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처럼 꽉 차고 풍성한 한가위 보내세요^^
5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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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차 모종 발송
지난 3월에 씨앗뿌린 눈개승마 섬엉겅퀴 섬쑥부쟁이 모종을 오늘 1차로 시집보냈습니다.
어느해 보다 모종이 아주 잘되서 보내는 마음이 흐뭇합니다.
모종 상태가 좋은만큼 어디서든 잘 뿌리를 내리고 잘 클듯 싶네요^^
5월 16일
11
9
Farmmorning
고추육묘 59일차
곧 있으며 고추정식들어가네여!!!
4월 22일
13
4
Farmmorning
적과를 할려는데 1차로 봉우리 안 모아진거는
제거 하고 열매가 될려는 것들은 나둬도 될까요?
5월 7일
12
4
Farmmorning
최고의 다수확 서리태를 위해 1차 순치기
https://youtu.be/9S_X6O2K-iA?si=sAksJGDdqh545uXg
7월 17일
7
1
4일 ㅡ 고추 정식작업
5일ㅡ 옥수수 4판 식재
12일 ㅡ 참깨 정식 예정
안산참깨 12판 트레이 모종 키우는중
19일ㅡ 들깨 모종만들기 트레이 작업
마늘밭 물관리 및 마늘종 제거작업
고추밭 지지대 설치작업 및 1차 줄치기
고추 1차 줄치기후 고정집게로 잡아주기
부직포 깔기 작업
5월 농사 일정이 빡빡하게 돌아갈듯 합니다
으샤으샤 !! 파이팅 하세요
5월 4일
23
9
1
Farmmorning
1차추비
5월 25일
4
3
Farmmorning
밭이 고냉지라 그런지
~~♡ 아카시아 꿀에
재운 여주 ice차. 넘 안
쓰고 맛나네요. 동생 준
다고 8마리 심었는데,
저희 부부도 좋으네요.
ㅎ.
7월 24일
21
25
Farmmorning
1회차정답.샤인 머스켓.
2차정답. 불루베리. 3회차정답.여주. 4회차정답.4번.
8월 6일
12
3
지금은 돌아가신 시아버님 고향이고, 조상묘가 있다보니 1년에 한두번은 방문 했었어요. 서울에서 살던 남편도 초등학생 시절부터 할아버지 댁에 방학 때면 놀러왔던 곳 이네요.
지금은 시아버님 시어머님도 영면 해 계시고, 곳곳에 일가 친척 분들도 많이 살고 계세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이곳에 터를 잡게 되었어요. 저희 농장은 보은군 장안면 구인리에 자리 잡았고, 작년에 대추 나무 식재 했고, 양봉은 6년차 입니다.
4월 29일
13
10
Farmmorning
♥한국( 韓國 )은 보석 같은
나라였다! ♥
- 한국인은 원래
善한 품성을 가진
백의민족이었다. -
요즘 우리 세대가
自己中心의
윤리적 에고이즘에
빠져있지는 않는지
살펴봐야 겠다.
우리 조상들은
작은 벌레의 생명조차도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뜨거운 개숫물을
마당에 버릴 때에는
이렇게 외쳤다.
“워이 워이!”
물이 뜨거워 벌레들이
다칠 수 있으니
어서 피하라고
소리친 것이다.
봄에 먼 길을
떠날 때에는
오합혜(五合鞋)와
십합혜(十合鞋),
두 종류의 짚신을
봇짐에 넣고 다녔다.
'십합혜'는
씨줄 열 개로
촘촘하게 짠 짚신이고
'오합혜'는 다섯 개의
씨줄로 엉성하게 짠
짚신을 가리킨다.
행인들은
마을길을 걸을 땐
'십합혜'를 신고 걷다가
산길이 나오면
'오합혜'로 바꾸어 신곤 했다.
벌레가 알을 까고
나오는 봄철에
벌레들이
깔려 죽지 않도록
듬성듬성 엮은
짚신을 신은 것이다.
'오합혜'는
'십합혜'보다
신발의 수명이 짧았으나
그 만큼 벌레의
수명은 늘어났다.

콩을 심을 때엔
세 알씩 심었다.
한 알은 땅 속에 있는
벌레의 몫으로,
또 하나는
새와 짐승의 몫으로,
마지막 하나는
사람의 몫으로 생각했다.
감나무 꼭대기에 
‘까치밥’을 남겨 놓고,
들녘에서
음식을 먹을 때에도
"고수레"하면서
풀벌레들에게
음식을 던져주었다.
이러한 미덕은
우리의 식문화에도
그대로 배어났다.
여인들은
3덕(三德)이라고 해서 식구 수에
세 명의 몫을 더해
밥을 짓는 것을
부덕(婦德)으로 여겼다.
걸인이나
가난한 이웃이
먹을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미국 여류소설가
'펄 벅'은 장편소설
‘살아 있는 갈대’에서
한국을
‘고상한 사람들이 사는 보석같은 나라’로 표현했다.
그녀의 극찬은
한국에서 겪었던
특별한 체험때문 이었다.
1960년 '펄 벅'이
소설을 구상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여사'는 늦가을에
군용 지프를
개조한 차를 타고
'경주'를 향해 달렸다.
노랗게 물든 들판에선 농부들이 추수하느라
바쁜 일손을 놀리고 있었다.
차가
'경주 안강' 부근을
지날 무렵,
볏가리를 가득 실은
소달구지가 보였다.
그 옆에는
지게에 볏짐을 짊어진
'농부'가 '소'와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여사'는 차에서 내려
신기한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여사'가 길을 안내하는
통역에게 물었다.
“아니, 저 농부는
왜 힘들게 볏단을
지고 갑니까?
달구지에 싣고 가면 되잖아요?”
“소가 너무 힘들까 봐 
농부가 짐을 나누어 지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요.”
'여사'는 그때의 충격을 글로 옮겼다.
“이제 한국의
나머지 다른 것은
더 보지 않아도 알겠다.
볏가리 짐을 지고 가는 저 농부의 마음이 바로
한국인의 마음이자,
오늘 인류가
되찾아야 할 인간의
원초적인 마음이다.
내 조국, 내 고향,
미국의 농부라면
저렇게 힘들게
짐을 나누어 지지 않고,
온 가족이 달구지
위에 올라타고 채찍질하면서
노래를 부르며 갔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농부는
짐승과도 짐을 나누어 지고
한 식구처럼 살아가지 않는가.”

구한말 개화기에
한 선교사가 자동차를 몰고 시골길을 가고 있었다.
그는 커다란 짐을 머리에 이고 가는 할머니를 보고
차에 태워드렸다.
저절로 바퀴가 굴러가는
신기한 집에 올라탄 할머니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뒷자리에 앉은
할머니는
짐을 머리에
계속 이고 있었다.
“할머니, 이제 그만
내려놓으시지요?"
선교사의 말에 할머니는 순박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이고, 늙은이를 태워준 것만 해도 고마운데,
어떻게 염치없이
짐까지 태워달라고
할 수 있겠소?”
차를 얻어 타고서
차마 머리에 인 짐을
내려놓지 못하는 善한 마음이 우리의 모습이었다........
6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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