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죠. 소로 아마 한나절 내 장기질을 해야 한마지기정도 논을 간 것 같습니다. 또 새끼를 낳으면 자식들 대학등록금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한겨울에 소를 마당으로 몰고나오면 얼마나 날뛰는지요? 방학하면 꼴망태에고 겨울에 지푸라기와 섞어서 쇠죽을 끓일 건초를 장만했습니다.
잠시 향수에 젖어봅니다. 정말 어려웠던 시절 돈이 된다면 무엇이든 했으며 버리는 것이 없었죠, 이 글을 쓰시면서 몇번이나 어릴 적을 떠올리고 부모님 얼굴을 떠올렸을지 선합니다. 힘들고 어렵고 넉넉한 것이 없었던 70년대 조금 형편이 났다고 해도 별반 차이가 없이 고만고만한 살림살이 그래도 그 때가 행복했습니다.
먹거리가 없어서 조금 있으면 찔레순을 끊어서 먹었어도 정이 듬뿍했던 그 때가 마음만은 편했지않나?싶습니다. 제사를 모시면 아침 일찍 집집마다 음식을 나누곤 했습니다. 저희 어머니께선 음력으로 이웃 제사날이랑 어르신들 생일을 다 기억하셨답니다. 지금 연필로 가로로 써내려간 어머니 치부책이 몇권 있습니다. 포항 김동주님. 감사합니다. 내일부터 꽃샘추위가 물러난다고합니다. 환절기에 감기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선생님 쓰신글 보면서 아련한 추억속에 젖어봅니다. 저는 국민학교 다니기전까지 검정 똥돼지 머리위에 응가를 한 기억이 있답니다.^^ 그때만 해도 쌀밥 먹기가 1년에 몇번 안되었고 동네에서 제사가 있는날 아침엔 동네 어르신들 모시고 식사를 나누던 정 많은 시절이었지요. 동네에 소도 몇마리 안되어서 소 주인분은 농번기철에는 이집저집 바쁘게 논갈이 밭갈이 하던 생각이 납니다. 특히 모내기날에는 최고의 날이었지요.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얻어 먹을수 있었지요.ㅎ 선생님 덕분으로 그 시절을 그리워 해 봅니다. 비가 옵니다. 편한밤 되십시요. 감사합니다.^^
소를 빌려주고 품앗시로 대신 일을 해주고 했습니다. 모내기철에는 새참 먹을 때 젖먹이를 데리고 온 식구들이 같이 나와서 새참으로 국수를 먹고 점심 때는 집으로 다 와서 같이 밥을 먹었습니다. 모를 심는 날도 돌아가면서 날자를 잡기도 했습니다. 저녁을 먹은 후에는 꼭 밥한공기를 쥐어서 보냈습니다. 제사날엔 음식을 나누는 품습은 아래쪽 풍습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