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길
작자/미상
어디쯤 왔을까
가던 길 잠시 멈추고 뒤돌아보니
걸어온 길 모르더니
갈 길도 알 수가 없다
살아오며 삶을 사랑했을까
지금도 삶을 사랑하고 있을까
어느 자리 어느 모임에서
내 세울 번듯한 명함하나 없는
노년이 되었나 보다
붙잡고 싶었던 그리움의 순간들
매달리고 싶었던 욕망의 시간도
겨울 문턱에 서서
모두가 놓치고 싶지 않는 추억이다
이제는 어디로 흘러 갈 것인가
걱정하지 말자
아쉬움도 미련도 그리움으로 간직하고
노년이 맞이하는 겨울 앞에
그저 오늘이 있으니 내일을 그렇게 믿고 가자
무심코 살다 보면 꼭 노년의 겨울이 돼서야
깨닫게 하는 시간은 얼마만큼 갈 것인가
그냥 지나가다
세월이 무심코 나를 데리고 갈 것이다
겨울을 느낄 때쯤 또 봄은 다가 올 거고
사랑을 알 때쯤 사랑은 식어 가고
부모를 알 때쯤 부모는 내 곁을 떠나가고
건강의 중요성을 느낄 때쯤
건강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나 자신을 알 때쯤 많은 걸 잃었다
흐르는 강물도 흐르는 세월도
막을 수도 잡을 수도 없는데
모든 게 너무 빠르게 변하며 스쳐가고
항상 무언가를 보내고 또 얻어야 하는가
무상 속에 걸어온 길 되 돌아본다.
4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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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콜리의 밀도와 모양이 안좋은데 혹시 원인 아시는분 계실까요??
아시아종묘 얼리유 품종입니다
5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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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mmorning
아삭이고추이줄알고파종햇는데 청량고추네요지금아삭이파종해도될까요
6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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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고추농사 짓는 완도 정 미라입니다
여러 대놈하신분들과 경험있으신 선배님들께 정중히 여쭐께요
제가 올해 군데 군데 땅모아보니 약 2천600평 정도 되는데 2줄짜리로 노지 터널형 모종 정식하려면 대략 몇주가 필요하는지 가르쳐 주시면 감사하겠읍니다
또 아울러서 요즘 왕겨랑 ㆍ소거름 살포해두고 내일 노타리칠 계획입니다 다음단계부터 고추모종 정식때까지 뿌려둬야하는 거름과 약들 순서대로 가르쳐주시면 감사드리면서 더욱 낯은 자세로 열심히 배워보렵니다 감사드립니다
1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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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렁이종패 파는곳 아시는분?
5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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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에도 방 토 요러콤 따 먹으면 좋겠구요. 고추는 금수강산 품종인데 논에 마사토 투입 첫 재배인데 지켜보는 중이고요,수박도4포기에서 6알 커는중.땅콩도 추석무렵 결과 나오겠지요. 패화석 뿌리고 들깨모종 300주 이식 예정.
6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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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mmorning
옛날 청포도 묘목 파는곳 아시는분 좀 알려주세요 요즘 샤인머스켓 이란 포도 말고요
껍질은 익어도 청색 이고 말랑말랑한 포도입니다
6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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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수미 감자 수확 준비합니다
넉달 정도 됐구요
씨알이 굵고 예쁘네요
쪄먹어보니 포슬포슬 맛나네요
낼부터 캡니다 ㅎㅎ
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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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mmorning
상추종류인것 같은데 어떤건지 아시는분 계실까요...어떤분이 작년 가을에 심었던거 얼마전에 밭갈기전에 몇포기 옮겨 심긴했는데 이름이 뭔지 모르겠내요
4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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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mmorning
콩나물 키우기에 도전하고 있는데 콩나물 머리에 썩은게 많습니다.
좋은콩만 골라서 했는데
왜 그럴까요
아시는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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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Farmmorning
💖 참 좋은 사람 💖
 
마음이 그렇습니다.
그저 가만히 곁에만 있어도 행복합니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저 곁에만 이렇게 있어도 너무 좋습니다.
 
백 마디 알 수 없는 말보다
당신의 고운 눈빛 하나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얼굴 가득 맑음으로 채워진 미소만으로도
또 다른 힘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느낌이 그렇습니다.
그저 가만히 곁에만 있어도 든든합니다.
어떻게 무얼 안하셔도 좋습니다.
그저 곁에만 늘 이렇게 있어도 든든합니다.
 
내일을 알 수 없는 세상 속에서
당신의 늘 한결같음은 소중한 믿음이 되고
가만히 잡는 손에 전해오는 따스함들은
삶이 혼자가 아니 것에 감사하게 합니다.
 
마음이 그렇고
느낌이 그렇습니다.
그저 가만히 곁에만 있어도
내가 행복한 당신은
참 좋은 사람입니다.
 
♡♡좋은글♡♡
3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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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mmorning
안녕하세요~
저는 많지는않지만 감자 고추 배추를 심고 닭20마리 오골계9마리를 기르고있어요~
팜모닝을 보면서 많이알게되어 감사합니다.
4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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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참깨 밭에. 안 나가봤더니. 요로코롬잘자라고있네요 다른밭 참깨들은. 병 이와서 다내려앚았다고하길 래 울집참깨도그런줄알고. 가보았더니 너무 탐스럽게. 잘자라주고있네요. 감사하게도~~
7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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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에 마굿간을 치웠습니다.
동네 목수아저씨께서 처음으로 지은 마굿간이고 올해 97세되시는 아버지께서 평생 관리하셨던 마굿간이라 버릴 것이 엄청 많았습니다.
소외양간은 겨울철엔 보름정도 지나면 마굿간에 지푸라기를 걷어내고 새지푸라기로 깔아주면 뽀송뽀송해서 소가 좋아했습니다.
육중한 소가 배설물과 섞인 지푸라기를 밟아 차곡차곡 쌓인 지푸라기는 다져저서 쇠스랑으로 한참을 걷어내야 했습니다.
수시로 지푸라기를 넣어주면 거름도 만들고 겨울에 차디찬 마굿간이 보온효과도 있습니다.
겨울에 마굿간을 치울 때는 소를 마굿간에서 몰고 나와야하는데 그 순했던 소가 오랫만에 밖에 나오니까 얼마나 날뛰는지요?
놓치지 않을려고 코투레를 잡고 실강이를 한참하고서야 진정되었습니다.
소가 소똥과 오줌을 뒤섞여 밟힌 지푸라기는 섞고 발효가되면 논밭에 좋은 퇴비가 되어서 봄에 리어카로 실어다 보리고랑에 깔았습니다.
옛날에는 화학비료 대신에 거의 퇴비로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 때 소를 키웠던 마굿간은 꽤나 넓고 높았던 것으로 기억되고 있었습니다.
큰 어미소가 송아지랑 같이 지낸 곳이었거든요.
머슴살이가 없어지면서 소마굿간을 창고로 쓰실려고 돌로 된 커다란 쇠구시를 들어내시고 세멘트로 바닥을 깔고 벽을 벽돌로 쌓았습니다.
소를 키울 때는 소가 뿔로 벽을 비벼서 흙이 많이 부서지고 벽에 구멍이 송송나서 겨울철에는 짚을 엮어서 벽을 둘러주곤 했습니다.
어릴적에 그렇게 넓게 보였던 마굿간이 좁게 보였습니다.
시골에서는 농기구와 잡다한 생활용품을 보관하는 장소가 꼭 있어야 합니다.
농사를 한다면 창고도 필요할텐데 이제는 필요가 없게 되어서 마당을 넓히고 집앞을 앞이 훤하게 만들려고 마굿간을 뜯기로 했습니다.
마당까지 승용차도 들어갈올 수가 있습니다.
집앞 텃밭 길가에 커다란 컨테이너박스가 있어서 곡물은 보관할 곳이 있습니다.
소마굿간에는 어린아이들 키만한 항아리가 몇개가 들어 있었습니다.
두분이 워낙 아까워서 버리시지 못하고 구석구석 뭉쳐서 쌓아 놓으셨습니다.
그 항아리 속에는 비닐봉투, 옛날 콤바인 나락푸대, 비닐멍석, 헌옷가지 등 수없이 나오더군요.
비닐 호스가 몇개, 주름관으로 된 호스 등은 터서 뻣뻣해 다 버려야했습니다.
베틀과 쟁기, 써레, 가마니틀, 홀태, 김매는 기계, 등잔대, 삼매는 기계, 새끼로 만든 꼴망태, 가마니를 찔러서 나락이나 쌀을 감정하는 삿대가 대.중. 소로 몇개, 짚으로 만든 쌀가마니를 들 때 썼던 쇠고랑, 소등에 얹는 굴레, 소코뚜레, 물레, 무쇠솥, 소죽을 끓였던 가마솥 뚜껑, 주걱, 절구대, 안반, 요강, 소나무 뿌리로 만든 깨끗한 채반 등은 사랑채 공로에 따로 보관했습니다.
주물로 된 요강과 반상기세트와 수저, 젓가락, 가마니를 짜는 바디, 떡모양을 누르는 떡사슬, 호롱과 등잔대, 커다란 함박과 바가지, 삼베를 짤 때 썼던 붘, 솔, 삼베를 말끔하게 누르는 붘, 솔나무 뿌리로 만든 도시락, 곡물을 재는 되와 말, 누룩을 만드는 누룩틀, 실타래, 인두, 숫을 넣어서 아버지 모시옷과 삼베를 다렸던 다리미, 할머니께서 피시던 곰방대 등은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축제를할 때면 한쪽 코너에 옛날 물건을 전시하고 학생들에게 설명을 해주곤 했습니다.
공로에서 물건을 들어내던 동생이 공로귀퉁이 안쪽에 세워져 있는데 뭔가 싸~한 느낌이 온다고 하더군요.
신문지와 세멘포대로 몇번을 둘러싸맨 모양이 대두병이었습니다.
신문지를 다 벗겨내니 역시 옛날 색깔이 어두운 대두병에 뱀으로 술을 담근 병이었습니다.
마개를 비닐로 싸매고 고무줄로 여러차례 동여맸습니다.
라벨지에 "1991년 10월 능사"라고 메모를 해놓으셨습니다.
카메라로 찍어 확대를 해봐도 술이 맑았습니다.
일단은 뱀이 부패되지는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뱀은 징그럽지만 술이 깨끗해서 광 한쪽구석에 보관을 했습니다.
술을 담근지 30년이 넘은 술이라 어쩌면 귀한 물건이 아닐까?싶네요.
옛날 한옥은 지붕이 뾰쪽하고 높았습니다.
안방에 아래묵에서 오를 수 부엌과 천장사이가 워낙 높아서 벽장이라는 곳을 만들어서 잡다한 물건을 올려놓고 안방과 방마다 지붕과 천장사이에 공로라는 공간을 만들어서 사용하셨습니다.
6.25사변 때 소마굿간 위에 나무로 걸쳐서 공로를 만들어 식량과 놋쇠를 그 곳에 감추셨다고 합니다.
1976년 제가 군복무를 마칠 때부터 머슴살이가 없어졌습니다.
머슴들이 솔잎가리 나무를 해와서 부엌에서 불을 지피실 때 불쏘시개로 쓰셨는데 솔가리나무를 해올 사람이 없어서 신문지나 박스를 찢어서 불쏘시개로 쓰셨습니다.
제가 학교에서 신문지를 모아서 박스에 담아다 드렸고,
박스를 찢어서 박스에 담아드렸습니다.
아까워서 쓰시지도 않은 신문지가 담겨있는 박스에 80년대 말과 90년대 초의 날자가 있는 신문지가 여러박스가 쌓여 있었습니다.
동네 재활용 모으는 곳에 내다가 쌓아 놓았습니다.
기둥마다 녹슬은 철사며 자루가 빠지고 끝이 다달은 괭이와 삽, 호미, 양은 솥, 양은 냄비, 양은 그릇, 양은 주전자, 바닥이 녹슬어서 뻥 뚫린 화루, 쇠파이프로 만든 부지깽이, 녹슬은 다라이, 조개탄과 장작으로 불을 지폈던 녹슬은 난로, 등에 짊어지고 소독했던 약통, 금간 곳을 파란 테이프로 붙여서 쓰셨던 고무다라이, 바께스, 함석쪼가리 등 수없이 버릴 수 밖에 없는 물건이 엄청 많았습니다.
그 동안 모아두셨던 프라스틱 파이프는 어찌나 많이 모아놓으셨는지요?
튜브가 다 터져 바람이 다 빠진 리어카로 몇번을 실어 날랐습니다.
리어카도 할일을 다한 것 같습니다.
이제는 리어카도 없앨 때가 되었습니다.
돼지와 염소를 키웠던 마굿간에는 장작을 쌓아놓으셨는데 아까워서 마당 한켠에 옮겨놓고 함석으로 잘 덮어 놓았습니다.
얼마나 많은지요.
가마솥을 걸은 뚤방과 지붕아래로 두줄이 되더군요.
아까워서 쌓아놓긴 했는데 쓸일이 있을런지?모르겠네요.
통나무를 장작을 팼는데 나무도 오래되면 좀이 쓸어서 화력이 없거든요.
화목보일러를 사용하는 이웃한테 가져가라고하면 바로 실어가는데 혹시나해서 쌓아 놓았습니다.
마당 앞쪽에도 알밤을 저장했던 그늘만 가리는 창고가 있었습니다.
1960년대 산림사업으로 산에 유실수인 밤나무를 군에서 심었습니다.
70년대부터 산에서 알밤을 송이채 털어서 멱다리에 담아 신작로까지 지게로지고 내려와서 리어카로 실어다 땅을 파놓은 곳에 넣고 물을 계속주면 알밤송이 가시가 썪어서 발로 문지르면 알밤이 나옵니다.
80년대 말까지 알밤을 대나무로 털어서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가을걷이 중에 가장 힘든 일이 알밤을 터는 일이었습니다.
부가가치, 가성비가 전혀 없는 알밤수확이었습니다.
그래서 개량종 4그루 정도만 풀도 깍아주고 알밤을 주어서 제사 때랑 씁니다.
가을이면 손톱만한 빨간알밤이 산에 즐비합니다.
그 알밤창고에도 장작이 얼마나 많은지요.
장작개비만 들어내는데 거의 한나절이 걸렸습니다.
이번에 알밤창고도 밀어낼려고 합니다.
농기구도 너무 많아서 몇개만두고 없앨려고 합니다.
안집 냉장고가 냉동이 안되어서 들어내고 별채에 냉장고와 김치냉장고가 있는데 김치냉장고를 갔다 놓았습니다.
아버지께서 매직으로 2009년 10월이라고 구입날자를 적어 놓으셨습니다.
양문형으로 그때는 제일 큰 것으로 사다드렸는데 겉은 깨끗한데 형제들이 괜히 AS를 받지말고 사람들 있을 때 없애자고 하더군요.
마굿간을 치우느라 애쓴 동생들한테 농사지은 분께 방아를 찧어달라고 부탁해서 방금 방아를 쪄온 쌀을 실어주었습니다.
서울에 살고 있는 누이와 여동생네도 수원사는 동생편에 실어 보냈습니다.
공직을 퇴직하고 서각으로 취미생활을 하는 막내동생 친구가 이번에도 와서 애를 많이 썼습니다.
서각에 필요한 송판과 나무토막, 절구통을 실어주고 쌀도 한포대 실어주었습니다.
먼지구덕에서 마굿간을 치우느라 멀리서 내려와서 애쓴 사촌동생과 형제들이 감사했습니다.
큰집일이라면 열일을 제치고 도와주는 사촌동생이 전주에 살고 있어서 집안일 뿐만아니라 큰집일에 너무 많은 덕을 보고 있어서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번주에 스레트를 걷어내고
마굿간을 철거하하고 마당을 치우는 일은 제 몫이 되었습니다.
지난주에 TV프로에서 신체적으로 어렵고 힘든 상황을 딛고 일어나는 어떤 젊은이가
"100% 만족보다는 2% 부족할 때가 더 좋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응원하고 싶은 젊은이였습니다.
얼마나 좋은 글귀입니까?
"100% 만족보다는 2% 부족할 때가 더 좋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되새겨 봅니다.
3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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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mmorning