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받은글 옮깁니다.
♡ 한밤의 기다림 ?  
아무리 작은 소리라도 
자정이 지나면 귀에 거슬린다 
하물며 반복되는 기계음 소리는 
두 말 할 것도 없다 
지난 달 이사온 윗층에서
새벽 1시가 지나면 어김없이 
모터 작동하는 소리가 들린다. 
"찌~익~ 찌~익~"
끊어질 듯 이어지고 
이어져가다 멈추기를
수 십 차례 반복한다.  
참! 예의도 없다.  
어쩜 저렇게 
한 밤중에 염치없는 짓을 할까?  
아랫집 인내력을
시험하는 것도 아니고...
온갖 투정이 나왔지만 
내일은 그치겠지하며
참고 지낸지 
벌써 한달을 넘겼다.
가끔 층간 소음으로 
이웃간 다툼이 있다는 
기사를 볼 때마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서로 조금만 이해하지" 하며
지냈는데... 
나도 어쩔 수 없었다.
인내력에 한계가 느껴졌다. 
몇날며칠을 벼르다가 
드디어 오늘 아침 일찍
단단히 맘을 먹고 올라갔다.
초인종을 길게 눌렀다.
'딩동댕~ 딩동댕~'  
"누구세요?"
"아랫집 입니다."
90을 전후한 할머니가 
겨우 잠에서 깨셨는지
눈을 비비며
빼꼼히 문을 연다.
"아랫집에서 올라왔습니다.
도저히 밤마다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그렇잖아도
매일 밤 죄송스러웠는데
미쳐 양해를 드리지 못했네요. 
사실은
며늘아기가 심장질환으로 주기적으로 인공호흡기를
돌려주지 않으면..."
고개를 반 쯤 숙이시며 
말을 잇지 못하신다. 
순간
나는 당황스러웠다.
"네?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그런 줄도 모르고..."
반대로
내가 고개를 숙이고 
용서를 빌었다.
순식간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뀌어 버린 것이다. 
단단히 맘을 먹고 올라갔는데 
예상치 못한 대답에
순식간에 상황이 역전되였다. 
짧은 침묵이
서로를 위로하고 있었다. 
계단을 내려오는
발걸음이 꽤나 무거웠다.   
나는 안다. 
인공호흡기의 공포를...
30여년 전 
병원 응급실에서
딸아이의 가늘어진 숨을 이어주던 
그 기계음의 처절함을...
돌연, 내 심장소리가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이별을 앞두고
숨 죽이며 들었던
그 기계음 소리가 
아련히
아니, 크게 들려왔다.
"찌~익 찌~익"
저녁 무렵, 
윗층 할머니가
알이 굵은 복숭아 한 상자를 들고 내려오셨다. 
"아닙니다 할머니..."
또다시 당황스러웠다. 
도저히 받아서는 안 될 것같은
선물(?)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내가 전심을 다한 
위로의 선물을
전해야 할 입장인데  
정말 난감했다.
남의 아픔을 
나누지는 못 할 망정
그걸 핑계로
선물(?)을 받는다는 건 
파렴치범이나 하는 짓 아닌가? 
"이러시면 안 됩니다."
극구 사양했지만 
막무가내
손을 저으시며 
커다란 상자를 문앞에 놓고
쏜살같이 올라가 버리셨다. 
그 날 이후...
자정이 지나도
그 모터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불안하다.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혹시나?
아랫집 생각하며 
힘들어도 참고 계신 건 아닌지? 
듣기 거북하던 그 소리가 
기다려진다.
마침내 밤의 정적을 뚫고
기계음 소리가 들리는 순간.
 
"휴우~ 휴우~"
나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 내린다.
왜 이제야 울려?
얼마나 기다렸는데...
한 영혼이 소생하는 소리!
천사같은 시어머니의 
사랑이 피어나는 소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포근한 소리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
'남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는 사자성어다. 
그럼에도 
남의 입장을
꼼꼼이 새기지 못하는
얼치기 역지사지가 
얼마나 많은가?
혹시
은밀한 예외를 숨긴
단어가 아닌가?
나라면...
그리하지 않았을텐데 하는...

막연한 이해는 
공허한 투정이다. 
남의 형편을
온전히 알기 전까지...
오늘 밤에도 
한 밤 중에 울리는 그 소리.
기다리고 있다.
행여나
들리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들려라! 들려!
울려라! 울려!
울려야 한다!"
햇포도가 나오면
알이 튼실한 것으로 골라 
윗집 문앞에
얼른 한 상자 놓고와야겠다. 
아무도 모르게...
7월 12일
18
15
1
내년에 지을 밭농사.
겨우내 땅을 어떻게 관리하고 준비해놓으면 좋을까요?
21년 12월 14일
8
대추나무 1년생 묘목을 심었으나
가지만 겨우2가지 올라오다
그첬습니다
잘자라는 비료나 키우는 방법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1년 12월 14일
2
비바람에 하우스 비닐이 찢어져서 바쁘게 참깨를 베어내고 비닐을 구입해 다시 씌웠음. 혼자서 하려니 갑자기 부는 바람에 날아가길 3번만에 겨우 완성함
22년 8월 16일
Farmmorning
오늘도 걸 개 입니다
왜 모가 안 나온겨~~~
23년 9월 21일
==================================
어머니!
°°°°°°°°°°
내가 영리하고 똑똑하다는
우리 어머니!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6•25전쟁이 났다.
아버지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어머니 말씀 잘 듣고 집 지키고 있어."하시고는 한강을 건너
남쪽으로 가셨다.

그 당시 내 여동생은 다섯 살이었고 남동생은 젖먹이였다.

인민군 치하에서 한 달이 넘게 고생하며 살아도 국군은 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견디다 못해서 아버지를
따라 남쪽으로 가자고 하셨다.

우리 삼 형제와 어머니는~보따리를 들고 아무도 아는 이가 없는
남쪽으로 향해 길을 떠났다.
1주일 걸려 겨우 걸어서 닿은 곳이
평택 옆 어느 바닷가 조그마한 마을이었다.

인심이 사나워서 헛간에도
재워주지 않았다.
우리는 어느 집 흙담 옆 골목길에 가마니 두 장을 주워 펴놓고 잤다.
어머니는 밤이면 가마니 위에 누운 우리들 얼굴에 이슬이 내릴까봐 보자기를 씌워주셨다.
먹을 것이 없었던 우리는 개천에 가서 작은 새우를 잡아 담장에 넝쿨을 뻗은 호박잎을 따서 죽처럼 끓여서 먹었다.

3일 째 되는 날, 담장 안집 여주인이 나와서~ "(우리가) 호박잎을
너무 따서 호박이 열리지 않는다.
다른 데 가서 자라!"고 하였다.
그날 밤 어머니는 우리를 껴안고 슬피 우시더니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남쪽으로 내려갈 수 없으니 다시 서울로 돌아가서 아버지를 기다리자고 하셨다.

다음 날 새벽 어머니는 우리들이 신주처럼 소중하게 아끼던 재봉틀을 들고 나가서 쌀로 바꾸어 오셨다.
쌀자루에는 끈을 매어서 나에게 지우시고, 어머니는 어린 동생과 보따리를 들고 서울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평택에서 수원으로 오는 산길로 접어들어 한참을 가고 있을 때였다.
30살 쯤 되어 보이는 젊은 청년이
내 곁에 붙으면서
"무겁지. 내가 좀 져 줄게~!" 하였다.
나는 고마워서 "아저씨, 감사해요."
하고 쌀자루를 맡겼다.
쌀자루를 짊어진 청년의 발길이 빨랐다.

뒤에 따라 오는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으나, 외길이라서 그냥
그를 따라 갔다.
한참을 가다가 갈라지는 길이 나왔다.
나는 어머니를 놓칠까봐 "아저씨, 여기 내려주세요! 어머니를
기다려야 해요."하였다.

그러나,청년은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그냥 따라와~!"하고는 가 버렸다.

나는 갈라지는 길목에 서서 망설였다.
청년을 따라 가면~
어머니를 잃을 것 같고
그냥 앉아 있으면~
쌀을 잃을 것 같았다.
당황해서 큰 소리로 몇 번이나 "아저씨~!" 하고 불렀지만,
청년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그냥 주저앉아 있었다.
어머니를 놓칠 수는 없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 즈음 어머니가 동생들을 데리고 오셨다.
길가에서 울고 있는 나를 보시더니 첫 마디가 "쌀자루는 어디 갔니?"
하고 물으셨다.
나는 청년이 져 준다면서 쌀자루를 지고 저 길로 갔는데, 어머니를 놓칠까봐 그냥 앉아 있었다고 했다.
순간 어머니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리고, 한참 있더니 내 머리를 껴안고, "내 아들이 영리하고 똑똑해서 에미를 잃지 않았네~!."하시며 우셨다.
그 날 밤 우리는 조금 더 걸어가
어느 농가 마루에서 자게 되었다.

어머니는 어디에 가셔서
새끼 손가락만한 삶은 고구마 두 개를 얻어 오셔서 내 입에 넣어 주시고는,
"내 아들이 영리하고 똑똑해서 아버지를 볼 낯이 있지~!"
하시면서 우셨다.
그 위기에 생명줄 같았던 쌀을 바보같이 다 잃고 누워 있는 나를, '영리하고 똑똑한 아들'이라고 칭찬해 주시다니~!

그 후 어머니에게 영리하고 똑똑한 아이가 되는 것이 내 소원이었다.

내가 공부를 하게 된 것도 결국은 어머니에게 기쁨을 드리고자 하는 소박한 욕망이 그 토양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때는 남들에게 바보처럼 보일 수도 있었지만, 어머니의 (바보처럼 보이는 나를~) 똑똑한 아이로 인정해 주시던 칭찬의 말 한 마디가 지금까지 내 삶을 지배하고 있는 정신적 지주였던 것이다.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신 박동규님의 글입니다.
이 글 속의 “어머니”는 시인 박목월님의 아내십니다.

절박하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야단이 아니라 칭찬을 해 줄 수 있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칭찬 한 마디가 우리 아이들의 인생을 아름답게 변화시켜 주리라 믿습니다. <좋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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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5일
28
14
2
Farmmorning
고추고랑 배수로 재정비작업및지지대 줄 팅겨줌ㅡ장마대비
병충해 방역
23년 6월 21일
말린고추 빻았더니 겨우김장할것 나왔네요. 평충해로 너무 고생만했네요. 내년을 기대하야겠네요.ㅎ
22년 9월 15일
들깨 옴겨심기 언제쯤 하나요
22년 6월 29일
1
아까운 재산과 생명을 잃고 가슴아파하는 모든 분들에게
위로와 겨려의 말을 드립니다. 하루빨리 복구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오기를 두손모웁니다.
23년 7월 21일
[생강 - 국산] 2022-10-05 시세변동 뉴스
도매)대구
경북 영주, 안동, 충남 서산지역에서 주로 반입됨
21년산 저장물량이 거의 소진되면서 햇품 반입량이 증가하나, 아직은 고가형성과 거래 부진으로 보합세가 유지됨
도매가겨은 21년산 10kg기준 상품 48,000원, 중품 43,000원선에 거래됨
향후에는 22년산 햇품 위주로 거래될 전망
출처 : 한국 농수산식품유통공사
22년 10월 5일
1
겨우. 100점.
♥ 지금까지 광주에 100점을 더했어요!
10월 1일
- 6-70년대 우리들의 공감시대 2 -
새벽녘이면 어머니께선 잠자리에서 식구들 행여나 깰까봐 살며시 나가시는데 정제문을 여는 "삐그덕"소리가 들린다.
소나무 두꺼운 송판으로 만들어서 부억을 드나들 때 양쪽으로 여닫는 부엌문을 정제문(정지문)이라 했다.
옛날 안방에는 아랫묵에 이불을 걸 수 있는 횃대와 겨우내 간식으로 먹을 수 있는 고구마를 얼지 않게 웃묵 한쪽에 놓여 있었다.
이불은 청색 광목으로 홑청을 한 두꺼운 솜이불이었다.
새벽이면 식어가는 구들장 때문에 싸늘해지니까 서로 따뜻하게 덮을려고 이불을 잡아당기기도했다.
저희집만해도 할머니와 부모님과 저희 6남매가 안방에서 같이 생활했으니 얼마나 비좁았을까요?
집이 좁아 벽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랫묵 벽쪽에 긴 대나무 앙쪽 끝에 끈을 매어 벽에 달아매어 놓고 옷을 걸거나 이불을 걸게 한 막대기를 횃대라고했다.
가을에 캔 고구마는 지푸라기로 짠 가마니나 멱다리, 수수깡으로 엮은 망에 고구마를 담아서 웃묵에 놓고 아침에 일어나서 물빠진 생고구마를 깍아 먹는 맛과 밥 할 때 껍질째 찐 노란고구마 맛은 그 당시 최애의 간식이었다.
고구마는 얼지않고 움직이지 않아야 썩지않고 오래 보관할 수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아침부터 부억에 나가 아궁이에 솔잎 불쏘시개를 넣고 불을 지피셨다.
그러다 연탄아궁이에서 석유곤로가 등장했고 지금은 씽크대와 가스렌지 가스가 등장했는데 가스가 인체에 해롭다고해서 인덕션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담배를 피지않는 주부들이 페암에 걸린 이유중에 부엌 가스렌지 사용이 일부라고 한다.
부엌에는 살강이 있었다.
살강은 그릇 같은 것을 얹어 놓기 위하여 부엌의 벽 중턱에 대나무를 쪼개서 가로 드린 선반이나 시렁을 말한다.
여기에 온갖 그릇과 부엌 살림을 차곡차곡 쌓아 놓았다.
살강 밑에는 커다란 통나무를 네다리를 만들어서 올려놓고 가운데 옴폭하게 파낸 구시가 있었다.
양쪽은 도마역할을 하고 가운데는 그릇을 씻는 씽크대역할을 했다.
부엌에는 커다란 가마솥과 중간 솥이 걸쳐있고 솥뚜껑은 늘 기름칠을해서 반질반질했다.
새벽녘에 일어나시면 우물물을 두레박으로 길어 그 차디찬 물에 세수를 하시고 부엌에 있는 조왕단지에 정한수를 떠놓으시고 두손을 모아 조왕신께 식구들 안녕과 건강을 비셨습니다.
조왕신(竈王神)은 부엌을 맡은 신(神)으로 불의 신이라고믿었다.
명절에 차례를 지내거나 집안이 평안하기를기원하는 굿을 할 때 성주신에게 빌듯이 조왕신에게도 조왕상을 차려 놓고 집안이 잘되도록 해달라고 빌며 절을 하였고 새벽에
부뚜막 위에 깨끗한 물을 떠 놓고 집안의 무사함을 빌기도 하였다.
조왕신은 부엌에 머물러 있는 가신으로 조왕대신, 부뚜막신 등의 이름으로도 불리는 신이다.
조왕신 본질이 화신(火神)이기 때문에 부엌에서 존재하게 되었으며 먼 옛날부터 부녀자들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여겨지는 부엌을 관리한다는 신이다.
그래서 부녀자들은 몸가짐을 단정하게하고 부엌을 깨끗하게 했다.
이때 샘물그릇을 조왕주발 목판에 차린 상을 조왕상이라고 하는데 주부들은 정성을 들이는 마음으로 이 조왕신에게도 가운(家運)이 창성(昌盛)하기를 두손모아 빌며 절을 해야 한다.
논에 나락이 주인이 열번 왔다간 나락과 한번 왔다간 나락은 다르다고한다.
모든 농작물은 주인 발자욱 소리에 깨어난다고해서 부지런한 농부가 풍작을 한다는 뜻으로 알려지고 있다.
곧 부지런함을 강조하는 어르신들의 말씀을 깊게 되새길 수 있는 말이다.
4월 7일
18
31
왕겨를뿌렸을때조은점과나쁜점에대해알려주세요
고추를심을려고하는데요
21년 9월 22일
2
텃밭에 고추를 재배를 하는데
1,2번 방아다리까지는 분지가 정상으로되었는데 다음부터는 방아다리에서 본가지에 분지가 한 마디만 자라다 보니 고추수확이 너무나도 줄었네요
겨우 가루로 225주에서 20kg 수확햇네요
저상적인 분지가 안되는 이유를 알고싶네요
졸은 고견을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1년 9월 9일
1
이제사 비가 오기 시작합니다.
엊저녁 8시부터 비온다하여,
로터리 쳐놨던 500평 밭에,
겨우 기계랑 사람 구해서,
화욜 오후 두둑만들고,
수욜 이른 아침부터 멀칭하고(불스 무동력 피복기),
오후에 옥수수 모종 정식하고 기다렸는데..
몸은 힘들어 잠조차 안들고 ㅜㅜ
가을엔 두둑기랑 피복기가 붙은관리기 중고라도 준비해서 기계를 배워야겠네요.
필요할 때 같이 할 남자들이 없어 여자 서너명이 하느라 힘드네요
ㅋ ㅋ
그래도 심어놓고 나니 감사할따름입니다.
23년 5월 4일
1
Farmmorning
다시 읽어봐도. 신기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소강절(邵康節)
의 예언💜
*소강절(1011~1077)은
중국 宋代의
유학자이자 詩人으로
중국 송대의 유명한 학자였습니다.
*소강절*은
젊어서 과거에 급제하여
20대에 벌써
상서의 지위에 올랐으며,
문장이 빼어나고,
시(詩)를
잘 지었을 뿐 아니라
주역(周易)에 아주 밝았고,
학문이 높아
전국적으로 이름난
사람 이었다 합니다.
그런데,
공부 하느라고
20대 후반에 가서야
겨우 장가를 가게 되었으며,
어느날 결혼 후
신부와 첫날밤을 맞구선
너무 긴장한 탓인지
새벽 일찍 잠에서
깨어나게 되었습니다.
아직 닭은 울지 않고,
밖으로 나갈수도 없고 해서 심심하던 차에
💗산가치💗
(주역으로 점을 치는
젓가락같은 모양의 도구)를 뽑아 자신의 점을 치게 되었습니다.
신혼 첫날
비록 하룻밤을 잤지만,
과연 자신의 아이가 잉태했을까
궁금했던 것입니다.
점을 친 결과
아들이 생겼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다행 이었지만,
그러나
아직 닭은 울지 않고,
날이 샐려면 멀었습니다.
그래서
그 아들의 평생 운수를
점쳐보게 되었는데
아들은
자기보다는 못해도
부귀영화를 누리며
잘 살 팔자 였습니다.
그러면,
이 아들이 낳을
내 맏손자는
어떤 운명을 타고
살아 갈까가
궁금 해졌습니다.
그 아이도
그런대로 괜찮았습니다.
이렇게 한대 한대
점쳐 내려 가다가
5대손에 이르렀는데,
5대손은
중년에 이르러
*역적 누명*을 쓰고
사형을 당할 수 있는
운명이라는
점괘(占卦)가 나왔습니다.
이렇게
점을 쳐보는 가운데
어느듯 날은 새고,
그 날 이후로
*소강절*은
평생 그 일을 고민하며
살아가게 되었다 합니다.
세월이 흘러 드디어
*소강절*도 늙어서
임종을
앞두게 되었습니다.
💎아들
💎손자
💎며느리
💎손부 등을 모아 놓고
유언하는 자리에서
맏 며느리에게
비단으로 싼 함(函)을 하나 내어 주면서
*앞으로 살아가다가
집안에
무슨 큰 일이 생기거든
이 보자기를
풀어 보거라.
만약 너의 대에
큰 일이 생기지 않거든
네 *맏 며느리*에게
물려 주고,
그 맏며느리 대에
아무 일이 없으면
또 다음 대의
맏며느리에게
물려주고 하여,
대대로 이 函을 전하라.*고 하였습니다.
유언은 실행되었습니다.
*맏 며느리*에게서
*다음 맏 며느리*에게로
函은 전달되었다.
그런데,
*5대 손부*에게 와서
정말 큰 일이 일어 나고야 말았습니다.
그 남편이 느닷없이
역적 누명을 덮어쓰고
감옥에
하옥되었던 것입니다.
역적은
滅門之禍(멸문지화)를
입을 것이 뻔하므로
집안이 아예 망해버릴
순간이었습니다.
백방으로
구명할 길을 찾았으나
방법이 없었습니다.
밤새 끙끙 앓던
*5대 손부*는
새벽녘에 갑자기
시어머니의
유언이 생각났습니다.
급히 벽장을 열어
函을 꺼내어
비단 보자기를 풀어보니,
거기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지금 잠시도 지체하지 말고 이 函을
형조 상서에게 전하라* 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손부*는
급히 집사를 불러
의관을 갖추게 한후에
함(函)을 들려
형조 상서를 찾아가서
전하라고 하였습니다.
낙양성 중에서도
형조 상서네 집은
거리가
좀 먼 곳에 있었지만
집사는 달리다시피 하여
그 집에 당도했습니다.
형조 상서는 마침
아침을 먹고 의관을 차려 입고 입궐을 준비하던 참이었는데 하인이 와서 아뢰기를
*소강절 선생의
유품을 가지고 와서
나으리를 뵙고자 청하는
사람이 왔습니다.* 라고
하는게 아닌가.
형조 상서는 그 말을 듣고 비록 100여년 전에
작고했지만
워낙이 명망이 높은
대 정치가요 문장가이자,
큰 학자요 대 시인이고,
특히 동서고금을 통털어
주역(周易)에
완전 달통하여
천지가 돌아가는 운수와
사람의 길흉화복은 물론,
이 세상의 모든 이치를
한 손바닥에 꿰고 있던 분의 선물을 방안에 앉아서 받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마당까지 나아가
돗자리를 깔게 하고
한 쪽 무릎을 꿇고서,
그 유품을 받았습니다.
유품을 받는 순간,
자기가 방금 앉아 있던 *사랑채*가 통채로 폭삭
무너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란 형조 상서는
급히 函을 열어 보았습니다.
函 속에는
아무 것도 없고
글자 열자가 씌어진
하얀 창호지 한장만
뎅그러니
들어 있었습니다.
상서는
재빨리 펼쳐 보았습니다.
그 창호지에 적힌 글은
놀랍게도
*活汝壓樑死 救我五代孫*
(활여압량사 구아오대손)
이라 적혀 있었습니다.
즉,
*당신이
대들보에 깔려 죽을 것을
살려주었으니,
당신은 즉시 나의 *5대손*을 구해 줘라* 는
뜻 입니다.
형조 상서는 즉시
지시에 따라
재수사를 하여
5대 손의
무죄함이 밝혀졌으니,
이 얼마나
묘하고 묘한 일인가?
*소강절*은
평생 동안 자기 자손을 구하기 위해 5대 손자 대에 살아갈 모든 사람들의 점괘를 뽑아 보고
대들보에 깔려 죽을
형조 상서의 운수를
알아 냈던 셈입니다.
하늘과 땅이
함께 놀랄 일이
이보다 더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이러한 내용이 과연
인간의 영역으로
단정지을 수 있을 것인지,
또 우주를 관장하는
신의 영역을 침범하게 된
인간의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라 해야 하는 것인지. . .
*소강절*이야 말로
신의 영역을 침범한
인간이라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소강절*
이야기는 이미
세상에 많이 알려진
이야기 입니다만,
몇번을 읽어도
도저히 믿기지 않을
소설 같은
*소강절의 예지력*에 절로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친구나 지인들과 공유
하는 좋은날 되십시요.
9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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