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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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포항수정농원(체리)
얼빵한농부(농경체등록)·
저는 매일 출근하면 구미 금오산
을 바라볼때 마다 (나다이엘 호오돈 의 큰바위의 얼굴이 생각나요) 지금은 눈이덥혀 있어요.
구미시에 우뚝솟아 누워있는 듯한
형상으로 구름을 찬란하게 꾸미고 정다움을
햇빛속에 펼치며 언제나 구미시를 내려다보고 있는 자비스러운 자태를
바라 볼때마다
큰바위의 얼굴이 생각 납니다
Farmmorning
인천강화이정민
2025년 내 직장·
체리열매가. 예쁘네요. 묘목 하나만 줘요
경북포항수정농원(체리)
얼빵한농부(농경체등록)·
나무가 다 5년생이라 커서
이식을 할수가 없어요
경남사천김기한
채리 묘목을 구할 수 있쓸까요
경북포항수정농원(체리)
얼빵한농부(농경체등록)·
체리 묘목 판매 하는곳도 많아요 얼마나 필요한지
몆주만 필요하면 팝모닝 에도 판매 하던데 흑자색 으로
첼란.버건디펄 블랙펄 등등 종류가 엄청나게 많아요
조생종.극조생.만생종
유튜버 에 묘목 판매및 재배방법 사후관리 까지 지도해줍니다.
답변 이 되셨는지 ...
좋은하루 되세요 ^^
경북구미표고버섯18837
샤인 3년차 초보농부 ·
공감합니다 ㆍ옛날에 정상까지 자주다녔는데ᆢ요샌 가끔 차타고 지나다봅니다ㆍ
경북포항수정농원(체리)
얼빵한농부(농경체등록)·

저도 금오산에 자주가지는 못하고 인동에서 아침 출근때 마다 늘 바라봅니다
볼때 마다 황사나 미세먼지 의
척도를 하기도합니다
추운날 은 금오산이 선명하구요 포근한 날은 산이 뿌엿게 보여요...
경북김천박철용
국민학교소풍 구미역에서내려정상정심후반대편 남면 오봉쪽어로내려귀가(
지금은 혁신덜어서는바람에 그리운 고향이 사라졌지요)
경북포항수정농원(체리)
얼빵한농부(농경체등록)·
체리 묘목 수량이 20주 이상이면 01045557871
영덕키토산체리 전화해보세요 자세히 알려주십니다^^
경북포항수정농원(체리)
얼빵한농부(농경체등록)·

그러시군요
금 오산 자락에서 살고 있는 동네도 여러군데 있지요
살기가 아주 좋은곳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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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 어머니의 여덟가지 거짓말. 이 이야기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시작(始作) 되었습니다. 저는 가난한 집의 아들 이었습니다. 우리는 음식(飮食)조차 충분(充分)하지 않았습니다. 식사(食事) 시간이 되면 어머니는 종종 제게 당신의 밥그릇에서 밥을 덜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더 먹어라 얘야. 나는 배가 부르구나!"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그것이 어머니의 첫 번째 거짓말이었습니다. ​ 제가 자랄 때, 인내심(忍耐心) 강한 어머니께서는 자주 시간을 내어 가까운 강에 고기를 잡으러 가셨습니다. 잡은 물고기로 제 성장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영양가(營養價) 있는 음식(飮食)을 만들어 주시려 했던 것입니다. 어머니가 잡은 고기로 끓인 신선한 생선국은 제 식욕(食慾)을 돋웠습니다. 국을 먹는 동안 어머니는 제 옆에 앉아 제가 먹은 생선(生鮮)의 뼈에 남은 살을 발라 드시곤 하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젓가락을 사용하여 손대지 않은 다른 생선(生鮮)을 어머님께 드렸습니다. 그러자 어머님은 곧바로 그 생선(生鮮)을 저한테 넘기며 "네가 먹어라. 나는 생선(生鮮)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단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그것이 어머니의 두 번째 거짓말이었습니다. ​ 그런 후, 제가 중학교(中學校)에 다닐 때였습니다. 학비(學費)가 필요하자 어머니는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성냥공장에서 성냥갑을 가져와 풀로 붙이는 일을 하셨습니다. 겨울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난 저는 아직도 주무시지 못하고 있는 어머니를 보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작은 양촛불 아래서 잠을 이겨가며 성냥갑을 붙이는 일을 계속하셨습니다. "어머니, 이제 그만 주무세요. 밤이 늦었어요. 내일 아침에도 일 나가셔야 하잖아요." 이렇게 말씀드리자 어머니는 웃으시며 "얼른 자거라. 얘야, 나는 피곤(疲困)하지 않아."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그것이 어머니의 세 번째 거짓말이었습니다. ​ 마침내 입시가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회사에 요청해 하루 쉬고는 저를 시험장에 데려다 주셨습니다. 태양(太陽)이 몹시 뜨거운 날인데도 그 무더위 속에서 끈질긴 어머님은 몇 시간이나 저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시험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어머니는 곧바로 저를 반갑게 맞이하시고는 시원한 물을 제게 따라주셨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땀에 젖어 있는 모습을 보고는 컵을 어머니께 건네 드리며 먼저 드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얘야 어서 마시렴. 나는 목마르지 않구나." 라고 하셨습니다. ​ 그것이 어머니의 네 번째 거짓말이었습니다. ​ 아버지께서 병(病)으로 돌아가시자 불쌍한 어머님은 가장(家長)의 역할(役割)을 하셔야 했습니다. 우리가 필요(必要)로 하는 것을 어머님 홀로 해결(解決)하셔야 했습니다. 우리 가족(家族)의 삶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고통(苦痛) 없는 날이 없었습니다. 우리 가족(家族)의 상태(常態)는 점점 악화되었고, 우리 집 가까이 살던 친절한 삼촌이 가끔 도와주었습니다. 이웃들은 종종 어머니에게 재혼(再婚)하시라고 권유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고집스럽게 그들의 조언(助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저는 더 이상의 사랑은 필요 없어요." 라고 하셨습니다. ​ 그것이 어머니의 다섯 번째 거짓말이었습니다. ​ 제가 학업(學業)을 마치고 직장(職場)을 얻고 나니, 어머니께서도 이제 일을 그만두실 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님은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머니는 매일 아침 시장(市場)에 가서 몇 가지 야채를 파시면서 필요(必要)한 돈을 버셨습니다. 다른 도시(都市)에서 일하고 있던 저는 종종 어머님께 필요하신 데 쓰시라며 돈을 보내드렸지만 어머니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때로는 심지어 돈을 제게 다시 돌려보내기도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내겐 돈이 충분히 있단다." 라고 하셨습니다. ​ 그것이 어머니의 여섯 번째 거짓말이었습니다. ​ 학사 학위(學位)를 받은 후, 저는 석사(碩士) 학위를 받기로 했습니다. 회사의 장학 프로그램 도움을 받았습니다. 저는 마침내 그 회사에 입사(入社)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머니께서 남은 인생(人生)을 즐길 수 있도록 모시고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사랑스러운 어머니는 아들을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아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나는 혼자 사는 게 편하구나!"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그것이 어머니의 일곱 번째 거짓말이었습니다. ​ 어머니는 노년(老年)에 위암(胃癌)을 앓게 되었고 병원에 입원(入院)해야 했습니다. 저는 바다 건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었지만, 제가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를 보필하기 위해 고향(故鄕)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머니는 수술(手術)을 받고 나서 쇠약해진 몸으로 침대에 누워 계셨습니다. 너무나도 늙어 보이는 어머니께서 깊은 생각에 잠겨 저를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미소(微笑)를 머금으려고 애쓰시는 어머님의 노력(努力)이 눈에 띌 정도였습니다. 병이 어머니의 몸을 약화시킨 것이 분명했습니다. 어머니는 너무 연약하고 힘이 없어 보였습니다. 저는 눈물을 흘리며 어머니를 바라보았습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너무나 아팠습니다. 어머니는 간신히 힘을 모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울지 말거라. 얘야... 나는 아프지 않단다." ​ 그것이 어머니의 여덟 번째이자 마지막 거짓말이었습니다. 이렇게 여덟 번째 거짓말을 하시고는, 제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어머니는 영원히 눈을 감고 소천 하셨습니다. 참외를 특별히 좋아하시던 어머니가 너무나 그리운 아침, 맛있는 참외를 깎아 드리고 싶은 아침입니다! 오늘도 사랑하는 하루 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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