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지원제도가 있는 줄 몰랐는데 ...
22년 9월 1일
올해 농사 초년생
시설하우스 600평에서 3평빠지는 규모에 머루포도나무를 승계받아 , 지원을 받을곳이 없어, 4월에 자비로 비닐4동 교체하고 시작했는데, 폭염에 나무잎이 쪄저서 1차 성장기에 피해를 보았고, 착색이 시작되면서 폭우로 바닥에 10cm높이로 물이차는 시련을 겪은뒤, 이제는 포도알이 낙과되는 현상을 보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될지 난감하네요!
그래도 아직은 감사한것이 다시 잎이나서 소생하고, 모든 경험이 농사 지식의 밑거름이 되는 것이라 생각하니, 다음을 위한 준비 기간이라 마음의 위안을 가지며, 머루포도 한알 입에 넣으니 달콤함에 입꼬리가 올라갑니다.
22년 8월 22일
전남 지역 거주하시는 분 계신지요?
전남도청에서 공문이 내려와 지난 1월 10일부터 전남 지역의 농어민 공익수당 지원사업 신청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신청 조건은 1년 이상 농업에 종사한 자로, 대상자는 연 60만 원의 지역사랑 상품권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신청 마감일이 2월 10일까지라고 하니 전남 지역 거주하시는 분들은 한번 확인해보시고 신청하시어 혜택 챙기시기를 바랍니다.
<문의 관련>
자세한 자격 요건 해당 시/군청에 문의 하세요.
<신청방법>
거주 해당 시군청에서 신청자격을 확인 받은 뒤, 주소지 관할 동사무소에 필요서류를 제출하면 됩니다.
22년 1월 18일
112
Farmmorning
안녕하세요^^
이곳에 이런 질문을 하면 실례가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너무 답답해서 올립니다
저는 현재 직장에서 텃밭동호회 총무를 맡고 있고 추후 퇴직을 하면 귀농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질문할 내용은 사진에서 보듯이 올 봄에 플랜트를 구청에서 지원받아 상토 한포대를 넣고 싱추,방울토마토,깻잎,가지 등을 심었습니다 근데 점차 잎이 누렇게 되면서 잘 자라지 않고 말라 죽었습니다 그 후 봄에 심은 작물을 모두 제거하고 8월 말경에 황토하고 거름을 적당히 섞은 후 배추와 무 모종을 심었는데 이번에는 크지도 않으면서 뿌리도 내리지 못하고 누렇게 변하더니 죽어 버렸습니다 그후 얼가리 배추 씨앗을 뿌렸더니 사진과 같이 싹이 나오더니 또 더이상 자리지 않고 누렇게 변하더니 말라 죽고 있습니다 30개 정도 플랜트를 제가 관리하고 있어서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또한 내년에도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 안되기에 이렇게 도움을 청합니다
비료를 너무 많이 주었는지, 아니면 비료를 너무 안 줘서 그런지, 물을 너무 많이 주어서 그런지, 땅속 병충해로 그런지, 흙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지 도무지 답을 찾지 못 하겠습니다 농사를 업으로 하시는 분들에게 실례를 무릅쓰고 올리니 양해 부탁드리며 많은 도움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1년 11월 12일
8
Farmmorning
우린이웃나라일을그냥지나처서는안됨니다 추위에굶지림에떠는튀르키에의아픔에동참합시다 종교를떠나서도움을줄수있는분들께한번돌려주셔요 하나은행12191001833104 한국불교협회
규네르의 호소가 올라온 직후 이 트윗은 급속도로 퍼져나갔고, 한국 네티즌들은 발 빠르게 기부금과 구호물품을 보냈고 순식간에 서로를 독려하며 기부 인증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국내 네티즌들은 “소액이지만 작은 희망과 회복의 씨앗이 될 수 있길 바란다” “빨리빨리 알지? 얘들아 빨리빨리 지갑 열자” “형제의 나라를 구하자 힘을 모아보자”라며 기부 인증샷과 함께 위로와 응원의 글을 남겼습니다. 
약 5시간 후 규네르는 “역시 한국 사람들 대단합니다. 리트윗하고 기부해주신 분들께 모두 감사드립니다. 제가 상상하지도 못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셔서 눈물이 납니다. 제가 한국을 좋아하는 이유를 다시 알게 됐습니다”라며 고마움을 표현했습니다.
이어 그녀는 “처음에는 감사의 댓글을 다 달았는데 한 시간도 안되어 기부가 너무 많아져서 일일이 감사하다는 말을 하는 게 어려워져서 이 글을 대신해 알리고 싶어요. 온 마음을 다해 감사합니다. 형제의 나라 도움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해 감동을 주었습니다.
규네르는 튀르키예의 한 방송국에서 디지털 프로듀서로 일하며 출장과 관광을 위해 한국을 자주 찾았다고 합니다.
한국과 한국 문화를 사랑하게 되면서 당연히 한국어 공부를 하게 됐는데, 지난 2018년부터는 아예 트위터에 한국어로 글을 올리며 소통해 왔습니다. 
한국에 올 때마다 한국의 정을 자주 느꼈고, 고국에 이러한 비상사태가 발생하자 가장 먼저 한국이 떠올라서 도움을 요청해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솔직히 이 정도는 기대하지 못했다. 한국어로 그저 몇 줄 도움 요청 글을 올렸을 뿐인데, 자신의 일인 것처럼 힘을 합쳐 도움을 주는 한국인들에게 큰 고마움을 느꼈다”고 말하며 끝내 감동의 눈물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한국불교관음협회에서는의류담요텐트커피한두잔안마시고정성으로성금까지너무감동을받아대한민국에감사의눈물을보내왔다
사상 최악의 강진 피해를 본 튀르키예에 세계 각국 구호물자가 쇄도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네티즌들은 물론 국내 기업, 연예인들까지 한 마음으로 튀르키예의 구호에 힘을 쏟고 있는데요.
첫 번째 규모 7.8 지진 이후 지금까지 9천여 차례의 여진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세계 각국의 도움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즉시 튀르키예에 1차적으로 500만 달러, 우리 돈 63억 원 가량의 인도적 지원과 외교부, 소방청, KOICA, 육군 특수전사령부 소속 군인 인원들로 구성된 대한민국 긴급 구호대를 파견했습니다.
우리가하루커피2잔만안마셔도그들의이틀식사가제공됨니다 그들의추위에떨고있맘에따뜻한한끼를부탁드림니다
 
이는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해외 재난 지역에 보낸 긴급 구호대 중 단일 파견으로는 최대 규모입니다. 대한민국 구호대는 지난 8일 새벽 의약품과 긴급 구호물품을 싣고 현지로 출발했습니다. 현지에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각국 구호대가 속속 입국하고 있지만 현지 상황은 쉽지 않습니다. 월스트릿저널, BBC 방송 등에 따르면 현재 튀르키예 상황은 땅길, 바닷길, 모두 바닷길을이용해식수음식이배달 진입 자체가 쉽지 않다고 보도 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들께감사의말씀을전하는투르키예여성분이전세계로코리안에고마움을알리고있습니다
지진 피해가 넓은 지역에 걸쳐 발생한 데다 추가로 여진이 발생해 튀르키예 주요 도로와 교량이 무너졌고 날씨가 추워지고 눈까지 내려 주요 도로가 폐쇄되거나 전기가 끊긴 지역이 많아 구조 작업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피해지로 통하는 튀르키예 남부 이스켄데룬 항구는 지진 때 주변 도로가 파괴되고 컨테이너가 넘어져 폭발까지 발생하면서 운영이 중단됐습니다. 
날씨가 계속 영하권으로 추운 데다가 구조가 가능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안타까운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또한 건물 잔해 속에서 생존한 사람들 목소리가 들린다 하더라도 장비와 전문 인력이 부족해 골든 타임을 놓치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합니다.
한국불교관음협회는 종교를초월해어럽고힘든분들을구제해돕고나눔을실천하는종무법인입니다 우린대한민국 국가가못한일들을위해자비로활동을하며여러분이보내준후원은 백프로그대로그분들을위해쓰여지고전달됨니다 다른기부단체는기부금을가지고자기들활동비까지쓴다고알고있다그래서우린심부름꾼으로자비부담을윈칙으로운영하고있다
현지에는 발전기나 드릴은 커녕 군인들은 장갑과 헬멧 같은 기본 장비도 없이 구조를 위해 무너진 건물에 들어가는 상황도 있다고 합니다. 
한국 긴급구호대는 이번 구호 작업 역시 전문성을 갖춘 대규모 구조 활동으로 또 한 번의 미라클 작전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는데요.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도착 즉시 강진이 덮친 남부 하타이 지역을 시작으로 수색과 구조 활동에 착수했는데, 투입 후 바로 생존자 구조에 성공했습니다. 한국 긴급 구조대는 이날 안타키아의 셀림 아나돌루 고등학교에 베이스 캠프를 설치하고, 오전 5시부터 구조 대상지인 안타키아 고등학교 등지에서 구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한국불교관음협회에서직접현장에가서도움의손길을드리기위해따뜻한음식과도움주신의류이불텐트를현장에서도움을주고계시고후원금은 식수음식등을나누어주고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따뜻한온정에그곳에살아남으신분들은감사합니다코리안을외치며뜨거운눈물을흘리십니다
그리고 구호 시작 1 시간 반 만에 70대 중반의 남성 한 명을 구조했는데요, 주변을 수색중이던 우리 구호대원이 생존자의 소리를 들었고, 구호대는 바로 구출 통로를 만들어 구출에 성공하게 됩니다. 생존자는 구조 당시 의식이 있었던 상태로 건강에도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생존자를 구출한 곳에서는 이미 사망자 4명이 발견됐기 때문에 한국 구조대의 발빠른 구조 덕택에 한 명의 생명을 살릴 수 있었습니다.
지금그곳은엄청후운데지진으로다무너져길거리턴트에서추위와사투을하고있답니다
영하의 추운 날씨와 긴 비행에도 긴급구호대는 멈추지 않았고, 2세 여아와 부모 등 3명을 추가로 구조했습니다.
구조된 가족은 탈수 증세는 있지만 의식은 뚜렷한 상태였습니다. 튀르키예는우리가도와주어야하는이웃 입니다 더관심을가져주십시요
안타키아 지방정부 관계자는 “한국의 긴급구호대가 오자마자 성과를 거둬 아주 기쁘고 감사하다”며 “구호활동을 통해 생존자가 계속 나왔으면 좋겠다”는 기대감을 나타냈습니다. 
국제사회에서 온정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지만 구조 여력이 피해 상황에 비해 턱없이 부족해 희생자 수는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입니다. 국제사회가 한 마음으로 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도로가 끊기고 폭설까지 내려 인력과 장비 도착이 지연되는 바람에 골든타임만 속절없이 흐르고 있습니다. 한국은 현지 상황이 매우 참혹하고 어렵지만 최선을 다해 구조 활동을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에 튀르키예 언론은 “튀르키예가 꼭 필요할 때 도움을 주는 한국 정부와 국민에게 형제애를 느낀다. 절대 잊지 않겠다”고 보도했습니다. 인터넷매처어서감사의물결이넘처나고있는실정 입니다
형제의 나라인 튀르키예 국민들이 슬픔과 좌절에서 용기와 희망으로 하루 빨리 다시 꿋꿋하게 일어나도록 기도드리겠
23년 3월 6일
4
1
농사를 업으로 하시는분들과
도시에 살며 주말농장 형태로
농사짓는 분은 분명 차이가
있을겁니다.
업으로 허시는분은 각종 약제.농자재.농기계 하나까지 얼마에사서 얼마의 수익이 나냐를
따지며 계산 해 보시던데
저는 주말농장 형태라 판매보단 건강하고 유기농 식자재를 키워서 마트에서 사먹느니
직접 해보자는 마음으로
농사를 시작했어요.
좀 많다 싶으면 주변 지인이나
이웃에게 조금씩 판매도 하고
나눠도 주고
소비도하고 작물들 처음 새싹 올라올때 어느게 잡초인지 내가 키울 새싹인지 구분도 못해
어리버리한 초짜였는데
주변밭이나 운전 해가며 산책중 하나하나
공부해가며 배우는중입니다.
(주말농장 하시는 도시 농부님들 공짜로 줄때는 좋아라 하시는데 얼마나 힘들게 키우고 정성이 들어가는지 나눔 받는 지인들이나 이웃들 그런거 모릅니다.
호의가 계속되면 당연한 권리인줄 압니다.)
옥수수도 거의 다 수확해가고
이제 남은거라곤 청상추(선그린인가 치마상추)와
잎들깨 끝물인 방울토마토.
한참 잘 자라 열매 맺어주는
조선호박과 맷돌호박.
그리고 토양개량용 수단그라스
갈수록 무더위에 밭에 가기가
싫어지는데
이젠 뭐 아예 쉬는날도 몸이
기억합니다.
늦게자도 새벽 4~5시면 어김없이 기상 해 09시 직전까지 밭일하고
그늘에서 좀 쉬었다가 점심 먹으면 식곤증에 눈이 천근만근이고
운전중에라도 졸음땜에 미쳐버리겠는게 습관이 이리 무섭습니다.
낮잠을 안자고 해지기전 밭일을 마무리하고 저녁먹고 자는
습관으로 바꿔야 하는데
말처럼 쉽지 않네요.
낮잠 잠깐 잔다는게 눈 떠보면
이른 새벽이고
잠 설치다 겨우 다시 잠들어
눈 뜨면 일 하고 반복입니다.
아직 시골밭에서 자면 선풍기조차 필요 없는데
부산 집에만 오면 빼곡한 건물들과 에어컨 실외기에서 나오는 뜨거운 바람때문인지
에어컨과 선풍기를 켜야지만
겨우 잠들정도로 많이 덥네요.
서론이 너무 길었네요.
우연히 지역🥕에서 고추따기
알바 구인글을 보고 지원했더니 다음날 오후쯤 연락이 왔네요.
그 다음날부터 일하기로 약속잡고 첫날 새벽 4시에 기상해
후레쉬 불 비춰가며 밭에 깻잎이며 가시오이 등 해야할것들 좀 해놓고
차에 싣고 룰루랄라~~
도착하고 얼마 안 지나니 승용차들이 줄줄이 도착하는데
복장들을 보니 영락없는 도시
사람티가 팍팍 나더라구요 ㅋ
간단한 일 설명을 듣고 바로 작업 시작
두물째 수확이시라는데
방아다리 밑에 순 나온것까지
다 살려나서 얼마나 튼실하게
잘 키워났는지 홍고추를 따는데 손이 안 들어갈 정도라
한손으론 가지를 제껴가며
고추를 하나하나 양손잡이라
하나 따면서 다음 딸것을 쳐다보며하니 두둑 양쪽에 한명씩
붙어 일하는데 동선이 겹쳐
사장님께 말씀 드리고
다음 골로 넘어가 혼자 작업 시작~~
발통 달린 의자와 가위까지 주머니에 넣고서 작업하자니
어떤 고추는 키가 크면서 홍고추가 많고
어떤놈은 키가 작으면서 홍고추도 몇개 없고
앉았다 일어났다 반복하다가
의자 치워버리고 서서 쭉 보니
대부분이 키가 좀 크고 홍고추가 주렁주렁 매달린 두둑이라
비료포대를 중간중간 고추말뚝 위에 걸어두셨던데
비료포대에 담는게 손에 안 익기도하고 불편해 노란바구니
발로 밀어가며 고추가 안 달린
가지는 정리하고 매달린 가지는 살려두고
땅이 메말라 잡초까지 뽑아가며 작업하는데도 다른 알바
오신분들 보단 제가 쬐금 속도가 빠르더라구요.
다른 한분은 시골에서 자라서
인지 손이 상당히 빠르시던데
그분도 혼자 한 골을 다하시는터라 은근히 경쟁심 생겨
더 열심히 고추를 딴거 같네요.
아~손 빠른 그 분 진짜 고추만
따시더군요 .
예정대로라면 06시부터 09시까지 하기로 했는데
쉬는 타임에 사장님이 1시간만 연장해서 일 해달라는 부탁에
가져다놓은 음료며 캔커피에 시원한 생수까지 마시며
뒷주머니에 생수 한병 찔러놓고 내가 맡은 한골은 다 끝내자
마음먹고
10시전에 겨우 한골 전체 다 고추를 따니
역시 사장님은 농사 지으시는 분이라 그런지 안 시킨것까지
다 해줘서 고맙다며 내일도
바쁜일 없다면 꼭 와달라며
식사하고 가시라며 붙잡으시네요.
다른분들은 더위에 지치셨는지
정산하기 바쁘게 시동걸고 에어컨 키며 집에 가기 바쁘시던데
그제서야 배가 고파 사장님 내외분들 차 뒤에 따라가니
중국집이 있던데,
형님이란 분은
아예 포터에 약통이랑 그 밑에
다이짜서 발전기에 드론까지
다 세팅해놓은 차량으로 방제를 마치고 식당앞에서 기다리고 있더군요.
안 보는거 같아도 젊은 사장님
내외분들 같이 고추 따면서도
보고 있었나봅니다.
식사를 하며 어떤 작물들을 키우냐고 묻기에 이것저것 땅 안 놀리려고 많이 심어뒀고
땡초도 50주 심어서 유기농 약재를 직접 만들어 키우는 모든 작물에 농약을 안 쓰고 키운다니 쬐그만한 텃밭인줄 알았나
봅니다 ㅎㅎㅎ
대략 200여평 혼자 농사 짓는다니 혼자 200평 쉽지 않은데
하시며
식당에서 나와 근처에 집이 있으니 따라오라네요.
일한 돈 주시려나 싶어 따라가니
웬 유기농 약재통 3개를 그것도
개봉도 안 한 새제품으로
주시네요.
사용법이랑 이것저것 설명 해주시던데 직접 유기농 균제며
살충제 만들어 쓰는거보단
좋을거라며 칼슘제까지
받아들고
밭 근처 나무그늘에 산 밑이라
바람이 솔솔 부는곳에 주차를
하고 한숨 푹 자고서
밭일까지 마무리하고
이틀째 고추따기 알바를 가니
이젠 아예 저 혼자 한골 다 작업하라고 사장님은 여기요 하시네요 ㅋㅋㅋ
손 빠르던 그분 지치셨는지
고추 한줄로 쭉 심어진곳에
잽싸게 자리 잡고 일하시네요.
예정대로라면 일요일까지 일해야하는데
저랑 시골출신 사장님 2명
덕인지 아니면 이틀째라 다른 알바오신분들 손이 빨라지신건지 생각보다 빨리
저는 09시에 한골 전체 양쪽으로 고추 다 따고 정리를 하고
쉬고 있자니
사장님이 오셔서 사장님~~~
다른분들 작업하는데 가셔서
빼먹고 지나간곳이 있는지 보면서 마무리하고 마치자시네요.
이상 이틀간 고추따기 알바 후기 및 일상 이였습니다.
무더위에 땡볕 아래 일하시는
농부님들 더위 안 먹게 조심하시고
아마도 금요일 첫날 너무 무리한건지 아니면 일 마치고오후에 밭일을 더 해서 그런지
일 마치고 기억이 부분 부분 지워졌어요 ㅠ.ㅠ
아마도 제가 더위를 먹었나봅니다.
오늘은 집에서 에어컨 키고 짰더니 괜찮긴한데
진짜진짜 햇볕 뜨거울땐 조심들 하시기 바라며
긴 글 마무리 할께요.
천여평 고추 농사에 드론방제
에 논 농사도 엄청 크게 지으시던데 그분들께 이것저것 많이
배우고 힘들고 땀도 많이 흘렸지만 보람찬 이틀이였어요.
외딴곳이라 품앗이도 없고
형제랑 부모님과 농사 지으신다는데 한편으론 부럽기도
했구요.
어떨땐 혼자 외롭게 이게 뭔
청승인가 싶기도 했는데
사장님 내외덕에 힘내고
더 열심히 분발하려구요.
23년 8월 5일
13
14
Farmmorning
직장 생활을 접고 귀농을 고민하는 1인입니다
지역은 경남 창녕으로 생각하고있으며..
일전에 관련하여 지원센터에 문의를 해보니
"제일 먼저 작목을 선택을 하라고 하던데"
1.어떤 기준으로 작목을 선택하면 되는지
2.시장조사는 어떤 방법으로 하면 될런지요
무작정 뛰어다니기는 어려울듯 한데요
조언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2년 1월 18일
1
지원그있나요
21년 5월 1일
⛰🦜 🕷🕸
╰✿🦨🌲🌱᜴ᭂ
🍮🍾⏝)🐓⏝⃝🦆🐕
╱◥◣╱◥◣╱◥◣╱◥◣
💗 외로운 天使(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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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어느 선배님을 만나
사람의 등급에 대한 대화를 하다가
그 선배님께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사람은
설악산 지게꾼인 임기종 씨인데,
TV에도 몇 차례 나왔다고 했습니다.
   ╭//////ヽ
    (〃ハノノ彡 )
     ) ◕`  👂 )
  ╰ )  
        ︶) .. (
◢ ⚜ ◣
╭🔱🎖 ꙰ ➿ྀ ꙰ྀ (임기종씨)
TV를 잘 보지 않는 저는
“그 분이 누구 인데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는 40년이 넘도록 설악산에서
지게질 만 한 지게꾼이고,
키가 160cm도 되지 않고,
몸무게는 60kg도 나가지 않고,
머리숱은 듬성듬성하고,
이빨은 거의 빠지거나 삭아서
발음까지 어눌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열여섯 살 때 처음으로 지게질을
시작한 이후 40년간 오직 설악산에서
짐을 져 나르고 있고, 그 삯을 받아서
정신지체 2급의 아내와 그 아내보다
더 심각한 정신장애를 가진 아들을
부양하고 사는 山 사나이라 했습니다.
맨 몸으로 걸어도 힘든 산길을
40kg이 넘는 짐을 지고 날마다
산을 오르는 임기종씨.
하루에 적게는 4번, 많게는 12번이나
설악산을 오르는 사람입니다.
설악산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상인들과 사찰에 필요한
생필품을 져다주고 그가 받는 삯이
한 달에 150만원 남짓 이라고 했습니다.
한 달에 150만원. 누구에게는
이 돈이 별 것 아닌 돈일지 몰라도
그는 충분한 돈이라고 했습니다.
아내가 장애인이라 정부로부터
생활 보조비를 받기 때문에
부족한 가운데서도 생활이 가능하고,
술 담배를 안 하고 허튼 곳에
돈을 쓰지 않으니 먹고 사는데
불편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낱 지게꾼에 불과한 그를
많은 사람들이 작은 거인이라고 칭송하는
까닭은 그가 그렇게 힘들게 일해서 번
돈을 자신과 가족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기 때문 입니다.
십년이 넘도록 장애인 학교와
장애인 요양시설에 생필품을 지원하고,
독거 노인들을 보살피고,
더 어려운 이들을 위해 자신이 번 돈
모두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임기종씨가 그렇게 사용한
돈만 수천 만 원이 넘는다고 했습니다.
“힘들게 일을 하지만 적어도 땀 흘려서
번 돈 만큼은 내 자신을 위해 사용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임기종씨의 이 말에 저는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연봉이 수억 이네
수십억 이네 하는 사람들도
하기 힘든 것이 남을 돕는 일인데
날마다 뼈 빠지게 일해서 번 돈을
오롯이 남을 위해 사용하는
그의 선한 마음이
한없이 존경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그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마다 山을 오릅니다.
자신이 지게를 짊어지지 않으면
휴게소 상인들이 장사를 할 수
없다는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어떤 날은 가스통을 4개나 짊어지고
山을 오르기도 하고,
어떤 날은 100kg이 넘는
대형 냉장고를 통째로 짊어지고
山을 오르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지게를 지는 요령을 몰라
작대기를 짚고 일어 서다가
넘어지기 일쑤 였습니다.
너무 힘들어 몇 번이나 그만 둘
생각도 했죠.
하지만 배운 게 없고 다른 재주가 없으니
육체일 밖에 할 것이 없었어요.
그때는 내 몸뚱이 하나
살아내는 것도 쉽지 않았거든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설악산을 오르니
이 세상에 나보다 설악산을 더 많이
오른 사람은 없을 겁니다.
매일 오르지만
지겹다는 마음은 전혀 없어요.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철마다 설악산의 풍경은 바뀌니까요.
그러니 고맙지요.”
그는 조실 부모 했습니다.
열 살이 갓 넘었을 때 부모가 연달아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원체 가난한 집안이었기에
남겨진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6남매의 셋째였습니다.
그렇게 남겨진 6남매는
제각기 자기 입을 해결해야 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도 못 마친 그는
남의 집 머슴살이부터 시작 했습니다.
그러다가 돌고 돌아
설악산 지게꾼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젊은 시절을 보내고 있을 때
한 지게꾼 선배로부터
정신지체 2급에다 걸음걸이도
불편한 여성을 소개 받았습니다.
그 선배는
“이런 여자는 자네와 살림을 살아도
결코 도망가지 않을 것”이라며
그에게 소개를 했습니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그의 아내는 일곱 살 정도의
지능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여자를 소개해준 것은
내가 별 볼일 없어서 그랬겠지만,
어쨌든 그녀를 처음 보는 순간에
어찌나 애처롭던지요.
저런 몸이니 그동안 주위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구박을 받았을까 싶어서~
따지지 않고 내가 돌봐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와 정상적인 대화가 되지 않으니
많이 답답하기는 하지만 그것조차도
자신의 팔자로 받아 들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돌보지 않으면
그의 아내는 도저히 살 수없다고 생각하니
자신이 끝까지 그녀를
돌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이들 부부 사이에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말을 못했고 아내보다
더 심각한 정신장애 증세를 보였습니다.
아내가 정신장애를 겪고 있으니
그 아이의 뒤치닥꺼리를 하려면
자신이 일을 그만둬야 했는데
그럴 형편이 못 되었습니다.
결국 아이를 강릉에 있는
어느 시설에 맡겼다고 합니다.
그렇게 아이를 데려다 주고 떠나오는데
그는 ‘나만 편하려고 그랬다’는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용달차에 과자 20만원 어치를
싣고서 다시 발길을 돌려
시설로 되돌아갔다고 합니다.
그 과자를 먹으며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니
자신이 훨씬 더 기뻤답니다.
그때 처음으로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
그 사람만 기쁜 것이 아니라
자신도 기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임기종씨는
지게일로 번 돈 모두를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40년 동안 설악산을 오르락 내리락
하였지만, 설악산 말고 다른 산에는
여태껏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는
임기종씨.
옛날 어느 전설에 하늘에서 천사가 설악산에 목욕하러 내려 왔다가 미처 올라가지 못한 천사 한 명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사람이 바로
임기종씨가 아닌가 싶습니다.
있는 것이 부족하다며
늘 더 가지려고 바동거리며 사는 우리.
남의 입에 있는 것도
뺏어 먹으려고 하는 우리.
배 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 우리.
이고지고 갈 것도 아닌데
우리는 너무 많이 먹고,
너무 많이 놀고,
너무 많이 가지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많은 것을 깨우치게 하는
감동 그 자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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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당신은 좋은일만 있을겁니다.
사랑합니다. ~감동글~ 💞
🕊
🌳᜴ᭂ︵(🦉⏜ 🦜
⏝⃝🐌🌱⃠ᭂ҉🦨🏕꧂
23년 5월 4일
3
2
Farmmorning
농업으로 창업을 생각하는 25살 입니다.
현직은 외향상선 기관사로 배를 타고 있구요
약 3년 내지 5년 정도 현업 종사하고 퇴직 후 친구와 함께 스마트팜으로 창업을 하려는 계획이 있습니다.
나주에 거주 중이고 친구 아버지께서 농사를 크게 하셔서 친구가 땅은 물려받으려 하는데요 설비나 운영 목적 자본을 제가 모아보려 합니다.
자본금은 현직 근무하며 차근차근 모아 나갈 예정인데요.
1. 6천평 규모에 스마트팜 설비를 위해 들어갈 자본이 얼마나 들어갈지 모르겠습니다. 대출 한도가 80%라고 들었는데 제가 모아갈 자본이 1억 이하일 걸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아직 작물도 정해지지 않았고 시설 구조등 정확한게 없어 차근 차근 청사진을 그려나가고 싶은데 어떤 부분부터 알아보고 고민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조언 해주실 수 있는게 있다면 어떤 조언이든 감사합니다.
2. 준비 기간? 이라고 할 기간이 3년 넘게 있을 예정인데 제가 한번 항해를 나가면 6개월에서 1년 정도 돌아오지 못해 휴가 기간 2~3달간 준비를 해야합니다. 혹 이 기간 내에 제가 준비하고 공부하면 좋을 것들이 있을까요? 가령 귀농 지원을 위해 본가에서 몇 년간 거주지를 이전하가 하는 사항들 말입니다.
3. 생각해야하는 사항이 산더미인데 어디서부터 생각을 해봐야할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이런 종류의 고민들을 상담해주는 기관이나 정부 부서 혹은 회사가 있는지 여쭤봅니다.
22년 2월 6일
2
# # # 자두에 대해서 본인이 농사를 경험한것과 판매한 경험등을 수필 형식으로 올려 보겠읍니다 내용 중에는 현재의 사실과 차이가 날수도 있으니 다만 참고 하시기 바람니다 판매 부분에서는 다른 품종의 과일도 해당 될 수도 있읍니다 지금은 고향 김천에서 형님이 자두농사를 만평정도를 하다가 시의 주력지원 작물인 샤이머스컷 포도농사를 적극 지원 하고있어 자두를 포도나무로 교체중이나 일부는 자두를 아직도 재배하고 있는데요 과수농사를 수천평 하다보니 가지치기는 1월이 시작되면 작업을 시작합니다 위낙 일감이 많다보니 적당한 시기를 선택할 겨를도없이 혼자서ㆍ인부도 쓰지않고 합니다 또한 아무나 자를 수 있는게 아니라 기술이 있는 사람이 해야하기 때운에 혼자합니다 기술자를 쓸려고해도임금도 더 비싸고 구하기도 싑지는않아서ㆍㆍ왜냐하면 가지치기 기술자가 많지도 않고 있다고 해도 본인의 농장들이 있어 본인거 해야 하니까요. 부지런히 하연 농사철 오기전에 끝납니다 그와 중에 부녀자나 노인은 추워도 자른가지를 주워 모읍니다 그 다음은 퇴비는 틈나는 대로 과수원에 무작위로 흩어 놓습니다 봄에 땅이녹으면 토양살충제 복합비료(과수전용) 붕사조금 석회 조금 뿌리고 앝게 로터리를 칩니다 3월초가 되면 미리 준비해놓은 기계유제를 바로치고 한달후 바로 시기를 놓치지않고 유황을 칩니다 같은 시기에 치면 안되는 걸로 알고 있읍니다 그러면 깍지벌레나 갈색 매미충 등 각종 해충이 상당히 제거됩니다 그래도 나중에 시기별로 해당 농약을 칩니다 완벽 하게는 제거가 안 되지만 일부는 존재하고 있고 과원 주변에서 번식 하여 이동해 오니까 추가로 치는겁니다 ss기라는 농약치는 장갑차같이 생긴 전용 차량이 있어 한번만 지나 가면 과수원이 농약 물안개에 덮힙니다 묘목을봄에 꽃이 피고 서리가 아직도 내리면 꽂은 낙과 합니다 큰 과수원에서는 별 대책이 없어요 꽂이지고 열매가 형성 되면 잎이 나오는데 이때 부터 벌레가 부화하여 활동하기 시작 하는데 이때 갈아먹어도 죽고 피부에 닿아도 죽는 겸용 일반 살충제를 칩니다 잠깐 ! 봄이 왔으니 묘묙에 대해서 언급하면, 자두의 종류는 크게 나누어 조생종.중생종.만생종.이 있고 품종도 다양합니다 자두는 자가 수정이 잘 안됩니다 잘 되는것은 신품종 몇종 밖에 없어요 그래서 수분수가 필요 합니다 묘목을 심을때는 수분수를 더물게 섞어 심어야 합니다 수분수란? 품종이 서로 다른 나무를 심어 꽃가루가 다른나무 꽃에 날아가서 수정을 도와주는 역활을 함 # 수분수로 적당한 품종은 피자두.와 홍자두로 알고 있읍니다 앞전얘기 ! 조생종의 대표적 품종은 대석이 있는데 요즘은 대석(보통). 신품종왕대석을 많이 심는데 수확은 6월 20일경이면 가능합니다 조생종은 보통 일찍 수확을 보기 때문에 구가 크게 자라지는 않고 익습니다 중생종으로는 다른 종류도 많으나 후무사(.7월중순~8초수확) 홍자두.가나조생 .수박자두 피자두(후무사끝나고 익기 시작)태양.등이 있는데 이들은 익는시기가같은종도 있고 조금씩 다른 종도 있읍니다 피자두는 푸르다가 익어면 검붉음 속은 핏빛. 수박자두는 겉은푸르나 속은 빨간색.홍자두는 신맛이 다른종보다 강하고 잘 익은것은 무척 달콤함.만생종으로는 대왕 .추희가 있는데 대왕 다 따내고 나면 추희가 익습니다 대왕은 후무사 .태양 따내고 며칠이면 익습니다 가나조생.수박자두.홍자두등은 후무사와 비슷한시기에 익습니다. 묘목의식재 거리는 10~11미터 간격으로 심었어요 원만한 좁은 땅에는 몇 주밖에 못심습니다 20~30년 동안
자라면 넓지도 않고 가지끼리 붙습니다 그래야 나중에도 나무사이로 농기계 로타리도치고 농약 차도 다니고 작업이 원활 합니다 너무 비좁게심으면 병.충도 더많이 생기고 바람불면 가지끼리 부딪쳐 과일도 떨어지고 상처나고 햇볕도 적어지고 관리 하기도 힘도 더 들고 부작용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수확이 썩 많은것도 아닙니다 과원에 고라니가 들어오면 안됩니다 그는 자두잎을 무척 좋아합니다 자두가 잘 익은게 주렁주렁 달리면 낮은 가지는 무거워 밑으로 축 쳐지면 특히 비맞으면 더심함. 고라니가 자두잎을 입에 물고 잡아 당기면 가지가 출렁하면서 자두가 우두두둑 떨어지는데 자두는 떨어지면 모래 박혀 못쓰고 얼들거나 깨져서 못씁니다 비쌀땐 5키로 한박스에 5~6만원에 팔았는데 몇번 그러고 나면 몇 박스가 사라집니다 수시로 그러면 머리 뿔이 납니다 자두는 수분이 엄청 많은 과일입니다 익으면서 제일 많이 크집니다 가물지 않게 수분을 공급 해야 좋고 장마때처럼 수분이 지나치게 많으면 싱급고 맛이 없고 과가 터지기도 합니다 자두의특징은 새콤.달콤한 맛에 매력이 있는겁니다 비온 후에는 4~5일 후에따는게 좋습니다 당도가 올라갑니다 수확기에는 관수를 적당히 해야 맛있습니다 판매용으로의 수확은 소비자의 손에 들어갈 때까지의 유통기간을 잘계산 해서 좀덜 익은것으로 따고 내가 먹거나 동네 친구는 잘익은거 골라 줍니다 포도나. 감. 베리. 자두등은익으면서 고유의 하얀 분이 생깁니다 이것이 지워지지 않게 최대한 신경을 써서 포장해서 시장에 나가야 가격을 잘받습니다 엄청 중요한 일입니다 도매상이 관심이 집중됩니다 다음은 판매 경험을 언급하면 김천에는 농협 공판장을 피롯 중견 기업체가 운영하는 농산물 공판장이 3개소가 있는데 개인농가가 직접 수확.포장하여 차에싣고 정해놓은 경매시간 전에 경매공판장에 차가 들어가면 직원들이 차를 유도해서 진열 경매대에 특.상.중.하 등 잘 정리 해서 쌓아두고 상품이몇개? 중품이 몇개? 하품이몇개? 이런식으로 품목.수량. 물주이름.등을적은 물표를 줍니다 잘챙겨야죠!구좌번호도 주면 자동으로 입금도 해줍니다 시간이흘러 경매가 시작되면 고객대기실 창구에 자판 커피마시고 있으면 모니터에 물주 이름이뜨고 자두가 상품이 몇개 중품이개 하품이몇개 각각 가격이 나오고 낙찰되면 낙찰도 표시도 뜨고 그러면 구죄번호 제출했으면 바로 입금이 들어옵니다 만약 판매가가 맘에 안들면 창구에 유찰 신청해서 다시싣고 나와서 다른곳에 또는 다음날 재경매 할수도 있읍니다 허나 이것은 이미 신선도가 많이떨어져 지금보다 더받기는 쉽지는 않아요 다음날 동네사람들 만나 보면 누구네는 어느공판장에 갔더니 가격이 잘 나왔더라 하는것도있고 어느지방.어느지역.같은지역이라도 경매에 의해 이루어져 같은 물건이라도 가격은 차이가 당연날수 있읍니다 그러니 경매 참가 희망 농민은 물건을 싣고갈때 경매장을 세세히 둘러보고 남들의 물건도둘러 보고 포장상태.방법도 보고 나보다 물건이 좋으면 그 농사 잘지은 사람도 만나면 농사법도 물어보고 사교도 좀하고 어떤 물건들이 나오고 있는지 보고 가격이얼마에 거래되는지도보고 거기에는 구경거리도 배울것도 느낄것도 너무나 많습니다 저와형님은 과거 자두박스를 공장에 주문을 6천개 했는데 직원이 이동네 저동네 각종 과일박스를 주문을 받으러 다니더라구요 박스는 공통그림이 들어가지만 전화번호를 박스에 인쇄해 달라고 요구하여서 사용해서 출하가 시작됐는데 경매가 시작되고 물건이 전국으로 퍼져 박스에 전화번호가 있어 제주도 .강원도에서도 개인 전화 주문이와서 택배로 보냈읍니다 과일 따기. 과일이 익어가기 시작하면 무척 바빠집니다 볕이 뜨거우면 더빨리 익습니다 과일따는날은 새벽에 어두울때 사다리.바구니를 싣고가서 날이새면 따기 시작해서 오전 9시면 철수 합니다 과일이 열받기 전에 시원할때 따기위해서입니다 집에 오면 식사를 빨리끝내고 선별.포장해서 경매장으로감니다 11시쯤경매가 시작 되고. 경매가 끝나면 점심을 사먹고 생활용품좀사고 집에와서 더운데 일도 못하고 낮잠을 좀 자고 오후3~4시쯤 또과일을 따기 시작하고 해가 기울면 바로 철수합니다 어둡기에는 아직시간이 남았어도 철수합니다 빛이 없어면 잘익은 과일의색깔 구분이 잘 안되 할수 없읍니다 이렇게해서 집에오면 밤늦게까지 아주밝은 전등을켜고 선별.포장을 합니다 상중하 표기도하고 주인이름도 기재하고 수량도 파악합니다 높게 적재하지않고 1.2단만 쌓습니다 틈나는대로 빈박스를 많이 접어 놓습니다 다음날 또 새벽에 수확하여
오전에 선별.포장한 자두와 어제 작업한 자두를모아 공판장에 가면됩니다 선별포장할때는 크기가 어느정도 일정해야 하며 껍질이 아주 작은 구멍이라도 나면 과즙이 베어나와 상품성을 망치기 때문에 담으면 안되고 . 긁힌 자국이나 흠집이 있는것도 골라 내어 담아야 하고 포장단위의 무게도 절대 미달은 안됩니다 , 자두도 다른과수 처럼 충과.병이 많이 옵니다 그때 마다 미리 예방 하고 방제를 해야합니다 저는 지금 현재는고향에 농지를 형님에게 임대하고 경기도 안양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남의 땅을 700평정도를 임대 하여 각종 과수및 채소를 심고.연구하면서 경작을 하는 중이고 김천에 일년에 몇번씩 내려가 도와주고 올라오곤 한지가 40 년이 다되어가네요 여기서는 농작물을 지인이나 .동네에서 판매 하는데 늘 물건이 모자랍니다 이제 정년도 6~7년이면 퇴직입니다 퇴직하면 고향으로 내려가 퇴직금으로 땅1000평정도 더 사고 샤인머스컷을 형님에게 기술협조얻어 전문으로 경작 해볼려고 준비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계속 채소 과일도 경험하여 먹거리도 자급자족 할려고 합니다 짧은 지식이나마 전혀 모르는 초보님께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읍니다 ...
22년 2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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