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팔순이 넘은 어머니를 식당에 버려두고 도망친 아들을 감싸며 벙어리 행세를 하는 어머니...
그렇게 정성으로 기른 자식에게 짐짝이 되어버린 노인의 신세,
그런 아들을 감싸며 벙어리가 된 어머니...
가슴을 울리는 글입니다.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도 버려지는 짐짝들이 되는 세상이 되지 않기를... 삶이 다하는 순간까지 최선으로 부모님을 공경하는 세상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짐... 벙어리 어머니’
청록빛 하늘이 지우진 자리에 찾아온 어둠과 함께 아들로 보이는 남자의 손을 잡고 작은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는 할머니는 한눈에 보아도 팔순이 족히 넘어 보였다.
남자의 하얀 수염이 돋아난 입술에서 국밥 두 그릇과 소주 한 병이란 소리가 터져 나온 얼마 후,
탁자에 놓인 국밥만 말없이 훌쩍거리고 있는 할머니와는 달리 아들로 보이는 남자는 소주만 연거푸 들이키고 있는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던 기운찬 달도 졸음이 오는지 별빛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을 때 남자는...
“엄마…. 담배 한 갑 사 올테니 국물까지 다 드세요“
바람을 세워 만든 각진 목도리 하나를 남겨놓고 한 시간이.... 두 시간이 지나도 남자는 돌아오질 않았다.
“할머니... 아드님한테 연락 한번 해보세요“
할머니는 실어증이 걸리셨는지 입술을 꼭 다문 하늘처럼 아무 말도 하질 않고선 누가 슬픔을 권한 사람처럼 고개만 숙인 채 주인 부부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여보…. 말을 못 하시나 보네 예“
여주인의 말을 받은 남자는 “그러게 말이야.. 큰일이네!
문 닫을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우째야 되겠노?“
“철이 아버지요. 요 앞 지구대에 당신이 퍼떡 데부다 주고 오이소“
그렇게 서투른 이별을 하고 난 다음 날 저녁 “아이고.. 김순경 님이 어쩐 일이십니꺼?”
“저 어제 데려다 주신 할머니 말이에요. 혹시 아들 인상착의나 뭐 소지품 같은 건 없었나요?
할머니가 통 말씀을 안 하시니...“
다시 못 볼 가을을 보낸 눈빛으로 구겨진 하늘만 원망하며 지구대에 앉아 계신 할머닐 안쓰럽게 바라보던 부부는
“일단 할머니가 통 못 드셨다 하니 우선 따네 곡기부터 채우면서 제가 한번 물어볼 테니 일단 우리 집으로 모시고 가께예“
“아…. 그래 주시겠어요. 전 그럼 관내 순찰 한번 돌고 오겠습니다.“
할머닌 자신 앞에 놓인 국밥을 주인 부부 앞에서 염치없이 먹기가 그러했는지 서툴게 쥐어진 수저질만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맞은편에서 혼자 술을 마시던 남자 손님 하나가 얼큰히 올라온 취기를 내뿜으며 한마디 거들고 나선다.
“딱 보이까네..
아들이 버리고 간 거네“
“에이 김 씨….
할머니 다 듣는다. 그만해라”
“말도 못 하는 벙어리인데 듣기는
뭐 듣는다고 그랍미꺼“
남자는 주인 부부를 올려다보며 달려드는 땡벌처럼 한마디 더 거든다.
“보이까네 딱 짐이네…. 짐, 형님…. 알죠! 짐짝 말임미더”
“허허 이 사람이..
그만 먹고 인자 일나라.”
“부모는 돈 떨어지면 그날로 자식한테 냉대 받는다는 걸 알면서도 왜 다 내놓고 마는 건지…
지도 부모지만 그 속을 모르겠심더.
"자식 얼굴에 웃음이 지워지는 건 못 보는게 엄마 아니겠나."
“ 부모에게 은혜를 갚으러 나온 자식과 빚을 받으러 나온 자식이 있다더니만 세종대왕한테 따질랍니더.
왜 어머니라고 지었는지 말임미더“
“어머니란 이름이 뭐 잘못된기가?“
“하모에! 어머니…. 머니 머니 머니
그라니까네 자기 엄마만 보면
돈 돈 돈 하는 거 아입미꺼“
주인 부부는 수많은 것을 조건 없이 받고도 외면하는 자식 앞에서 침묵으로 세상의 강을 건너는 저 나무를 닮은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함께 아픔을 느껴가고 있었다.
하늘…. 바람…. 구름…. 햇살...
고아로 자라 변하지 않는 것들이 주는 행복을 알고 있었던 식당 부부는 자식에게 생을 주고도 자신의 삶까지 내어 줘야 하는 할머니의 처지를 잘 알고 있었기에 겨울 들녘 빨랫줄에 걸린 것 같은 외진 가슴을 따스한 봄볕 같은 날들로 채워가며 느껴보지 못한 정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할머니.. 그냥 쉬시라니까예“
떠나는 봄을 붙들고 싶은 표정만 짓던 할머니가 밥값이라도 해서 짐짝 같은 자신의 신세를 면해보려는 맘을 잘 알고 있는 부부의 입에서 나온 말에 더 미안해서인지 설거지라도 열심히 하는 모습에 “그냥 놔두시고 여기 오셔서 저희랑 아침밥 드세요“
따스한 밥 한 그릇으로 마주한 행복까지 얹은 세 사람의 달달한 하루는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모처럼 식당 문을 닫고 쉬는 휴일 오후 나들이 나온 햇살을 모아놓은 옥상에 앉아 할머니의 염색을 해드리며 발톱도 깎아 드리고 있는 부부.
"할머니! 이러니 십 년은 젊어 보입미더.."
"할머니.! 이제 저랑 요 앞 읍내에 있는 목욕탕가입시더 제가 등도 밀어드릴께예"
부모의 입안에 든 것까지 빼먹는 자식을 낳고 기른 자신을 생각하며 할머니의 그 웃음은 곧 눈물로 변하고 있었지만 스치는 인연을 붙들어 가족이란 울타리를 엮어가고 있는 부부의 얼굴은 봄을 찾아온 나비 같아 보인다.
마른 날들이 이슬에 젖어 한 장 두 장 넘어가던 어느 날 김순경의 손에 붙들려온 아들을 보며 할머니의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
“할머니 아드님이 버리고 간 거 맞죠?“ “...............“
“그럼…. 일단 지구대로 가서 더 조사해서 처리할게요” 라며
아들을 데리고 나가려는 그때,
세상 이야기 다 들어도 말하지 않는 하늘처럼 굳게 다문 할머니의 입술에서 외마디 비명 같은 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니예유... 우리 아들이 버린 게 아니라 아들이 힘드니까 제가 버려 달라고 부탁한거여유..“
험한 세상을 헤엄쳐 찢겨진 가슴을 더 열어 보일 게 없는 얼굴로 그 자리에 주저앉고만 할머니는 " 더 이상 짐짝이 될 순 없었으니깐유"
버림받은 이별의 아침에 꽃을 선물하듯 내뱉는 소리에
"할머니! 말씀하실 수 있으면서 왜 여태껏 안 하셨어요?"
산에다 자신을 버리고 가는 자식 내려갈 길을 걱정하는 게 부모이기에 말해봤자 자식욕 밖에 더했겠느냐는 듯
둘 곳 없는 눈동자를 외진 가슴에 쑤셔 넣더니 세상을 돌다 온 바람을 안고 돌아서 가는 아들의 뺨 위에 흐르는 저 눈물이 마지막 눈물이기만을 기도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주인 부부의 손을 잡더니 이 세상에 더 이상 마주할 수 없는 행복을 안고 떠난다며 그동안 고마웠다는 인사를 보석 같은 눈물로 대신하고선 자식이 머무는 곳이 어미가 있어야 할 곳이라며 아들을 따라 멀어지고 있는 할머니가 걸어 나간 자리에 엄마라는 가슴에 새겨진 회한의 삶의 조각 하나가 그 자리에 떨어져 있었다.
부모는 자식을 낳았지만 자식은 부모를 낳지 않았다는...
~ 노자규의 골목 이야기에서 ~
독일 속담에 "한 아버지는
열 아들을 키울 수 있으나,
열 아들은 한 아버지를 봉양키 어렵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