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픈그대에게♡

그립다 말하면
더욱 그리워 질까 미소만 짓습니다.

가까이, 멀리, 안보이는곳에서도
생각나고, 보고싶고, 그리워집니다.
염려하고 챙겨주고픈 온정의 마음은 다가가지 못하는 가슴시린 그리움입니다.
보고파 한들 마음뿐이기에
무엇 하나 줄 것이 없습니다.

지나온 세월동안 아픔을 승화시켜 함께 함에 고마운 마음뿐 입니다.

그저 생각과 느낌만으로도 사랑하는 마음이 행복이라 여기며,

사랑하는 마음은 꿈만 같고 현실의 삶을 초월할 수 없으니

그리움 속에 담겨 있는 그대에게 그저 행복한 미소만 보냅니다.

내 마음속에 그대가 있어 내 삶이 향기롭고 새로운 힘이지요.

현실의 벽앞에 서로에게
다가갈 수 없음이 서러움을 가져다 주지만

맑은 그리움 하나 품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글을 쓰고

서로에게 기쁨이 되는 고운 인연으로 살아가렵니다.

그저 소중히 바라보며 아껴주고 서로에게 아름다운 사랑이고 싶습니다.

사랑은...
사랑으로만 사랑할 수 있기에 당신 보고픈 생각에 미소 짓습니다.
잠 못 이루는 밤에
3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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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단은 금물!
허지만 마중하는
마음으로 다가가
봅니다.
잎눈 꽃눈?
아리송한
기다림속에
조마 조마한 기분!
조금더 기다려
기온이 오르면
기대가 무너지기도
할!
아리송한 부분들.
포포나무를 둘러보면서...
2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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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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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세 친정엄마의 병아리사랑
긴긴겨울날 병아리와동거
살맛난다시네요
1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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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감자수확
지난 봄 어린이집 원아들이 심은 감자를 수확했어요
장마철이라 계속 비가 와서 감자 수확을 제대로 할 수 있나 싶었는데 ~ 반짝 비가 오지 않는 틈을 타서 수확했네요~
원아들이 즐거워 하네요
7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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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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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감자를 사왔다
해마다 먹다 싹난감자를
심어 한대야정도 수확하고도 행복했었는데
어느해부턴가
감자속이 병들어있어서
심는걸 포기했다
연구하는 마음으로
또 심어야할까보다
에효~~
감자도 약을 쳐야하나요?
3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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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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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함의 대 축제~~
더도말고 한가위만 같어라~
마음도 몸도 풍성하고 행복한 시간들 되세요
9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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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더크것다고 바둥이면서 잘크고건강하게 자라니. 꼭 나이 먹어서 그런지 자식보다 더 보고 이쁘게 자라주니 고마운 일이람니다
6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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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고,상속받은농지입니다,제가관리하지않으면마을이고령화로 폐촌이될것같아서
시간날때마다농사짓고
있어요,(필지합900평내외)
4월 28일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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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0년대 우리들의 공감시대 7 -
우리는 국민학교 등교 길은 동네 앞에 모였다가 저학년부터 모아서 출발시켰다.
맨 나중에 6학년과 통학반장이 뒤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등교를 했다.
뒤에서 몰고 간 셈이지요.
마을마다 학교에서 6학년 중에 덩치가 있는 학생을 뽑아서 통학반장으로 임명을 했습니다.
저는 5학년 때부터 통학반장을 맡아서 했습니다.
동네에서 학교까지는 꼬빡 십리(4k)길이었다.
책과 필통을 책보로 싸서 등에 메고 뛰진 않았지만 빠른 걸음으로 걸어야 1시간이 걸렸다.
나무로 만든 필통속에서 연필이 뛸 때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책가방은 중학교나 입학해야 들고 다녔고 그 때는 하나도 없었다.
거리도 워낙 멀기도했지만 구비구비 산모퉁이를 돌고 인가도 없는 외딴길도 있어서 몸이 약하거나 여자아이들은 입학 적령기인 8살을 지나 한두살 많게는 세살 더 자라서 입학을 시켰습니다.
비포장 도로인 신작로는 마을마다 면에서 구역을 정해서 장마철이 끝나면 냇가에서 자갈과 모래를 지게 바재기로 짊어지어 나르면서 장마에 푹 꺼진 신작로를 고르게 만들었다.
이장님께서는 면에서 할당된 신작로를 마을 가구수로 나누어 다시 말뚝을 박아가면서 집집마다 할당을 했다.
집집마다 할당받은 신작로 오른쪽에 갓길에 자갈과 모래를 냇가에서 퍼다가 길쭉하게 쌓아놓았다.
그렇게 쌓아 놓은 자갈과 모래를 장마철이 지나고 움푹 파인 곳을 군에서 땅고르는 커다란 기계가와서 신작로를 반듯하게 고르고갔다.
국민학교 등하교 길은 늘 굵은 자갈길이었고신작로 양쪽에 가로수로 커다란 포푸라나무가 있었습니다.
고목인 포푸라나무에는 버섯이 피기도 했고 가운데가 썩어 껍질만 있는 속이 텅빈 나무도 있었다.
신발은 기껏해야 타이어표 검정고무신이었다.
겨울철이 아니고는 양말을 신은 아이들은 거의 없었다.
고무신을 신고 조금만 걷다보면 발에서 땀이나서 새까만 때꼬장물이 생기고 신발이 미끄러위서 벗어지기 일쑤였다.
그래서 운동회나 체육시간에는 맨발로 달리기도하고 공도 맨발로 찼다.
등교길 중간에 괴일이라는 마을앞에 회(세멘트)다리가 있었다.
날씨가 따뜻한 5월부터 여름까지는 물이 있고 시원해서 괴일 다리밑에 나병환자(문둥병)들이 몇명이 비닐을 치고 양은솥을 걸고 살았다.
항아리에 뱀을 잡아 놓았다가 끓여 먹기도 했고, 그 옆에는 동냥으로 얻어 온 곡식자루가 있었다.
다리밑에 있는 나병환자들이 어린이 피를 빨아먹으면 문둥이병이 낫는다는 헛소문이 어린아이들을 공포에 떨게했다.
그래서 하교길에 그 회다리를 건널 때는 절대 뛰지말고 살살 기다시피 조심스럽게 건너라고 통학반장이 저학년 아이들에게 가르켰습니다.
혹시나 낮잠이라도 자고 있는 나병환자들이 깰까봐서 그랬지않나?싶습니다.
혼자는 무서우니까 여러명이 모여서 그 회다리를 건넜다.
눈썹이 없고 얼굴에 흉터가 있고 손가락이 없으며 중절모를 꾹 눌러 쓴 나환자는 정말 공포의 대상이며 무서운 사람들이었다.
집에 혼자 있을 때 손이 없어서 쇠로 된 갈쿠리를 내밀면서 동냥을 달라고 할 때는 얼른 부엌으로 달려가 좀도리 쌀을 담아 놓은 단지에서 한바가지 떠다 주었다.
옛날엔 동냥을 하는 동냥아치들이 참 많았다.
동냥으론 쌀과 보리, 식은밥을 주기도했다.
또 스님들도 배낭을 등에 짊어지고 목탁을 두드리면서 시주를 받으러 다녔다.
나환자나 동냥을 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면 온 동네가 시끄러웠다.
그때는 거의 집집마다 개를 묶지않고 키웠고 그 많은 개들이 한꺼번에 짓어대니까 엄청 시끄러웠다.
그렇게 온동네 개가 짖으면 숨기도했다.
도심지에는 넝마주이들이 있었다.
넝마주이는 양아치라고 불리기도 했으며,
일제강점기 이후부터 5.16군사혁명 이후까지 있었다.
서울의 경우 40∼50곳에 거지들이 모여 살았으며, 동냥뿐만 아니라 넝마주이를 하기도 했다.
넝마주이는 "사설막"(대원들을 거느린 주인인 ‘조마리’가 관리하는 막), "자작"(개인 또는 가족단위로 만든 막) 방식의 조직을 갖추고 등에 짊어진 망태기와 집게를 사용하여 폐품을 수집하여 판매하면서 생활했다.
넝마주이도 떼지어 다닐 적엔 공포의 대상이었다.
오늘 날 페품수집의 원조가 아닐까?싶다.
구불구불하고 자갈이 깔려있던 신작로가 반듯하게 만들어지고 아스콘으로 포장되면서 포푸라나무는 사라졌다.
담양 메타쉐콰이어길과 진안 메타쉐콰이어길이 사진작가들의 출영장소가 되듯이 커다란 포푸라나무가 양 옆으로 있는 반듯한 신작로의 모습은 너무 아름다웠다.
5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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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보니 고추잎이 마르는거 처럼 보이는데 진딧물 때문인지요??
5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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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다 캣어요 !
올해처럼 힘들긴 첨이네요 ,
그나마 자식들이 도와줘서ㆍㆍㆍ
이젠 선별해서 맛있는 꿀고구마 마구마구 보내드릴려구여 ,
10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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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있는 청년들이 움직여야 하는 시점 이 다가오고 있다.
6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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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이 노랗게 변해서 마그네슘 EM혼합하여 엽면살포 하였습니다
수확할때가 되서인지요?
7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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