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전시 연주 알림]
11월 29일 수요일 정문규미술관 전시와 공연 소식을 알려드립니다.
아래 링크를 눌러서 확인해 주세요
배달래 초대전
https://m.blog.naver.com/imsan2/223274307723
음악 무용극 '오징어 게임'
https://m.blog.naver.com/imsan2/223245666704
1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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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mmorning
“모든 괴로움과 번뇌에서 벗어나고자 하거든
지족(知足 ; 만족할 줄 앎)을 관해야 한다.
만족할 줄 알면
그 자리가 부유하고 안온(安穩)한 곳이 된다.”
2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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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에 잎이 말라들던 미백2호 찰옥수수 채종포 밭이 짙은 녹색으로 변해가네요.
단비로 군데군데 하얀 상처만 보이고 제 색깔을 찾아가는 작물을보며 한시름 놓았네요.
부랴부랴 설치한 관주용 5t 물탱크 두개도 배관을 완료하고
테스트까지 끝내고나니 뿌듯합니다.
농사,깨진독에 물붓기처럼 수익은 요원하고 씀씀이만 불어 나네요.
당근용 5t 물탱크 15만원
배관 자재비 총 25만원에
5t 물탱크 2대를 설치하였으니
싸게 잘했죠?
착하게 살다보니 주변에서 도움주신분들이 많네요.
그분들께 감사한 날입니다.
은혜도 모르고 당연한것처럼
잊고 살지는 마세요.
그 누구의 도움없이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랍니다.
흔히들 착각하죠.
자신이 잘나서 그런줄알고...
하나를보면 열을 알수있습니다.
진실은 만물과 상통하거든요.
내일은 서리태 콩밭에 가봐야겠습니다.
오늘도 수고하신 모든분들과 함께...
6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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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mmorning
깻잎 끝 말림현상 및 채관 갈색으로 변함
22년 11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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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mmorning
안녕하세요. 오늘은 저희집위 도로건너 언덕위 저희곰취밭 가장자리 석축이 다소붕괴되며 또첨부사진처럼 집에서 약300m지점에 이번 장마로 산사태 붕괴되면서 저희자연수 배관 파이프를 덮처서 파손됨에 아예 저희가 우의를챙겨 입고서 파손된 파이프. 응급 복구 하였음니다.
한편 저희뿐이아니고 팜모닝 가족들은 다들 같은 심정이겠음니다만.하늘도 농약분무할 시간 좀 주시지.
마침 오후에 서둘러서 고추밭. 고구마밭. 저희전 과수나무. 합하여 50리터로 농약 분무로 마무리 하였음니다.
7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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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mmorning
오늘도 집사람 비번날이라 진주 하대동
이비인후과에 다녀 왔습니다.
치료 마치고 진주 중앙시장에 들렸다가
전어가 수족관에 가득 있어서 전어회 먹고 다시
제일식당 비빔밥 먹으러
걸어서 갔는데 가는 골목길에 옷가게를 자나갔는데 개량한복 한벌씩 구입하고 식당까지 갔는데 골목이
너무 덥다고 외곽으로 나와 초전동 조용한 죽과 비빔밥 식당에서 점심먹고 왔습니다.
잠시 구름낀 날씨라 참깨대 벴는데 너무 더워서 작업 중단하고 참외랑
막걸리 한 잔하고 있 습니다
7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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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mmorning
[ 옛날 이야기 한토막 / 긍휼(矜恤) ]
영조 때 한양 정동에
고려 말 충신 이색의 14대손 이사관(李思觀, 1705~1776) 이 살고 있었다
승정원 동부승지를 물러나 한가한 생활을 하던 그는
급한 볼일이 생겨
고향인 충청도 한산에 가게 되었다.
그날따라
몰아치는 눈보라에 눈을 뜰 수 없을 지경이었는데
예산 근처에 이르렀을 때는 기온마저 떨어져 얼어 죽을 지경이었다.
걸음을 재촉하던 이사관이
어느 산모퉁이에 돌다보니
다 헤진 갓에 입성마저
추레한 한 선비가 서있고
그 옆에는 부인인 듯한 젊은 여인이 무언가를 끌어안고 쪼그려 앉아 있었다.
이사관이 다가가 보니
놀랍게도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사관이 
“뉘신지 모르겠으나 여기서 왜 이러고 계시오?”라고 물으니
추레한 선비가 안절부절하며 
“아내가 해산일이 가까워
처가에 데리고 가려고 나섰는데
그만 여기서 몸을 풀었지 뭡니까.
이런 날씨에 이런 일을 당하고 보니
어찌 할 바를 모르겠구려!
아이고 이를 어쩌나?”
발을 동동 구르며 애타한다.
이사관은
“저런! 큰일이구려!” 라고 한 뒤
자신이 입고 있던 값비싼 양털 가죽옷을 벗어
아기와 산모에게 덮어주고
선비를 재촉해 마을을 찾아 나섰다.
어느 마을에 도착하여
급한대로 방 한 칸을 빌리고
집주인에게 두둑히 돈을 주고
산모의 방에 군불을 뜨겁게 지피도록하고 미역국을 끓여
산모의 허기를 면하도록 해주었다.
선비는 눈물을 흘리며 고맙다고 하며 이사관의 손을 잡고 
“노형께서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아내와 어린 것이 큰일을 당할 뻔 했습니다.
큰 은혜를 어떻게 갚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남의 곤경을 보고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 어디 있겠소. 아무쪼록 가시는데까지
무사히 가시구료.” 
이사관이 길을 떠나려 하자 한사코 이름을 묻는다.
“정동에 사는 이사관 이라고 하오.”
이후 이사관은
이 일을 잊어버렸지만
가난한 선비는 가슴속 깊이 이사관 이름을 새겨 넣었다.
가난한 선비는 몰락한 양반가 자손 충청도 면천의 생원 김한구(金漢耉, 1723~1769)였다. 
십 수 년의 세월이 흐르고
김한구는 여전히
‘똥구멍 찢어지게’ 가난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가난에 견디다 못해
먼 친척 아저씨뻘 되는
당시의 세도 재상인 김흥경에게 의지하려 길을 나섰다.
김흥경은
친척 조카뻘 되는 김한구를 딱하게 여겨 쌀가마니 정도를 도와 주곤해서 겨우 연명하며 견딜수 있었고
가끔 아저씨 사랑방을 찾아가 놀다 오곤 했다. 
마침 김흥경의 생일날
이집의 사랑방에는
찾아온 축하객들이 아침부터 북적였다. 대부분
높은 벼슬아치거나
신분이 쟁쟁한 사람들이었는데
그 속에 김한구도
한쪽 구석에
여전히 초라한 모습으로 끼어 앉아 있었다. 
그 자리에는
관상을 잘보는 것으로 장안에 유명한 문객도 섞여 있었는데
문득 주인대감 김흥경이 심심파적으로 
“여보게 음식이 들어올 때까지
여기 계신 대감들의
신수나 보아 드리게.”라고 했다.
문객이
이사람 저사람 관상을 보아주었을 때 김흥경이 웃으며 말했다.
“여보게
저기 윗목에 앉아있는 김생원은
내 조카뻘되는 사람인데
언제쯤이나 사는 형편이 나아질지 보아 주게나.”
그 말을 들은 문객은
김한구의 얼굴을 한참 쳐다보더니
별안간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히 큰절을 하고 말했다.
“생원님의 고생은
이제 다 끝났습니다.
오늘부터 좋은일이 시작되어
불과 10여일 안으로
대단한 벼슬 운이 트일겁니다.”
이 말을 들은 방안의 사람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가난의 때가 꾀죄죄 흐르는
보잘 것 없는 궁짜 낀 선비가
열흘 안에 높은 벼슬을 받게 된다는 것은 말이 안되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이때는
나라에서 과거를 보는 시기도 아니며
설사 과거에 갑자기 급제한다 해도 미관말직에서 벼슬이 시작되는 것이지 높은 지위를 부여받는 길은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드러 내놓고 조롱하며 웃음을 터트리자 문객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지금은 모두들 웃으시지만
며칠만 두고 보십시오.
여러 대감님들도
생원님께 절을 올려야 하는 처지가 되실 겁니다.”
당사자인 김한구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고
음식도 못 얻어먹고
황급히 자리를 떠야 했다.
자기 때문에 분위기가 망쳐질 뻔했기 때문이다.
“에이 참!
오늘 재수가 없으려니
그 점쟁이가 미쳤나?
왜 그런 당치도 않는 소리를 해서
사람을 난처하게 만드나?
오랜만에 주린 뱃속에
고기구경좀 시켜주려 했더니
그놈 때문에
다 그르치고 말았네!”
투덜거리며 집에 돌아와 보니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금년 들어
열여섯 살인 딸이
왕비 간택의 대상으로 뽑혀 대궐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이 아이가
지난날 눈이 쏟아지던 길바닥에서 태어나 이사관의 도움으로 생명을 건진 그 아기였다.
아이가
용모가 뛰어나고 총명했기에
은근히 부잣집에 시집보내
그 덕을 좀 보려는 욕심도 있던 김한구였다. 
당시 영조는
이미 예순 다섯 이였으나 정정했고 늘그막에
중전인 정성황후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나라의 법도상 국모자리를 비워둘 수 없어 영조는 대신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간택령을 내리게 된 것이었고
가난하지만
뼈대있는 가문이었던 김한구의 딸도 후보자 중 한명이 되었던 것이었다. 
간택일이 되자
백 여명의 후보 규수들이 대궐로 모였고 영조가 친히 접견하여
그 중 1명을 선택 하였다.
김한구의 딸의 미모에 혹한 영조가
그녀의 사주단자를 자세히 들여다 보고는 
“면천 " 태생인 김선비의 여식이라
애비는 김한구,
본관은 경주,
조상은
효종 때 바른 말 잘하기로 소문난 유명한 김흥욱 이란 말이지?
흠! 이만하면 문벌도 괜찮구나!”
결국 간택을 받게 되었다. 
김한구는
문객의 예언대로
정일품 보국승록대부 오흥부원군의 작위를 받았고
신분이 하늘처럼 높아져
금위대장 병부까지 하게 되었으며
아들과 아우까지 벼슬을 얻었다.
오두막살이에서
1백여 칸의 고래 등 같은 집으로 옮겨 살게 되고
죽마저 끼니를 때우는게 어려운 생활에서 초호화판 생활로 갑자기 바뀌었다.
문객의 말이
제대로 맞은 것이다. 
김한구는
잊지 않고 딸에게 청을 넣어 은인인 이사관은
호조판서가 되었고
이어 영조 48년(1772년)에
우의정에 이어서 좌의정에 오르게 된다.
옛날 베푼 은혜가
큰 복이 되어 돌아온 셈이고
김한구는
은인에게 제대로 된 보은을 하게 된 셈이었다. 
이래서 세상일은
아무도 모른다는 말이 있는 듯하다. 
따뜻한 마음으로
긍휼한 자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 준 이사관이나
그것을 잊지않고
은혜를 갚는 김한구의 사람됨도 훌륭하다 (無 ) -------------------
* < 이사관 ( 李思觀 ) / 조선 후기의 문신 >
이사관(李思觀, 1705년 ~ 1776년)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본관은 한산으로, 영조 때 좌의정을 지냈다.
자는 숙빈(叔賓), 시호는 효정(孝靖)이다.
< 생 애 >
정언, 지평, 사간을 거쳐 의주부윤이 되고, 충청도관찰사를 거쳐
황주 목사에 이어 승지가 되고, 이후 충청도관찰사를 하다가 
도승지를 하고 나주목사를 거쳐 
예조판서, 병조판서, 호조판서, 도총관으로 내국제조를 겸하고, 
형조판서를 거쳐 수어사를 하다가 
형조판서, 호조판서를 하고 
우의정, 좌의정을 하고
판부사에 이르렀다.
7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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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늘 심으려고 유공비닐 구입 해 봅니다
1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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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약 120kg 수확하여 약100kg정도는 종합사회복지관에 기증.
23년 7월 4일
18
9
Farmmorning
2024년 5월19일
자유의 계시글을 올려 봄니다요잉
신시대는 증말로 거시기 허드만유
주인도 모르는 시상 생활에
일꾼보다 주인이 지처버렷습니다잉
와따 이거 농사 질수록 힘든시상 이고통은 주인만이 알지라잉
지기미 18로 가라사대 한국인 일 부려 먹끼가 과관이 안드라구유잉
우리 국민들도 스레기통 듸질날이 얼마남지 안앗다 생헌디유.
돈벌어서 외국민들 다 주구나면 곡간은 텅 비여불고 지도 고구마 다 삽식허구 나면 남일을 댕겨야 할것 갇어유
팜모닝 회원님들 일거리가 있으면 소개 부탁드림니다
그럼 일줄때까정 기다리면서 ...
눈물로 하소연 해봄니다
5월 19일
18
21
Farmmorning
삶을 성숙시키는 생활명상
이 세상의 여러 가지 힘 중에서 행복(幸福)의 힘이 가장 훌륭하다.
- 증일아함경 -
'하늘은 짓지 않은 복을 내리지 않고, 사람은 짓지 않은 죄를 받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불교의 인과법칙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다'는 연기법과 같습니다.
우리는 은연중에 짓지도 않은 큰 복을 자꾸만 기대하지만, 불교적 관점에서 행복은 자신이 뿌린 만큼 거두는 것입니다. 그래서 얻기 힘든 것은 바로 행복(幸福)입니다.
세존께서 '세상에서 가장 얻기 힘든 것은 마음의 행복'이니라, 모든 인욕에 한계가 없듯, 베품도 한계가 없어 베풀수록 더 크게 돌아오는 것이 바로 보시-베품의 공덕입니다.
'하늘이나 인간계서 행복의 힘보다 더 뛰어난 것은 없다. 붓다의 길도 베품으로 이뤄진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이죠.
마음의 행복은 아낌없이 베푸는 보시가 바로 지름길입니다.
마음경영 계룡산 청룡사
해성당 관우 _(((♡)))_
2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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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Farmmorning
안녕하세요. 오늘은 일기예보에 비 조금이라하기에 몇일전 자연수 배관공사를한것응 이용 저희마늘밭에 물 주기를 하였으며 내일도 물주기릴 할 예정임니다
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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