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제

자유주제 · 자유게시판
대전유성성낙신
취미가농사 ❤️·
젓희 어머니 인디언감자 심는 모습요
Farmmorning
알 수 없음
본토배기 농사꾼·
우 ~ 와 ~
밤맛나는 콩감자 .! 송편속에넣어먹으면 짱.
밥 할때 같이넣어먹어도좋아요!
배경이 아름답고 좋네요?!
수확할때기분~~~아~~~
비니루속 인디안감자 줄줄이
경북포항아준
논농사 1000평·
두둑이 인상깊네요.감자가 많이 열릴것 같습니다
대전유성성낙신
취미가농사 ❤️·
맛은 감자랑 완전 달나요 밥속에 같이 넣어도 퍼지질 않고요 오묘한 맛이랍니다.
알 수 없음
본토배기 농사꾼·
취미가농사요님.안녕하세요?
재배하시는 오가피에대해
궁금한점이 있는데요?. 토종오갈피. 와 가시오갈피 차이점 ... 저는 토종오갈피을 집 주변에키우고있어서요!?.
알 수 없음
본토배기 농사꾼·
오가피모목사진 올리신것 구경 잘했읍니다.!
💕 오가피👈👉두충💓 같이생할 오십년째 .! ! 사연 도 있고요!?
궁금한건 못참는것 감사함니다.
대전유성성낙신
취미가농사 ❤️·
양파님 반갑습니다 😁 저도 가시오가피에 대해서 잘 모르고요 예전에 강원도 분들한테 들은 얘기는 가시오가피가 약효가 더 좋다고만 들은 거라서요 30주 심어 봣어요
대전유성성낙신
취미가농사 ❤️·
다음에 잎이 피고 가지가 뻗으면 사진 올리겠습니다.그리고 오가피순 으로 장아찌 담가서 먹던대요.맛이 좋더라구요.양파님도 안해 보셧음 도전해 보세요~

자유주제모임의 연관글

(하트) 어머니의 여덟가지 거짓말. 이 이야기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시작(始作) 되었습니다. 저는 가난한 집의 아들 이었습니다. 우리는 음식(飮食)조차 충분(充分)하지 않았습니다. 식사(食事) 시간이 되면 어머니는 종종 제게 당신의 밥그릇에서 밥을 덜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더 먹어라 얘야. 나는 배가 부르구나!"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그것이 어머니의 첫 번째 거짓말이었습니다. ​ 제가 자랄 때, 인내심(忍耐心) 강한 어머니께서는 자주 시간을 내어 가까운 강에 고기를 잡으러 가셨습니다. 잡은 물고기로 제 성장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영양가(營養價) 있는 음식(飮食)을 만들어 주시려 했던 것입니다. 어머니가 잡은 고기로 끓인 신선한 생선국은 제 식욕(食慾)을 돋웠습니다. 국을 먹는 동안 어머니는 제 옆에 앉아 제가 먹은 생선(生鮮)의 뼈에 남은 살을 발라 드시곤 하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젓가락을 사용하여 손대지 않은 다른 생선(生鮮)을 어머님께 드렸습니다. 그러자 어머님은 곧바로 그 생선(生鮮)을 저한테 넘기며 "네가 먹어라. 나는 생선(生鮮)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단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그것이 어머니의 두 번째 거짓말이었습니다. ​ 그런 후, 제가 중학교(中學校)에 다닐 때였습니다. 학비(學費)가 필요하자 어머니는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성냥공장에서 성냥갑을 가져와 풀로 붙이는 일을 하셨습니다. 겨울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난 저는 아직도 주무시지 못하고 있는 어머니를 보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작은 양촛불 아래서 잠을 이겨가며 성냥갑을 붙이는 일을 계속하셨습니다. "어머니, 이제 그만 주무세요. 밤이 늦었어요. 내일 아침에도 일 나가셔야 하잖아요." 이렇게 말씀드리자 어머니는 웃으시며 "얼른 자거라. 얘야, 나는 피곤(疲困)하지 않아."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그것이 어머니의 세 번째 거짓말이었습니다. ​ 마침내 입시가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회사에 요청해 하루 쉬고는 저를 시험장에 데려다 주셨습니다. 태양(太陽)이 몹시 뜨거운 날인데도 그 무더위 속에서 끈질긴 어머님은 몇 시간이나 저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시험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어머니는 곧바로 저를 반갑게 맞이하시고는 시원한 물을 제게 따라주셨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땀에 젖어 있는 모습을 보고는 컵을 어머니께 건네 드리며 먼저 드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얘야 어서 마시렴. 나는 목마르지 않구나." 라고 하셨습니다. ​ 그것이 어머니의 네 번째 거짓말이었습니다. ​ 아버지께서 병(病)으로 돌아가시자 불쌍한 어머님은 가장(家長)의 역할(役割)을 하셔야 했습니다. 우리가 필요(必要)로 하는 것을 어머님 홀로 해결(解決)하셔야 했습니다. 우리 가족(家族)의 삶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고통(苦痛) 없는 날이 없었습니다. 우리 가족(家族)의 상태(常態)는 점점 악화되었고, 우리 집 가까이 살던 친절한 삼촌이 가끔 도와주었습니다. 이웃들은 종종 어머니에게 재혼(再婚)하시라고 권유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고집스럽게 그들의 조언(助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저는 더 이상의 사랑은 필요 없어요." 라고 하셨습니다. ​ 그것이 어머니의 다섯 번째 거짓말이었습니다. ​ 제가 학업(學業)을 마치고 직장(職場)을 얻고 나니, 어머니께서도 이제 일을 그만두실 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님은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머니는 매일 아침 시장(市場)에 가서 몇 가지 야채를 파시면서 필요(必要)한 돈을 버셨습니다. 다른 도시(都市)에서 일하고 있던 저는 종종 어머님께 필요하신 데 쓰시라며 돈을 보내드렸지만 어머니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때로는 심지어 돈을 제게 다시 돌려보내기도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내겐 돈이 충분히 있단다." 라고 하셨습니다. ​ 그것이 어머니의 여섯 번째 거짓말이었습니다. ​ 학사 학위(學位)를 받은 후, 저는 석사(碩士) 학위를 받기로 했습니다. 회사의 장학 프로그램 도움을 받았습니다. 저는 마침내 그 회사에 입사(入社)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머니께서 남은 인생(人生)을 즐길 수 있도록 모시고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사랑스러운 어머니는 아들을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아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나는 혼자 사는 게 편하구나!"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그것이 어머니의 일곱 번째 거짓말이었습니다. ​ 어머니는 노년(老年)에 위암(胃癌)을 앓게 되었고 병원에 입원(入院)해야 했습니다. 저는 바다 건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었지만, 제가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를 보필하기 위해 고향(故鄕)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머니는 수술(手術)을 받고 나서 쇠약해진 몸으로 침대에 누워 계셨습니다. 너무나도 늙어 보이는 어머니께서 깊은 생각에 잠겨 저를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미소(微笑)를 머금으려고 애쓰시는 어머님의 노력(努力)이 눈에 띌 정도였습니다. 병이 어머니의 몸을 약화시킨 것이 분명했습니다. 어머니는 너무 연약하고 힘이 없어 보였습니다. 저는 눈물을 흘리며 어머니를 바라보았습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너무나 아팠습니다. 어머니는 간신히 힘을 모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울지 말거라. 얘야... 나는 아프지 않단다." ​ 그것이 어머니의 여덟 번째이자 마지막 거짓말이었습니다. 이렇게 여덟 번째 거짓말을 하시고는, 제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어머니는 영원히 눈을 감고 소천 하셨습니다. 참외를 특별히 좋아하시던 어머니가 너무나 그리운 아침, 맛있는 참외를 깎아 드리고 싶은 아침입니다! 오늘도 사랑하는 하루 되시기를 빕니다.
좋아요21·댓글14
Farmmorn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