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에 갈 음식준비하고 삼식이들 밥챙겨주는 며칠이 너무 길게 느껴지네요 돌아서면 청소 돌아서면 밥 언제 해방될까요 ?
손녀들도 자식도 잠깐은 반가운데 간다는 날 기다리며 ㅋㅋ
가고나면 자유의 시간이 오겠죠
2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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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Farmmorning
복날 마을 분들과 장어구이 먹었내요
7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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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종구로 심은 쪽파가 잘 자라고 있네요.
토요일날 비료와 약 치고 왔네요.
5월 27일
8
2
Farmmorning
우리들 이야기 =37
♡ 있어야 할 자리 ♡
어떤 미국 사람이
파리에 있는 어느 골동품 가게에서
오래되고 낡아 빛바랜 진주목걸이를 장식품으로 마음에 들어
좀 비싼 듯 했지만 500달러에 사서 미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다 현찰이 좀 필요해서
그것을 집 근처에 있는 보석상에
가지고 갔더니 보석상 주인은 한참
동안 감정을 한 후 상기된 표정으로 30,000달러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일단 그것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가 그 다음 날
꽤알려진 골동품 가게를
찾아갔습니다.
골동품 가게의 주인도
역시 한참 동안 감정을 한 후에
50,000달러를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더 놀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솔직하게
골동품 가게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아니, 색깔이 다 바랜
진주 목걸이인데 왜그렇게 값이 많이 나갑니까?
​그러자 골동품 가게 주인은
의외라는 듯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 아직도 모르고 계셨습니까?
그러면서 돋보기를
진주 목걸이에 들이대면서
자세히 쳐다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거기에
깨알같이 작은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조세핀에게
황제 나폴레옹으로부터]
그리고 오른 편에는
'나폴레옹 황제의 친필 사인'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가게 주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진주 목걸이의
자체 만으로는 불과 몇십 불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적혀 있는 글씨와
친필 사인 때문에 그렇게 값이 많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보석 값보다는
거기에 적힌 글 값이 훨씬 더 비쌌던
것입니다.
아무리 진주 목걸이에
황제 나폴레옹의 사인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고물상에 있으면
불과 500불짜리 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으니까
엄청난 진가를 발휘하고 있는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아
스스로의 가치를 높혀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카톡에서 받은글 ^^♡
https://youtu.be/tiMPJz4-y4s?si=2NA7YY9JXUgaTs2i
3월 26일
3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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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꽃을 피워라☆☆
-조엘 오스틴의 '행복의 힘' 중에서
지금, 불행하고 괴롭고 슬프고 아프고 두려운가?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가?
불행, 슬픔, 괴로움, 아픔, 두려움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주체도 나[我]고, 거기서 벗어나기로 선택하는 사람도 나다.
무엇이 있고 없는지,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마음을 어떻게 정하는지, 또 어떤 선택을 하는지가 중요하다!
대개 사람은 금요일에 평소보다 10% 더 행복을 느끼고 있으며,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날은 월요일이라고 한다.
매일 월요일 처럼 죽을 만큼 우울하게 살 것인가, 아님 매일 금요일 처럼 신나고 행복하게 살 것인가?
자욱한 인생의 안개 속에서, 새벽처럼 밝은 한 줄기 빛을 일깨워라~~
"미소만큼 멋진 이력서는 없다!"
"장미 속의 가시가 아닌, 가시 속의 빛나는 장미가 돼라!"
"신중한 사람이 되라고 했지, 신중한 얼굴로 지내라고 하지 않았다!"
용서는 과정이다.
하룻밤 사이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삶의 언어로 성경의 말씀을 끌어안아라!
"우리는 이미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모두 가지고 있다.’"
행복, 기쁨, 영광, 치유, 용기, 사랑... 등은 기다린다고 찾아오지 않는다!
오늘 이 순간 기뻐하라!
꿈만 꾼다고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금 당장 선택하라!
최고의 날은 오늘,
최고의 삶은 지금이다!
감사합니다♡♡
9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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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mmorning
이제 2차가식이 끝났네요. 다음주쯤 마지막 3차가식 들어가야할껀데..요즘 너무바쁘니 하루 1kg씩 살이 빠지는것 같네요ㅎㅎ 1차가식 10일후 모종입니다. 잘자라주고 있네요.
3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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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mmorning
[✍️계란껍질로 비료 만들기]
- 매일매일 농사공부 4탄 151편
팜이웃 여러분 안녕하세요🙂
5월 30일, 농사공부 시간이 찾아왔어요.
오늘 공부해 볼 내용은 <계란껍질로 비료 만들기>입니다.
🔻효과
계란껍질 비료는 칼슘, 마그네슘, 인 등 식물 성장에 필수적인 영양소가 풍부한 천연 비료입니다.
🔻준비물
계란 껍질, 물, 식초(선택 사항), 빈 병, 체, 흙
🔻만드는 방법
1. 계란 껍질 준비
- 계란 껍질을 깨끗이 씻어 흰 막을 제거합니다. 흰 막은 썩기 쉽고 냄새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제거해야 합니다.
2. 계란 껍질 말리기
- 깨끗한 천이나 종이 위에 껍질을 펴서 햇볕이 잘 드는 곳에 2-3일 정도 말립니다.
3. 계란 껍질 갈기
- 말린 계란 껍질을 곱게 갈아주거나, 봉지에 넣어 망치로 잘게 조각을 내줍니다.
4. 액체 비료 만들기
- 갈아진 계란 껍질 2컵을 빈 병 또는 용기에 넣고 물 1리터를 붓습니다.
5. 원하는 경우 식초 반컵을 추가합니다. 식초는 칼슘 용해를 촉진하고 비료의 살균 효과를 높입니다.
6. 뚜껑을 덮고 2-3주 동안 실온에서 숙성시킵니다.
7. 매일 병을 흔들어 줍니다.
8. 비료 사용
- 숙성된 액체 비료를 물로 20-30배 희석하여 사용합니다.
🔻시비방법
- 흙 표면에 골고루 뿌려주거나, 물을 줄 때 함께 줍니다.
- 주당 1-2회 정도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유의사항
- 계란 껍질 비료는 칼슘 함량이 높기 때문에 과도하게 사용하면 토양 pH가 알칼리성으로 치우칠 수 있습니다.
- 토양 검사를 통해 pH를 확인하고, 필요에 따라 황이나 피트모스 등을 첨가하여 토양 pH를 조절하는 것이 좋습니다.
- 계란 껍질 비료는 천천히 분해되므로 즉각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워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 계란 껍질 비료는 냄새가 날 수 있으므로 실내보다는 야외에서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참고사항
- 계란 껍질 비료 외에도 커피 가루, 바나나 껍질, 차가루 등 다양한 천연 재료를 활용하여 비료를 만들 수 있습니다.
✍️매일농사공부 4탄 80편 [초산 칼슘의 중요성]도 복습해보세요!
https://farmmorning.com/communities/Y29tbXVuaXR5LXBvc3Q6MTc4MzYy
공부자료를 확인하신 분은 "공부 완료" 댓글을 남겨주세요.
그럼 내일 또 공부자료와 함께 찾아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5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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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mmorning
매실나무 전지 하고있어요
매실는 여름전지을 하면 수확량이 많아서요
비오는날 비피해 없기를 바랍니다
7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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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mmorning
안녕하세요 좋은아침 입니다 🫡3월도 며칠 안남았네요 오늘주제는 벌마늘, 뻥마늘, 스펀지마늘 원인과 대책 얘기해볼까합니다 언제나 하트는 큰힘이 됩니다 ❤️
벌마늘
벌마늘은 질소질 비료를 많이 사용하거나, 웃거름을 늦게까지 주는 경우, 파종 적기보다 일찍 파종할 때, 관수를 지나치게 자주할 때, 주아를 일찍 제거할 때 많이 생긴다. 벌마늘 발생 예방을 위해 농가는 씨 마늘을 선별할 때 7g 이상의 큰 인편을 파종하지 않아야 하며, 가급적 사질토양에는 재배를 하지 말아야한다. 또한 적기에 파종을 해야하며, 질소질 비료를 지나치게 시비하거나 인편분화기 이후 추비를 주지 말아야 한다.

뻥마늘
뻥마늘은 겨울철 이상 고온이 발생한 경우, 검증되지 않은 외국 수입종구 사용, 종구를 높은 온도에 보관 했을 경우, 질소비료를 과다 살포한 경우 등이 주요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마늘은 구가 형성되지 않아 일부 보통 마늘 인편 2개 크기의 구가 생기는 것도 있으나 질감이 양파와 비슷하고 약간 쓴맛이 나기 때문에 상품성이 전혀 없으므로 발견 즉시 뽑아 없애야 한다.

스펀지마늘
스펀지마늘은 상위 5~6엽이 아주 밀생해 있고, 주아 (종대)의 생성과 출현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주대가 막혀 있으며, 인편부화와 결구가 되지 않는다. 이는 겨울 이상난동과 종구 자체의 생리적인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하여 발생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정확한 원인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마늘은 구가 형성되지 않아 일부 보통 마늘 인편 2개 크기의 구가 생기는 것도 있으나 질감이 양파와 비슷하고 약간 쓴맛이 나기 때문에 상품성이 전혀 없으므로 발견 즉시 뽑아 없애야 한다.

이상 벌마늘, 뻥마늘, 스펀지마늘의 주요 원인과 대책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이 정보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3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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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mmorning
우리들 이야기 =36
♡ 공주의 남자 이야기 ♡
조선왕조 세조에게는 정희왕후가 낳은 공주가 있었는데 어려서 부터 어질고 성품도 덕스러웠다.
공주는 단종이 왕위에서 물러나고, 절제 김종서가 사육신 및 충의를 지키려는 신하들과 함께 단종의 복위를 도모 하려다가 순절하고,
그 가족들이 다 죽임을 당하기에 이르는 것을 보고,
일찍이 눈물을 흘리며 밥도 먹지 아니 하였다.
그리고 단종의 어머니 묘가 파헤져지는 참변을 당할 때는 울면서 간하기를 그치지 아니 하니,
세조는 크게 노하여 장차 화(禍)가 어디까지 미칠지 헤아릴 수가 없게 되었다.
세조의 비, 정희왕후는 비밀히 유모를 불러 가벼운 보물을 충족히 주면서 공주와 함께 그것을 가지고 멀리 피신하고,
왕(세조)에게는 공주가 요절한 것으로 알렸다.
마침내 유모는 공주와 함께 몰래 도망하여 충북 보은군에 당도하였고 깊은 골짜기에 다다랐을 때는 배고품이 너무 심하여 길가에 앉아 잠시 쉴 수 밖에 없었다.
이때 한 총각이 쌀을 짊어지고 이곳을 지나다 발길을 멈추고 묻기를
"두 분은 시골 사람들 같아 보이지는 않는데 어찌하여 유독 이런 곳에 와 있습니까?" 하였다.
유모가 총각을 보니 의복은 비록 때가 끼고 남루하나 용모는 보통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대답하기를,
"나와 이 낭자는 한양에서 난을 피해 도망하여 이곳에 이르렀으니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서 지금 막 주저하고 있을 따름이요." 한즉
총각은 남 몰래 눈물을 글썽이며 말하기를,
"나 역시 화를 피하여 이곳에 와서 산 지가 벌써 1년이 지났소이다." 하였다.
유모가 말하기를,
"그렇다면 나와 이 낭자는 그대와 함께 살았으면 하오" 라고 하자, 총각은 흔쾌히 이를 허락하였다.
그들은 함께 걸어서 깊은 골짜기를 지나 몇 리쯤 가니 토굴이 있어 거적문을 열고 들어갔다.
총각은 손수 밥을 지어 그들을 대접하였다.
며칠이 지난 뒤 유모가 행탁(여행용 자루)에서 가벼운 보물을 꺼내어 총각에게 주면서 이것을 장에 가서 팔아 오라고 하자,
총각이 깜짝 놀라며 말하기를,
"이 보물들은 궁중의 물건인데 아주머니는 어디서 이것들을 얻었 습니까?" 하자 유모는 말하기를,
"굳이 그 출처를 묻지말고 가져가서 팔아 주오" 하였다.
그러나 그 총각은 끝내 그 뜻을 따르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의로운 일을 거행할 때 관가에서 화를 피한 자취라고 생각한 때문이다.
1년 남짓 사는 동안에 총각은 공주와 정을 통하고 혼례를 올렸다.
그제서야 총각이 비로소 공주에게 피난한 까닭을 물으니,
공주는 울면서 대답하지 아니하고, 유모가 대신 그 전말을 알려주었다.
이 말을 듣자 총각은 슬피 울며 말하기를,
"나는 절재 김종서의 손자입니다. 우리 할아버지가 아버지와 함께 화를 입던 날 온 집안이 다 죽임을 당했으나 나만 홀로 난을 피하여 여기에 이른 것이나,
어찌 공주가 그 어린 나이로서 능히 이렇게 의로운 마음을 분별할 줄 뜻하였으리오!" 하였다.
이로부터 두 사람은 서로 공경하며 온정을 나누는 것이 더욱 깊어졌다.
세월이 오래 흘러 그때 화의 법망이 좀 풀리게 되자,
총각은 보물들을 전부 팔아서 많은 돈을 얻어,
산 밑으로 내려와 넓은 전지를 마련하고 몸소 밭을 갈고 책을 읽으며 아들 딸을 낳아 기르면서 살았다.
세조는 말년에 절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부처님께 지난 날을 참회하는 기도를 하였는데, 속리산(충북 보은군 북쪽에 있는 산 ) 으로 향하다가 마침 공주가 사는 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이때 한 어린 아이가 길가에 있었는데,
세조가 그 아이의 용모를 살펴보니 꼭 자기와 닮았다.
세조는 이를 기이하게 여겨 수레를 멈추게 하고 애를 앞으로 불렀다.
그런데 갑자기 여자의 우는 소리가 울타리 사이에서 들려왔다.
세조는 마음이 흔들려 좌우의 신하들에게 묻기를 "이 어인 울음소리 인가? " 하자, 어린 아이가 말하기를,
"이것은 우리 어머니의 울음소리입니다."하고 대답하였다.
세조가 곧 좌우 신하들을 물리치고 어린 아이와 함께 걸어서 그 사립문에 이르니,
한 부인이 땅에 엎드려 통곡하고 있었다.
세조는 놀라서 묻기를,
"너는 누구인고?" 하자,
공주는 눈물을 거두며 대답하기를,
"못난 소녀는 지난 날 아버님의 엄한 책망을 받았는데 어머님의 분부로 유모와 더불어 대궐을 떠나 멀리 피하여 다니다가 이곳에 이르러 죽지 못하고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고 있나이다." 라고 하였다.
세조는 그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너를 일찍이 이미 요절한 것으로 여겼구나.
어찌 지금까지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줄 알았겠느냐!
너의 남편은 어디에 있느냐?" 하였다.
공주가 답하기를,
"그는 죽은 영상 김종서의 손자입니다.
그도 역시 난을 피하여 이곳에 왔는데 우연히 길가에서 상봉하여 곧이어 짝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버님의 행차가 이곳을 지난다는 소식을 듣고 몸을 피해서 지금 집에 있지 아니합니다." 라고 하니 세조는 탄식하며 말하기를,
"김종서에게 무슨 죄가 있겠느냐? 내일은 마땅이 나오너라.
가마와 말을 보낼 것이니 나와 함께 대궐로 돌아가자.
아울러 네 남편에게도 봉작(작위)를 가하리라." 하고,
세조는 드디어 수레를 돌렸다.
다음 날 세조는 승지를 파견하여 그들을 맞아 오게 하였으나,
공주는 밤을 틈타 그 남편과 함께 가족을 거느리고 몰래 어디론지 숨어버리니 그 거처를 알아낼 수가 없었다.
전하는 소문에 의하면 당시 세조가 지나가는데
정이품송(충북 보은 속리산 법주사 가는 길에 서 있는 수령 600년의 소나무 ) 아래서 두 아이가 놀고 있어 그들의 부모이름을 묻자 대답을 하지 않고 가마골로 도망을 가길래 그냥 지나쳤는데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 다음날 찾아 보았으나 그들의 부모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세조는 본인의 외손자임을 직감하고 정2품 품계를 적은 문서를 당시의 정이품송 아래에 놓고 왔는데 그들은 끝내 찾아가지 않았으며,
그 후에 문서를 발견한 어느 사람에 의하여 '왕이 손수 소나무에게 정이품의 품계를 내리셨다'
전해지게 되었다고 한다.
* 옮겨 온 글 *
3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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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중순, 7월초에 나누어 자가채종한 씨앗을 뿌렸는데 오이 싹이 나자마자 70%정도 포기에서 사진과 같은 증상이 있어요. 새 잎이 나올 때부터 저런 상태로 나오네요. 6월중순에 먼저 뿌린 오이도 어릴 땐 저랬는데 크게 자라서 지금은 멀쩡히 잘 자라고 있는데요. 아직 오이열매가 작아서 열매에 이상이있는지는 확인 못했습니다. 혹시 바이러스 병인가요? 노지입니다
7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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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
Farmmorning
연휴 물때가 좋은 날이라
갯바위 타고
바닷바람 쐬고 왔네요
명절뒤의 피곤함이 더 할듯 해도
가슴이 확 터지는 시원 함으로
즐기다 왔답니다
2월 11일
17
12
Farmmorning
들깨 꽃이 피고 있어요 여름철 더위에 각종 병해충 으로부터 지키느라 삼일에 한번씩 약치고 추비 줬더니 보기 좋아요
9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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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mmorning
잎이 노랗고 잘 크지도않고 병인지
알려 주세요
* 사진인 안붙어
다시올립니다
4월 23일
5
8
Farmmorning
소반(小盤)이란 짧은 발이 달린 작은 상(床)을 말한다.
옛날 부엌을 정제 또는 정지라고 불리었다.
불을 지펴서 밥을 짖기 때문에 2개이상 무쇠솥이 걸려있다.
부뚜막에는 식초를 기르는 간장통과 식초통이 있었고,
씽크대 대신에 구시라는 커다란 통나무를 가운데를 파내서 그릇을 씻었고,
찬장 대신에 대나무를 엮어서 만든 살강이 있었다.
구시옆에는 뒤안에 있는 우물에서 물을 퍼다가 담은 커다란 항아리도 있었다.
정제에서 밥을 지어서 안방과 부엌으로 연결된 작은 부엌문으로 음식을 날랐다.
정제 대신에 입식부엌이 만들어지면서 씽크대가 놓여지고 부엌에 식탁이 있어 의자에 앉아서 식사를 하게 되고 좌식생활에서 벗어나 입식생활이 시작되면서 네모난 밥상과 둥그런 밥상이 사라졌다.
다과상이나 찻상, 겸상보다는 혼자 식사할 때 쓰였던 동그란 다리가 달린 작은 상(床)이 소반이라했다.
또한 부엌과 안방으로 연결되는 부엌문이 작아서 큰상보다는 소반이 많이 사용했다.
어릴적에 아버지께서 늦게 퇴근하시면 부뚜막에 상보를 덮어서 밑반찬을 올려 놓은 개다리소반에 부엌문을 통해서 저녁식사를 올려드렸다.
겨울철에는 아궁이 잔불에 찌게냄비를 올려놓고 아래묵 이불속에 밥그릇을 묻어서 찌게와 밥을 식지않게 했다.
밥을 먹는 사람들 수에 따라서 2명이 식사를 할 수 있는 겸상이 있고, 4명이 같이 식사를 할 수 있는 4인상과 여럿이 둘러 앉아서 식사를 할 수 있는 둥그런 밥상이 집집마다 몇개씩은 다 있었다.
우리집에는 아버지와 할머니께서 드시는 겸상과 머슴들이 식사하는 겸상, 식구들이 같이 식사하는 4인상 늘 이렇게 3개의 밥상을 어머니께서 차리셨다.
저희집은 머슴을 2명을 두면서 농사와 살림을 하셨는데 제가 군에서 제대하던 해에(1976년)머슴살이가 없어졌다.
평생 남의 식구를 삼시세끼 때마다 식사준비를 하셨는데 머슴살이나 사라지면서 남의식구 식사준비를 하실일이 없어진 대신에 그 많던 일을 어머니께서 도맡으셨다.
농사일과 집안일이 힘은 드셨지만 남의 식구 식사준비를 하시지 않은 것이 더 편하시다고 하셨다.
머슴상에는 늘 따뜻한 밥과 국물이 있어야했기 때문에 식사준비가 많이 힘드셨나 봅니다.
요즘 다들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부부만 식사를 할 때는 대충 챙겨서 하다가 자식들이라도 내려오면 반찬을 신경쓰는 것과 같은 마음이셨을 것이라 생각한다.
명절 때나 잔치 때 제사를 모실 때 회식을 할 때 여럿이 모여서 식사를 할 수 있는 커다란 장방형으로된 큰 상인 교자상(交子床)도 있었다.
자식들이 결혼을해서 살림을 나면 커다란 교자상을 하나씩 장만해 주셨다.
특히 남원은 목기와 상을 만드는 유명한 상집이 몇군데 있었다.
오동나무나 단단한 느티나무로 상판을 만들고 옻칠을해서 만들기 때문에 새 상에 따뜻한 음식을 올리면 옻냄새가 났었다.
그래서 피부나 예민한 사람은옻을 타기도 했다.
질그릇을 만들 때 유액을 발라서 높은 온도에서 굽듯이 상을 만들 때도 옻칠을 해서 상을 만들었다.
상에 옻칠을 하면 나무가 좀이 슬지 않아서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다고했다.
교자상은 워낙 크기 때문에 무게가 많이 나가고 부피가 커서 보관이 힘들어 지금은 교자상 대신에 접이식 4인상을 2개를 붙여서 제수 음식도 차리고 여럿이 식사를 할 때도 쓰고있다.
시내 쓰레기 집하장을 지나다보면 멀쩡한 상들이 나와있다.
너무 아까운 생각이든다.
어느 때는 포장도 뜯지 않은 상태로 버림을 받고 있었다.
추석명절을 지낸 다음날 천변을 나갈려고 건널목 건너기전에 쓰레기 모으는 곳이 있는데 사과상자에 제기가 한벌 들어있는 거예요.
촛대랑 지방틀이랑 두분을 모실 수 있는 제기 한벌이었습니다.
제기 뒷면에 남원 운봉제기라는 표시가 있더군요.
남원 제기나 상이 유명하거든요.
옛날에 제기 한벌을 장만할려면 목돈이 들었습니다.
저희가 사는 곳이 단독주택이라 젊은 세대들은 거의 없고 연세드신 어르신들만 살고 계십니다.
옛날에는 젊은 세대들이 살아서 초등학교학생들이 많았습니다.
호기심에 아이들이 차에 흡집을 내기도 했는데 지금은 전혀 그러한 일이 없답니다.
제기를 버릴만한 사람은 젊은 세대들일텐데 아마도 추석에 차례상을 차리다가 고부간에 갈등이 있어서 버리지않았나?추측을 해봅니다.
연세드신 어르신들께서 제기를 버리겠어요?
언뜻 이번에 한번 사용한 새 제기같았습니다.
아까워서 아내를 불러서 보였더니 아깝다고 가져가자고해서 남원 창고에 깨끗하게 씻어서 보관중입니다.
누군가가 옆에서 남이 쓰던 제기는 귀신이 따라온다고 쓰는게 아니라는 말이 께름찍하네요.
저희집 제기는 술잔만해도 엄청 크고 다양합니다.
제기가 색깔은 보면 아마 세벌이 섞여서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시제를 모실 때는 지방틀이 4개 그리고 잔대가 8개가 필요하거든요.
새벽에 고추를 따고 들어와서 식탁문화가 이루어지면서 없어진 소반이 생각나서 끄적거려봅니다.
어느덧 7월 마지막 날이네요.
새달 8월을 지난달보다 나은 달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장마가 끝나고 40도까지 기온이 올라갈수도 있다고 하네요.
이번 주말까지 비가 없으면 작물에 물을 주어야할 것 같습니다.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날씨에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7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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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mmorning
근사미하고바스타하고한날호두밭에뿌려받는데바스터가약효과가빠릅니다
7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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