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는 질퍽거리는 흙으로 된 마당에서 바지가락에 흙이 묻어서 TV를 시청하고 돌아가면 방바닥에 얼마나 많은 흙이 있는지? 할머니께서 차디찬 물로 걸레를 빨아서 방바닥을 딱았습니다. 드라마와 스포츠중계를 할 때면 좁은 방안에 가득 모여서 시청하고 애국가가 마지막으로 나올 때 돌아들 갔습니다. 한겨울엔 오후 6시부터 모여서 거의 12시가 되어서야 돌아갔죠. 할머니께서는 엄청 귀찮게 생각하셨어요. 방청소를 하셔야해서요.
차장이 몸으로 밀어넣고, 운전수 아저씨가 한번씩 사정없이 꺽으면 한쪽으로 쏠리면서 다음 정거장에서 또 태윘죠. 직행이나 고속버스는 어쩔 때는 2-3명태우고 운행하고 있더군요. 시골은 버스표로 승차를 했고, 서울 등 대도시는 토큰을 사용했지요. 서랍속에 시내버스토큰이 몇개 있습니다. 창문넘어로 차를 타기도 했었습니다. 참 좋은 세상이 돌아왔습니다. 상위 1%의 부자들과 권력을 가진자들이 배려하는 마음만 갖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국어를 전공하진 않았습니다. 그냥 일상을 써내려가니까 두서없는 글이됩니다. 제가 살았던 시절을 잊지않을려고 기록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6,70대 시골에서 자란 분들은 공감하실거라 생각합니다. 농경사회 때는 모든 것이 힘들었습니다. 편하시게 옛 생각하시면서 읽어보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연일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텃밭에 옥수수랑 생강을 심어야하는데 자꾸 미뤄지네요. 오늘도 좋은 하루되시길 바랍니다.
70년대 여로는 엄청났죠? 그 때 구들방에 하드보드라는 딱딱한 것을 방바닥에 깔았죠. 지금도 저희 고향집 할머니방엔 하드보드로 되어있습니다. 아무리 방을 뜨겁게 불을 때도 비닐장판같이 눌거나 색이 변하지도 않는답니다. 가끔 큰솥에 끓일일이 있으면 불을 많이 땔 때 방바닥이 엄청 뜨거워서 찜질방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