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韓國 )은 보석 같은
나라였다! ♥
- 한국인은 원래
善한 품성을 가진
백의민족이었다. -
요즘 우리 세대가
自己中心의
윤리적 에고이즘에
빠져있지는 않는지
살펴봐야 겠다.
우리 조상들은
작은 벌레의 생명조차도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뜨거운 개숫물을
마당에 버릴 때에는
이렇게 외쳤다.
“워이 워이!”
물이 뜨거워 벌레들이
다칠 수 있으니
어서 피하라고
소리친 것이다.
봄에 먼 길을
떠날 때에는
오합혜(五合鞋)와
십합혜(十合鞋),
두 종류의 짚신을
봇짐에 넣고 다녔다.
'십합혜'는
씨줄 열 개로
촘촘하게 짠 짚신이고
'오합혜'는 다섯 개의
씨줄로 엉성하게 짠
짚신을 가리킨다.
행인들은
마을길을 걸을 땐
'십합혜'를 신고 걷다가
산길이 나오면
'오합혜'로 바꾸어 신곤 했다.
벌레가 알을 까고
나오는 봄철에
벌레들이
깔려 죽지 않도록
듬성듬성 엮은
짚신을 신은 것이다.
'오합혜'는
'십합혜'보다
신발의 수명이 짧았으나
그 만큼 벌레의
수명은 늘어났다.

콩을 심을 때엔
세 알씩 심었다.
한 알은 땅 속에 있는
벌레의 몫으로,
또 하나는
새와 짐승의 몫으로,
마지막 하나는
사람의 몫으로 생각했다.
감나무 꼭대기에 
‘까치밥’을 남겨 놓고,
들녘에서
음식을 먹을 때에도
"고수레"하면서
풀벌레들에게
음식을 던져주었다.
이러한 미덕은
우리의 식문화에도
그대로 배어났다.
여인들은
3덕(三德)이라고 해서 식구 수에
세 명의 몫을 더해
밥을 짓는 것을
부덕(婦德)으로 여겼다.
걸인이나
가난한 이웃이
먹을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미국 여류소설가
'펄 벅'은 장편소설
‘살아 있는 갈대’에서
한국을
‘고상한 사람들이 사는 보석같은 나라’로 표현했다.
그녀의 극찬은
한국에서 겪었던
특별한 체험때문 이었다.
1960년 '펄 벅'이
소설을 구상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여사'는 늦가을에
군용 지프를
개조한 차를 타고
'경주'를 향해 달렸다.
노랗게 물든 들판에선 농부들이 추수하느라
바쁜 일손을 놀리고 있었다.
차가
'경주 안강' 부근을
지날 무렵,
볏가리를 가득 실은
소달구지가 보였다.
그 옆에는
지게에 볏짐을 짊어진
'농부'가 '소'와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여사'는 차에서 내려
신기한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여사'가 길을 안내하는
통역에게 물었다.
“아니, 저 농부는
왜 힘들게 볏단을
지고 갑니까?
달구지에 싣고 가면 되잖아요?”
“소가 너무 힘들까 봐 
농부가 짐을 나누어 지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요.”
'여사'는 그때의 충격을 글로 옮겼다.
“이제 한국의
나머지 다른 것은
더 보지 않아도 알겠다.
볏가리 짐을 지고 가는 저 농부의 마음이 바로
한국인의 마음이자,
오늘 인류가
되찾아야 할 인간의
원초적인 마음이다.
내 조국, 내 고향,
미국의 농부라면
저렇게 힘들게
짐을 나누어 지지 않고,
온 가족이 달구지
위에 올라타고 채찍질하면서
노래를 부르며 갔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농부는
짐승과도 짐을 나누어 지고
한 식구처럼 살아가지 않는가.”

구한말 개화기에
한 선교사가 자동차를 몰고 시골길을 가고 있었다.
그는 커다란 짐을 머리에 이고 가는 할머니를 보고
차에 태워드렸다.
저절로 바퀴가 굴러가는
신기한 집에 올라탄 할머니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뒷자리에 앉은
할머니는
짐을 머리에
계속 이고 있었다.
“할머니, 이제 그만
내려놓으시지요?"
선교사의 말에 할머니는 순박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이고, 늙은이를 태워준 것만 해도 고마운데,
어떻게 염치없이
짐까지 태워달라고
할 수 있겠소?”
차를 얻어 타고서
차마 머리에 인 짐을
내려놓지 못하는 善한 마음이 우리의 모습이었다........
6월 13일
43
20
강변에 안개가 자욱한 아침입니다.
벌써 마늘캐는 농부님도 계시던데
모내기철에 마늘 양파 수확기가 임박
한데 농촌들에는
바쁜 일손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지금은 길가에 칠례꾳이 종종 피어
있고 도로변에 흔히
볼 수 있는 노란꽃이
외국산 꽃으로 알고
있는데 꽃이름이 생각이 안나네요.
오늘도 초여름 날씨가 예상되는데
건강에 유념하시고
즐거운 날이 되시길
바랍니다.
23년 5월 16일
2
1
포포나무란?
포포 열매 에는 필수 아미노산이 모두 들어있습니다.
포포 나무 에는 지구상의 작물중에서 함암성분이 가장 많이 들어있다고 합니다.
포포 열매 는 부드러운 카스터드육질을 가지고 망고와 파인애플의 맛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포포 열매 는 식물성 단백질이 많은 열매로 수험생, 병후회복중인 환자, 어린아이, 노약자는 물론이고
포포 열매 는 다이어트중인분, 단백질 섭취량이 부족한 승려에 이르기까지 모든분이 즐길수 있습니다.

포포나무 가 국내에 처음 소개된 시기는 1970년대 쯤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당시 배를 통해 묘목을 가져 오신분에 의해서 국내의 몇곳의 식물원에 심겨진것이 최초라고 합니다.
물론 포포나무가 야생에서 키워지고 있는 미국은 1900년대 초부터 재배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포포나무 의 품종은 현재 미국에는 약 70 여종이 , 국내에는 2013년 부터 지금 까지 약 30 여종이 들어왔습니다.
그 중에는 캐나다의 추운지방에서 부터 미대륙의 따뜻한 남쪽의 플로리다 까지 다양한 기후대에서 재배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미국의 펜실베니아지역은 영하 35 까지 떨어지는 지역인데 그곳에서도 재배하고 있다고 합니다.

.포포나무 의 품종
원산지인 미국에서 포포나무를 육종하는 분들중에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제롬 레먼,닐 피터슨 두분이 계십니다
그중에서 닐 피터슨이 개량 육종해서 켄터키대학과 오하이오포포축제에서 많이 알려진 7품종은
레퍼헤녹,엘러게이,와바시,포토멕,써스퀘한나,쉐난도우, 그리고 최근에 알려진 탈라해치 가 있습니다.

다음으로 지금은 고인이 되신 제롬레먼의 개발품종은 참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 대형 대과종으로 열매 하나의 무게가 800g 대로 알려진 3품종을 소개 합니다.
166-13 (마리아스 조이), 275-48(레만스 딜라이트), 250-39(제리스 빅걸)​
두분의 개량품종명을 보면 닐 피터슨은 강의 이름을 ,제롬 레먼은 본인 이름을 많이 넣었습니다.
포포나무 재배시 장점
포포나무는 잎을 따서 즙을내어 살충제로 뿌릴 정도로 벌레의 피해가 없어 살충제를 살포하지 않습니다.
포포나무 는 멧돼지, 고라니가 해를 끼치지 않아 울타리를 설치할 필요가 없어 일손을 덜어줍니다.
포포나무 품종 선택
취미 또는 가족 먹거리로 몇그루정도 심으시는 분들은 품종선택이 크게 중요하지 않겠지만 전업농으로 농장을 만드셔서 열매를 판매하시려분들은 매우 중요합니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열매의 크기가 커다란 품종, 맛이 좋은 품종을 선택하셔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아직 대형 대과종 열매를 수확해본 경험도 부족하고
또 어떤 품종이 맛이 좋은지? 선택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눈을 해외로 돌려 우리보다 앞서서 포포를 재배하는 분들이 20년째 이어오고 있는 포포축제에서 맛과 크기 부문에서 수상을 한 품종을 찾게 되더군요

그래서 선택한 품종이 바로 250-39 (제리스 빅 걸) / 275-48(레만스 딜라이트) / 166-13 (마리아스 조이)
이상 3품종은 열매 크기가 800g 대에 이르고 맛까지 좋아 포포 품평회에서 수상한 품종들입니다.
그외 위에 소개는 되지 않았지만 오하이오품평회에서 대상을 받은
1, 250-30(제리스딜라이트) 이 있고
2, 열매가 1키로에 달한다는 켄터키챔피언.
3, 맘모스.
4, 나무에서 따서 후숙을 시키지않고 바로 먹는다는 레젼드품종
5, 닐피터슨이 먹어본 포포중에 제일 맛있다고 평가한 품종
6, 미국 큰 농장들이 맛좋다고 호평을 받은 품종 하나
7, 166-20 x 275-50
8, 275-48x 275-50
그렇게 8품종이 포포나무학교에서 번식중입니다
자! 이제 여러분들이 생산한 포포 열매가 마트에 진열되었을때 과연 어떤 품종이 선택을 받을까요?
누가 뭐래도 크고 맛있는것 을 먼저 찾게 될겁니다

그렇다면 이제 포포나무 품종은 결정 되셨나요?
(포포나무학교)밴드
7월 23일
20
11
4
Farmmorning
<수확철>
노을에 일손을 멈추니
뒷 정리가 아득하다.
돌아서
순으로 함께 정리 하자며 돌아 보니 걱정이 물들고~
마무리됀 고구마위로 언처진 순이
충분하지 않아 걱정이라.
고구마는 10°이하 냉해를 받는다.
일기예보에서
아침 기온이 5°라 하니~
밭에 남은 고구마가 냉해를 적게 받아야 큐어링으로 회복이 잘 돼여 좋은 먹거리가 될턴데ᆢ 라고
걱정이라
임시방편으로 처버린 고구마순으로 고구마를 덮는다.
맞춤 영농을 못한 아쉬움이 커진다.
후회가 된다.
안일한 생각 지난해 부폐율 증가의 원인이 돼였는데도ᆢ
시행착오를 하고 있다.
떨처 내야해
영농일지에 날씨와 작업환경 등은 계획 영농의 밑거름이다.
생각하건데
돼돌아 보는 농사꾼이 될거야!
기후ㆍ환경은 자주 바뀌니까?
23년 10월 28일
2
1
팜 모닝 농계 로 이력난 해소 일손부족으로 농장물 생산 중다 팜모님 농사 기능성 기술 힘을 내고자 합니다 항상 농업인소득 증대 외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22년 8월 15일
Farmmorning
명이나물(울릉도종)재배로 선도농가에 선정된 농부입니다
1999년 4월 1일 우연이 울릉도를 찾아가 터득했습니다
성인봉 등산길에 접어 들자. 자연산 명이나물이 등산로 주변에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식당마다 반찬으로 명이장아찌와 명이김치를 내주는 것이 였습니다.
집사람이,올치! 이거로 구나
집사람이 요리사 자격증 4개를 딴지 얼마되지 않은 터라.
식당주인에게 이것 저것 요리방법을 물어 보는 것이였습니다
2011년 봄,공직에서 은퇴하고 홍천 작은 산골로 귀농하였습니다
바로 홍천군수를 찾아가 풀뿌리 기업 사업신청서를 제출하고
지역 주민들을 설득해 농업회사 법인을 설립하였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보조사업에 선정되어
명이나물 식재를 시작한 것입니다
서울. 소유주의 밭3,000평을 임차하여 이곳에 울릉도종 명이나물모종 15만 주를 식재하고
이어서 매년. 보조금을 받아 20만 주씩 심고.또 심었습니다
보조사업비도 4회에 거쳐 약 2억 원이 들어 갔습니다
매년 모종.잎.씨앗.가을종근 등을 취급하고 또. 식재를 반복하면서
홍천군청에서는 저의 농가를 우수농가로 지정하여 전국에 확장 공급토록 계속 종용하고 있으며
지금까지의 노하우를 국내 전 농가에 전수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세계적인 명품화 농작물로 끌어 올리겠다 는 기대에 부풀어 있습니다
아직도 초창기 홀로 외로운 길을 걷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저는 복숭아 과원에도 명이를 심었습니다
과수원을 경영하시는 분들은 나무밑 그늘에 심으면 성장도 잘
되고
무성한 잡초를 명이로 대체한다는 생각으로 과수목 사이에 빼곡히 심어서 일거양득의 소득사업으로 육성하시길 권장합니다
명이 잎은 과수나무에 방제약을 살포하기 이전에 수확하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저는 지금 강원도 홍천으로 귀농하여 명이나물을 재배하고 있지만.봄이 일찍 다가오는 곳.
영남.호남.충남지방은 수확이 빠릅니다.조기출하로
가락시장을 장악할 수 있는 고소득 작물이 될 겁니다
병충해도 없고
동물피해도 없고
관수시설도 필요치 않고
제초작업도 필요치 않고
잡초가 자라기 전에
농한기에 수확하고
잎채취 시기에는 농한기라 일손도 많고
고깃집에서 온 국민이 선호하고
한번 심으면 영원히 번식하고
여러가지로 재배하기 쉬운 이 농산물을 심어 고수익을 올릴 것을 권장합니다
앞으로 질문에 상세히 설명드리고 싶습니다
게으른 농부가 짓기로는 딱. 안성맞춤 이오니 선택하세요.
매년 새로운 작물을 심느라 고민하지 말고
한번 심어놓고 매년 직불금이나 수령하시면서 쉽게 영농하시기 바랍니다.
임차한 토지의 임차료는 국가에서 지급하는 직불금으로 충당하시고
다년생 고소득작물로 명이를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선도농가에 선정된 소감을. 이 글로 대체합니다
선도농가 홍천 황덕순 올림
2월 5일
19
13
1
영농의 시작이 풀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예초기를 돌리며 오늘도 하루를 마감하는시각이다.
사과와 배를 주업으로 계획했는데 정년퇴직후 농촌의 일손이 걱정이다.
먹거리에 농약을 덜 하는 호두로 생각해본다.
오늘도
이지역 농업기술센타에서는 고마운 것이 이때는 농약을 살포하세요.
하면 따라서만 하면된다.
화상병 예방 약을 무료로 나누워주며
시기를 문자로 알려준다.
또 전화를 해 차분히 가르침을 준다.
고맙고 감사하다.
농촌의 현실이 젊고 유능한 이들이 많이들어와 흙을 사랑하며 땀을 흘린 댓가가 돈이 되어야 한다.
생산.가공.유통. 판매 가 시스템화 되어가고 있다.
행정공무원들의 감사함을 전하는 목요일 오후.힘들고 지치고 어렵더래도.내일의
창의적 발상으로 꿈꾸며 하루를 마감해 본다.
23년 4월 20일
3
우리 조상님들께서 농사짓는 일이 무척 힘들었습니다.
농기구가 없고 호미나 괭이로 땅을 파서 농사를 지을 때이니까요.
서로 이웃끼리 돕지 않고는 그 많은 일을 해나가기가 힘들었습니다.
특히 농사는 때를 놓지면 1년 양식을 얻지 못하기도 했으니까요.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 서로 일을 번갈아가면서 도우는 것을 품앗이라 합니다.
품앗이는 일하는 때와 계절에 관계없이 이루어졌습니다.
김장을 할때도 이웃끼리 돌아가면서 차례대로 했습니다.
논에 풀을 매는것을 김매기라 했습니다.
1년에 세번정도를 김을 매야했습니다.
이때도 품앗이를 했습니다.
70년대에 손으로 밀고 다니면서 잡초를 제거하는 기계가 나왔습니다.
줄을 떼서 모를 심은 논에는 밀고다니면서 김을 맸는데,
다랑논은 줄없이 모를 심어 벼포기 사이가 일정하지 못해서 김매는 기계를 밀고 다닐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제초제를 뿌리면 김을 맬 필요가 없어졌죠.
시골 초가집은 2-3년마다 지푸라기를 엮어서 지붕을 얹어 줄때도 품앗이를 했습니다.
저희집은 억새로 지붕을 얹기 때문에 한번 억새로 얹어 놓으면 매년 용머리만 틀어서 얹으면 오래갑니다.
이때도 산에 억새가 많지 않기 때문에 돌아가면서 지붕에 억새를 얹었습니다.
소를 키우는 집이 많지 않아서 소를 빌려다 논 한마지기를 갈고 대신에 하루 일을 해주었습니다.
저희집에는 손으로 돌리면서 옷을 짓는 재봉틀이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재봉틀로 옷을 만들어주시고 대신에 저희집 농사일을 도와주시기도 했습니다.
수작골이라는 이웃마을에 사시는 아주머니께서는 매년 설추석 명절 다 재봉틀로 옷을 지어드리고 저희집 농사일을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그때는 광목이나 삼베같은 것으로 적삼과 바지 두루마기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초등학교 다닐적 운동회 때 청군과 백군으로 나뉘었습니다.
저희 형제들이 청군도 있고,
백군도 있었습니다.
이때 다우다라는 옷감을 흰색과 청색을 사다가 어머니께서 고무줄을 넣은 반바지를 만들어주셨습니다.
길쌈을 할때도 이웃끼리 품앗이를 했습니다.
요즘 말하는 상부상조하는 것이겠지요.
지금도 저희 고향에서는 애(哀)사시에 마을분들이 일손을 놓고 묘역준비를 도와주시곤 합니다.
옛날에는 상여가 나갈때도 서로 도와가면서 품앗이같이 상여를 메고 亡人을 보내드렸습니다.
애경사가 있을적에도 온 마을사람들이 모여서 음식을 만들고 손님접대를 같이했습니다.
지금은 장례식장과 상조회사가 있어서 모든 일을 도맡아하기에 수월한셈이죠.
요즘같이 물질만능 시대와 자기본위로 살아가는 세대들한테 품앗이를 알 수 있을까요?
꽃샘 추위가 있어서 쌀쌀합니다.
감기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이번 추위가 물러나면 농사가 시작되겠네요.
늘 조심하시고
올 한해도 대풍을 바래봅니다.
3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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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
주말 휴일도 없이
바쁜 일손에 수고들
많읍니다.
저도 콩심을 이랑짓고 비닐멀칭
하다가 못다하고
피곤해서 쉬었습니다.
제초제 과일나무에
웃거름시비하고 골드칼라로 엽면시비하고 초피나무에 진딧물
응애약 살포하고 고추에는 맹물시비
2번하고나니 막걸리도 마시면서
작업했는데도 피곤해서 남은 비닐멀칭은 퇴근길에
할려고 남겨두고 휴일에도 쉬지 못하고 평소보다 더
바쁜하루였습니다.
오늘도 조용한 월요일 잘 보내시길
바람니다.
23년 6월 5일
1
3
[딸기-딸기]
2022-12-01 시세변동 뉴스
[딸기 - 딸기]
도매)부산
경남 밀양, 김해, 통영, 산청 등에서 반입됨
출하 초기이나 전년 대비 생육기 잦은 비로 인한 작황 부진 등으로 공급이 수요 대비 적어 전일 대비 소폭 오름세를 보임
딸기 2kg 상품 29,300원, 중품 25,300원에 거래됨
12월 출하동향은 일손부족, 고령화 등으로 재배면적 감소로 생산량은 전년대비 줄어들 전망
[딸기 - 딸기]
도매)서울
경남 함양·산청·거창·사천·고성·진주·합천·하동, 충남 공주·논산·예산, 세종, 전북 남원·부안·익산·임실·순창, 전남 곡성 등지에서 반입됨
기온 하락으로 전일 대비 반입량이 감소하고 오름세로 거래됨
도매가격은 2kg 기준 2,200원 오른 상품 29,200원, 중품 24,200원 선에 거래됨
주중 반입지가 확대되는 가운데 기온이 회복되면 반입량은 증가하겠으나 연말 소비가 시작되어 강보합세 전망
[딸기 - 딸기]
도매)대구
경남 밀양, 양산, 진주, 함안 지역에서 주로 반입됨
출하 초기와 고가 형성으로 시장내 거래는 한산하나, 전일과 금일 강추위 영향으로 산지 출하량이 감소하여 강보합세
도매가격은 2kg기준 전일대비 2,000원 상승한 상품 30,000원, 중품 26,000원에 거래됨
향후에는 출하지역 확대에 따른 반입량 증가로 약보합세 전망
출처 : 한국 농수산식품유통공사
22년 12월 1일
4
3
과일 수확철이라 일손이 많이 딸려서 인력이 필요합니다.
가능하다면 도움을 요청합니다.
22년 8월 12일
Farmmorning
[용인시, 딸기 농가에 수경재배 시설 지원]
안녕하세요~ 이번에는 딸기 농가에 수경재배 시설 지원하는 기사보고 팜모닝회원분들께 정보 나누고싶어서 글써봅니다..
[이뉴스투데이 경기1취재본부 김승희 기자] 용인시는 16일 처인구 남사읍 딸기 농가 1곳에 수경재배 시설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과채류 안정생산 기술보급 시범사업’ 일환으로 연작으로 인한 생산량 감소를 예방하고 해외수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이 농가는 홍콩, 싱가포르 등으로 수출하는 금실품종을 8000㎡규모로 재배하고 있는 곳이다.
시는 해당 농가의 비닐하우스 3동에 고설베드(허리 높이 정도의 재배용 베드)와 양액공급장비 등 수경재배 시설을 설치했다. 총비용은 5000만원으로 시가 3000만원, 농가가 2000만원을 부담했다.
딸기 재배방식은 땅에 직접 딸기를 심는 토경재배와 인공상토와 양액을 활용하는 수경재배로 나뉜다.
토경재배는 작업자가 쭈그린 상태로 있어야 해 작업이 어렵고 능률이 떨어져 일손이 많이 필요한 데다, 토질이나 비료 등의 영향을 받는 등 관리가 까다롭고 번거롭다.
이에 반해 수경재배는 초기 시설비가 많이 들지만, 작업자가 선 상태로 작업을 할 수 있어 편리하다. 또 영양액이 자동 공급돼 관리가 비교적 쉽다.
시 관계자는 “수경재배 시설 지원이 해당 농가의 수출 경쟁력 향상에 큰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앞으로도 관내 과채 농가들의 경영 원가를 절감할 수 있는 다양한 지원 방안을 모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23년 4월 10일
7
3
Farmmorning
안녕하세요 딸기농업을 준비중인 27살 청년입니다 현재 산청에서 일손돕기를 하며배우는중인데 기간이 짧아 조금 더 전문적으로 배워보고싶은데 농업교육포털에 올라온 딸기관련 교육은 봤습니다 혹시 농장에서 배움을 좀 얻을수있는곳이 있을까요? 저는 경북 경주시에 거주중입니다
멀어도 괜찮으니 배우고싶습니다 어디든 가겠습니다
22년 1월 8일
7
고사리를 키워보고 싶어 ‘지ㅇ 산’ 고사리종근10 kg을 사서 정성껏 심었다. 유튜브선생의 가르침대로.
원래 심으려는 날에 맞춘 종금은 1 주일이나 앞당겨 도착을 했다 . 덩황스러워 박스에 적힌 판매자에게 전화를 해했더니, “박스열어 종근 담은 푸대 열지말고 서늘한 곳에 두세요. 그 안에 식재방법있어요” 라고 하신다. 바쁜 일손 전화통에 매달리게 할 수없어 ‘네 잘알겠습니다’ 답허곤 포장박스를 열어 바람잘통하는 서늘한곳에 두고
예정보다 이틀을 당겨서 고사리 식재를하기로했다. 정식하려 푸대를 열어보니 심는 방법은 어느곳에도 없었다. 뿐인가 걸음마떼는 농사 초보자의 눈에도 상태가 안좋아 보였지만 원래 그런것이려니 했다. 열심히 골파고 배수잘되게 이랑만들고 ….
정식한지 한달 만에 두근 거리는 맘으로 밭을 찾았다.
멀리서 바라본 밭은 온통 푸른빛으로 맘을 설레게 했다. 그러나 정작 가까이에서보니, 고사리 님들은 보이지않고 풀로 덮혀 있었다. 예초기로 밀어버릴까하다가 “혹시라도” 하는 기대감에 호맹이들고 풀을 매는데 고사리는 보이질 않는다.
끙끙대며 일하는 모습 신기한지 길고양이들이 구경을 왔다. “ 잘 해봐 그것밖에 못해냐옹” “나 졸립다용”…
대여섯 평 풀을 뽑았는데 돌아보니 금사리님이 5-6 포기 정도 된다. 그것도 고사리 잎이 펴진 베이비중 베이비들이……
허리를 필겸 허탈한 마음을 달랠겸 고개를 든 순간 시선이 머문 곳에 수국이 피어서 위로해준다. “ 날 보고 웃어요”
“세상만사 뜻대로 되나요? ”
정말 아름다운 꽃이다. 지난해와 다른 꽃 색깔이 참으로 신기하다. 살아있는 리트머스라는 수국의 꽃이 색이 변했다. ???
주위에 피해 주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소소이락 하자.
꽃 색이 변했듯이 언젠가 튼실한 고사리를 이웃에 맘대로 꺾어가게할 날이 있울게다. ㅗ
힘내라!
종근상태가
23년 5월 19일
3
8
Farmmorning
● 종 점
악착같이 장사를 했기에​,
자식 넷 ​보란 듯 키워 시집장가 보내고 나니​ 이제 애써 열심히
할 것도​ 가꿀 것도 없는 나이가 돼버린 게​ 조금은 억울하지만, ​
사놓은 건물에서 나오는 달세로 ​여유 있게 살고 있던 노부부가​ ​
새벽안개 짙게 드리운 거리를 ​가방 두 개를 끌고 걸어 나오더니,
고속버스 ​터미널 대합실 귀퉁이에 앉아 ​초조한 눈빛으로 사방을
살핍니다
“여보...​
큰아들네로 먼저 갑시다“
멍울진​ 거리를 달려가는 버스를 타고 ​
도착한 곳은 큰 아들이 있는 ​대전에 한 아파트 앞이었는데...
"아니..​아버지 어머니​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세요?" ​
"물이나 한잔 다오"
바람 길 숭숭 난 가슴을​ 먼저 열어 보인 건 엄마였는데요​
“네 아버지 고향 친구​ 준태아저씨 너도 알거다“
“준태아저씨가 뭐 어쨌다고요?”
“네 아버지가 망한 준태아저씨​ 보증을 써주는 바람에​ 우리집도
경매로 넘어가 버렸지 뭐냐 "​
“그럼 이제 어떡하실 거예요?“
며느리가 차려온 술상에 ​막걸리 몇 모금으로​ 지친 설움을
적셔나가던 아버지는 ​어렵게 입을 엽니다
“큰애야...​
이 년 전에 병원 넓힌다고 빌려 간​ 일억 원을 돌려주면 안되니..?“
“그 말씀은 ​병원문을 닫으라는 소리지​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
하세요 ...“
"니네 집에 있기도 그렇고 ​당장 오갈 데가 없어서 그래“
“아무튼 그 돈은 지금 갚을 수가 없으니 그렇게 아세요“
“그럼 우린 어떡하냐“
“그건 처신 잘 못한 아버지 문제니까​
알아서들 하세요“
할 말을 다했다는 듯​ 문을 닫고 출근을 해버리는​ 아들의 뒷모습
에 배어든 서러움을​ 지우기 위해 남은 술 두어 잔을 연거푸 들이
킨 아버지는 할 말을 잃은 표정으로​ 아내 얼굴 조차 바라보지
못합니다
자식 일이라면 빗장 열어​ 부는 바람이 되어 주고픈 게​ 부모의
마음이란 걸 몰라주는 ​큰아들 내외와 목말라가는 일주일이 흐른
어느 날 밤
“그러면 이대로 계속 지내자는 거예요?”
“갈 데가 없다는데 난들 어떡해”
“시골에서 ​넓게 사는 둘째 아들 집도 있으니​ 그쪽으로 가시는 게
어떠냐며 ​당신이 말 좀 해 봐요“
아들과 며느리의 ​싸우는 듯한
투박한 음성이 들려오고​ 연이어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아버지 어머니....​
순천에 있는 형석네에 가 계시는 건 어때요?"
​더 이상 ​할 말은 눈물이라
침묵으로 하고픈 말을 전한 아버지는​ 집을 떠나온 그날과 같은
길을 ​짙은 어둠을 뚫고 나서고 있었습니다
“ 형한테 이야기 들었어요..​
그래 어쩌다가 늘그막에 ​이런 엄한 꼴을 당하셨데요“
“너희에게 면목이 없구나”
“내 집이라 생각하시고 편히 계세요"
과수원을 하는 아들과 며느리는 ​살갑게 노부부를 맞이해주는
걸 보며​ 자식 하난 잘 키웠다며​ 서로에게 위로를 건네는 시간도
잠시,
농번기 농사일 때문에​ 마음보다 몸이 먼저 지쳐버린 노부부는 ​
고단했는지 늦잠을 자고 있을 때​ ​
거실에서는
아들과 며느리의 소곤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는데
“여보.. ​
아버님이 큰애 아파트 계약할 때 빌린 돈 달라고 하면 없다고
하세요"
서로 필요로 하는 가치가 있을 때​ 이루어지는 관계에서​ 가족
이라는 것도 예외일 수 없다는​ 슬픈 현실을 또 한 번 느끼며​
아픔으로 견디다 일어난 다음날도
자식에게 좋은 일이​ 부모에게도 좋은 일이라며 ​땀방울 마를 날
없이 일손을 거들고 있었습니다​
“농촌에서 일손이 귀한데​ 김 여사네는 든든한 ​일꾼 둘이나
구했으니 좋겠슈..
“이번 농번기만 끝나면 ​다른 자식들한테 가라고 해야죠“
며느리가 ​이웃 사람이랑 주고받는 이야기를 듣고 있던
노부부는, 한 번도 ​가족이었던 적이 없었다는 느낌을 눈물로
애써 지우고는
다음 날​
몸 둘 곳 없는 새벽이슬을 친구삼아​ 달이 적셔놓은 길을
나섭니다
비틀어진​ 마음과 마음 사이에 베어 든​ 자식들에 대한 배신감으
로​ 살얼음이 낀 처지를 한탄하며​ 대합실에 앉은 노부부는,
3년 전 ​결혼한 막둥이 아들이 낳은 ​갓난 손자가 보고 싶어서인지​
강릉행 열차에 몸을 싣고 달려왔지만
노부부는​ 아파트 벨을 누르지 않고​ 계단에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
만 있더니​ 더 깊어져 가는 슬픔에​ 힘없이 일어나 내려오고 마는데
(아기가 자고 있으니 ​벨을 누르지 말아 주세요) 라고 ​현관문에
써 붙인 종이를 보고​ 차마 벨을 누르지 못한 노부부는​ 숨소리
조차 내지 못할 그 곳보다는
“정선이한테 연락 한번 해보구려”
“예전엔 하루가 멀다고 전화가 오더니​ 서너 달 전부턴 아예 연락
도 없고​ 전화해도 받질 않더라고요“
서러움을 ​뉘인 젖은 꽃잎이 되어​ 역전 대합실에서 쪽잠을 자야만
하는 토하지 못한 묵은 마음을 지우려 ​내키지않는 딸의 아파트
벨을 ​눌러대 보지만
띵똥….띵똥....
아무리 눌러봐도​ 열리지 않는 문만 쳐다보다​ 쓸쓸한 마음으로
뒤돌아 서려는 그때​, 앞집의 현관문이 열리더니
"지금 그집엔 아무도 없는데​ 왜그러시죠?“
" 시끄럽게 해서 죄송합니다​
여기사는 사람이 제 여식이구먼요“
앞집 여자가 전해준 이야기를 듣고​ 택시를 타고​ 한걸음에
달려온 곳은 병원이었고​
묻고 물어 겨우 찾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노부부는,
링거병에 ​의지해 잠들어 있는 딸을 보고 ​꼬꾸라지듯 달려드는
허기진 눈에서 떨어지는 ​까닭 잃은 눈물만이
그 이유를 묻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아니 이것아​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했어야지“​
“엄마 아버지 걱정할까봐...“.
“우린 그런 것도 모르고...“
“저 때문에 ​두 분께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았어요“
병원 옥상 공원에 나란히 앉은 ​세 사람은 어문달을 바라보며
세월에 씻어도 까맣게 묻어나는 아픔을 ​애닳게 바라만 볼
뿐입니다
“아니 어떻게 그런일이..”
“한푼도 보태준 게 없는 네게 와서 ​이런 소리를 하는 게 면목이
없구나“
“제가​ 두 분 거처할 곳을 알아볼 테니까​ 불편하겠지만 일단
제집에 가서​ 지내세요“
“말만으로도 고맙구나”
자식들과의 과거의 추억에서​ 힘을 얻으며 살아 온 한평생이​ 그저 ​
원망스럽기만 했지만
자식은​ 부모를 가진 적도 없었으니까.
자식이 ​우릴 버렸다고 생각지 말자며...
그날 밤​ 남은 해 끝자락에 걸린​ 좀처럼 내려오지 않는 이야기로​
딸과 이별을 한​ 노부부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곳은​
딸의 집이 아닌,
예전에 자신들이 살던 집이었습니다
이제
“자식들 마음 다 알았으니​ 이제 영감 하고 싶은대로 하세요"
6개월의 시한부 삶을 선고받고
자식들 속 마음을 알기 위해 길을 나섰던 노부부는
잊혀짐보다 더 가슴 아픈 게​ 버려짐 같다며,
지는 노을에 비친 막걸리 한잔에​ 해묵은 설움을 토해내더니,
자식도​ 그저 좋은 남일 뿐이라는 세상​ 떠도는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될 줄을 몰랐다며
​“자식 한번 앉은 자리엔​
백 년 동안 풀도 안 자란다잖아요
종점에 와 봐야 알게 되는 게​ 인생이라더니만..“
비가오면 ​부엌에 있는 온갖 그릇 다 가져와​ 떨어지는
빗물을 받쳐가며, 밥술에 ​반찬 서로 얹어주는 행복으로​
복닥거리며 모여 살던 그날을 ​그리워하다 어쩌다가
시한부 선고를 받고선
자식들 속 마음을 알기위해 길을 나섰던 노부부는
가진 재산 전부를​ 가장 늦게까지 사랑해 줄 사람이​ 부모란 걸
모르는 자식들 대신​,
가진 재산 전부를 어렵고​ 힘든 이들에게 기부하고,
멀어진 자리에​ 쉬어가는 바람이 전하는 말들이​
나 뒹굴고 있었습니다
피보다 진한 건​ 돈이었다며…

<실어온 글 "노자규의 골목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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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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