전에서 교직생활을 시작했습니다.
79년 2학기때 전주로 옮겼습니다.
그때부터 주말마다 남원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군생활 할 때도 휴가를 농번기에 얻어서 모내기랑 가을걷이를 해드렸습니다.
좀 특수한 보직을 맡아서 모내기 할때랑 가을걷이 할때랑 1년에 두차례  20일씩 휴가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2모작을 할때입니다.
보리 베내고,
논 갈아서 벼를 심었죠.
그 얼마나 된다고 보리 이삭을 주었는지요?
가을에 벼가 누렇게 익으면 낫으로 베서 8주먹씩 묶어 가래로 논에 세워서 1주일정도 말리면 지게나 리어카로 집으로 실어 날라서 공상으로 벼타작을 했습니다.
금주말에 벼를 베어서 세우고,
다음주에 벼타작을 했답니다.
발로 밟아서 공상을 돌리다가 모터를 달아서 나락타작을 했습니다.
종일 사람손으로 타작을해서 밤에 풍구로 돌려서 지푸라기를 없애고,
깨끗한 벼를 광에 가득 쌓고,
밖에 종일 훌터낸 짚을 쌓아놓았습니다.
농사일 할 때 가장 소중한 소먹이와
마굿간에 넣어서 소똥과 오줌으로 범벅이되고 소가 밟으면 아주 좋은 퇴비가 되죠.
80년대 이전까지는 10월에 쉬는날이 많았었습니다.
1일 국군의 날.
3일 개천절.
9일 한글날.
24일 UN데이.
농번기 방학.
그때는 모내기 할때랑 가을추수할때 농번기방학을 실시했습니다.
또 제가 근무했던 곳이 여학교라서 김장방학 이렇게 쉬는날이 많았죠.
벼베고,
논에서 말린 벼를 비포장도로인데 리어카로 가득실고 집으로 실어 날라서 타작을 했습니다.
논두렁에 심은 메주콩을 걷어드리고,
산에 밤도 털어야 했고,
밭에 들깨도 베고,
고구마도 캐야 했습니다.
어느땐가는 13번을 남원을 다녀왔더니 가을걷이가 마치더군요.
10월부터 11월까지는 쉬는날이면 다녀왔습니다.
그때는 남원가는 직행 첮차가 6시15분차였습니다.
남원에서 내려서 고향 마을가는 버스가 7시반차가 있었습니다.
그차를 놓치면 1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종일 일하다가 고향에서 남원나가는 7시15분차가 막차였습니다.
남원에서 전주가는 차는 저녁9시 직행이 막차였습니다.
어머니께서 싸주신 보따리와 두자식들 데리고 전주에 도착하면 거의9시쯤 됩니다.
이렇게 열차례 이상을 다녀야 가을걷이가 끝났습니다.
한번은 어머니께서 참기름을 한병 주셨는데,
시내버스가 급정거를 하는 바람에 짐보따리가 떼굴떼굴 굴렀답니다.
어머니께서 쪽파사이에 넣어서 주셨는데도,
워낙 세게 부딪쳐서 참기름병이 깨져서 버스안에 고소한 냄새로 진동했던 일도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가고싶을 때 아무때나 나서면 다녀올수 있지만,
예전에는 참 복잡했습니다.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했기 때문에 챙길것이 많았죠.
차시간을 맞추는것이 제일 복잡했던것 같습니다.
아이들 어릴때는 더욱더 힘들었습니다.
지금도 이맘때면 마음이 바쁩니다.
아까워서 산에 알밤도 주어서 나누어야 하고요.
좋지 않는 대추지만 털어서 말려드려야 하고요.
하시지 마시라고 했는데도 들깨를 이곳저곳에 심으셔서 베서 널어 드려야 합니다.
또 겨우내 주무시는 방에 군불때시라고,
간간이 패놓은 장작과 쏘시개 나무도 가까이 옮겨드려야 합니다.
이래저래 가을 한철이 바쁠 것 같습니다.
오늘도 산에 떨어진 알밤을 주워왔습니다.
벌레가 많이 먹었지만,
작은집, 외가댁, 이모님네 나눔을 했습니다.
옛날 가을걷이가 불현듯 생각나서 올려봅니다.
다 아련한 추억거리인 것 같습니다.
모든것이 수작업으로 할 때라 힘들었다는 생각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11월 2일
6
-기업이념-
-사람과 자연을 이롭게-
안녕하세요.
지구촌 사람과 자연을 이롭게 창업한 "영신 바이오 101"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천연식물에서 추출한 친환경 미량 요소 복합비료를 개발 보급하는 회사입니다.
안전한 먹거리를 위하여 친환경 유기농을 추구하며 화학적 인공 물질을 사용하지 않고 천연 식물추출물에 정보처리화된 기능성 미량 요소 복합비료 하나로 농사에 도움 되는
"101그린 톡톡 "이라는 제품을 개발하였습니다.
"101그린톡톡 "을 통하여 오염된 땅과물 환경을 개선하여 지구촌 사람들 모두의 식탁에 안전한 먹거리 공급에 작은 보탬이 되고자 제품을 출시하게 되었습니다.
현장에서 생산에 몰입하는 농민에게는 생산성과 수익성을 상승시켜드리고 식탁 위의 소비자에게는 안전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약속합니다.
농민과 고객이 모두 만족할 때까지 열정적인 노력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스마트팜에서 개인의 작은 텃밭까지 신농업의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회사 "영신바이오 101"은 보다 나은 환경과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Q&A
질문1:그린톡톡101의 주요성분은 무엇입니까?
식이유황.비타민.유기산.식물성아미노산외등등
(모든 성분들이 사람이 먹을수 있는 건강기능식품 원료로만 만들어져 있으며 각 공정마다 정보처리화 기술이 적용되어 효능의 증폭기술과 20배 압축공법으로 소량만의로도 식물의 빠른성장촉진과 크기.생산량증대.식물의 재배후 유통기한증대 농업의 편리화로 생산원가 절감을 획기적으로 할수 있는 제품입니다.
질문2:유기성비료의 적합한 토양은?
한국에서 테스트 결과 모든 토양에 적합하며
산성토양.알카리성토양.염류장애가 있는
토양을 농사가 잘 되는 자연 친화적 원래의 토양
으로 환원시켜주며 이 그린톡톡101을
사용할 경우 매년 토양에 농사를 짓더라도
토양의 지력을 떨어뜨리지 않아 농사의
지속가능한 생산성을 이룰수 있습니다.
질문3)
이 제품은 뿌리.엽면 어디에 해당하는 제품읽ㆍ요?
그린톡톡101은 멀티 제품입니다.
뿌리.잎.줄기. 어디에나 놀리운 영향을
주며 엽면시비만 해도 되나 관주(뿌리)까지
하게 될 경우 놀라운 효과를 보실수 있습니다.
질문4)
PH의 농도는?
물에 희석해서 사용할 경우 PH농도는6~7정도 됩니다.
질문5)
이 제품은 기타 비료와 같이 써도 되는지?
그린톡톡101은 기타 시중에 나와있는
농약.균제.충제.비료.미생물제.거름등과 혼용해서  쓸수 있습니다.
다만.주의하실 사항은 혼용전 소량
TEST해서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그린톡톡101만 사용하셔도 원하시는
결과를 달성할수 있습니다.
질문6)이 제품의 핵심적인 특징은?
그린톡톡은 소량의 분말 형태로써
원료성분들이 모두 식용이며  농약은
사람을 병들게 하지만 그린톡톡101로
키운 농작물을 드시게 된다면 무농약에
친환경으로 키울수 있어 인간의 식생활에
획기적인 개선이 가능하며 토양과 자연을
복원할수 있는 제품입니다.
또한.농민들에게 농약.비료 살포시
사용하던 방진마스크와 방진복을
벗게 할수 있으며 수확된 농작물은
각각의 고유의 맛과 향을 느끼실수 있으며
생산량의 획기적인 증가로 농민들에게
큰 도움을 줄수 있는 제품입니다.
농사지으시다가 목이 마르면 그린톡톡
한잔씩 드셔도 됩니다.
또한.그린톡톡101은 1200여가지 영양소가 들어있어. 토착미생물의 풍부한 먹이가 되며 토착미생물의 번식과 활동을 증폭하는 역활을 합니다만. 콩벌레.달팽이.굼뱅이.지네등은 그린톡톡을 500:1에  희석한 용액에 살포되면 산화되는 것을 확인할수 있었습니다.
벌을 활용하는 경우 날아다니다 살포되면 죽을수 있으니 벌집에 들어오는 시간이후 문을 닫고
사용하시면 되며.그린톡톡101이 잎에 묻은
액상을 벌이 먹어도 무해합니다. 
질문7)
그린톡톡101은 수용성인가?
예.수용성으로써 물에 1000:1비율로
희석해서 사용하는 제품이며
잔류물 없이 희석하면 모두
분해되어 물에 희석됩니다.
제일 처음 농작물에 사용할때는
반듯이 1000:1비율로 식물이 적응할수
있게 하시고 병충해가 왔을경우나  식물의 성장속도 수확시 당도등을 높이시고 싶으면
500:1로 비율을 조정해서 사용하면
빠른 효과를 보실수 있으며 5일~7일
간격으로 엽면시비와 관주를 병행하시기를
권장하나 비용이 부담스러우면 엽면시비만
하셔도 무방합니다.
※사용시 주의하항
1회 살포시 흠뻑 충분히 살포하시되
잎에 액상이 마르기전 반복살포를 하시면
영양과다로 잎이 타들어가는 약해를 입을수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라며 위와 같은 상황
발생시 맑은물로 씻어 내셔야 합니다.
또한.그린톡톡101을 희석해서 사용후
24시간이내에 모두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사용후 남은 용액은 토양에 뿌려주시면 됩니다.
천연성분이라 희석액이 시간이 지나면
효능에 차이가 있을수 있으며 세균번식이 됩니다.
대산 당근농가 사진 첨부
합니다.
늦게 만나셔서
그린톡톡3회 엽면시비
하셨다합니다.
그렇지만 차이가 조금 있지요?
이웃추가 하시면 자료들
계속 업데이트 하겠습니다.
맛점하세요~
23년 5월 18일
4
Farmmorning
✊지난 주 세상을 떠나신 “자연환경 먹거리 생산협회” 연구소장께서 남기신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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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치유농법(自然治癒農法)


자연치유(自然治癒)
농법(農法)

자연치유(自然治癒)는
"인위적인 치료를 하지 않고 신체의 회복 능력을 북돋워 질병이 저절로 낫거나 몸이 회복되도록 하는 일" 이라는 뜻 입니다.

농법(農法)의 뜻은
"농사를 짓는 방법" 입니다.

필자가
지난 3년동안 농업현장을 살피면서
"에너지 순환농법"을 정리하며
글도 쓰기도 하였습니다.

최근 필자와
이념이 비슷한 동역자와 융합하게 되면서
충북 옥천에서
"자연치유 농법" 세미나를 시작으로
"한국 자연환경 먹거리 생산협회"를
설립하여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함께 길을 걸어가야 하기에
필자가 지난 3년간
"에너지 순환농법"으로 사용한 명칭을
"자연치유 농법"이라는 명칭으로
하나의 뜻으로 전환 하기로 하였습니다.

지난 몇주간
농업현장을 살피면서
"자연치유농법 " 이 어떤 것일까?
뇌리에 떠나지 않으며
많은 생각속에 머물기도 하였습니다.

인위적인 치료를 하지 않고
작물의 회복능력을 북 돋어
질병을 낮게 하거나
작물이 본래의 생명력으로
에너지 가득한 소출물을 생산하도록
돕는 농법은
어디에서 출발 하여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쉽게 정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나
작물이나
유전 정보속에 간직하고 있는
본래의
면역력(免疫力)을 어떻게 하면
잘 발현 시킬수 있는지?
많은 시간을
질문과 해답속에 머물기도 하였습니다.

대자연은 항상
생명을 살리는 상생(相生)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필자는
직접적으로 농업에 종사하지는 않았으나
자연에너지 가득한 농산물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것이고
사람에게 유익한 물질은
작물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은 항상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질의 육(肉)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하루 2~3끼 농축산물
천기농축액 물, 공기,등의 물질 에너지를
보충해야 생명활동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작물도
같은 물질의 에너지가 필요한 것 입니다.

햇빛
맑은 공기
깨끗한 물
에너지 가득한 영양대사 물질이
본래의 면역력을 높여
건강한 생명활동을 유지할수 있게 하듯이
사람이나
작물이나
필요물질은 같다는 생각 입니다.

"자연치유 농법"에 적용되는
모든 자재는
비료허가에 필요한
최소 미량 첨가 미네랄을 제외하곤
나 자신부터 마음 놓고 먹을수 있는
재료를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작물을 재배하는
농업현장을 돌아보면서
필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첫째가 환경이고
두번째는 사용하는 물이고
세번째가 작물에 영양물질 입니다.

현재의 관행 농업현장에서는
영양물질에 우선 순위를 두고 있는 부분에
늘 안따까운 마음입니다.

작물의 대사 활동의 50%이상인
토양의 환경은 보이지 않기에
소홀하게 생각 하는 것 같습니다

모든 생명활동의 근본인
천기 농축액 물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영양대사 물질에 우선적으로
집중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자연치유농법"의 핵심은
3가지로
천연물질을 사용한 재료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첫째
토양 작물 뿌리부 환경을 좋아지게 하는
물질

둘째
사용하고 있는 물을
용존산소가 풍부하게 변환하여
생리활성 미네랄을 융합하여
작물의 생육을 도와주게 하는 물질

셋째
작물이 건강하게 잘 자라며
에너지 가득한 소출물을 생성할 수 있게
흡수가 잘 될수 있게
발효시킨 천연 대사 영양물질

이 3가지 재료만을 사용하여
화학비료, 농약 없는 농산물을
기존 관행농법보다
많은 소출량도 늘리고
농업활동에 일손도 줄이는
방법을 구현해 나가고 있습니다

작물별
농가별(시설농가, 노지 등) 환경은
모두 다릅니다.

태초 먹거리에 가까운
자연에너지 가득담은
고에너지 농산물을
눈에 보기도 좋으면서
소출량도 증가 시킬수만 있으면
그것도 애 많이 쓰지 않고
할 수만 있다면
농민분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농업에 종사하는 것이
즐겁고 보람된 일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속에 잠겨봅니다.

이렇게 시현되는
농가가 늘어가게 되면
자연도 살리게 되고
건강한 자연환경에서 수확한 농산물로
건강한 몸을 만들어 가게 되면
자연과
사람이
공생(共生)과 상생(相生)으로
스스로 자연치유(自然治癒)가 가능한
"자연치유농법"이 정립될수 있다는 확신에
오늘도 아직은 다소 멀게 느껴지는
생명살리기 사명에 한걸음 발자욱을
남겨 보려 합니다.

함께 하면
조금 더 빠르게
생산자인 많은 농민들이 함께 할수 있기에
아직은 부족하지만
전국 20여곳에 함께 참여하는
"자연치유농업" 전도사 분들이 있어
고마운 마음 전해봅니다.

올 한해는
"자연치유농법"의 시스템속에
많은 농민분들이 함께 해
웃음 가득 머금은
진짜 농민이 많이 늘어나길
두손모아 기원해 봅니다.

자연의 이치와
삶이 함께 아름답게 공존하는
농사의 도를 의미해 보며
순리의 삶의 의미를 헤아려 봅니다.

농사는 24절기 즉,
기후의 변화를 알아야하고
봄 . 여름 . 가을 . 겨울 이라는 계절의 변화를 알아야 하는 것이었으므로

농사를 지으면
굶지 않고 잘 먹고 잘 살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려는 의도가 아니고
심은 만큼 거두게 하여 하늘과 땅의 진리를 깨닫게 하려는
우리 조상님의 지혜가 담긴 글이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입니다.

그러므로 농자의 도(道)를 천하에 최고로 큰 도(道) 라하여
대본야(大本也) 라고 한 것입니다.

3월의 꽃샘추위가 내어 뿜는
아직은 아침 저녘으로
차가운 봄 바람에
대자연이 내어 주는 숨결을 느끼며
농자의 도(道)의 의미를
마음 속 깊이
다시 한번 되 새겨 봅니다.
23년 9월 4일
8
8
Farmmorning
첫 사 랑
(신춘문예 최우수작)
첫사랑이 그리운 아침이다. 밤새 내리는 빗소리에 잠을 설쳤는지 주방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리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다소 이른 시간인데도 아내는 벌써 일어나 아침밥을 짓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는지 오늘따라 밥 짓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애들 둘이 결혼을 해 다 나가고 우리 부부만 살다보니 나는 안방에서 자고 아내는 거실에서 잔다. 각자의 곳에서 좋아하는 텔레비전 프로를 누워서 보다가 따로따로 잠들고 깨는 시간도 다르다.
우리 부부는 밥을 먹는데도 식탁을 마다하고 거실에서 가부좌를 틀고 텔레비전을 보면서 먹는다. 아내도 나도 말 없이 밥만 먹다가 가끔씩 고개를 들어 텔레비전에 나온 사람들의 얼굴을 본다. 늘그막이니 아내와 별로 할 말도 없기에 방송을 봐가면서 밥을 먹으니 서먹하지 않아 좋다.
마침 방송에서 노인들을 상대로 하는 ‘늘 푸른 인생’이란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었다.
키가 작은 유명한 사회자가 나와 시골에 사는 칠 십 된 노인 부부에게 물었다.
“다시 태어나면 지금의 아내와 또 결혼 할 거예요?”
남편이 잠깐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래야지. 다른 여자라고 별수 있겠어. 그래도 살아본 여자가 좋지.”
사회자가 반대로 아내에게 물었다.
“다시 태어나면 지금의 남편과 다시 결혼할 거예요?”
그러자 아내는 사회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 손을 내저으며 경악을 한다. 절대로 지금의 남편과는 결혼을 안 한단다.
사회자가 왜 그러냐고 묻자 대답이 걸작이다. 어디 가서 어떤 놈을 만나도 지금의 남편보다는 나을 것 같다는 것이다. 방청객 모두가 배꼽을 쥐고 웃었다.
나는 밥을 먹는 아내를 슬쩍 곁눈질로 보다가 이내 물었다.
“당신은 어때?”
“나도 저 할머니와 똑 같아.”
아내는 주저하지도 않고 단숨에 대답했다.
혹시나 했던 나는 아내의 말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먹던 수저를 놓으며 언성을 높였다.
“내가 살아가며 뭘 그리 잘못을 했다고? 저 할머니처럼 다시 태어나면 나를 개비한다고?바꿔봤자 별수 없어. 고르고 고르다 뉘 고르고 말테니까.”
벌떡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가자 아내가 뒤에 대고 구시렁거렸다.
“그깟 농담도 못 받아들이고 꼭 밴댕이 소갈딱지 같으니라고....! "
농담이라는 말이 살짝 들렸으나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안방에서 아내의 진심이 뭔지를 생각하다 출근 준비를 마치고 나오면서 힐끗 아내를 쳐다봤다. 눈이 마주치자 아내는 예전과 별 다름이 없이 우산을 챙겨주었다.
오늘이 아내 생일이라는 걸 미리부터 알고는 있었다. 그런데 그 놈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다 망쳐놓은 것이다. 저녁에 외식을 하자고 하려다 아까 한 말이 괘씸해 그냥 나왔다
학교에서 수업이 끝난 후 애들을 돌려보내고 책상에 혼자 앉아 있자니 하루 종일 내리는 비에 몸이 선득거렸다. 이제 올해만 지나면 평생을 다니던 직장에서 정년을 맞는다. 서글픈 마음에 커피 한 잔을 타 마시며 빗줄기를 바라보고 있자니 옛 추억이 활동사진마냥 펼쳐졌다.
진한 커피향이 코끝에 와 앉으니 마음까지 차분해졌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아내 말고 다른 여자는 알 틈도 없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한마디로 첫사랑과 평생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아내와 나는 똑같이 교육도시라 불리는 공주 금강 가에서 살았으나 서로의 동네는 좀 떨어져 있었다. 우리가 만날 당시 나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고 아내는 중학교 3학년이었지만 처음부터 서로 아는 사이는 아니었다.
72년 6월 6일 현충일 날이었다. 공휴일이기에 집에서 예비고사 공부를 하다가 심난한 마음에 금강가를 걷고 있었다.
그 때만해도 공주의 금강은 이름 그대로 비단을 펼쳐놓은 듯 물이 맑고 아름다운 강이었다. 그 해에는 날이 가물었기에 물이 강 전체로 퍼져 흐르는 것이 아니라 강가 한쪽으로 몰려 흐르고 있었다. 그러니 강 가운데는 넓게 모래톱이 생겼고 강가로 흐르는 물은 깊어 사람이 건너 모래톱에 갈 수는 없었다.
‘공부하기 지겨운데 저 백사장에 발자국이라도 찍으며 걸어봤으면 좋겠다.’
예나 지금이나 고 3은 공부에 지쳐 있었다. 그래서 잠시 아름다운 마음을 먹으며 강가를 걷고 있을 때였다.
“누구 없어요? 사람 좀 살려주세요.”
강가 바위에서 빨래를 하던 아주머니가 목이 터져라 외치고 있었다. 내가 언덕 밑으로 달려 내려가 보니 물속에 사람 하나가 빠져 몇 번인가를 솟구치더니 다시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여자의 산발된 머리가 맑은 물속에서 훤히 보였다.
순간 두려움과 함께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물에 빠진 사람 건지려고 들어갔다가는 둘이 같이 죽는다.’
금강이라는 물가에 살았기에 어려서부터 엄마가 주의를 주려고 늘 하던 말이었다. 그렇다고 수영을 할 줄 아는 내가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망설일 수는 없었다.
더구나 옆에서 애타는 엄마의 절규에 못 이겨 나는 엉겁결에 물 속으로 뛰어들었지만 이내 후회하고 말았다.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더니, 나를 붙잡고 늘어지는 여자애의 힘을 도저히 이겨낼 수가 없었다.
이제는 여자애를 살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살아야 했다. 내가 살기 위해 여자애를 떼어내야 했는데 도저히 떼어낼 수가 없었다. 하는 수없이 그녀를 끌고 헤엄쳐간 곳이 바로 강 가운데에 드러난 모래톱이었다.
뛰어 들어간 쪽으로는 물살이 너무 세 도저히 나올 수가 없었다. 모래톱으로 나간 나는 너무 지쳤기에 한참을 백사장에 누워 있었다.
그러나 반대편에서 지르는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옆을 보니 여자애가 누워있었다. 하얀 블라우스는 물에 젖어 속살이 훤히 비쳤으나 여자애는 정신을 잃고 있었다.
“학생, 가슴을 누르고 안 되면 입을 맞춰 인공호흡이라도 좀 시켜 봐.”
건너편에서 외치는 어른들의 질책에 못 이겨 여자애의 봉긋한 가슴에 손을 대보니 왠지 내 가슴이 먼저 뛰었다. 가슴을 몇 번 누르다 이번엔 입을 맞추고 숨을 몰아넣었다.
처음 시작할 때만 묘한 기분이 들었지, 여러 번 가슴을 누르고 입을 맞추다보니 처음의 기분은 온데 간데 없고 오직 사람을 살려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한참만에 여자애가 눈을 떴다. 그리고는 창피한지 본능적으로 풀어진 블라우스를 여미며 수줍어했다.
나는 그녀를 데리고 건너편으로 가기 위해서는 강 가운데 백사장을 걸어 아래쪽으로 한참을 내려와야 했다. 아래쪽은 강물이 넓게 흘러 정강이에 닿을 정도였으니까 쉽게 건널 수 있었다.
조금 전 생각대로 하얀 백사장에 둘만의 발자국이 찍혔다.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닌 듯했다.
하늘에는 하얀 백로 한 쌍이 날며 내릴 곳을 찾고 있었다. 주변에는 사람소리 하나 없이 고요했다. 여자애는 말없이 내 뒤를 따랐다.
“너 몇 학년이니?”
“중 3이에요.”
고 3이었던 내가 그날 중 3이었던 그 애와 한 말은 그것이 전부였다.
다만 강 한가운데 드러난 모래톱에 둘만의 발자국을 찍으며 힐끔힐끔 그 애를 보니 조금 전 죽음을 눈앞에 두었던 때와는 딴판으로 예뻤다.
그런 일이 있은 후 학교에 갈 때면 누군가 나를 지켜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이 여러 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와 나는 눈이 마주쳤다.
“너는 그 때 금강에서?”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이 예비고사날이잖아요. 시험 잘 보세요.”
그녀는 찹쌀떡을 건네주고 총총히 사라졌다. 그녀의 응원 덕분이었는지 예비고사에 합격해 나는 대학생이 되었고 그녀는 고 1이 되어 있었다.
그녀의 고등학교와 우리 대학은 같은 동네에 있었으니 우리는 오고가면서 가끔씩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중 3일 때보다 많이 성숙해 있었고 더 예뻐진 것 같았다.
그렇게 오다가다 한 번씩 만나다보니 언젠가부터 그녀가 내 마음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한번 만나자고 해볼까? 그래도 대학생이 어찌 고등학생을…….’
대학생이 고등학생과 어울린다는 건 어쩐지 격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망설이다가 시간만 지나고 말았다. 나는 그렇게 소망과 현실의 괴리를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리고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충남의 시골로 발령이 나 3년의 세월이 흘렀다.
3월의 첫 출근날 신임교사의 인사가 있었다.
이제 겨우 교사 3년차인 나는 신규 발령을 받아 온 여선생님의 예쁜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공식적인 인사가 끝나고 오후에 그녀가 우리 교실을 찾았다.
“선생님 댁이 공주시지요?”
“그걸 어떻게 알아요?”
“저 모르시겠어요? 미선인데요.”
나는 처음 본 여자이고 처음 들어본 이름인데 그녀는 나를 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자신을 모른다고 하자 여간 실망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자 그녀는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었다. 중학교 3학년 때 금강에서 빨래를 하다 물에 빠진 자신을 건져준 남학생이 있었다고 했다.
소녀는 자신을 살려준 그 남학생이 그리 믿음직스러울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 후 그녀는 그 남학생을 한 번이라도 보고싶어 학교 가는 길목에서 기다린 적이 수도 없이 많았다고 했다.
어쩌다 그 남학생을 멀리서라도 보는 날이면 마치 자신의 몸이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지금이야 10살이 넘어도 부부가 되지만 당시 중 3과 고 3의 간격은 너무나 컸다고 했다. 그러니 자신은 감히 그 남학생 앞에 얼씬거릴 수가 없었다고 했다.
한 해가 지나자 차이는 더 벌어져 남학생은 공주교육대학의 대학생이 되었고 자신은 겨우 고 1이라서 그냥 애만 태우며 남학생을 지켜볼 뿐이었다고 했다.
친구들이 다른 고등학교 남학생 이야기를 하며 수다를 떨어도 자신의 귀에는 한마디도 들리지 않았단다. 오직 자신을 살려준 그 남학생 생각뿐이었단다.
그렇게 혼자 짝사랑으로 애를 태우며 남학생을 지켜본 지 얼마 후 남학생은 훌쩍 공주를 떠났다고 했다.
2년제였던 공주교육대학을 졸업한 후 발령을 받아 서산의 어느 초등학교에 선생님으로 근무한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 남학생을 만나려면 자신도 공주교대에 입학을 해야 했다고 생각했단다. 그래서 죽어라고 공부를 했단다.
결과 공주교대에 입학했고 주위의 친구들이 미팅이다, 연애다 희희낙락해도 자신의 마음은 오로지 한 곳에 꽂혀 있었다고 했다.
비록 짝사랑을 하는 처지였으나 사랑하는 남자를 두고 다른 남자를 만난다는 것은 불결하다고 생각한 것이 바로 자신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운명이란 참 묘한 것이라고 했다.
자신이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초임으로 발령을 받아 부임한 곳이 바로 여기이고 그곳에는 첫사랑인 내가 있었다는 것이다.
“아니 그럼 그 때 중 3이었던 학생이 바로 선생님?”
풋풋한 중학교 때 얼굴과 성인이 되어 화장품으로 덧칠해 놓은 얼굴은 딴판이었으니 알아 볼 수 없었다.
예전에 이름을 묻지도 않았으니 당연히 이름도 몰랐었다. 또 대학 1학년과 고 1의 간격이 자랄 때는 무척 컸었다. 그러나 어른이 되자 3년의 간격은 그깟 것이었다.
‘물에 빠진 사람 건지려고 물에 들어가면 같이 죽는다.’
엄마 말씀 또한 맞는 말이었다.
나는 물에 빠져 죽기 살기로 매달리던 그녀에 코가 꿰어 40여 년째 같이 죽고(?) 있으니 어른들 말씀 새겨들어야 하겠다.
추억의 실타래를 다 걷고 나자 결혼 당시 아름답던 미선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수화기를 들었다.
“오늘이 당신 생일이잖아. 어디 분위기 있는 곳에 가서 둘이 저녁이나 먹자고!”
식당에 나타난 아내의 블라우스 한쪽이 다 젖어 속살이 비쳤다.
“예전 물에 빠졌을 때처럼 섹시한데?”
그러자 아내가 눈을 하얗게 흘기며 환갑이 넘어 주책을 떤다고 핀잔을 했다.
“애들이 올 때마다 우산을 다 가져가서 우산살이 2개나 부러진 것을 쓰고 와서 그래요.”
우리는 저녁을 맛있게 먹고 밖으로 나와 우산을 찾았다.
“누가 내 우산을 바꿔갔네.”
아내가 식당 주인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자, 손님도 다 가고 없는데 그냥 남은 것을 쓰고 가라고 했다.
그러자 아내는 뛰면서 좋아했다.
“앗싸. 새 우산으로 바꾸겠구나.”
식당을 나온 아내가 우산을 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아내가 바꿔온 우산은 살이 거의 다 부러져 한쪽으로 완전히 처지는 것이었다.
도저히 쓸 수가 없었다. 아내는 화를 내며 우산을 땅바닥에 내 팽개쳤다.
“조금 전 내 우산은 그래도 살이 2개밖에 안 부러졌는데...”
아내는 발을 동동 굴렀다.
“아니, 더 좋은 우산으로 바꿨다고 입이 찢어지더니, 그것 봐! 바꾸면 더 좋을 줄 알았지? 결국에는 뉘를 고르잖아. 그러니까 첫사랑을 믿고 내세에도 그냥 나랑 결혼해. 텔레비전에 출연했던 할아버지 말처럼. 그래도 살아본 놈이 더 낫지 않을까?”
나의 끊임없는 잔소리에 머쓱해진 아내는 하는 수 없이 내 우산 속으로 기어들어오더니 나를 꽉 잡았다.
예전 물속에서 나를 놓으면 죽는다는 듯 붙잡고 매달리듯이...
나는 소녀를 안고 백사장으로 기어오르듯 아내를 꼭 껴안았다.
몇번을 읽어도 가슴 따뜻한 얘기입니다.
잘 익은 인생을 표현하여 독자 모두가 소소한 행복을 공유하기를 바라는 문학작품으로 널리 소개드립니다...♡
2월 17일
21
13
벌써 또 한해가 저물어 갑니다. 각자 지니고 가는 삶의 깊이에 따라 인식되고 체감되는 정도로 참으로 다양하다는 것을 더욱 깊이 느끼게 됩니다. 흐르는 시간 속에 내가 왜 그랬을까? 꼭 그래야만 했을까? 등등 아쉽고 후회스러운 생각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아집에 사로잡혀 내가 맞고. 내가 옳다고 해 버립니다. 남을 원망하고 불편하기도 하고 일이 잘못되어 꼬이고 괴롭기도 합니다. 시간이 흘러 세월의 뒤안길에서 알았던들 이미 때는 늦기도 합니다. 그때는 왜 몰랐을까? 알고 있었는데 왜 그랬을까? 질책 후회 반성을 통해 자신을 키워 나갑니다. 좀 더 일찍 깨달아 일상생활을 해 나간다면 우리의 삶을 좀 더 행복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앞으로 1년간 우리나라 경제는 어떨 것 같습니까?라고 한국갤럽이 물었습니다. 응답자들 중 18%는 좋아진다, 56%는 나빠진다고 응답, 나빠진다는 의견이 압도적 다수였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1년 귀댁의 살림살이는 어떨것 같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역시 좋아진다가 15%, 나빠진다가 32%로, 살림살이가 나빠질 것이라 판단하는 사람들이 좋아질것이다라고 판단하는 사람들보다 2배 이상 많았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응답자들을 정치성향별로 나눠보니까 중도나 진보들은 전체 의견보다 더 비관적인 반면. 보수만 그래도 국가경제가 좋아질 것이라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고. 특히 자신의 살림살이가 좋아질 것이다 23%, 나빠질 것이다 20%로 나타났습니다. 정치성향별로 따지면 유일하게 본인들 살림살이는 그나마 좋아질 것이라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이게 진짜 현실이 그런걸까요, 아니면 본인들 소망만 그런 걸까요. 알수는 없습니다만, 여하튼 조사결과로만 보면 앞으로 점심, 저녁, 밥값, 술값 낼때는 가장 보수적인 분들이 내는 걸로. 살림살이가 좋아지는 유일한 집단이라고 스스로 인정했으니까요. 그러면 그나마 좀 공정해질 것 같습니다.
한국 경제가 2030년대부터 0%대 성장하고, 2040년대에는 마이너스 성장할 것이라는 한국은행의 보고서가 최근 나왔습니다. 인구는 감소하고, 중국과의 무역도 과거같지 않고, 미국은 자국 이기주의로 압박하고, 가계는 부채에 허덕이고 있는데, 정부는 우리 허리띠를 졸라매자 긴축재정을 주장하면서도 법인세 인하, 종부세 인하를 통해 특정 계층의 세금은 깎아주고, 특혜보금자리론이나 청년주택드림대출을 통해 지금 가격에 빚 내서 집 사라 집 사라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돈 안 쓸테니 각자도생하라, 그러나 이념적으로 자유가치동맹하라, 최대의 무역 파트너 중국과는 차차 멀어져라, 그러나 돈은 벌고 생산성은 높이고 아이들도 많이 낳고 소비도 좀 하고 집은 사라는 게 윤석열 정부의 바람인 것 같습니다. 바람대로 됐으면 좋겠습니다만 너무 일방적입니다. 국민들은 삶 자체가 힘들거든요. 생산성 높이고, 결혼하고, 집 사고, 아이 낳고, 아이 키우는 거 모두 다 국민 몫입니까? 공공의 영역은 없나요? 국가는 뭘 합니까?
재벌들 불러서 폭탄주나 돌리고 떡볶이나 먹이는 게 경제 살리기는 아니잖아요. 나라가 정말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건지 모르겠네요. 경제 살릴 방법이 없다면, 윤석열 대통령 본인 그리고 김건희 여사의 행실에라도 신경 쓰는게 낫지 않을까요? 대통령하면 떠올려지는게 명품백이나 폭탄주라면. 그거 볼 장 다 본 정권 아닌가요?
오늘도 사람으로 사람들과 사는날 말랑말랑한 뇌와 관점의 감성으로 전등이 등불을 전합니다.🌈
12월 19일
2
https://band.us/band/52070855/post/1266279969
★ #신소득아이템2 ★
인간은 늘 목말라 하며.
지금 보다는 더 나은 삶을 추구 하고자 발버둥치고
노력하며 욕심을 부려 왔습니다
열심히 사는것은 좋은일 이지만 욕심은 때로 큰
화를 불러오기도 했지요.
이번 글은 농업분야에 관한 글 입니다.
먼저1편 하고 연계성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어느정도 마진을 보고
사업하십니까?
다양한 산업중에 마진없이 사업하는 경우는
없읍니다.
사업이란 이윤을 추구하고자 하는것 이니까요.
그런데, 과연 네가 하는 사업이 원하는만큼 이윤을
남기고. 남길수있는 사업 인가요?
아이러니 하게도 많은 사업가에게 물어보니
목표는 있지만 허구헌날 적자랍니다
물론 사회적인 다양한 요소가 적자를 불러잃으킨것도 있지요.
여기서 우리는 깨닫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사업 아이템 선정이 잘못 되었다는것을요.
아이템선정 당시 충분히 검토 해 봤겠지요?
그런데도 적자가 나는것은 바로 아이템 선정이
잘못 되었다는것이지요. 어떻한 변명도. 핑계도
누가 보상하여 주지않습니다.
저는 모든 강의에서 제 수업의 수강생 들께 수없이 말 합니다.
투자는 적게. 부가가치는 최고로...
누구나 쉽게 공감 하지요.
누구나 돈 적게들이고 많은돈 벌고 싶지요.
하지만 누구나 실천. 가능은 하지 않습니다.
바로 아이템선정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딱 맞는 아이템을 찾아놓고도 계산기 두드리며 이 핑계 저 핑계 되며 망설이다 결국
포기하는... 여기서 성공하는자와 실폐하는자 가 나뉩니다.
서론이길어 본론 으로 들어가서
100원 투자해서 1000원버는 사업이 있습니다.
돈 있다고 되는것은 아닙니다. 마진이 높을수록
기술이 있어야 합니다.
즉 반도체. IT. 등 을 예를 들수있겠지요.
산업중에 표준마진표 라는 것이 있습니다.
업종별로 표준마진이 다를수 있습니다 만.
10원투자해서 1000원버는 사업도 있습니다.
누구나 아는 사업인데도 아무나 할수 없고 특정인만 해 먹을수있는 사업이지요.
오늘 여기서 하고자 하는 말은 바로
#100투1000수
#100원투자해서1000원버는사업 이
#종자육묘사업 입니다
우리나라에 종자회사는 전부 외국계 회사입니다.
IMF때 외국으로 전부 넘어 가버렸지요.
종자(원예작물. 화훼작물.목본류. 초본류. 등) 도 90% 정도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육묘도 10~20% 정도 수입을 해마다 하고 있지요. 참으로 안타깝다 안할수 없읍니다.
다행이도 아직은 우리나라. 토종이나 자생종은
해외 유출이 그리많지 않기때문에 다행중 다행이지만 그동안 수십종이 해외로 반출되어 우리것을 빼앗겨 버린것이 안탑갑기는 합니다.
지금이라도 육묘기술을 익혀 토종. 자생종을
활성화 시킬 필요를 느낍니다
앞서 정원산업이 활성화 된다는 전제하에
지금이야 말로 토종. 자생식물 육묘사업을 할때입니다
기존의 육묘업체는 대다수 원예작물모종과
초화류(화훼) 또는 조경수용 뿐입니다..
틈새시장이며 시장이 아주큰 시장 입니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문은 열려있고 들어가면 되는것 입니다.
#육묘사업 중
1)씨앗(종자)으로 번식하는것
2)종자(구근)으로 번식하는것
3)삽목을 하여 번식하는것
4)접목을 하여 번식하는것
5)뿌리 로 번식하는것. 등
#유성번식 과 #무성번식 을 통해 식물을 번식하는것이 #육묘사업 입니다.
나의 재정능력 과 시간. 기술을 검토하여 최소
비용으로 시작할수 있는 사업입니다.
또한 투잡. 재택사업도 가능한 사업 이기도 합니다.
시장성은 무궁 합니다.
전국농가. 화훼전문점. 온. 옾라인판매.
도. 소매. 기업. 관공서. 가정. 개인 등
무궁무진 합니다.
장문의 이글을 읽으신 여러분은 행운이 벌써 따른것 입니다.
상담신청은 방문 또는 문자로 댓글. 일창으로 간략하게 주시면 연락드리겠습니다
다음 연제글은 ★ #신소득작물선정 ★ 에
관하여 올려 드리겠습니다.
#사단법인한국약용작물산업교육협회장
김 종 군 드림
23년 2월 12일
3
★ #신소득아이템2 ★
인간은 늘 목말라 하며.
지금 보다는 더 나은 삶을 추구 하고자 발버둥치고
노력하며 욕심을 부려 왔습니다
열심히 사는것은 좋은일 이지만 욕심은 때로 큰
화를 불러오기도 했지요.
이번 글은 농업분야에 관한 글 입니다.
먼저1편 하고 연계성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어느정도 마진을 보고
사업하십니까?
다양한 산업중에 마진없이 사업하는 경우는
없읍니다.
사업이란 이윤을 추구하고자 하는것 이니까요.
그런데, 과연 네가 하는 사업이 원하는만큼 이윤을
남기고. 남길수있는 사업 인가요?
아이러니 하게도 많은 사업가에게 물어보니
목표는 있지만 허구헌날 적자랍니다
물론 사회적인 다양한 요소가 적자를 불러잃으킨것도 있지요.
여기서 우리는 깨닫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사업 아이템 선정이 잘못 되었다는것을요.
아이템선정 당시 충분히 검토 해 봤겠지요?
그런데도 적자가 나는것은 바로 아이템 선정이
잘못 되었다는것이지요. 어떻한 변명도. 핑계도
누가 보상하여 주지않습니다.
저는 모든 강의에서 제 수업의 수강생 들께 수없이 말 합니다.
투자는 적게. 부가가치는 최고로...
누구나 쉽게 공감 하지요.
누구나 돈 적게들이고 많은돈 벌고 싶지요.
하지만 누구나 실천. 가능은 하지 않습니다.
바로 아이템선정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딱 맞는 아이템을 찾아놓고도 계산기 두드리며 이 핑계 저 핑계 되며 망설이다 결국
포기하는... 여기서 성공하는자와 실폐하는자 가 나뉩니다.
서론이길어 본론 으로 들어가서
100원 투자해서 1000원버는 사업이 있습니다.
돈 있다고 되는것은 아닙니다. 마진이 높을수록
기술이 있어야 합니다.
즉 반도체. IT. 등 을 예를 들수있겠지요.
산업중에 표준마진표 라는 것이 있습니다.
업종별로 표준마진이 다를수 있습니다 만.
10원투자해서 1000원버는 사업도 있습니다.
누구나 아는 사업인데도 아무나 할수 없고 특정인만 해 먹을수있는 사업이지요.
오늘 여기서 하고자 하는 말은 바로
#100투1000수
#100원투자해서1000원버는사업 이
#종자육묘사업 입니다
우리나라에 종자회사는 전부 외국계 회사입니다.
IMF때 외국으로 전부 넘어 가버렸지요.
종자(원예작물. 화훼작물.목본류. 초본류. 등) 도 90% 정도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육묘도 10~20% 정도 수입을 해마다 하고 있지요. 참으로 안타깝다 안할수 없읍니다.
다행이도 아직은 우리나라. 토종이나 자생종은
해외 유출이 그리많지 않기때문에 다행중 다행이지만 그동안 수십종이 해외로 반출되어 우리것을 빼앗겨 버린것이 안탑갑기는 합니다.
지금이라도 육묘기술을 익혀 토종. 자생종을
활성화 시킬 필요를 느낍니다
앞서 정원산업이 활성화 된다는 전제하에
지금이야 말로 토종. 자생식물 육묘사업을 할때입니다
기존의 육묘업체는 대다수 원예작물모종과
초화류(화훼) 또는 조경수용 뿐입니다..
틈새시장이며 시장이 아주큰 시장 입니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문은 열려있고 들어가면 되는것 입니다.
#육묘사업 중
1)씨앗(종자)으로 번식하는것
2)종자(구근)으로 번식하는것
3)삽목을 하여 번식하는것
4)접목을 하여 번식하는것
5)뿌리 로 번식하는것. 등
#유성번식 과 #무성번식 을 통해 식물을 번식하는것이 #육묘사업 입니다.
나의 재정능력 과 시간. 기술을 검토하여 최소
비용으로 시작할수 있는 사업입니다.
또한 투잡. 재택사업도 가능한 사업 이기도 합니다.
시장성은 무궁 합니다.
전국농가. 화훼전문점. 온. 옾라인판매.
도. 소매. 기업. 관공서. 가정. 개인 등
무궁무진 합니다.
장문의 이글을 읽으신 여러분은 행운이 벌써 따른것 입니다.
상담신청은 방문 또는 문자로 댓글. 일창으로 간략하게 주시면 연락드리겠습니다
다음 연제글은 ★ #신소득작물선정 ★ 에
관하여 올려 드리겠습니다.
#사단법인한국약용작물산업교육협회장
김 종 군 드림
다양한 산업중에
23년 2월 8일
2
[ 주절주절 비료이야기 ]
비료에서 다량으로 들어가는 원소로는 N(질소), P(인), K(칼륨)이다.
사실 상, 화학적 비료의 역사는 200년이 채 되지 않았으며 약1900년대 부터 화학 비료가 생산되어 약 70억명의 인구를 폭팔적으로 늘어나게 한 일등공신이다.
비료 덕분에 78억명의 인구가 식량자원 증가에 의한 덕택을 톡톡히 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자연적인 비료량은 인류 20억명 정도만 유지 될 수 있는 정도의 이중결합질소 밖에 없었다.
비료가 보급 되기 전에는 지력(地力)을 회복하기 위해 일시 휴경을 해야 하는 곳이 많았다.
전근대 시대의 비료로는 주로 사람이나 동물의 분변을 활용했는데 인구가 많지 않던 옛날에는 인분만으로는 지력을 보충하기 힘들어 가축의 배설물을 많이 사용하였으나
지력 또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있었다.
또한 깨와 콩 등에서 기름을 짜낸 후 남은 찌꺼기를 비료로 쓰기도 했고 어촌에서는 남아도는 생선이나 아예 먹고 남은 생선 내장 등을 가공해서 비료로 만들기도 했다.
세계4대 문명을 이룬 강들의 인접지 경우에는 상류에서 내려오는 토사(규소성분함유)와 각 종 미네랄(광물) 덕분에 강들의 범람으로 자연적으로 비료를 대체하는 효과가 있었다.
단적으로 황하강은 적색에 가까운 황토인데 여기에는 여러가지 유기물들이 적절하게 섞여
물 자체가 액체비료인 셈이기에 농업 생산량이 우월했던 것이다.
프리츠 하버의 “공중질소합성법”을 통해 1913년 암모니아 합성법이 상업화 되었는데
이때부터 화학비료가 등장하며 농업생산량도 폭증하기 시작했다.
19세기 지구 인구는 약1.5배 정도 증가 했으나 20세기에는 15억명에서 60억명으로 4배나 증가하기에 이른다.
당시에는 식량자원의 생산량이 늘어남으로 인해 인구의 폭팔적인 증가로 이어진 셈이다.
당시에는 수차례 세계 전쟁을 치르면서도 이와 같이 지구 인구가 증가하게 된 데는 식량문제를 해결해 준 화학비료의 힘이 매우 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학비료는 대부분 석유를 비롯한 화석연료로 생산한다.
질소, 인(인산), 칼륨(가리)을 비료의 3대요소(원소)라 하며 매우 중요시 하고 있는데
각 성분의 필요량은 식물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
물론 옛날 사람들이 이런것 까지 알았을 리는 없고 질소, 인산, 가리를 골고루 갖춘 비료는 없었음으로 근대 이전의 농민들은 분뇨, 뼛가루, 재 등의 잡다한 재료로 갖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농업기술을 발달 시키는 수 밖에 없었으니라
식물 생리에 특히 중요한 3종의 원소를 꼽으 때는 위에 기술한 대로 질소, 인, 칼륨을 꼽지만 사실 비료의 생산과정에 의해 질소, 인산(P₂O₅), 산화칼륨(K₂O)으로 지칭한다.
화학 비료 제품에 표기되어 있는 다량원소(요소)의 유효성분량은 N-P-K 순서로 표기하는데 여기서 N(질소)는 비료의 총 질량에서 질소의 비율(%)이고 P는 인이 아닌 인산((P₂O₅)의 비율, K는 칼륨이 아닌 산화칼륨(K₂O)의 비율이다
즉, 원소량(원소비율)만으로 따지면 P(인)는 표기의 44%, K(칼륨)는 83%밖에 안된다.
이렇게 된 이유는 비료 업계의 관행 때문인데 화학비료 산업이 태동하던 20세기 초에는 비료성분을 분석하던 연구소들에 컴퓨터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기술로는 인과 칼륨 원소만을 따로 검출하는 일은 불가능 했고 태운 후에 산화물의 양만을 측정할 수 있었을 뿐인데 이걸 원소의 질량으로 일일이 손계산으로 환산하려면 너무 번거로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과 칼륨을 산화물로 대신 푯기핟ㄴ 관행이 현재에도 남아 출처가 다양한 질소만 원소전량으로 , 인과 칼륨은 대신 인산과 산화칼륨(가리) 질량으로 대체했던 것이 아니였나 판단된다.
현대에는 그냥 원소 분석으로 측정한 다음 인산과 가리로 역산해서 표기한다고 한다.
산업 현장에서는 일부 비료회사에서 산화물 기준 유효성분량과 원소 기준 유효성분량을 병기하는 경우도 있으니 앞으로 시간이 꽤 흐른 뒤에는 원소량 기준으로 표기하는 방식으로 바뀔지도 모르는 일이다.
현대에 들어와서 지금은 프리츠 하버의 업적 덕분에 질소고정법을 이용한 인공 비료가 주류이다.
흔히 ‘거름’하면 떠올리기 쉬운 배설물 같은 천연 비료는 이제는 개인취미 수준에서나 사용하지 본격적인 상업적 농사에서는 이미 요소비료로 대표되는 화학비료만을 사용한다.
요소 비료의 기본 원료는 공기 중에 다량 함유된 질소인데 제조 공정의 난이도도 낮은 편이다.
비료는 의외로 화약과 연관이 크다.
화약의 주성분인 질산칼륨/질산암모늄은 바로 비료의 주성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화학비료 이전에도 자연상태에서 채취하는 구아노와 같은 천연 초석(질산칼륨)은 화약제조를 위해 중요한 원료였던 동시에 질좋은 천연 비료였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런저런 과정을 거치면 폭탄의 재료가 될 수 있어 미국에서는 농부도 아닌데 비료를 다량 구매라는 것이 포착되면 FBI와 ATF의 감시대상 리스트에 올라 간다고 한다.(실제 비료가 사제 폭발물 제조에 사용된 사례 - 오클라호마 폭탄 테러에 질산암모늄 2.2톤이 사용됨, 소형 핵무기와 맞먹었던 위력의 베이루트 항구 폭발 사고의 원인이 된 물질도 창고에 쌓여있던 대량의 질산암모늄이었음)
암튼 좋다고 비료를 무조건 지나치게 많이 시비하면 토양이 산성화가 진행되고 환경오염이 발생하고 비가 내려 강으로 흘러들어갈 경우 부영양화를 일으켜 녹조라떼를 만들어 낸다.
흔히 유기질로 만든 천연비료는 괜찮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퇴비나 유박 등 천연비료도 화학적인 구조는 본질적으로 화학비료와 마찬가지로 과용하면 “염류집적”이 일어나고 과다한 염류는 농산물에 축적되어 생육을 방해하고 유기질의 분해과정에서 토양은 역시나 산성화가 진행된다.
천연비료가 그래도 화학비료보다 나은 점이 있다면 토양 속 미생물이 남아있어 토양이 시간이 흘러 어느정도까지는 자가회복을 한다는 점이다. 물론 살균제를 다 뿌리기 전까지 이야기이다.
한국의 경우 지나치게 많은 화학비료를 투입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계속~~~~~~
첨언 :토양을 알기 위해서는 암석학(광물학)을 먼저 공부하는것이 무척 큰 도움이 된다.
세상의 모든 물질은 눈에 보이든 안보이든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
23년 5월 28일
6
2
Farmmorning
제주도에서 감귤농사를 20년 넘게 짓고 계시는 저의 지인이 쓰신 글이 너무도 와닿기에 공유해봅니다. 우리 농업도 이제는 주먹구구식보다는 계량화하고 디지털화해야 할 때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자들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농사는 하늘이 짓는것이고 너무도 많은 변수가 있기에 제조업과 틀리다고...맞는 말씀입니다.
그러나,변수도 예측가능한 변수가 될때, 그것은 함수(function)화가 가능하고 해결가능하게되고 답이 나온다는 뜻이기에, 이 단계에서 그 많은 변수로 인해 리스크로 느껴졌던것이 기회로 전환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그 분의 "농업의 디지털화"에 대해 한번 들여다 보도록 하겠습니다.
====================================================
농업에 디지털을 도입한다고 하면 웬지 썩 내키지 않는 거부감이 드는 이유는?
'디지털' 이라는 언어가 주는 느낌이 농업에는 매칭이 안될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랄까...
그렇다면 디지털은 도대체 뭘까?
디지털의 원조는 '플랑크상수' 에서 시작된다.
막스플랑크는 독일의 나은 위대한 과학자중의 한사람이다.
'막스플랑크연구소' 하면 웬만한 사람은 익숙한 명칭이다.
막스플랑크라는 과학자의 이름을 따서 붙인 연구소이다.
그럼 플랑크상수는 뭘까?
우리가 늘 보는 빛을 가장 작은 단위까지 쪼개서 그 값을 측량한 숫자이다. 무려 10^-34까지 내려가는 아주아주 작은 숫자이다.
마이너스 34승!
이 미소숫자를 지금으로부터 약 120년전에 막스플랑크가 계산해 냈다!
이 값을 h 라고 한다.(영어로는 에이치, 독어로는 하 라고 읽음)
이게 주파수"f", 파장 "람다" 로 연결되고,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원리, 슈뢰딩거의 파동방정식등등...
그러니까 연속적인 태양광선을 하나, 둘, 셋...
하는 숫자로 셀수있게 만든게 플랑크상수 이다.
그렇다면 농업에 디지털 개념이 웬지 거부감이 든다는 느낌이 든다면, 단순히 아날로그적 향수에 젖은 느낌만은 아닐수도 있다.
디지털의 정확한 개념을 모르기 때문일수도...
농업에 디지털 도입은 노동의 가치를 계수화 할수있는 장점이 있다.
지금 농촌에는 오랜 경력자 농부를 대우해주는 시스템이 없다.
20년 30년을 농사지어온 경력자나 1년 2년 농사 초보자나 농사현장에서 하루 일당 임금구조는 거의 동일하다. 20년간 농사해온 내가 만약 과수원 현장에 1년된 외국인 근로자와 하루 일당 벌이를 하면 그냥 동일한 임금이다. 유독 농업현장에서만 경력 대우 받기가 어렵다.
물론 농기계는 좀 다른 구조이지만 , 몸으로 하는 일은 경력이나 농업기술에 따른 가치를 매기는 구조가 없다. 건축, 도로공사 현장에서는 같은일을 해도 경력자, 기술자, 초보자에 따라 일당구조 체계가 여러 단계인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농사경력이나, 농사기술, 농부의 안목등을 계량화 해내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농민이 처우를 못받는 것이다. 한때 농업컨설턴트라는 명목으로 농업의 사업성을 도와주는 업이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몇년 유행하다 자취도없이 사라졌는데, 농사 경력없이 교과서에서 배운 지식으로 현장 코칭을 하려니 택도 없는 일이 된 것이다.
현장 코칭을 하려면 제일 먼저 해야할것이 계량화할 수 있는 입력과 출력 관계의 등식이 성립해야 한다.
입출력이라는 방정식이 없이 그럴듯한 모형 모델만 주입하려 했기 때문이다.
어떤 사업도, 어떤 일도, 하다못해 구멍가게라 할지라도
입출력물이 있다.
농사에서 입력은 무엇이고 출력은 무엇인가?
30년생 감귤나무에서 열매 100키로그램 출력물을 얻으려면 입력은 무엇을 얼마나 해야할까? 나무 하나에서 열매 100키로를 얻기위해 '비료 20키로 + 거름 20키로 + 물 50키로 + 영양제 등 기타 10키로 = 100' 이렇게 해야 하는가? 아니면 다른 입력 구조가 있는건가? 다른 입력구조는 무엇인가? 이렇게 감귤 열매 100키로를 출력물로 얻어내는 입력구조를 찾아내야 한다. 가능한 정확히
이게 농업의 디지털화다.
21년 2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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