옻 나 무
야 !
옻나무 좀 잘라서 택 보내라
액기스 내서 묵그러.
도시사는 절친이 하는 말이다.
아부지.
금숙이가 옻나무 보내라는디.
약한다고..
난 옻을 무지 탄다.
더운날 옆으로 지나만 가도
피부가 디집어 진다.
밭가에 봄이면
지천으로 널린게
옻순이라 지만 낸 아무것도할수 없어
동네 분들에게
눈치 아닌 눈치를 본다.
넘들은 옻순이 맛나다고
옻닭이 몸에도 좋으니
먹어 보라지만..
나두 먹어보고 싶다.
간절하게 아주 간절하게..
아버지 움직이는 소리에
점심 설겆이를 마치고
따라 나섰다.
저만치서 아버지는 손수레를 끌고 가신다.
적당한 나무를 골라 아버지는 톱질을 하시고
난 쌀쌀한 날씨를 빽으로
겁없이 옻나무 가지를 낫으로 툭툭 쳐냈다.
손수레 가득 옻나무를 실고
집으로 오니 덥다.
옆집 엄니가 떡다라이를
내려 놓으시며 가래떡을 쥐어 주심서 뭐하려고 그러냐고
옻으름 어쪄려고 그러냐고.
하루 지난 오늘 오후까지는 괜찮았다.
저녁을 먹고 아랫말 동생집에 가니.
언니 살이 찐겨?
얼굴이 퉁퉁하네
겨울이라 쪘것지.
실내 온도가 30도가 넘는 울집
눈 두덩이가 살짝 가렵다.
손목. 목 덜미.턱.쇠골
근질근질 가려워 온다.
거울을 보니.
작은 눈은 두덩이가 부어
반쯤감긴 짝눈이고
목덜미랑 쇠골은
벌거니 우둘투둘
손목두 우둘 투둘
안 긁고 싶다.
그런데 자꾸만 손이 간다.
우야문 좋컷는 지요.
ㅠㅠ
일단 약은 챙겨 묵었는디..
3월 13일
11
6
우리동네에는 고즈넉한 오래된 집앞에
수레국화가 만발했어요. 누구라도 지나가다보면 시선을 돌리게 되죠. 이 꽃씨를 뿌려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해주는 쥔장의 맘에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23년 5월 17일
8
8
Farmmorning
- 6-70년대 우리들의 공감시대 4 -
대나무 스키와 시케토.
겨울에 하안눈과 동네 앞에 수렁논이 있어서 꽁꽁언 논 바닥에 얼음은 아이들 놀이터였습니다.
대나무 스키는 큰 대나무를 반으로 쪼개어 공이 부분을 낫으로 납작하게 밀고 앞쪽은 불로 그을려 휘게 만든다.
스키봉은 따로 없어서 순전히 발로 중심을 조정해야 한다.
이렇게 앞머리가 살짝 구부러져서 눈을 헤치고 나가게 만든 대나무 스키는 요즘 스키와 비슷했습니다.
이 대나무 스키를 약간 경사진 골목을 지게 작대기 정도 크기의 막대기로 중심을 잡고 내려갈 때 기분을 정말 짱이었습니다.
논바닥에는 널판지로 만든 시케토라는 썰매를 만들어서 얼음판을 씽씽 달렸습니다.
두꺼운 철사나 창틀에 있는 레일을 구해서 스케토 바닥에 고정시키면 얼음판에서 신나게 놀 수가 있었습니다.
굵은 철사를 시케토날에 부착해야 하는데 그때는 참 귀했습니다.
집에서 목재나 금속 따위를 갈거나 다듬는 데 쓰는 공구인 야스리(줄)를 갖고 전봇대를 넘어지지않게 양쪽에서 묶어 놓았는데 전봇대를 묶는 철사가 굵어서 시케토날에 적합했습니다.
한사람은 망을보고 야스리로 몰래 한가닥을 위아래를 잘라와서 시케토날을 만들었다.
살짝 도둑질을 한 셈이었다.
옛날 교실 창문에 있는 레일이 두껍고 날이 넓어서 제일 좋은 시케토날이었다.
오늘날 스케이트날 역할을 한 셈이지요.
반듯한 막대기를 잘라서 손잡이도 만들고 지팡이 끝에는 뾰쪽한 못을 박아서 시케토를 탈 때 힘차게 밀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스키장에서 스틱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외발 시케토도 만들어서 한발로 얼음을 지치기도 했다.
외발 시케토는 신발보다 조금 큰 판자밑에 시케토날을 달고 시케토가 벗어지지않게 구멍을 뚫어서 끈을 매달아 시케도가 벗기지않게 발에 묶고 탔습니다.
요즘 쇼트랙선수같이 커브를 틀 때는 몸을 옆으로 수구리면서 신나게 달릴 수 있었다.
비료포대는 엉덩이쪽에 폭신하게 지푸라기를 넣고 눈덮힌 비탈진 길을 미끄럼을 타기도 했다.
여자들과 어린아이들은 신작로 내리막길이나 동네 비탈진 골목에 눈이 쌓이면 비료포대를 들고와서 미끄럼을 탔다.
얼음판에서 놀다보면 살얼음판이 깨져서 물에 빠지기도했고 엉덩방아를 쪄서 엉덩이가젖곤 합니다.
주변에 나뭇가지를 모아서 모닥불을 피우고 물에 빠진 양말과 젖은 엉덩이를 말리곤 했습니다.
모닥불에 젖은 양말과 엉덩이에서 김이 모락모락나기도 했습니다.
그 때 양말은 나일론이 막 나오기 시작할 때라 나이론 양말은 불에 약해서 금새 빵구가 나기도 해습니다.
엉덩이를 불 가까이에 대고 있다가 바지가 노린내가 나며 눌기도 했습니다.
지붕 끝이나 나뭇가지에 매달린 고드름은 간식거리였습니다.
스레트나 양철같은 골골이 있는 처마밑에 고드름은 길쭉하게 달렸습니다.
막대기로 쭈욱 긁고 나가면 고드름이 두두둑 떨어졌습니다.
그 때는 정말 고드름이 많았습니다.
엄청 추운 날씨가 많았습니다.
시암가(우물가)나 골목에 얼어 붙은 얼음덩어리는 봄비나 내려야 녹았습니다.
밤새 하얀 눈이 장독대위에 버섯모양으로 쌓였습니다.
함박눈이 내리는 날이면 바람도 없고 고요하고 포근한 밤이었습니다.
깨끗한 눈을 입으로 핥아 먹기도 했습니다.
햇볕에 살짝 녹은 눈은 잘 뭉쳐지기 때문에 눈싸움 하기에 좋았습니다.
하루는 하교길에 버스가 눈이 녹아 질퍽거렸는데 그냥 흙탕물을 튕기면서 지나갔는데 약이 오른 친구가 얼른 눈을 뭉쳐서 차에다 던졌습니다.
그 때는 비포장도로라 차들이 천천히 달렸습니다.
그런데 손에 낀 장갑이 녹은 눈에 휩쓸러 벗어지면서 열린 창문으로 딸려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장갑 한짝을 잃은 적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돌팔매를 많이 했지 않습니까?
전봇대에 있는 호롱을 맞추는 내기도 했습니다.
전선줄에 앉아있는 새를 맞추기도 했습니다.
잔잔한 웅덩이나 냇가에서 둥글고 얄팍한 옆으로 돌을 물위로 스치듯이 튀기어 가게 던졌을 때 그 튀기는 자리마다 생기는 물결 모양의 물수제비를 누가 많이 하나 내기도 했습니다.
나는 물수제비를 평균 7-8회는 기본이고 많게는 15번도 했었다.
납작한 돌이 통통통 튀는 거리가 짧을수록 물수제비 숫자가 많이 생기고 꼬르륵 물속에 돌멩이가 잠긴다.
아침 등교길에 언덕에 있는 신작로에서 냇가를 바라보면 냇가 가운데 커다란 바위에 자라들이 아침에 따뜻한 햇볕을 쬘려고 많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돌멩이를 던지면 자라들이 놀라서 우루루 물속으로 뛰어 들어가곤 했습니다.
그 때는 냇가 모래밭에 자라들이 엄청 많이 서식하고 있었습니다.
모내기철에 냇물을 끌어드릴려고 물이있고 모래가 있는 보(洑)또랑을 파다보면 손바닥 크기의 자라가 모래밭에서 나오기도 했습니다.
돌을 던져 냇가를 건너는 멀리 던지기 시합도 했습니다.
어느 날 체육시간에 실기시험으로 공던지기를 할 때면 내가 제일 멀리 던졌습니다.
시내 아이들은 어깨넘어로 살포시 공을 던졌습니다.
그래서 야구선수 투수들이 던진 공이 쉽게 보이기도 했다.
4월 21일
11
6
아는지인이 만들어주신 딸기손수레 너무너무 감사해요~~
활기찬하루 되세요~~^^
22년 12월 8일
4
1
Farmmorning
에취기2대 손수레
23년 8월 19일
1
할머니들이 사용하시다 버린 손수레를 쓰레기 장에서 주어와
고추 수확기를 만들어 사용을 해보는데 너무나 좋아요
물론 약간에 시행착오 끝에 완성된 모습입니다.
23년 8월 20일
3
1
우리 삶을 성숙시키는 생활명상
남을 죽이면 자기를 죽이는 자를 만나고, 남에게 이기면 자기를 이기는 사람을 만난다.
- 잡아함경 -
사람은 종교와 관계없이 자신이 저지를 일에 대한 댓가를 반드시 받는것이 인생의 수레바퀴입니다. 종교적 관점에서는 인과(因果)법칙이죠. 즉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다는 말입니다,
나의 마음가짐, 말과 행동은 인(因)이며 이는 어떤 연(緣)을 만나 그에 상응하는 과(果)를 만듭니다. 우리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지만
자신이 온전하려면 오직 스스로 자비심을 가져야 합니다.
남을 포용하고, 사랑해야 스스로 자신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죠. 남을 사랑하면 어찌 남이 나를 미워하고, 남을 미워한다면 어찌 남이 나를 사랑할까.
인(因)과 연(緣)은 자신이 만들며 그 과(果)도 자신이 만든다는 사실을 깨닫고 모든이에게 사랑과 자비의 텔레파시로 나의 삶을 기쁨으로 충만케 합시다.
마음경영 계룡산청룡사
해성당 관우 _(((♡)))_
12월 25일
8
1
1
Farmmorning
🏜 삶 의 굴 레 🙋
고대인들은
별을 보고 길을 찾았고
중세 사람들은 신을
보고 길을 찾았다.
현대인들은
네비게이션을 보고
길을 간다.
좋은 나침반과
훌륭한 지도까지 있지만 길을 잃는 사람들은 더 많다.

루이스 캐럴이 지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부탁인데,
내가 어떤 길로
가야할지 가르쳐 달라”는 앨리스의 부탁에
고양이가 대답한다.
“그것은 네가 어디에 가고 싶은지에 달렸지.”
“난 어디에 가도 좋아."
“그러면 넌
어떤 길로 가도 좋아.”

인생에는
정해진 해답이 없다.
성인들이 간 길도
나에게 해답이 될 수 없다.
성인의 길은
길의 방향이나 행로를 알려주는 안내도일 뿐이다.
​길(路)은 발 족(足)
과 따로 각(各) 으로
이루어진 글자이다.
각자 자기 발로
걸어가는 길이다.
지금 자신이 걷는
그 길이 인생길이다.
결국 인생의 해답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고, 그것은 자기
삶 속에 있다.​

고대 아리안족은
고통을 두카
(dukkha)라고 하고,
행복을 수카
(sukkha)라고 불렀다.
유목민인 그들은
수레의 상태에 비유해
전자를 덜컹거리는 운행으로, 후자를 순탄한 운행으로 간주했다.
마음이 즐겁고 일이
잘 풀리면 수카이고,
일이 꼬이고 마음이
어지러우면
두카로 여긴 것이다.

인생길을 가노라면
삶이 덜컹거리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노면이 울퉁불퉁하고
어둠이 가득한 날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마부처럼
현명하게 행동하지
않는다.
왜 나에게 이런 고난과 시련이 닥치느냐며
투덜거리기 일쑤이다.
덜컹대는 원인은
살펴볼 생각은 않고
세상을 원망한다.
불평을 할수록
삶은 더 고달파지고
덜컹거림은 해소되지 않는다.

노련한 마부는
수레가 덜컹거린다면
우선 수레를 끄는 말을 일단 세운다.
바퀴의 축이 빠졌는지,
바퀴살이 망가졌는지,
수레의 상태를 살핀다.
내가 목적지를 향해
바르게 가고 있는지를 돌아본다.
방향이 맞고 수레에
문제가 없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언젠가는 고통의
두카가 끝나고
행복의 수카가 온다.
긍정적 마인드를 가지고 있으면
수카가 오고,
부정적 마인드를 가지고 있으면
두카가 온다.
23년 5월 19일
3
2
며칠전
동죽조개를 고창항에 주문했다
어제 오후에 도착하여 밤새 조개 해감을 하고, 내일 마을정자서 물총칼국수 해 먹기로 했다
오늘 아침부터
호박썰고 파썰고, 깨잎 새순만 따서 데치고 무치고 해서 12시에 수레에 버너,냄비등 싣고 정자로 갔다
3분의 아지매가 계셨다
먼저 다시마 넣고 물을 끓였다 조금있으니 한분씩 모여셨다
7분의 어르신들과 물총 칼국수를 맛있게 먹었다
어르신들께서 시골이라 이런 조개로 칼국수는 처음 먹는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고맙다는 말씀을 연신 하신다
동죽조개 3KG를
조금 남기고 다 드셨다 칼국수도 12인분짜리인데 2인분정도 남기고 다 드셨다
젊은 사람이 해 주니까 먹긴 한데 미안하니 앞으로 하지 말라시는 아지매들,,,그래도 한달에 한두번 할꺼라고 내 맘속으로 다짐하여 더운 여름날, 따끈한 점심먹었다
#동죽조개을 #물총조개라 부르기도 한다
23년 8월 18일
19
23
Farmmorning
우리들 이야기 =36
♡ 공주의 남자 이야기 ♡
조선왕조 세조에게는 정희왕후가 낳은 공주가 있었는데 어려서 부터 어질고 성품도 덕스러웠다.
공주는 단종이 왕위에서 물러나고, 절제 김종서가 사육신 및 충의를 지키려는 신하들과 함께 단종의 복위를 도모 하려다가 순절하고,
그 가족들이 다 죽임을 당하기에 이르는 것을 보고,
일찍이 눈물을 흘리며 밥도 먹지 아니 하였다.
그리고 단종의 어머니 묘가 파헤져지는 참변을 당할 때는 울면서 간하기를 그치지 아니 하니,
세조는 크게 노하여 장차 화(禍)가 어디까지 미칠지 헤아릴 수가 없게 되었다.
세조의 비, 정희왕후는 비밀히 유모를 불러 가벼운 보물을 충족히 주면서 공주와 함께 그것을 가지고 멀리 피신하고,
왕(세조)에게는 공주가 요절한 것으로 알렸다.
마침내 유모는 공주와 함께 몰래 도망하여 충북 보은군에 당도하였고 깊은 골짜기에 다다랐을 때는 배고품이 너무 심하여 길가에 앉아 잠시 쉴 수 밖에 없었다.
이때 한 총각이 쌀을 짊어지고 이곳을 지나다 발길을 멈추고 묻기를
"두 분은 시골 사람들 같아 보이지는 않는데 어찌하여 유독 이런 곳에 와 있습니까?" 하였다.
유모가 총각을 보니 의복은 비록 때가 끼고 남루하나 용모는 보통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대답하기를,
"나와 이 낭자는 한양에서 난을 피해 도망하여 이곳에 이르렀으니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서 지금 막 주저하고 있을 따름이요." 한즉
총각은 남 몰래 눈물을 글썽이며 말하기를,
"나 역시 화를 피하여 이곳에 와서 산 지가 벌써 1년이 지났소이다." 하였다.
유모가 말하기를,
"그렇다면 나와 이 낭자는 그대와 함께 살았으면 하오" 라고 하자, 총각은 흔쾌히 이를 허락하였다.
그들은 함께 걸어서 깊은 골짜기를 지나 몇 리쯤 가니 토굴이 있어 거적문을 열고 들어갔다.
총각은 손수 밥을 지어 그들을 대접하였다.
며칠이 지난 뒤 유모가 행탁(여행용 자루)에서 가벼운 보물을 꺼내어 총각에게 주면서 이것을 장에 가서 팔아 오라고 하자,
총각이 깜짝 놀라며 말하기를,
"이 보물들은 궁중의 물건인데 아주머니는 어디서 이것들을 얻었 습니까?" 하자 유모는 말하기를,
"굳이 그 출처를 묻지말고 가져가서 팔아 주오" 하였다.
그러나 그 총각은 끝내 그 뜻을 따르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의로운 일을 거행할 때 관가에서 화를 피한 자취라고 생각한 때문이다.
1년 남짓 사는 동안에 총각은 공주와 정을 통하고 혼례를 올렸다.
그제서야 총각이 비로소 공주에게 피난한 까닭을 물으니,
공주는 울면서 대답하지 아니하고, 유모가 대신 그 전말을 알려주었다.
이 말을 듣자 총각은 슬피 울며 말하기를,
"나는 절재 김종서의 손자입니다. 우리 할아버지가 아버지와 함께 화를 입던 날 온 집안이 다 죽임을 당했으나 나만 홀로 난을 피하여 여기에 이른 것이나,
어찌 공주가 그 어린 나이로서 능히 이렇게 의로운 마음을 분별할 줄 뜻하였으리오!" 하였다.
이로부터 두 사람은 서로 공경하며 온정을 나누는 것이 더욱 깊어졌다.
세월이 오래 흘러 그때 화의 법망이 좀 풀리게 되자,
총각은 보물들을 전부 팔아서 많은 돈을 얻어,
산 밑으로 내려와 넓은 전지를 마련하고 몸소 밭을 갈고 책을 읽으며 아들 딸을 낳아 기르면서 살았다.
세조는 말년에 절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부처님께 지난 날을 참회하는 기도를 하였는데, 속리산(충북 보은군 북쪽에 있는 산 ) 으로 향하다가 마침 공주가 사는 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이때 한 어린 아이가 길가에 있었는데,
세조가 그 아이의 용모를 살펴보니 꼭 자기와 닮았다.
세조는 이를 기이하게 여겨 수레를 멈추게 하고 애를 앞으로 불렀다.
그런데 갑자기 여자의 우는 소리가 울타리 사이에서 들려왔다.
세조는 마음이 흔들려 좌우의 신하들에게 묻기를 "이 어인 울음소리 인가? " 하자, 어린 아이가 말하기를,
"이것은 우리 어머니의 울음소리입니다."하고 대답하였다.
세조가 곧 좌우 신하들을 물리치고 어린 아이와 함께 걸어서 그 사립문에 이르니,
한 부인이 땅에 엎드려 통곡하고 있었다.
세조는 놀라서 묻기를,
"너는 누구인고?" 하자,
공주는 눈물을 거두며 대답하기를,
"못난 소녀는 지난 날 아버님의 엄한 책망을 받았는데 어머님의 분부로 유모와 더불어 대궐을 떠나 멀리 피하여 다니다가 이곳에 이르러 죽지 못하고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고 있나이다." 라고 하였다.
세조는 그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너를 일찍이 이미 요절한 것으로 여겼구나.
어찌 지금까지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줄 알았겠느냐!
너의 남편은 어디에 있느냐?" 하였다.
공주가 답하기를,
"그는 죽은 영상 김종서의 손자입니다.
그도 역시 난을 피하여 이곳에 왔는데 우연히 길가에서 상봉하여 곧이어 짝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버님의 행차가 이곳을 지난다는 소식을 듣고 몸을 피해서 지금 집에 있지 아니합니다." 라고 하니 세조는 탄식하며 말하기를,
"김종서에게 무슨 죄가 있겠느냐? 내일은 마땅이 나오너라.
가마와 말을 보낼 것이니 나와 함께 대궐로 돌아가자.
아울러 네 남편에게도 봉작(작위)를 가하리라." 하고,
세조는 드디어 수레를 돌렸다.
다음 날 세조는 승지를 파견하여 그들을 맞아 오게 하였으나,
공주는 밤을 틈타 그 남편과 함께 가족을 거느리고 몰래 어디론지 숨어버리니 그 거처를 알아낼 수가 없었다.
전하는 소문에 의하면 당시 세조가 지나가는데
정이품송(충북 보은 속리산 법주사 가는 길에 서 있는 수령 600년의 소나무 ) 아래서 두 아이가 놀고 있어 그들의 부모이름을 묻자 대답을 하지 않고 가마골로 도망을 가길래 그냥 지나쳤는데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 다음날 찾아 보았으나 그들의 부모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세조는 본인의 외손자임을 직감하고 정2품 품계를 적은 문서를 당시의 정이품송 아래에 놓고 왔는데 그들은 끝내 찾아가지 않았으며,
그 후에 문서를 발견한 어느 사람에 의하여 '왕이 손수 소나무에게 정이품의 품계를 내리셨다'
전해지게 되었다고 한다.
* 옮겨 온 글 *
3월 25일
44
29
5
♡ 다산의 하피첩(霞帔帖) ♡
노을 하(霞),치마 피 帔,문서 첩(帖)]
"하피첩(霞帔帖)"은 노을빛 치마로 만든 소책자'이다.
2005년에 수원의 어느 모텔 주인이 파지를 마당에 내다 놓았는데, 폐품을 모으는 할머니가 지나가다가 파지를 달라고 했다.
모텔 주인은 할머니 수레에 있던 이상한 책에 눈이 갔고,그는 책과 파지를 맞 바꿨다.
그리고는 혹시나 하고 KBS'진품명품'에 내어 놓았다.
김영복 감정위원은 그 책을 보는 순간 덜덜 떨렸다. 라고 했다.
"진품명품" 현장에서 감정가 1억원을 매겼고, 떠돌던 이 보물은 2015년에 서울 옥션 경매에서 7억 5,000만 원에 국립민속박물관에 팔렸다.
하피 (霞帔) 는 옛날 예복의 하나다.
'붉은 노을빛 치마'를 말한다.
다산은 천주교를 믿었던 죄로 전남 강진으로 귀양을 갔었다.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마재에 남았던 아내 홍씨는 남편귀양 10년째 되는해,시집 올때 입었던 치마를 그리운 마음을 담아 남편에게 보냈다.
그 치마에 다산이 두 아들에게 주는 당부의 말을 쓰고 책자로 만든 것이 하피첩이다.
다산은 치마의 한 조각을 남겨'매화'와 '새'를 그려서 족자를 만들어서 시집을 가는 딸에게 주었다. 이것이 매조도(梅鳥圖)다
'부지런함(勤)과 검소함(儉)
두 글자는 좋은 밭이나 기름진 땅보다 나은 것이니 한 평생을 써도 닳지 않을 것이다.'라고 어머니의 치마에 사랑을 담아 쓴 글씨, 세상에서 이보다 더 값진 보물이 있을까?
다난 부부의 애절했던 사랑을 담고서 세상을 떠돌아다니던 하피첩은 국립 민속박물관에 자리를 잡았다.
정약용의 위대함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아내의 노을빛 치마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는 200년의 세월을 넘어.지금도 우리들 가슴을 잔잔히 적신다.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8가지 사람의 유형
① 사람들은 잘난 사람보다 따뜻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② 멋진 사람보다 다정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③ 똑똑한 사람보다 친절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④ 훌륭한 사람보다 편안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⑤ 대단한 사람보다 마음을 읽어주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⑥ 말을 잘 하는 사람보다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을 좋아
합니다
⑦ 겉모습이 화려한 사람보다 마음이 고운사람을 좋아합니다
⑧ 모든 걸 다 갖추어 부담을 주는 사람보다 조금 부족해도 내편이 되어주는 진실한 사람을 좋아 합니다
오늘도 행복한 날 되시길...
늘,응원하고 사랑합니다..
💙 不經一事 一智 ♥️ (불경일사 일지)
"한 가지 일을 경험하지 아니하면 한 가지의 지혜가 자라지 못합니다." 살면서 늘 염두에 두어야 할 3가지를 마음에 새깁니다.
인간의 좋은 습관 3가지
① 일하는 습관
② 운동하는 습관
③ 공부하는 습관
인간을 감동시키는 액체 3가지
① 땀
② 눈물
③ 피
남에게 주어야 할 3가지
① 필요한 이에게 도움
② 슬퍼하는 이에게 위안
③ 가치 있는 이에게 올바른 평가
내가 진정 사랑해야 할 3사람
① 현명한 사람
② 덕 있는 사람
③ 순수한 사람
반드시 소유해야 할 3가지
① 건강
② 재산
③ 친구
살면서 한번 놓치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3가지
① 시간
② 말
③ 기회
살아가는 데 가장 가치 있는 3가지
① 사랑
② 자신감
③ 긍정적 사고
성공적인 사람을 만들어 주는 3가지
① 근면
② 진실성
③ 헌신과 전념
성공적이지 못하는 사람을 만들어 주는 3가지
① 폭음
② 자만(아집)
③ 분노
인생에서 한번 무너지면 다시 쌓을 수 없는 것 3가지
① 존경
② 신뢰
③ 우정
참 아름다운 우정 글이 너무 좋아서 세번 읽었네요 ~^^ 사랑합니다.♡ 언제나 소중한 분에게 ~
7월 16일
22
13
일욜,
손주을 태우고 친정으로 갔다 아들과 남편은 포항서 부산친정에서 만나기로 했다
친정엄니
옥상에 장독이 많다고 가져가라시는데 시간이 없어 못 갔다가 마침 아들과 남편이 시간이 맞아 가져 오기로 했다
점심 무렵
친정 옥상에 단지들을 내리고트럭에 실었다 아들도, 남편도, 나도, 온 몸에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밀양에 도착전,
갈비탕으로 점심을 먹고 밭에 도착, 단지들을 밭에 내리곤 이내 남편,아들,손주는 포항으로 가 버렸다
마치
택배기사가 짐을 집앞에 내려 놓고 가 버리듯,,,,ㅜㅜ
남편도, 아들에게도 서운했다
월욜 이른 아침,
공사장 소장님께 작은돌 좀 가져가도 되냐고 물으니 가져 갈 만큼 가져 가란신다
작은 수레에
돌을 퍼는것도 버겁고 나르는것도 버겁지만 3번을 하고 나니 온몸에 힘이 다 빠진다
장독대에 붇고
수평 대충 맞추어 단지를 사이즈 별로 올려 놓으니 이내 힘듦이 사라진다
하지만.씻고 나니
온몸이 아프다, 힘들다,
밥맛도 없다. 이러다가 살 빠지려나?ㅎㅎㅎㅎ
23년 9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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