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하우스 청양고추 3단 줄치고 논두렁깍고 와서 출책합니다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하루...^^
22년 8월 3일
2
비가오느데
산소 깍느라 생고생 그치만 쉬원했어요
22년 8월 30일
둥시감이 다빠져 곶감을 하나도깍지못했습니다 둥시감 관리와 혜택을 받을수 는없는지요 ㅣ년농사인데 그리고 전 감 호두 만 농사짖고있는데 3년째 감을깍지못해 여름까지는열매도많이달리고 좋은데 여름이지나면서 다빠지고 1도못땃답니다 약도당연히3번이상치는데 3년전에는많은수확을했는데 갑자기왜그런지 보상받을방법은없을까요 생활이 어려워 여기저기 빚만지고생활이어렵네요
21년 11월 2일
4
잔디밭 잡초(사진 참조)제초에
필요한 농약에 대한 조언을 구합니다.
21년 8월 13일
1
Farmmorning
팜모닝~ 굿모닝요!!~~
요즘 산소 집주변 풀깎느라 예초기소리가 여기저기서 끊임없네요~~~
22년 8월 28일
선생님저는귀촌한지7년이다됐는데요
잔디밭에잡풀제거를아직까지백프로
잡지를못하고있읍니다
특히소풀이란게많이자랍니다
좋은처방좀알려주시면
고맙겼읍니다
21년 12월 10일
3
정원잔디가 군데군데 잿빛으로
바이러스가 걸렸네요,
일단은 갖고 있는 탄저병 살균제
(쿠론트)로 방제를 했는데 어떻게 조치를 해야 하나요?
23년 7월 1일
Farmmorning
ㅎㅎ 날도 덥고 남편은 논두덕 풀 깎고.. 나는 집앞 호박밭이 된 텃밭을 보면서 호박이 몇개 더 달렸나 살피는디 수확이 없네요. 넝쿨에 가려서 안보임 ㅋㄱㅂ
22년 8월 8일
- 6-70년대 우리들의 공감시대 6 -
우리는 국민학교 다닐 적 점심시간에 강냉이죽과 하얀 우유가루를 배식받아 먹었다.
우유가루가 요즘 말하는 유통기간이 지나서인지 딱딱하게 굳어서 돌멩이 같았다.
그래도 그 딱딱한 우유가루를 쪼개 입에서 녹는 우유맛은 달콤했다.
가루우유는 그 때 맛보고 또 기회가 없었다.
아가들 먹는 분유를 한 숫갈 훔쳐 먹었을 때 국민학교 때 얻어 먹었던 기억이 쑥 떠올랐다.
노란 강냉이 죽을 쑤어서 학생들에게 급식처럼 나누어서 먹었다.
남학생들은 네모난 양은 도시락을 가지고 다녔고,
여학생들은 약간 타원형인 계란모양같은 양은 도시락을 가지고 다녔다.
도시락엔 까만 보리밥에 도시락 한켠에 콩자반과 단무지가 대부분이었고 고추장에 볶은 멸치와 계란후라이는 잘사는 집 아이의 반찬이었다.
도시락 검사도 했다.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국가차원에서 혼분식을 장려했고 집에서 밀주를 담는 것을 세무서에서 나와 단속을했다.
우리집은 나락타작을 할 때 나락가리 속에다 커다란 항아리를 묻고 쌀막거리를 담아서 일꾼들에게 쌀막걸리를 대접했다.
2모작으로 농사를 하기 때문에 보리나 밀을 심었기에 방앗간마다 밀가루를 빻는 기계가 있었고 밀가루를 빻을 때 나온 밀의 껍질인 밀기울로 누룩을 만들어 말렸다가 막걸리를 만들었다.
그 때 누룩을 만든 틀이 누룩틀이다.
동그란 소나무를 잘라서 가운데를 도려내고 누룩틀을 만들었다.
헛간에 매달아 놓았다가 매년마다 꺼내서 누룩을 만들었다.
네모나게 만든 누룩틀도 있었다.
누룩을 만들고 바같 기둥에 매달아 놓았다.
이 누룩틀로 메주도 만들기도 했다.
겨울철에는 난로위에 도시락을 뺑둘러서 얹어놓아 김이 모락모락나는 도시락을 먹을 수 있었다.
맨 밑에 있는 도시락과 위에 있는 도시락을 뒤집어가면서 도시락밥을 따뜻하게 했다.
설 명절에 인절미를 만들고 남은 콩가루는 찬 식은밥을 버무려 먹으면 무지 고소했다.
콩가루에 식은밥과 콩가루를 지붕위에 달렸던 둥그런 박으로 만든 바가지에 손으로 버물러서 먹었던 하얀 쌀밥을 최고 맛집의 최애 음식맛이었다.
우리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삐라를 보았고 그 삐라를 주어 학교에 갖다주면 공책 한권과 연필 한 자루를 받았던 기억이 있다. 
교실 마루바닥은 양초를 문지르고 마른 걸레로 닦아 반들거리고 미끄러웠다.
이 때 마루바닥을 문지르면서 구구단을 외웠다.
그 때 구구단 외우기가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요?
우리나라 8도의 각도 도청소재지를 외우는 것도 만만치는 않았다.
특히 충청북도 도청소재지 청주시와 충주시는 늘 헷갈렸다.
위치로 볼 때도 다른도는 다 남북인데 충청도는 동서로 나누어졌다.
고학년에 올라가니 세계 각나라의 수도를 외우는 것은 고역이었다.
지구본을 돌려가면서 수도를 외우기도했다.
나무공이가 빠진 마루바닥에 구멍이 있으면 지우개나 연필 등이 그 구멍으로 빠졌다.
덩치가 작은 친구가 교실 밖에 있는 환기통으로 기어들어가서 머리에 하얀 거미줄을 듬뿍 묻히고 고무지우개와 연필을 한 웅큼들고 나왔다.
연필을 뾰쪽하게 깍아서 침을 묻혀가면서 글씨를 썼기에 가수나 유명배우 사진이 있는 책받침을 학교 앞 점빵에서 구입해서 받치고 썼다.
뽑기를 하는데 왜 그렇게 작은 풍선만 뽑히는지?
우리는 대한민국 교육의 지표를 담아 1968년 12월 5일 대통령령에 의해 반포한 문서 국민교육헌장을 달달외웠다.
우리는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받들어"로 시작하는 국민교육헌장을 아무뜻도 모르고 외웠고,
그렇게도 긴 393자의 국민교육헌장을 외우지 못한 사람에게는 체벌을 받기도 했다.
김영삼정부 출범 그 다음 해인 1994년 정부는 국민교육헌장을 학생들의 뇌리에서 지우기 시작했고,
그리고 2003년 노무현정권이 출범하면서 국민교육헌장선포일 자체를 역사에서 지웠다.
이제 국민교육헌장은 역사에서도 찾기 힘든 한 구석에 처박혔다.
군복무를 마친 남자라면 국민교육헌장은 물론이고 군인의 길, 군인 정신, 군인복무규정 등 10가지 정도를 단 며칠에 외웠다.
그렇지않으면 어떠한 댓가가 있어서였다.
그 때 그 정신으로 공부를 했다면 고시패스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닐 것 같았다.
기미년 삼월일일 정오
터지자 밑물같은 대한독립만세~
하는 3.1절 노래를 외우고 불렀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날을~
무찌르자 공산당하는 6.25노래도 알고 있었다.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소식을 듣고 티비에서는 영정사진이 몇 일동안 나왔던 것을 기억한다. 
하얀국화꽃으로 뒤덮힌 운구차가 지나갈 때 길가에서목 놓아 울부짖는 아낰네들도 있었다.
그 때는 무조건 뉴스를 시작하면서 첫머리에 대통령사진과 대통령의 하루 일과를 방영했다.
우리는 별이 빛나는 밤에~를 들으며 좋아하는 노래를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했고 팝송을 한글로 적어 따라 부르곤 했다. 
"소니"라는 일제 라디오 카세트를 갖고 있는 나는 친구들한테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좋아하는 노래를 녹음한 테이프를 끼워서 계속 들었고 녹음도 할 수 있었다.
그 시절엔 폴앵카의 다이애나와 크레이지 러브, 엘튼 존, 폴 매카트니, 존 레논, 런던 보이스, 마이클 잭슨, 아바라는 외국 가수들을 통해서 고고댄스란 걸 알았다. 
친구들과 카세트를 어깨에 메고 모닥불 피워놓고 밤새도록 놀던 기억이 있다. 
우리는 썬데이 서울이나 플레이보이, 펜트하우스와 같은 외국성인잡지를 친구들과 몰래 돌려보았고 어떤 불량한 녀석이 야한 그림이나 볼만한 페이지를 몰래 찢어가곤 했다. 
그 때 성인잡지 "선데이 서울"은 주간으로 발간되었으며 연예계 루머와 스캔들, 야설, 비키니를 걸친 연예인들 사진 등 최고의 인기있는 성인잡지였다.
고속버스를 타면 안내양이 주간잡지와 신문과 사탕을 나누어 주기도했고,
돌려가면서 지루한 시간을 때웠다.
그 때 고속버스 안내양을 비행기 스튜어디스같았다.
안내양 응모기준이 고졸이상, 키 크고 날씬하고 용모가 단정해야 했기에 제복을 입은 안내양은 이뻤다.
외국 성인잡지인 플레이보이와 팬트하우스는 길거리 노점에서 팔았다.
우리는 1970년부터 1981년 사이에 2차례의 석유파동을 겪었고,
1997년 IMF라는 고비마다 닥쳐왔던 불리한 사회적 여건을 원망했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았다.
2024년 오늘 이제는 됐구나!싶었는데 사회불감증이 깔려있고 상위 1%라는 정치하는 사람들과 돈 많은 사람들이 지 욕심만 부리고 할일을 하지 못하고 있어서 너무 안타깝습니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아왔던 본인들 모습에... 
영화처럼 머릿속으로 옛 추억이 스쳐 지나가는 당신은! 
우리들의 친구입니다...
비가 너무 잦습니다.
적당하게 가끔씩 내려주면 좋으련만.
농촌에는 농사철이 다가왔습니다.
이상기온으로 과수가 피해도 없고,
하우스에서 곱게 자란 고추모종도 냉해피해가 없고,
곧 논에 모내기가 시작되겠지요?
모든 작물이 풍년이어서 애써 농사지은 농민들께 기쁨을 안겨주었으면 좋겠습니다.
5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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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 마음의 평온함을 찾기 위한 15가지 방법 ♥
1. 기준선을 낮춰라.
인생에서 가장 큰 긴장 요소 가운데 하나는 우리 스스로 세운 기준에 끊임없이 맞추어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을 편안하게 갖고 이따금씩 그러한 기준들을 약간 완화시켜 본다.
2. 약간의 시간을 낭비하라.
일에 열중하는 사람들은 시시한 오락 활동따위에 결코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그러나 평온함을 찾기 위해 잠시 시간을 보내는 것은 결코 낭비가 아니다.
3. 어떤 일이든 전환점에서는 휴식을 가져라.
인간은 항상 인생의 모든 변화들을 하나의 커다란 마조히즘적 상황 속에 몰아넣으려는 경향이 있다. 당신이 받고 있는 스트레스의 정도를 줄이면서 한 번에 한 가지씩 풀도록 한다.
4. 사소한 문제에 신경 쓰지 마라.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사소한 문제로 고민하며 잠을 설치지 않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효과적인 방법은 어떤 문제든지 아주 작은 문제로 생각하는 것이다.
5. 그때 일은 그때 걱정하라.
대부분 사람들은 미래 일을 걱정한다. 대게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가지고 이리저리 궁리한다. 현재의 일에 충실하다보면 앞으로의 일도 잘 풀려나갈 것이다.
6. 모든 것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보라.
어떠한 사람이든 상황이든 최대한 긍정적인 시각을 갖도록 노력하라. 그러면 당신은 그로 인해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를 갖게 될 것이며 또한 평온함에 젖게 될 것이다.
7. 자신을 인간이라고 생각하라.
완벽한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은 일단 접어둔다. 현재의 자신에게 만족하도록 한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훨씬 편안해질 것이다.
8. 작은 기쁨을 찾아라.
무언가에 완전히 정신을 집중한 다음 마음을 활짝 열고 다가가 본다. 그러면 그 안에서 즐거움과 동시에 어떤 복합적인 미묘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한 송이의 포도, 한컵의 물, 잔디가 깔린 들, 또는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난 하늘. 이 모든 것들이 당신을 평온의 길로 안내할 것이다.
9. 과거는 잊어 버려라.
과거의 행동이나 상황에 대해서 후회한다 하더라도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왜냐하면 과거는 단지 당신의 기억만으로 존재할 뿐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과거가 현실성이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될 때 당신은 평온을 찾게 될 것이다.
10. 화가 나더라도 즉각 잊어버려라.
다른 사람을 원망하고 미워하게 되면 그 사람보다 자신이 더 괴로울 뿐이다. 자신을 위해서 가능한 빨리 그리고 거리낌 없이 상대를 용서하는 것이 좋다.
11. 도시를 떠나라.
복잡한 도시의 거리를 걷는 것보다 한가로운 시골길을 여유롭게 거닐 때, 소음을 내는 차량들보다는 구불구불한 언덕길을 바라볼때, 복잡한 항구보다 탁 트인 바다를 항해 할 때 마음은 더욱 상쾌해진다.
12. 땀을 흘려라.
운동을 하게 되면 스트레스로 인한 부정적인 영향을 막을 수가 있고 기분이 상쾌해짐을 느낄 수 있다. 이마에 가볍게 땀이 흐를 때까지 운동을 해본다. 그리고 괜찮다면 계속 20분 정도 더 해보는 것도 좋다.
13. 아량을 베푸는 습관을 가져라.
스스로 관대해지도록 노력하라. 남을 도와주고 친절하게 대하며 칭찬을 하도록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가장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은 바로..당신 자신이다.
14. 항상 미소를 지어라
미소를 띠게 되면 모든 얼굴 근육이 이완되면서 여러 가지로 기분이 좋게 하는 감정의 연쇄 반응이 일어난다.
15. 자신의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라.
억지로 힘든 노동을 하느냐, 아니면 고생하고도 기분 좋게 일을 하느냐의 차이는 대부분 그 일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일 뿐이다. 자신의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만큼 그에따른 성취감도 클 것이며 긴장감을 푸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 <평온함에 관한 작은 책> 중에서
7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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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mmorn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