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룽지 찹쌀 어제 신청했습니다 유기농이라 특가로 구매해 먹어보려고 괜찮으면 쌀도 찹쌀도 쭉 구매해 보려구요 ㆍ
23년 12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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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찹쌀 - 일반계] 2022-09-29 시세변동 뉴스
도매)부산
전남 장흥 지역에서 주로 출하되고 있음
최근 햇품이 출하되고 있지만 소량의 출하량으로 인해 강보합세
도매가격 40kg 기준 103,000원에 거래되고 있음
향후 출하지역이 늘어나고 햇품 출하량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어 약보합세
출처 : 한국 농수산식품유통공사
22년 9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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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 전초전 7
찹쌀+자가로만든 사과물 =가공중
23년 11월 15일
Farmmorning
안녕하세요 장유경네집입니다
오늘은 무릎인대 치료3일차입니다.보양이 필요해서 찹쌀삼계탕 먹습니다. 다음주까지는 진료해야 한다네요.
22년 9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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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자(單子)요"
이게 무슨 말인가?하시겠지요?
6-70년대 배고플 때 이야기입니다.
그때는 마을에 대사(大事)가 있는 날이 최고였습니다.
대사는 자식들 결혼이나 어르신들 환갑잔치를 치르는 것을 대사를 치른다고 했습니다.
혼인(婚人)날은 온 마을 잔칫날이었습니다.
그 다음이 마을 어르신의 환갑잔치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죽어도 분위기는 초상집이지만 음식이 많아서 잔치 분위기였습니다.
이런 잔치날이면 집에서 키운 돼지를 잡고 음식을 잔뜩 준비해서 손님 접대를 했습니다.
결혼이나 환갑잔치 등 대사를 치를려면 그날에 맞춰서 미리 돼지를 키웠습니다.
요즘 말하면 뷔페에서 각자가 음식을 덜어다 먹는데 그때는 상차림을 하기 위해서 떡, 한과, 고기, 전 등을 담당하는 아낙네들이 과방이라는 창고에서 접시에 담아 내놓으면 행여나 음식 가짓수가 빠지지않게 접시 숫자를 세면서 상차림을 했습니다.
마당 한켠에 커다란 가마솥을 걸어 놓고 떡국과 밥을 해서 손님들 접대를 했습니다.
그때 떡은 노란 콩고물을 묻힌 인절미였습니다.
마당에 두꺼운 커다란 안반(案盤)을 놓고 느티나무로 만든 떡메로 인절미를 만들었습니다.
남정네는 떡메질을 하고 아낙네는 손에 물을 묻히면서 찹쌀을 게속 뒤집었습니다.
기계로 빼는 떡보다 덜 으깨진 쌀알이 있어서 매끈하지 않고 거칠었습니다.
특히 대사 때나 환갑잔치 때는 몇날 몇일을 걸쳐서 음식준비를 했습니다.
찹쌀로 만든 유과와 깨강정, 콩강정, 쌀로 튀밥을 튀겨서 만든 쌀강정, 그리고 짭잘하고 약간 매콤한 연사, 무나 호박을 조청에 고아 정과를 만들어서 상에 내 놓았습니다.
또 양은냄비에 그날 잡은 돼지뼈를 고아서 만든 돼지찌개나 해산물 탕을 올렸습니다.
누룩으로 막걸리를 빚기도하고 엿기름을 고아서 엿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때 술은 집에서 빚은 막걸리는 밥알이 둥둥 떠있고 노란 양은 주전자에 담아서 내놓았습니다.
어른 키만한 항아리에 집에서 술을 빚어서 손님들 상에 음식과 같이 올렸습니다.
이웃 마을 잔치집에 가신 할머니께서는 인절미와 유과 그리고 돼지고기를 드시지 않으시고 손수건에 싸 가지고 오셔서 먹으라고 내놓으셨습니다.
할머니께서 안드시고 손수건에 싸온 음식이 정말 맛있었습니다.
돼지고기와 한과, 떡, 전 등이 합쳐서 짭잘하기도했고, 달작지근하기도 했습니다.
어린 우리는 잔치집에 종일 들락거리면서 고기며 전 등 음식과 떡국을 배부르게 얻어 먹었습니다.
대사를 치르는 집이나 환갑잔치를 하는 집은 그릇이나 상(床)이 모자라서 집집마다 그릇을 빌려다 쓰기도 했습니다.
우리집은 읍내 시장에가서 모자란 접시와 그릇, 양은냄비, 젓가락과 수저, 커다란 상을 임대를 해서 사용하고 반납했습니다.
잔치를 마치고 시장에 빌린 물건을 반납하러갈 때 처음 빌려간 숫자와 틀리면 현금으로 갚았습니다.
자식들이 많은 우리집은 워낙 잔치를 버릴 일이 많아서 그릇은 많이 있었고 커다란 접이식 상은 여러개를 구입해서 사용했습니다.
지금도 창고에 그 때 썼던 상이 그대로 있고
파란색으로 테두리를 한 사기로 된 접시나 하얀 밥그릇 국대접 등이 나무로 된 사과상자에 그대로 보관되어 있습니다.
福자 그릇 아시죠?
그 옛날 마을에서는 설 명절과 추석 명절에 돼지 한마리를 잡았습니다.
지게 바작에 짊어지고 다니면서 추달린 저울로 잘라서 회푸대종이(세멘트포대)에 싸서 대부분 한근 내지는 두근씩 팔았습니다.
그 시절에는 명절 때나 고기를 먹는 날이었습니다.
닭은 집집마다 키웠기 때문에 생일날이나 명절 때마다 잡아서 미역국이나 떡국을 끓여 먹었습니다.
그냥 마당에 풀어서 키웠기 때문에 잠시 집을 비우면 마루에 닭똥이 많이 있었습니다.
밥상위에 아차하고 상보를 덮는 것을 잊었을 때에는 닭들이 난리를 쳤습니다.
이렇게 음식을 얻어 먹을 수 있는 기회가 그 다음이 단자(單子)였습니다.
단자라?
단자놀이는 제사가 있는 집에 빈소쿠리를 마루에 던저놓으면 그 소쿠리에 제수음식을 나누던 옛 풍습입니다.
보통 제사를 지내는 집은 떡과 과일, 고기를 풍족하게 준비하고 제사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으면 복이 들어온다고 여겼습니다.
단자놀이는 음식을 주는 쪽과 받는 쪽 모두 함께 나눔을 실천하며 기분 좋게 즐겼던 아름다운 풍습입니다.
아마 생소한 단어라고 의아하게 생각을 합니다.
옛날에 제사 때 단자를 보내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전라도 산간지방과 경상도 지방에 있는 풍습인 것 같습이다.
그 옛날에는 동네 집집마다 살강에 숟가락이 몇개인지도 알고 지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제사는 음력으로 모시는데도 마을 제사 날자를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사를 모실 때는 조상님께 대한 예의를 갖추는 뜻에서 음식을 정성껏 많이 장만했습니다.
제사를 지내고 이웃을 모셔다 식사를 같이 하기도 하고,
새벽에 떡과 음식을 집집마다 나누곤 했습니다.
새벽에 차디찬 음식이지만 얻어 먹었던 떡과 전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동네 제사날을 다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음력으로 제사를 모시는데 어떻게 기억하시고 계시는지?
달력에 표시를 하신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제사는 저녁 9시부터 진솔하고 11시경에 모시는데 마루에
"단자요"하면서 소쿠리가 던져졌습니다.
사랑방이나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놀다가 "오늘 누구네 제사날인데 단자나 하자"하면서 소쿠리를 챙겨서 제사를 지내는 집에 단자를 보냈습니다.
제사날을 기억하지 못해도 전과 음식을 준비할 때 기름냄새가 나기 때문에 제사날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사를 모실 때는 꼬막을 제삿상에 올렸습니다.
꼬막을 학독에 넣고 씻는 소리에 "저집이 오늘 제사날이구나"하고 제사날을 짐작했다고합니다.
기나긴 겨울에 밤참으로 단자를 많이 했습니다.
여름보다 밤이 긴 겨울에 제사를 모시는 어느 날은 소쿠리가 2-3개가 놓여 있기도 했습니다.
저희 집은 섣달 22일과 23일에 제사를 연이어 지냈습니다.
동지 섣달 기나긴 밤이라 그 날은 어김없이 단자 소쿠리가 마루에 던져졌습니다.
어머니께서 대나무로 엮은 소쿠리에 준비한 음식을 골고루 듬뿍 담아서 술과 함께 내놓으면 살금살금와서 소쿠리를 가져갑니다.
그래서 밤이 긴 섣달에 모시는 제사 때는 더 많은 제수음식을 장만하신 것 같습니다.
연이틀 제사를 모시기 때문에 인절미를 만들어서 제사를 모셨습니다.
나머지 제사 때는 절구통에 쌀가루를 도굿대로 빻아서 팥시루떡을 하셨습니다.
나도 사랑방에서 머슴들이 단자를 해온 음식을 얻어 먹은 추억도 있습니다.
단자는 사랑방에서 동네 머슴들이 모여 놀다가 주로 했습니다.
먹거리가 절대 부족할 때 동네 대사 때나 환갑잔치를 할 때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고,
단자를 해서 기나긴 밤에 밤참으로 먹었습니다.
이번주에 한파가 있다는 예보입니다.
오늘 오후부터 찬공기가 내려와서 내일부터 영하의 날씨가 어어진다네요.
영하의 날씨여도 눈비만 없으면 일상생활에 어려움은 없는 것 같습니다.
어제 시골집 안채에 보일러는 외출모드로 설정해 놓았고 별채에 전기온수기는 떼어 놓고 변기랑 수도는 열선으로 감았습니다.
수도꼭지를 조금 열어서 동파방지를 하고 왔습니다.
따뜻하시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12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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